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말이 지각한 이유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거?"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데, 좀 된다고 봐 줘라. 나도 어이가 없다."

 

 "가장 어이없는건 나지 임마. 지금 방을 혼자서 몇 개를 치웠는데? 너 늦는다고 전화 받고나서 내가 베팅형님한테 저희 좀 늦을 것 같으니까 천천히 좀 해주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지배인은 방 안 빠지니까 계속 닦달하고, 지금까지 나 혼자 고생한 거 인정? 어? 인정?"

 

 "그래 인정이다, 임마. 치우느라 고생했고, 어쨌든 늦어서 미안하고. 나중에 내가 술 한잔 살테니까."

 

 그 말 한마디에 형우는 헤! 하고 흰숨을 한 번 내뱉고서는 다시 방 안의 쓰레기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래, 늦은거야 뭐가 어찌 되었던 내 업보지 뭐. 나는 흰숨이 아닌 한숨을 내뱉으며 같이 방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현실같았던 악몽에서 벗어나, 악몽과 같은 현실로 돌아왔다.

 

 이 천장, 양 벽면, 심지어는 화장실 벽면까지도 거울과 유리로 도배된 이 방안이 내가 일하는 곳이다. 방 가운데에는 원래는 빤빤하게 펴져 있었을, 지금은 수많은 격전의 흔적으로 심하게 구겨진 시트가 놓인 침대가 있고, 침대 머리맡에는 요새는 쉬이 볼 수 없는 유선 전화기가, 그리고 왠지 미성년자들은 전화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곳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휴지곽이 놓여 있다. 그리고 남은 집기는 옷장과 TV뿐인 이 곳 - 그렇다. 모텔방이다. 

 

 내가 일하는 이 곳의 이름은 쉬라톤 모텔. 진짜 상표도용을 한 끗발로 피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작명 센스다. 장승배기역에서 노량진까지 이어지는 거리 안에서 고층 건물이 몇 되지 않는데, 그 중 하나인, 나름 마천루를 담당하고 있는 모텔이다. 이 곳에 '쉬러' 오는 남녀(혹은 남남, 혹은 여여)들을 위해서 방을 청소하는 것이 내가 맡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 옆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 녀석은 신형우라는 놈이다. 동갑내기이고, 나보다는 이곳에서 6개월 더 일찍 일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같은 직급은 아니다. 나는 청소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거고, 이 녀석을 프론트에서 근무하지만 사람이 없어서 올라온 거니까. 그리고 성격으로 따지자면...

 

 "어쨌든, 그런데 니 말이 맞다면 지금 너 여자랑 동거한다는 거네? 이새끼 이거 어제 질펀하게 놀아나느라 늦은거 아냐? 야, 그런 경사스런 일이 있으면 차라리 여기와서 하면 얼마나 좋냐. 시설도 좋고 할인도 되고. 무엇보다 니가 벌린거 직접 치우니까 찝찝하지도 않고."

 

 ...이런 이야기를, 그에 걸맞는 저질스러운 허리놀림과 함께 하는 것이 서슴없는 놈이다.

 

 "야이씨, 그런게 아니라....!" 

 

 우당탕! 너무 급하게 몸을 돌린 나머지 하반신과 상반신이 따로 놀아 버렸다. 쉽게 말해서, 미끄러졌단 얘기다. 변기가 조금만 더 가까이 있었다면, 분명히 내 머리는 변기와 피로 점철된 교감을 나누었을 것이다. 내가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있는 동안에, 형우녀석은 쓰레기가 가득 찬 봉투를 묶으며 혀를 끌끌 찼다.

 

 "얼씨구, 잘 한다. 아주 그냥 어젯밤이 너무 황홀해서 허리까지 다 빠져버렸나 보네. 야임마, 그냥 일 못나올 것 같으면 쉬지 왜 나오고 그러냐. 어차피 똑같은 모텔일인데 이런 건 산재로 빼 줄수도 있을거 아니냐 임마." 

 

 "그런거 아니라고!"

 

 나는 다 쓴 수건으로 화장실 바닥의 물기를 닦고 나오며 소리질렀다. 뭐가 어찌 되었든,  바닥에서 미끄러졌다는 것은 일단 덜 닦인 부분이 있다는 거니까. 형우는 벌써 자신의 파트를 다 끝내놓고서는,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야, 그게 아니면 뭔데? 뭐 원나잇이든 아니면 그냥 재워준 초능력자건간에, 일단 너하고 연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냥 안녕히 가세요 하고 집에서 나오라고 하면 그만 아냐? 그런데 왜 니 집에서 아직도 있는 건데? 어떻게든 해볼라고 해볼라고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그렇게 집에 가두고 온 거 아니냐."

 

 "그래, 그냥 니 맘대로 생각해라."

 

 형우는 내가 그냥 막 놓는 투로 이야기하자, 별로 관심은 없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며 다음 방으로 카트를 끌고 가버렸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솔직히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겪었기에, 그걸 설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설령 이야기한다손 치더라도 그걸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지는 모르는 노릇 아닌가. 사실 제대로 말한다해도 교양을 갖춘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믿지 않을 일이긴 하다. 

 

 나는 TV옆에 대충 펼처 두었던 수건과 일회용품들을 제자리에 정리해 놓고, 형우를 따라 다음 방으로 향했다. 형우 녀석은 내가 넘어져서 주체를 못하고 있던 사이에, 이미 다음방의 쓰레기까지 모두 청소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매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손이 빠르다. 아니, 왠지 그냥 모텔일이 천직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프론트는 손님접대 뿐만 아니라 청소까지 모두 해야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봐도봐도 적응이 안 되는데 말이지. 

 껍질이 까진 채 아무데나 던져 놓은 피임도구들, 쓰레기통이 버젓이 있음에도 방바닥을 나뒹구는 휴지들은 이 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시쳇말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다. 물론 내가 비위가 약한 건 맞다. 하지만 당연히 나도 성인인지라, 모텔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렇고 저렇고 온갖 추잡스러운 것들을 모두 봐야 한다는 것을 머릿 속으로는 인지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물방울 대신 핏방울이 흐른 흔적이 가득한 벽면과, 그것을 닦은 수건들이 화장실 안에 잔뜩 엉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까지는 아무리 더러워도, 생각한 만큼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 궤를 넘어가는 것을 보자, 나는 그 자리에서 옆방으로 뛰쳐나가 변기에 머리를 박고 안에 있는 것들을 게워내야 했다. 

 그 때 그 방을 치웠던 것이 형우였다. 모두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던 그 때, 형우는 피에 젖어 못 쓰게 되어버린, 전에는 흰색이었을 갈색 수건들을 고무장갑 낀 손으로 집어다 쓰레기봉투에 집어 넣고서는,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와 거울에 묻은 핏자국을 혼자서 닦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경박한 말만 하던, 너무나도 가벼워 보이던 동갑내기 친구가 그 때 처음으로 진중하고 무거운 사나이로 느껴졌다. 나는 그 때, 형우에게 도저히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 일을 혼자 맡긴 미안함 등등으로 어떤 말을 붙일 수 없었다. 그 날 저녁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방에 덧씌워진 피칠갑은 최근 인터넷 상에서 한참 이슈가 되었던, 데이트 폭력의 현장이었다. 형사가 모텔에 와서 지배인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고, 같이 방으로 올라가서 한참동안을 내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 때에서야 형우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치웠냐고. 나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어서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였다. 그 때 형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담배연기를 하늘로 흘려보내며 말했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어. 어차피 치워야 될 일이라면 빨리 할 수 있는 사람이 치우는 편이 낫지. 너무 신경쓰지 마. 나도 처음에는 떡진 이불하고 시트만 봐도 오바이트가 쏠렸으니까. 익숙해진 거야. 그냥."

 

 그 당시에는 진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었지만, 그 '익숙해진 거야' 라는 한 마디는 나에게 꽤나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날, 일이 모두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왜 그렇게 그 말이 남아 있는지를 계속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나도 당연히 처음 하는 일을 익숙한 듯이 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노력하는 건데, 저 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뭘 봐 임마. 구경났어? 남자 얼굴을 뭐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그 때를 생각하다 보니 형우녀석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원래는 이런 놈이었지 하는 생각도 머릿속을 스친다. 진중하게 그대로만 있어주면 진짜 92년생 대표라고 말해도 될텐데. 나는 한숨을 푹 쉬며 형우에게 말했다.

 

 "형우야."

 

 "왜 이새꺄. 나한테 다가오지마. 불결해."

 

 "야임마. 그런게 아니라."

 

 "그럼 뭔데 새끼야."

 

 "너 참 대단하다고."

 

 그 말 한마디에 형우의 표정은 눈에 띄게 찌그러졌다.

 

 "이 놈이 여자친구가 없더니 결국 나를 따먹으려고 수작을 부리는구나. 천하의 신형우가 남자놈의 더러운 혓바닥에 넘어갈 성 싶냐?" 

 

 "사람이 말하면 좀 진지하게 들어 좀! 대단하다고 얘기하면 그대로 아 좋습니다 하고 받아들이면 되잖아?"

 

 "아니 근데 갑자기 그 말을 왜 한거여? 뜬금없이."

 

 "그냥 그런줄 알아 임마."

 

 형우는 콧방귀를 한 번 뀌고서는 꽉 찬 쓰레기봉투를 묶어 계단으로 가져갔다. 그리고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갔다. 하긴, 지금 잡담하느라 일이 느려지면 고통받는 건 나 자신이겠지. 일단 하던 일은 끝마치기 위해서, 나도 수건으로 열심히 벽면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