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은 좀 어떻니?"


"저야 항상 똑같죠 뭐. 제 방에 같힌채 책 좀 읽다가 한번씩 나가서 운동하고, 어떤 날은 글쓰기나 공부나 좀 하고. 운 좋으면 영화같은것도 보고."


"너의 능력에 이상한 기분은 들지 않니?"


"없어요. 아주 일상적인 기분이에요. 아니면 제 사진기나 한번 주시죠? 바로 시험해 볼 수 있으니까."


"규정상 안된다고 말을 안하는 날이 없구나. 그러면..."


"그래요, 그놈의 규정. 뭐가 되었든 저는 여기 갇혀있고, 당신은 그저 절차대로 매주 제 정신케어나 해주고 마는거죠. 이미 아시겠지만, 저도 훈련받고 오메가-7에서 현장에서 좀 뛰어본 사람이에요. 특수 격리 절차가 뭔지도 알구요. 그러니까 괜히 이름부르며 살갑게 대하는 척 말고 똑바로, '프로답게'부르시죠?"


":.. SCP-105 재단에 해를 끼치거나 당신의 격리실패를 획책하려는 계획을 알거나 가지고 있습니까?"


"105, 없습니다. 제 주변의 박사들은 모두 표준적인 업무를 수행중이고, 다른 인력 역시 표준 규약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저 역시 현재의 격리상태를 유지할 생각뿐입니다. 이상 보고 종료합니다."


후우...


테이블 한쪽의 하얀 가운의 의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전형적이네. 안그래도 사실상 감금당해서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데, 이제 방어기제를 표출하기 시작하고. 아직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하고 그렇게 문제되지는 않지만, 상태가 진행되는 속도가 좀 빠르네... 역시 윗선에 테라피를 신청해야 하려나.'


"이상으로 면담을 종료합니다. 그리고 아이리스, 이건 재단 인원이 아닌, 선서를 한 의사로서 전하고 싶은 당부랍니다."


의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의견을 전한다.


"여기는 재단이지 감옥이 아닙니다. 심지어 감옥에서조차도 온갖 종류의 사적인 인연의 맺음은 활발하게 이어집니다. 그저 사무적일 뿐인 인간관계를 고집하고 고립을 자처하는것은 정신과 전문의의 입장에서 가만히 두고보기 힘듭니다."


그렇게 의사는 책상에 펼쳤던 파일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얀 가운이 조금 흔들리면서 가슴포켓에 패용한 명찰이 딸깍 하는 소리를 낸다.

Dr. Linda Martain, 그리고 재단 특유의 인상적인 로고.

저런 명찰을 받았다는것은 블랙 요원이 아닌 화이트 인력이라는 것이다.

아이리스의 고개가 의사를 쫓아 올라간다.

푸른 눈동자는 호박색 눈동자의 안에서 무엇을 읽으려는 것일까.

먼저 고개를 돌린 의사는 문을 두드린다.

카빈소총으로 무장한 경비원이 경례하고, 그렇게 의사는 밖으로 사라진다.

잠시 간격을 두고, 이번엔 권총으로 무장한 여성 경호원이 아이리스를 데리고 나간다.


맞은편에는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양 손에 푹신해보이는 벙어리 장갑을 낀 장신의 호리호리한 여성이 양 옆에서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다.


아이리스는 그녀의 파일을 본 기억이 있다.


SCP-187, 일명 두개의 눈. 그녀는 사람 또는 물체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우스운것은 음식조차도 미래에 되어버리는 소화가 끝난 무언가로 보인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니, 자연히 거식증에 시달리고, 저렇게 마를 수 밖에 없겠다. 더구나 키도 크니 무슨 대걸레자루가 걸어다니나 했다.

손가락도 무엇도 찌를 수 없도록 조치해둘 필요가 있었겠다.


'그리고 재단의 손에 의해 언제나 끔찍한 것을 볼 수 밖에 없을 운명이고.'


문득, 아이리스는 실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재단은 105로부터 카메라를 떨어뜨려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187에게는 의도적으로 안대를 벗겨 이것저것을 보여주어 예언을 말하도록 의도한다.

똑같이 재단에 확보되어 똑같이 격리되고도 보호의 방법은 이렇게나 다르다.


하지만 그저 실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고 아이리스는 생각을 떨쳐내었다.


거의 서로를 스쳐지나갈 무렵, 문득 187이 말했다.


"혹시 제 옆에 다른 여성분이 계신가요?"


그녀를 부축하던 두 경호원이 105를 알아보고, 눈빛을 교환하고, 한 경호원이 말한다.


"아이리스 톰슨, 너랑 같지만 다른 개체야."


"고마워요 이브, 어쩐지, 갑자기 새로운 린스향이 풍겨서 놀랐잖아요."


'아하, 안대 너머로 본게 아니라 냄새를 맡은거구나, 난 또 괜히 놀랐네.'


"그런데 개체라는것 치고는 굉장히 좋은 향기인데요? 꽤나 관리받는 사람인가봐요?"


안대를 써서 눈을 볼 수 없음에도 의외로 아이리스는 그녀의 표정에서 놀라움과 반가움을 읽은것 같았다. 


'혹은 감성이 풍부한 소녀틱한 사람이거나... 의외로 귀엽네.'


"저기요, 메이즈, 나 잠깐 저 사람좀 봐도 되요?"


"갑자기? 평생 장님으로 살고싶다던 사람 어디 갔나보네? 딱히 그걸 막는 규칙이 있는것도 아니라서 상관은 없는데, 정말 괜찮겠어?"


"네! 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저분을 보고싶어졌어요!"


187은 밝게 미소지으며 메이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말이야 클로이, 잠깐만 시간좀 내줄 수 있어?"


메이즈가 아이리스를 데려가던 경호원에게 말을 건네는 폼이 둘은 원래 좀 알던사이였나 보다.


'설마요' 하는 얼굴로 클로이를 바라보는 아이리스. 클로이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어께를 으쓱였다.


"저 예언가분께서 왠일이래? 뭐 그정도야 어울려줄 수 있지."


저도몰래 아이리스의 입가가 씰룩였다.

에라 모르겠다. 푸른 눈동자가 아직 안대에 가려진 눈동자를 향한다. 머리 하나는 될 정도로 키차이가 나서 고개가 조금 위로 꺾였다.

메이즈는 안대를 슬쩍 풀어주고 그녀의 고개가 아이리스를 향하도록 돌려주었고, 감긴 눈꺼풀이 서서히 뜨인다.

당근색, 그리고 개구리색깔의 오드아이 눈동자에 빛이 쏟아진다.

잠시 동공이 좁아지며 아이리스를 물끄럼히 바라보던 187은...


푸슉


만화였다면 그런 효과음이 나면서 스팀이 뿜어나오지 않았을까.

이제는 얼굴까지 홍당무가 되어버린 그녀는 어버버 하다가 눈을 꼬옥 감아버렸다.

그러면서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양 눈을 포옥 가리기 까지 한다.


''''토끼?''''


그것을 바라본 이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작고 귀여운 소동물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와아아아아, 미안해요! 사생활은 존중해줘야죠! 메이즈! 빨리 안대 씌워줘요! 이브, 빨리 가요 빨리 빨리!"


츄릅.


'어라? 왜 갑자기 침이?'


아이리스는 마음속의 무언가가 풀려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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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변칙 개체 교차실험 신청서

적요: 두 인간형 변칙개체가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심리현상의 연구

대상: SCP-105, SCP-187

비고: 제 권한으로 이 실험은 "아이리스"에 대한 심리 테라피의 목적을 겸합니다. 또한, 실험기간 동안 둘은 제17기지의 인간형개체 생활구역을 평소보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안자: Dr. 린다 마틴


서명란

담당: L. Martain

1차 부서장: Pearson

2차 부서장: Bright

윤리위원회: 可

전달: 시설관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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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아이리스는 한쪽 벽면이 매직미러인 면담실에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178을 바라보면서 썩소를 짓고 있었다.


"저... 지난번의 아이리스씨죠? 그 향기 기억해요..."


무슨 일인지 이번엔 면담실 내에 경비도 없다.

아니, 변칙개체의 교차실험이니 피험자를 제외한 다른 인력이 없는게 당연한건가?


"그... 지난번엔 죄송했어요. 처음 보는 분께, 심지어 제가 직접 보고싶다고 했던건데 영문모를소리나 하고..."


그래놓고 의사양반은 뭐? 커피나 한잔 하고 올테니 둘이 친해져 있으라고? 이거 진짜 실험 맞아? 순 가라 아니야?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아이리스는 187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안대를 쓴 그녀에게는 아무 소용 없지만.


"갑자기 살려달라는건 또 뭐에요? 제가 뭘 하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지금은 아닌것 같지만, 나중에 뭔가를 하실 거라서요..."


"아하, 그때 뭔갈 보긴 하셨군요? 그래서, 뭔데요? 제가 당신께 뭘 하는데 그렇게 볼때마다 귀여운 반응을 보이는거에요?"


"힉, 귀엽다니, 아아아니에요! 귀여워하시면 안돼요!"


"나 참. 덩치는 산만하면서도 그렇게 떨고 계시면, 이쪽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리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오히려 의사에 대한 불만도 어느샌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눈앞의 사람이 지금까지 봐오던 재단 인원이 아니라 옛날에 함께 일했던 또다른 변칙개체 동료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무슨 이유일까, 어쩐지 마음을 감싸던 껍질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다.


"그래요, 저는 아이리스 톰슨이에요. 그래서 당신은요?"


"네? 일-팔-"


"번호 말고. 나참, 다른 인간형 개체랑 사적으로 대화한적은 없는 모양이네요."


수많은 인간형 변칙개체가 머무는 제17기지는 의외로 개체끼리 적절한 자유시간과 사교를 권장한다. 물론 위험한 개체는 철저히 격리당하지만, 특별대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 제17기지에는 인간형 변칙개체 사이에 일종의 에티켓 같은것이 자리잡았다.


"우리끼리 대화할땐 번호 말고 이름으로 부르는거에요. 자기 진짜 이름."


"... 베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요. 그러면, 우리 둘이 합치면 '베이리스'인거네요."


"풉..."


"어,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아니, 그게 뭐에요, 큭큭큭-"


"왜요, 커플링으로 이런식으로 많이들 만들잖아요. 저 의사양반이 서로 좀 친해지라고 이렇게 골방에 둘만 남겨두고 문까지 잠궈뒀는데, 뭐 친해지려는 척이라도 해야겠죠."


"푸하하- 엄청 무서우신 분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유머러스하시네요."


베이의 반응에 아이리스도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웃은지도 꽤 된것 같다.


'생각보다 재미난 기분인데.'


베이리스의 첫걸음은 그렇게 산뜻하게 떼어진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