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르르르릉─’

“네, 무슨 일이시죠?”

“경비 아저씨, 여기 화장실 변기가 막혔는데, 와서 좀 뚫어 주시겠어요?”

“아, 지금 여기 저밖에 없어서, 교대자가 올 때까지만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드님께 한번 맡겨 보시는 것도…”

“뭐라고요? 아니 이 아저씨가 진짜! 우리 애 이런 거나 시키려고 키우는 줄 아세요? 됐어요! 나중에 항의서 넣을 테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사모님. 지금 바로 올라가지요.”

‘딸깍’

 

“하하… 거 성질머리하고는…”

 

혹시라도 헷갈리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저는 경비가 아닙니다. 정식 직함은 △△아파트 시설관리과 2년차 직원입니다. 그런데 주민 분들은 그냥 파란색 옷 입고 다니면 다 경비원으로 퉁치기로 했나 보더라고요.

어느덧 제 나이도 환갑을 넘겼지만, 가족도 없고 연고도 없이 임대주공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전기기능사를 땄고, 그걸로 전기안전관리 일을 한 지 벌써 삼십 년이 되는군요.

이 아파트에 오기 전까지 국내 최고의 명문대라는 ○○대학교에서 이십 년 넘게 전기안전관리자 일을 했지요. 비록 가방끈이 짧아 대학 문턱은 밟은 적 없지만, 학내 건물들의 전력 공급 체계, 비상시 가장 빠른 탈출동선 같은 건 여느 교수님보다 잘 안다고 자신합니다.

가끔 비번일 때는 중앙도서관에 들어가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지요. 정부 당국이 심심하면 휴교령을 내리고 학내에 전투경찰들을 배치해 학생들이 모이는 걸 막았지만 저는 학생이 아닌 직원이었으니까요. 그 시절 대학생들은 하나같이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은지 다들 얼굴에 시름이 한가득했습니다. 그 중 제 옆에서 유난히 기도를 열심히 하던, 저보다 열 살 정도 어려 보이던 학생이 생각납니다.

 

“하나님, 이 나라를 구해 주십시오. 지금 이 나라는 군인들이 총칼로 시민을 짓밟고, 시민들은 헌법에 명시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이 땅이 진실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땅이면, 그 공의를 부디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늘 그런 식으로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저를 붙잡고 구구절절 사연을 들려주었죠. 자신은 맨 뒷줄에 있다가 기동타격대가 나타나자마자 제일 먼저 도망간 게 부끄럽다는 이야기, 목사님은 꼭 학생 운동이 구국의 길이 아니라며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것을 신실히 하라는데 행동하지 않고 어떻게 구국을 할 수 있냐는 이야기, 고향의 부모님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데 얌전히 공부나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이야기… 뭐 아마 그 시절 학생들의 고민이란 게 대부분 대동소이했을 겁니다. 건물 관리원에게라도 털어놓고 조금이라도 홀가분해지고 싶었겠죠.

어느 날, 한 학생이 분신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도서관 곳곳에서 들렸습니다. 듣기로는 독재정부와 여당 정치인들을 규탄하며 몸에 신나를 뿌리고 라이터를 당겨버렸다는군요. 기도를 열심히 하던 학생은 그날도 그저 흐느끼며 제 옆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더군요.

 

“하나님, 오늘 당신의 어린양이 당신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부디 그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하늘의 공의가 이 땅의 사특한 무리들에게 내리게 하소서…”

 

그리고는 다시 저에게 하소연을 시작하더군요. 목사님께서는 그의 죽음을 하나님이 기억할거라 하셨다고,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은 그저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며 위정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자신은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이죠.

가방끈 짧은 저도 이름을 들어본 시인이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운동권 대부라는 놈들은 펜을 꺾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 는 기고문을 썼습니다. 며칠 뒤였나 학교 뒷산에서 연기가 올라오기에 달려갔더니 학생 몇 명이 모여 책을 태우고 있더랍니다. 급히 달려가 발로 불씨를 꺼 보니 그 시인의 책들이더군요. 마음대로 책 살 형편도 안 되어 도서관에서 근근이 읽는 저에게는 그저 충격적인 장면이었지요.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이 시인 너희들 선배가 아니냐고 닦달을 하자 덩치가 크고 유난히 장발이 덥수룩한 학생이 어깨를 밀치며 하던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 배신자는 선배도 시인도 아닙니다. 대선배님들이 나라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셨는데 그런 글을 쓸 수 있습니까.”

 

저는 대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서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늘 확고한 믿음이 보였지요. 자신은 정의롭다는 믿음. 이 나라를 바꿀 사람은 자신들밖에 없다는 믿음. 지금도 그 한 점 의심 없는 눈동자들이 기억나요.

옆자리의 기도 열심히 하는 친구는 학부를 용케 마치고 대학원에 올라갔습니다. 말쑥한 양복을 입고 다니더니 어느 날 저에게 청첩장을 내밀더군요. 형님도 꼭 오셔서 축하해 달라고. 결혼식은 그 친구가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서 치러졌습니다. 양복과는 원체 인연이 없다 보니 아버지께 아쉬운 소리를 해서 그때 난생 처음 한 벌 장만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 결혼식 이후 두 번 다시 입을 일이 없었지요.

점심은 교회 식당에서 뷔페를 먹었습니다. 적당한 구석 자리에 가서 평소 먹기 힘든 음식들을 음미하고 있는데 뒤에서 소곤소곤 하는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귀티 나는 아줌마들이 신부 뒷담화라도 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큰 목사님 목회일은 이제 그만 하시고 총회 고문직으로 가신다는데?”

“큰 목사님 여의도에 산 땅은 그대로 작은 목사님한테 가는 거야?”

“우리 작은 목사님이 성령으로 품어서 집사 된 자매가 몇 명인데. 그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암, 어디 그게 사람이 세금을 매길 땅이야? 하나님 앞에 드려진 건데.”

 

그 자리에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며칠 후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그 친구에게 되도록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물어보았죠. 갑자기 그 친구가 불같이 화를 내더군요. 어디서 배우지도 못한 사람이 감히 목사님을 음해하는 말을 하느냐고. 운동권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보지도 않은 사람이 목사님의 진가의 티끌만큼이나 알겠냐고 말이죠. 자리가 파하고 헤어지기 직전 그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 사람이 세상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는 생각이나 해 봤어?”

 

저는 그렇게 그날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한 십몇 년 더 일하고 있자니, 학교 당국에서 그간 고생했다고 이제 그만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쉬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오더군요. 결혼을 안 했으니 손주는커녕 자식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고, 곧 있으면 나라에서 연금도 주니까 굳이 홀몸으로 더 일할 필요는 없지요. 그런데 이십 몇 년을 일을 해 오다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니까 마음이 텅 빈 것 같더랍니다. 집 안에만 있자니 도저히 울적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마침 걸어 다닐만한 곳에 고급 아파트단지가 있어서, 돈은 적게 줘도 좋으니 낮에라도 일하게 해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짬이 있다 보니 관리과장을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요.

그래도 이곳에 오니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아는 사람도 두 명이나 있고요. 실은 아까 전 저에게 자기 집 변기를 뚫으라고 명령하다시피 한 사람, 그 친구 안사람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대학을 들어가겠다고 매일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더군요.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어서 장래에는 아버지처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앗, 고급 외제차 한 대가 들어오는군요. 뒷좌석에 그 친구 얼굴이 보입니다. 이 아파트에 와서 한 번도 먼저 말을 건 적은 없지만 저녁마다 이런 식으로 서로의 얼굴은 봅니다. 주름살도 약간 생기고 머리숱도 조금 없어졌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홍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 읽는 시간 외에는 일만 하다 보니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버렸지만요.

 

“박 처장님, 이번에도 저희 연구실 앞으로 예산 두둑이 당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오는 정이 있으니까 가는 정이 있는 거지. 김 주임 덕분에 내가 밤마다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데 말이야.”

“에이, 누가 들으면 처장님이 무슨 속물 지식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처장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 나라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우리 학계에도 지대한 공을 남기신 분 아닙니까. 처장님 같은 분들이 없이 지금의 이 나라가, 지금의 이 학계가 온전하겠습니까? 자긴 먼지 하나 없는 줄 아는 무지렁이들이나 배알이 꼴려서 헛소리들을 해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