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건물들이 빼곡한 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나서 느낀 바뀐 점. 원래 여기는 삼거리인데 오늘은 사거리로 바뀌었다.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으나 왜인지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대체 왜 이런 변화를 느끼지 못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게 아니라 사거리로 인해 교통량에 얼마나 차질이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결론은 쉽사리 나지 않았다.
"오솔길로 가면 빠른데."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아무튼, 그것은 참...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삼거리에서 접속하는 길 하나가 늘어 사거리가 되었는데, 여기서 새로난 길 너머를 쳐다보았다. 끊임없이 펼쳐진 논밭에 지평선이 보인다. 평화로운 시골 분위기
아마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을 것이다.

다시 사거리를 바라 보며 아까 하던 생각을 마저 했다. 이 곳은 나에게 왜 주어졌는가? 이러한 물음 속에 쉽사리 답변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아이들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도 걸어도 논밭만 계속 이어진다
논밭 사이로 난 길도 없이 계속 논밭
이것은 논인가 밭인가.

평화로운 시골. 시골 풍경에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시골에 거주하고 계신다. 도시 생활이 이렇게 편한 것을 왜 할머니는 모를까. 사실 할머니도 시골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왜 시골에 사냐 하면은 아마 뒷마당에 묻혀있는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 하늘을 올려다 보니 비행기가 저 멀리로 날아간다. 비행기를 잡으려 팔을 들어보지만 역부족이다. 저 비행기의 행선지는 어딜까.

도심의 빌딩을 벗어나 시골을 거닐다보니 내가 원래 목표로 하던 것도 잊어버렸다. 애초에 목표라는게 있었을까? 꿈을 위한 목표였는지 현실을 위한 목표였는지 잊어버렸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동물이라고 꼭 짐승은 아니다. 하지만. 짐승은 아마도 동물에 속하지 않을까. 속한다는거는 무슨 의미일까, 우리가 자주 쓰는 말도 무슨 뜻인지 생각하려고 하면 갑자기 혼란스러워 진다. 우리가 쓰는 말에는 실체가 있는걸까? 언어습득이란 무엇일까? 언어가 실존하는 개념?

아무렴 상관없고말고. 주변엔 논밭뿐. 언어든 짐승이든 이젠 상관 없다. 내 주변엔 논밭 뿐이니깐.

그렇게 한참을 걸어보니 갈림길이다. 어느 갈림길로 가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어느 논밭으로 가는지를 정하는게 아닐까. 어차피 같은 논밭인데 갈림길로 논밭의 방향성이 결정된다는게 인간의 이기성을 잘 느낄 수 있다. 아니면 논밭이라는 말도 어쩌면 혹시?

아무 곳으로 내달리니 슬슬 불안하다. 이게 어디서 오는 불안감인지를 찾을 수 없다. 해야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내 행동에는 예술성이라고는 전혀 없지만 예술성이 있어야만 한다. 이 배경이란 무엇이지?

생각하는건 언제나 행복일까. 글쎄. 생각해보니 무섭다. 갑자기 내 뒤에서.



라는 내용의 꿈을 꾸었다.
왜 꿈은 항상 이상하지? 거기서 하는 나의 행동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배경도 이상하다. 전개도 이상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이상하게 몸이 내 맘대로 안 움직인다. 내 꿈에서 나는 사실상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일어나면 잊어버린다. 왜 잊어버리지? 내 꿈에 중요한게 없었다는 사실인가?
이 정도 생각하니까 이제 꿈 내용은 거의 다 잊혀졌다. 그냥 대충 꺼림직한 꿈을 꿨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갑자기 할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근 3년간 할아버지를 못본거 같다. 왜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지.
아, 그러고 보니까 나는

죽었는데...



- 줄거리나 등장 인물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막 쓸 경우 소설이 이렇게 된다는걸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