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설명 : 사주, 명리학에서 말하는 '관운'을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는 여대생 정해진이 사주팔자에 관운이 있고 곧 관운이 온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임용고시에 매진합니다. 

 

'쓱, 쓰윽.'

지은지 30년은 된 것 같은 노후한 3층 건물 안에 자리한 작은 사무실 안, 한 노인이 한자가 빼곡히 적혀 있는 책의 한 페이지를 보면서 한 쪽에는 연습장을 펴놓고 수성 사인펜으로 힘주어 큼지막하게 한자를 적고 있다. 노인의 철제 책상 앞에는 중년 부인과 그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앉아 있다. 책 페이지들의 한 쪽 귀퉁이는 일제히 둥글게 휘어졌고, 거뭇거뭇 노인의 손 때가 묻었다. 노인이 수천 번은 펼쳐봤을 것 같은 책 표지는 군데군데 접히고 찢어져 맨살을 드러냈고, 그 맨살마저도 거뭇거뭇 때가 묻었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두 여성은 아까부터 긴장된 채로 노인이 쓰고 있는 글씨만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중년 여성은 옆에 앉아 있는 자신의 딸이 과연 자기와 같은 심정일지 궁금해하면서 시선을 노인의, 글씨로 고정시켰다. 중학생 때부터 한자만큼은 지독히도 싫어했던 딸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지하였다.

글자를 다 쓴 노인은 책을 덮고 책상 가운데에 연습장을 놓았다. 그가 쓴 한자는 총 2행 4열이있다. 그 중 첫 번째 열에서 두 번째 글자를 가리키며 운을 떼었다.

“음…”

“선생님, 어떻게 나왔나요?”

엄마는 눈을 크게 뜬 채 노인에게 물었다.

"학생은 나무 중에도 우두커니 서 있는 큰 나무네."

 노인은 연습장 여백에 대충 나무를 그렸다.

"진흙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인데 흙 자체에도 물이 있고 큰 물이 또 있어서 전체적으로 물은 부족하지 않아. 학교댕길 때 공부는 어지간히 했을 거라고."

 "네. 맞아요."

 엄마가 대답했다.

"동생이 한 명 있지?"

 "네."

이번에는 딸이 대답했다.

"보아하니 일확천금을 노린다든지 수입이 일정치 않은 직업은 어울리지 않아. 매달 안정된 수입을 갖는 직업을 택해야 돼."

"얼마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하게 해서 교사가 되게 하려 하거든요. 우리 애 사주에 관운이란게 있나요?"

엄마가 진중한 태도로 노인에게 물었다.

"있네, 있어. 여기 이 글자가 쇠붙이인데 이 글자가 관직이나 남편을 뜻해. 사주에도 멀쩡히 있고, 앞으로 1~2년 후에 관운이 들어오니 그 때 고시 합격할 수 있어. 잘 하면 남편감도 잡아서 결혼할 수 있고."

노인은 첫번째 줄에서 세 번째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그 시기 지나면 합격이 힘든가요?"

엄마는 또다시 진중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관운이 들어오지 않는 시기는 좀 힘들지."

"해진아, 너 이제부터 공부 바짝 해야겠다."

엄마는 옆에 앉은 딸에게 당부를 했다.

"알았어."

딸은 약간 볼멘 목소리로 대답했다.

"관운이란건 십 년에 한 번씩 오는 거야. 다른 운들도 마찬가지고."

 엄마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양 손으로 지폐를 쥐고 노인에게 전달하였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해진아, 가자."

엄마는 노인에게 인사를 하며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유리 문을 밀고 가게를 나섰다. 모녀가 떠난 적막한 가게 안에는 건물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노인은 덤덤하게 손가락으로 지폐를 세고 그것을 돈 넣는 가방에 넣었다.

"거 봐. 엄마 말이 맞지."

"오늘 꼭 그 할아버지한테서 봐야겠어?"

"그래도 여러 역술인들한테서 확인하면 좋지."

"전에 봤던 점쟁이들도 비슷한말 했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 말 들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려는 거야."

"그럼 관운 없으면 4년 내내 준비한거 버리고 다른 길 가라고 할거였어? 그리고 엄마가 옛날부터 갔던 점쟁이들 중에서 내 앞날 맞췄던 사람 없었던 것 같은데. 나 고3 때에도 그랬잖아. 동네 용하다던 무당 아줌마가 나보고 교대 갈거라고 했는데 틀렸던 거."

딸의 입은 어느새 쌜쭉 나와 있었다.

"그게 뭐가 점쟁이야. 점쟁이라면 미랠 내다볼 줄 알아야지."

"그래도 이번에는 공통적으로 말한 게 있잖아. 임용 준비 할 거야 안 할거야? 너 이제 졸업이야. 요즘 취업하기도 힘들고 취업해도 모가지 날아갈거 걱정해야 되는데. 네가 임용 합격해야 네 앞가림도 하고 번듯한 신랑감 얻지."

좀 장황한 잔소리에 딸의 미간은 어느새 아까보다 좁혀져 있었다.

"어차피 임용 준비 하고 있었잖아.”

딸은 약간 짜증난 어투로 대답하였다.

"그럼 내일부터 바짝 해. 돈은 엄마가 다 대줄게. 아까 그 할아버지가 일이년 뒤 관운이 온다고 했으니 그 때까지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알았어. 그럼 저번에 얘기했던 학원 끊어줘."

"가기로 한 고시원엔 들어갈 거지?"

"응..."

엄마는 해진이 고등학교 1학년일 때부터 용한 무당과 역술인들을 찾았다. 해진의 생년월일로 만세력을 뽑아 본 무속인과 역술인들은 어머님, 따님은 거목인데, 여기 있는 게 큰 물이에요. 큰 물이 있으니까 어릴 때부터 영특했고 공부도 잘했겠구만.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띄우곤 하였다. 그럼요, 청하여고 다니는데요. 원래는 외고 가려고 했는데 멀어서 통학도 힘들고 부잣집 애들도 많아서 괜히 마음 상할까봐… 근데요, 우리 딸 선생 시키려고 하는데 될 수 있을까요? 요즘은 고시 통과하기가 바늘구멍 같아서 말이죠. 아, 관(官)도 있구만. 이 쇠붙이가 관이에요. 아무리 시험에 매달리고 뭐 해도 안 되는 사람들, 사주 자체에 관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따님은 달라. 이정도면 국가 시험에 충분히 붙어. 그리고 이 관이 중요한게, 자제력을 뜻해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유혹에 빠지면 다 소용없는 일이잖아. 따님한테는 타고난 자제력이 있어, 내가 볼 땐. 당연하죠, 머리도 좋고 착실하니까 명문고 갔죠. 선생님들이 우리 딸을 얼마나 이뻐했는데요. 어머님, 이런 사주를 흔히 관인상생이라고 하는데, 선생 하기 딱 좋은 팔자에요.

그렇다. 해진의 미래를 물어보는 엄마의 최종 목적은 언제나 관(官)이 었다. 감투를 쓰지 못하면 해진의 성적도 학교 간판도 무용지물이었다. 

사주쟁이와 엄마의 대화는 늘 저런 식으로 흘러갔다. 한두명도 아니고 여러명이 저렇게 말하는 건 우리 해진이가 정말 교단을 밟을 팔자라 그렇겠지. 물론 엄마도 손님 비위만 맞추는 사기꾼을 생각 못 한 건 아니어서 잘 본다는 사주쟁이들을 많이 찾아갔다. 

4년 전, 해진의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엄마는 족집게로 소문난 보살을 찾았다. 용하다는 것이 전국에 소문나서 점을 보려는 사람들로 예약 전쟁을 치뤄야 했고, 엄마도 3개월이란 시간을 기다려 간신히 찾아갈 수 있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난 뒤, 엄마는 해진을 어떤 오피스텔로 데려갔다. 현관에 들어섰을 때 해진은 남의 집엔 갑자기 왜 가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안으로 좀 들어가서 말로만 듣던 법당과 엄숙하고도 음산해 보이는 탱화들을 보고는 곧 아, 내가 목표로 하는 대학을 갈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서 왔구나. 그동안 무당은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깃발 꽂혀 있는 집에 사는 줄 알았는데. 그동안 TV에서만 보던 법당을 둘러보며 한참을 어리둥절했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요란하게 방울 다발을 흔드는 무당은 해진에겐 무척 을씨년스러웠다. 점사가 끝나가면서 엄마의 심장은 더욱 쿵쿵 뛰었다. 

“이번 해월(亥月)이 시기상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때야. 물고기가 오랜만에 물을 만난 형국이니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어.”

“그럼 우리 딸 서울교대 갈 수 있나요?”

“갈 수 있어. 수능 점수도 잘 나오고. 근데 주변 방해가 만만치 않아. 내가 수험생들한테만 써 주는 부적이 있는데, 그럼 그 방해물들을 없애고 목표 대학 갈 수 있어. 쓸 거야?”

“어머어머, 허, 그럼 써 주세요.”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부적을 구매하겠다는 엄마의 말에 순간 해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금액은 10만원이고 부적은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니 일주일 뒤에 다시 와.”

엄마는 지갑에서 부적값을 꺼내 건넸다. 해진이 서울교대에 합격한다는 점쟁이의 말에, 엄마는 그 날 무척 살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