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립성 저혈압. '치유'라는 주제에서 랜덤으로 정해진 세부주제이다. 이제 대회 주최측에서 준비해놓은 각종 재료들을 사용해 기립성 저혈압에 대한 치료약, 즉 포션을 만들면 된다.

 

그럼 이제 기립성 저혈압에 대해 생각해보자. 기립성 저혈압은 머리로 가야할 피가 저혈압으로 인해 머리로 가지 못해 일종의 빈혈 증세를 느끼는 것. 원인은 당뇨병, 음주, 류머티스 질환, 정신질환 치료제의 영향 등 여러가지가 거론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즉, 딱히 명확한 포션 개발법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기립성 저혈압 포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식재료의 영양성분을 고려하여 영양보충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본선답게 복잡한 세부주제가 선정되었다는 것에 일단 감탄하고 지나갔다.

 

타이머는 이미 작동한 상태. 바로 불고기용으로 나온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집어서 먹기 좋게 썰었다. 앞다리살은 비계와 고기가 적절히 섞여있으면서도 그리 비싸지 않아 웬만한 포션이라면 자주 사용되는 뭐랄까, 동네북 같은 부위이다.

 

그리고 지금은 포션을 만들어야 하므로 마법을 걸어야 한다. 지금은 고기에 많이 든 성분 중 단백질과 비타민 B12를 활성화시키자.

"케르도 아치브 포크프로 프로테인 하그 비타민비이스우. (돼지고기 앞다리살의 단백질과 비타민B12 성분을 활성화시켜라.)"

 

그리고 설탕을 살짝 뿌려준다. 제육볶음에서 설탕의 역할은 크게 2가지. 첫째는 양념이 더욱 잘 스며들게 하는 것. 두번째는 불맛을 내는 것. 그런데 지금은 불맛을 내게 할 필요는 없으므로 첫번째만 해주면 된다.

"케르도 아치브 시우가로 베이스.(설탕의 기본 성분을 활성화시켜라.)"

 

그리고 이제 양념장을 만들자. 우선 4대 필수양념인 고춧가루, 간장, 설탕, 다진마늘을 준비해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늘. 마늘은 그 효능이 아주 다양해서 제육력을 다루기 위한 최고의 재료로 불린다. 마늘은 활성화시켜주고 나머지는 기본성분만 활성화시키자. 지금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생체기능을 활발하게 해주는 스코르디닌 성분을 쓰자.

"케르도 아치브 수안 스코르디닌 키리로우. 케르도 아치브 모드가 베이스."

 

이제 채소를 썬다. 양파는 최대한 얇게 잘라준다. 대파는 동강동강 잘라서 길게 이등분해준다. 두 재료는 필수재료지만 저혈압과는 별로 상관 없으므로 기본 성분만 활성화시켜주자.

"케르도 아치브 위르벨 베이스. 케르도 아치브 다이파 베이스."

 

이제 대회 주최측에서 준비해놓은 재료들을 살펴보자. 표고버섯, 목이버섯, 꼬막, 치즈, 해삼 등 쓸만한 음식부터 지금은 별로 필요없어보이는 콩나물, 달걀, 매실청, 고구마 등 여러가지 재료들이 준비되어있었다. 마늘 급의 만능 재료인 인삼이나 홍삼은 이 자리에서는 빠져있었다.

 

지금은 포션 제조이므로 맛은 고려에서 논외. 비타민D가 풍부한 목이버섯, 철분이 풍부한 꼬막, 홀로수린이 함유된 해삼을 준비해주자. 치즈는 소금과 칼륨이 들어있어 도움이 되므로 챙겨주자. 아, 참고로 소금 함유량이 높지 않은 것은 이미 확인했다. 

 

이제 고기를 구울 차례다. 팬에 식용유를 뿌려준다. 그리고 이것도 영창으로 기본성분만 활성화시키자. 이때 센불에 빠르게 볶아야 맛있겠지만 기립성 저혈압은 수분 보충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중불에 볶아 물을 내준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니 이제 양념장을 반 정도 붓는다. 어느정도 됐다 생각되면 아까 썬 양파와 대파를 넣어주자. 손질해놓은 목이버섯, 꼬막, 해삼도 넣자. 그리고 영창을 외쳐 상기한 성분들을 활성화시키자. 그리고 양념장의 나머지 반도 바로 넣어준다.

 

제육볶음이 완성되어가면 치즈를 넣고 영창으로 활성화시킨 후 완성될 때까지 익혀준다. 그리고 불을 끄고 접시에 플레이팅한다. 맛을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물을 아주 조금 넣어준다. 물도 중요한 성분이므로 마법을 걸어주자.

 

*

 

제육볶음은 이렇게 완성. 상대방인 주연재도 비슷한 시간에 완성한 것 같았다. 이제 심사위원의 심사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심사위원이 말했다.

 

"양 측 모두 기립성 저혈압 포션을 만들 때 영양성분을 고려했군요. 그렇다면 어느 쪽이 영양성분을 더 효율적으로 넣었는지 보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나와 상대방의 요리를 시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미하면서 평가표를 작성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심사위원이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주연재 참가자는 표고버섯을, 추강찬 참가자는 목이버섯을 넣었군요. 아마 기립성 저혈압 환자는 비타민D가 결핍된 경우가 많다는 것에서 착안했겠죠. 둘 다 버섯에 대해서는 비타민D만 활성화시켰군요. 그런데 여기서 주연재 참가자의 실수가 드러나는 군요.

표고버섯은 흔히 햇볕에 쬐면 비타민D의 함유량이 증가한다는 정보가 돌고 있지만 그 함유량은 목이버섯에 미치지 못합니다. 목이버섯 옆에 표고버섯을 배치한 것은 그 함정이 걸리는 지 확인할 목적이었습니다. 표고버섯의 경우 비타민C나 비타민B2를 노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이 외에도 추강찬 참가자의 경우 수분을 최대한 늘리는 것, 해삼의 영양성분을 숙지한 것 등등 여러 부분에서 우월한 모습을 보였군요. 주연재 참가자의 경우 견과류를 사용한 점을 칭찬해드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전체적으로 추강찬 참가자가 앞서고 있습니다.

즉, 이번 대결은 추강찬 선수의 승리입니다!"

 

204강전 승리. 본선의 첫번째 경기에서 우승한 것이다. 잠시 승리의 기쁨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내 인터넷이 생중계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

 

경기가 끝나고 복도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태오가 하고 있는 경기를 제외하면 모두 결과가 나와 이미 퇴장한 것 같았다.

 

대결 상대였던 주연재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덤덤해보인다. 뭔가 차가운 성격이었으니 이해는 된다. 대기실 즈음에 가니 대결 시작 전에도 수다를 떨고 있던 두 여자가 보였다. 나머지 참가자들은 이미 집으로 간 모양이었다.

 

대기실에 들어가려는 그 때 뒤에서 걸어오던 주연재가 갑자기 옷을 잡아당겼다. 앞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무슨 일인지 질문했다.

"야, 갑자기 왜 그러는..."

"쉿."

주연재가 진지한 표정으로 침묵을 요구했다. 무슨 일인가 했지만 일단 따르기로 했다. 왜 멈춰서 조용히 하라 했는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두 여자아이의 대화 때문이었다. 인천 중구에서 온 김초은과 전청아의 대화를 숨죽이며 계속 들어보았다.

"빨리 전국학생제육력대회를 우승해야 할 텐데. 그래야 세계정복을 할 수 있잖아."

"그러게다. 대회 우승상품이 마지막 재료잖아."

"으아, 대회는 생각보다 오래해서 싫단 말이지. 빨리 결과가 나와야 그걸 받는 단 말이야."

잠깐, 세계정복이라고? 뭔가 대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어둠의 마법도 잘 다루는 천재가 뭘 그리 걱정하시나. 분명히 잘 될거야. 이 대회가 끝나는 순간 세계는 우리의 것이란 말이다!"

"그러는 너도 서포터 역할로서 실력이 만만치 않잖아? 내가 탈락할 때를 대비한 예비용 선수. 나보다 잘 하지는 않지만 이번처럼 승부조작으로 올라가는 데는 선수급이면서."

승부조작이랑 어둠의 마법...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같았다. 그보다도 저거 진짜야?

"아무튼 이 대화는 집어 치우고 음료수나 마실까?"

"오케이. 그거 좋지. 근데 저기 뭐냐?"

불행히도 그 여자들에 의해 들키고 말았다. 두 여자들은 나랑 주연재가 숨어있는 쪽을 보면서 슬쩍 웃으면서 협박조로 말했다.

"너희들, 우리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우리 둘은 순간적으로 공포를 느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협박조로 말했던 여자가 상황을 깨닫고 말했다.

"맞네. 우리 말 엿들은 거. 비록 부주의한 우리의 실수이긴 하지만 뒷처리는 해야겠지."

"내가 할게."

다른 여자가 와서 영창을 외쳤다. 뭔지 파악할 틈도 없이 빠르고 길게 외쳐서 이해할 수 없었으나 제일력 계열의 마법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랑 주연재는 그 순간 허공에 떠올랐다. 머리 주변에 마법진이 형성되어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소리를 질렀으나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법을 시전하는 여자의 음흉한 미소가 공포심을 한 층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러나 다행히 마법은 도중에 종료되었다. 이유도 물을 새 없이 마법을 건 여자가 말했다.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죽을 줄 알아."

두 여자가 발걸음을 옮겨 대기실을 떠났다. 시간이 지나 통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옆에서 주연재가 뭔가를 종이에 적어 나에게 줬다. 나는 뭐가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경기가 끝났는지 박태오가 임경빈이랑 같이 오고 있었다. 주연재가 자리를 떠났다. 박태오가 말했다.

"야, 경기는 잘 끝났어?"

"응. 다행히도 이겼지."

"뭐냐, 그 겸손한 태도는. 근데 그거 알아? 나도 이겼어!"

임경빈이 자랑하는 태오를 보면서 약간 아쉬운 얼굴을 보였다. 그러나 인싸인 태오답게 경빈이랑은 엄청난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까 들은 것도 설명해줘야지. 엄청난 큰일인데.

"근데 아까 대기실에 있던 두 여......"

갑자기 머리에 엄청난 고통이 왔다. 소름끼치는 한기와 음기가 뇌의표면을 따라 느껴졌다. 아까 그 여자가 걸었던 마법이 이런 거였던 건가.

"두 뭐?"

"아무것도 아니야."

"뭔데 뭔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나저나, 이거 이제 어떻게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