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아직도 얼떨떨하다. 그러니까, 이상한 메일을 받고 갑작스럽게 1937년의 장제스에 빙의됐는데, 갑자기 왜?


그나마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가설을 생각해보자면 무슨 대기업에서 나를 납치해 내 뇌를 가지고 이상한 실험을 하고 있거나, 이게 꿈이거나 둘 중 하나 같은데, 꿈이라기엔 너무 실감이 난다. 당장 아까 엉덩방아를 찧은게 아직도 아픈거 보면...


비서를 내보내고 잠시 바닥에 앉아있던 나는, 일단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달력을 보았다. 오늘은 7월 6일. 1937년 7월에 뭐가 있었냐면.....


'노구교 사건?'


노구교 사건은 중일전쟁의 시작점이 된 사건으로, 노구교라는 중-일 국경지대의 다리에서 일본군 1명이 설사로 인해 잠시 실종된 걸 중국군이 공격한 것으로 왜곡한 일본군이 선제 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이미 하루밖에 안 남은 만큼, 중일전쟁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일을 2가지로 정리해보자면,


1. 중일전쟁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고


2.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쫓겨나는 원인이 된 중국 공산당을 퇴치한다.


이렇게 정리가 되는데, 1번이야 내 미래 지식을 이용하면 어떻게 되기야 하겠지만, 2번은 일단 1번이 성공해야 좀 더 쉬운데다가 성공해도 미국이 말릴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나는, 내 일을 하기위해 관저에 붙은 회의실로 걸어나갔다. 


"총통 각하 입장하십니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내게 상당히 익숙한 이름을 가진 장군들과 관료들이 도열해 있었다.


"오늘 오전 일본군이 루거오차오 동북 구역을 침입하여 사격 훈련을 벌였습니다. 일단 현지의 21군단장이 일본이 일정 이상 접근하면 사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건 그렇게 하고... 베이핑과 톈진 등 허베이 지역의 방어 강화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현재 29군이 평톈 지역을 수비하고 있으며, 그 외에 옌시산 장군의 부대와 펑위샹 장군의 부대가 허베이 지역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26군을 전부 바오딩으로 이동 시키고, 40군을 베이핑(베이징의 옛 지명) 지역에 증파해 일본군이 공격해올 경우에 대비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장군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일단 허베이 지역에 군대를 증파하자는 총통 각하의 의견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일본군이 공격해온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 정도의 병력을 증파하는 것은 일본과의 긴장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린썬이 일어나서 말했다. 일단 지금은 일본군과의 긴장을 강화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는게 좋다는게 그의 의견이고, 실제로 이 당시 중국 수뇌부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옳은 의견이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일본제국은 우리가 뭘 하든 내일 우리를 공격할 예정이라는 것.


"린썬 장군의 의견도 타당하지만, 각하, 저는 우리가 굳이 긴장을 강화시키거나 하지 않아도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군이 허베이 지역과 베이핑 지역을 공격해 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사안에 대해서는 천청 장군과 의견을 같이하오. 지금은 일본의 야욕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할 때이니, 허베이로 2개 군단을 증파해 베이핑, 톈진을 방어하고... 지금 쑹 저위안 장군은 휴가중이라지?"


쑹 저위안. 1933년 열하사변(일본이 중국의 열하성-추후 중화인민공화국 하에서 허베이, 랴오닝에 합병됨 을 무단 점령한 사건) 에서 일본에 맹렬히 저항하여 항일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루거우차오 사변 당시에는 과도한 유화책으로 초기 방어 실패의 원인을 제공한 장군이다. 그는 좋은 장군이지만, 이번만은 다른 장군으로 교체해야겠다.


"쑹 저위안 장군을 후방으로 일단 발령시키고, 펑위샹 장군을 복귀시켜 일단 29군장을 맡기게."


"각하,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신 이유가..."


"쑹 장군이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잠시 휴식을 주려하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최근 지방 군벌들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보고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 반부패수사국을 신설하고, 군사정보부 휘하에 둬 일단 1달간 자진신고기간을 주되 이 기간에 자진신고한 사례에 대해서는 경미하게 처벌하고, 이 기간이 끝나면 모든 종류의 부패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0년 이상으로 처벌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최근 부패사례가 많긴 하지만, 상당히 과격한 조치같습니다만..."


"밖의 적도 무섭지만, 내부에서 국가를 갉아먹는 적은 더 무서운 법이야. 그 중 가장 큰 게 부정부패고. 이런 건 엄중히 대처할수록 좋지."


몇몇 군관들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지만, 그들을 무시하고 회의를 끝낸 나는 회의실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회의할 때는 긴장해서 느끼지 못했는데 나는 평소에 중국어는 니하오와 쎼쎼 정도밖에 몰랐지만 이상하게 장제스에 빙의한 이후로 중국어가 잘 들린다.


그렇다고 한국어를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나는 이제 3개 국어(한국어, 중국어, 영어)를 할 수 있게 된거다. 이게 장제스가 된 것의 유일한 장점일까?


관저로 돌아간 나는 그곳에 굉장히 아름다운 미모의 중년 여성이 서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아마 장제스의 아내, 쑹 메이링 같다.


글로만 볼 때는 몰랐지만, 실제로 보니까 뚜렷한 이목구비에 아름다운 허리선, 무엇보다 배 위의 부분.... 아니다. 어쨋든 그 나이 여자치곤 상당히 매력적이다.


"오셨어요?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궈바러우로 만들어봤어요."


"고맙소."


별 기대 안하고 궈바러우를 소스에 찍어 먹어보니, 굉장히 맛있다. 이 쯤 되면 장제스가 부러워진다. 대한민국 고딩으로 있을 시절엔 연애 한 번 못해봤는데.


저녁을 먹고 독서를 하다보니까 졸려서, 침실에 누워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대한민국 고딩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원래의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공산당을 어떻게 때려잡을까...


내일 루거우차오에서 벌어질 일을 잠시 잊고, 나는 잠이 들었다.


*고증오류나 소설 내용에 관한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