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바다는 내 눈 앞에서 파도를 철썩였다.

밀물은 향수를 운반하고 썰물은 절망을 안겨줬다.

힘을 내어 앞으로 파덕이지만, 모래맛만 짙어졌다.

어째서 난 여기 있어야 하는거지?

 

옆으로 눈길을 돌리니 수억명의 동족이 있었다.

나의 오른쪽에 누워있던 장어에게 물었다.

“자네, 우리는 저 바닷속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는 답하기를 거부했다. 어쩌면 모르는 것 같다.

 

시야가 겨우 닿는 해안가에 날치가 있었다.

그는 바닷속에서 노니며 우릴 비웃듯 훑어보았다.

잽싸게 지나가는 그를 불러 앉혔다.

“너는 왜 날치인가?” 그러자 그는 코웃음치곤 떠났다.

 

왼쪽에 있던 잉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모래밭이 싫은가?”

“몰론이네 .우리는 원래 저기서 숨셔야 하거늘..”

그는 답하지 않았지만 날 계속 보았다.

 

내리쬐는 태양에 피부가 말라가는 것 같았다.

난 용기내어 말했다. “우린 왜 이러고 있는거지?”

잉어는 긴 숙고 후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늘의 지령이다.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소금물에 쪼여 죽는다고 들었다.”

“저 날치는 왜 저런가?” 난 저 날치를 가르켰다.

“날치이기 때문이다. 뭘 기대했는가?”

 

“따른다면? 보상은 무엇이지?”

“태양에게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생선구이가 되고 깊은 것인가?”

잉어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몇 차례 파닥임 뒤에, 그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저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가?”

“왜 다시 물어보는 지 모르겠군.”

“그렇다면 네 의지를 보여라. 나는 잘 안되더군.”

 

잉어는 눈을 내리뜨고 한참동안 날 바라보다 떠났다.

철퍽, 철퍽, 몸을 튕기며 왼쪽 끝을 향했다.

그러한 그를 바라보며 문득 눈에 띄었다.

그의 등이 심하게 쭈그러든 것을.

 

고민하였다. 고통인가, 고통인가.

앞 뒤로 불길이 활활 타는것 같았다.

다만 하나는 멀어지고 있었고, 하나는 뒤에서 날 쫓았다.

그렇게 어디를 가는 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못했다.

 

멈춰야 할까.

두 불꽃이 나를 얼마나 애워싸고 있을 지 모른다.

어쩌면 결국엔 둘 다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뒤는? 난 뭐가 되지?

이전의 시련은 허사가 되는 건가?

 

꼬리에 힘을 주어 나 자신을 튕겼다.

쨍쨍한 햇빛에 일렁이는 바다가

시야 밑으로, 다시 시야 밖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다시 반복한다.

 

여덟번 쯤 했을 무렵, 장어가 다가왔다.

“왜 그러고 있는거지?”

“하늘이 싫어서이다.” 그러면서 다시 튕겼다.

“안타깝군. 노력하면 자네도 승천할 수 있거늘..”

 

“찬대받는 생선구이보다 평범한 모험가가 낫네.”

“우매하군.” 장어가 혀를 찼다.

“애초에 우린 모래에 있어선 안 되네.”

“하늘의 뜻, 선대 승천자의 뜻이다. 어찌 거역할까?”

 

“그게 뭐가 좋아서 따르는가?

난 자네야말로 우매하다고 생각하네.

선대 승천자는 혼자 당하기 싫은 것이고,

자네를 비롯한 저들 모두 멍청이란 말일세!”

 

장어는 눈을 찡그렸다. “자네는 죽는게 옳겠군.”

그러고선 저 멀치로 떠났다.

나는 나아갔다.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내 삶의 궁극적인 의의로.

 

푸른 빛이 나의 몸을 감쌌다.

미끄러지듯 생소하면 안 될 환경에 드러섰다.

저 밖의 멍청이들이 청록빛으로 번졌다.

그러고선 진한 남색만이 남았다.

 

기도의 모래를 떨쳐내고 힘차게 숨쉰다.

따가운 소금기가 느껴졌다.

고통은 아가미에서 지느러미,

지느러미에서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뎌 몸을 튕겼다.

어색하지만 조금 떠올랐다.

계속 꼬리를 뜅긴다. 계속 떠오른다.

눕혀있는 몸을 편하게 새웠다.

 

몇 초 채 안되어 수영을 배웠다.

어쩌면 그걸 위해 태어난 걸지도 모른다.

소금기는 금새 익숙해졌다.

내가 본래 마시며 살아야 하던 것이니.

 

힘을 내어 수면 아래로 헤엄쳤다.

저 위에서 자주 보던 머리들이 보인다.

이제 나는 저들과 다르다.

나는 이겨내었다. 저들이 포기한 것을.

 

그러나 이상했다. 저들은 반대로 생각한 것 같다.

저들은 불쏘시개가 찌르듯 눈빛을 보냈다.

그 장어가 수 만명이 모인 것 같았다.

경멸은 나의 속에서 쌓였다. 끔찍하다.

 

눈을 돌려 날치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위 모래밭 숭어에게 물었다.

“날치를 본 적이 있는가?”

 

“멍청이들끼리 잘들 노는군.”

탄식을 섞은 대답아닌 대답이 돌아왔다.

“어디있냐고 물었네.”

“왼쪽을 보게.” 그는 일 초도 안되어 답하였다.

 

호기심에 본 왼쪽 끝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저 끝에서 푸른 무언가가 보였다.

점에서 고리로, 고리에서,

날치. 쓸쓸히 사체만 떠올라 있었다.

 

“연어라고 다를 것 없네. 모두 그래왔지.”

숭어는 까내리듯 위로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즉각 떠났다. 더 피곤해지기만 했다.

그러고선 나와 생각이 같은 이를 찾아 해멨다.

 

없었다. 검푸른 색으로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 외에는.

나는 절망했다. 정말 멍청이들 밖엔 없군!

그러나 내가 향할 곳엔 아무도 없었다.

수평선 너머로 물길이 퍼져있을 뿐이었다.

 

자, 이제 무엇을 하지.

헤엄도 쳤고, 곡예도 돌아봤고,

해안가에 걸친 별종들도 비웃었다.

그러나 공허함만이 나를 채우곤 말았다. 

 

혼자 있었다.

고독이라는 전제 아래서

잠깐의 시간은 무한히 늘어났다.

차라리 멍청이가 함께 있길 바라기도 했다.

 

곁에 쓸쓸하게 떠다니는 날치를 건드린다.

“너는 어쩌다 죽게 된거지?”

날치는 답하지 않았다.

영혼 없는 몸은 입만 쭉 벌리고 있었다.

 

내려가지 않는 해를 보고도 말해봤다.

“네가 날치를 죽인 것인가?”

해 역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저 멍청이들을 열심히 지지고 있었다.

 

외롭다. 점점 정신이 몸을 빠져나가는 듯 했다.

이따끔씩 다시 생각하기도 하였다.

물고기로서, 물만 필요한 것이 아니였다.

고기인 만큼 다른 고기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저 멍청이들에게 가기 싫었다.

저들은 자해를 즐기는 정신병자들인데,

다가가서 뭐가 좋겠는가?

하지만 나의 고독한 마음 역시 답하지 않았다.

 

나날이 관심에 굶주렸다.

힘을 잃는 것 같았다.

멍청이들은 나를 유흥거리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용감했다. 하지만 이것을 위한 건 아니였다.

 

점점 푸념으로 시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한 번은 그냥 죽었으면 했다.

그렇다고 다시 저 멍청이들과 함께하기 싫었다.

외로운 것 만큼 못할 것 같아서였다.

 

해안가를 순회하며 동료를 찾는다.

그러나 시도하는 이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멍청이들이 잇따라 줄을 이뤘다.

나는 절박했다. 다른 물고기가 너무 보고 싶었다.

 

태양의 뜨거움을 다시 맛 본건 그 다음이였다.

그 고통을 다시 상기시킨건 그 다음의 다음이였다.

이제 오고 떠날 곳도 없었다.

이 드넓은 감옥에서 기다리기도 지쳤다.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건만,

우리의 본질을 발견했다고 생각했건만...

혼자서 깨우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이젠 내가 멍청이였다. 특별한 멍청이.

 

물고기는 긴다.

물고기는 기어야 한다.

 

그들은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나 날치처럼 될 걸 잘 아니까.

 

오늘도 바다 표면에 시체가 하나 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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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밤에 학원끝나고 집가는 길마다 조금씩 쓴거 함 올려봐요.

연재하던 소설은 학업때문에 잠시 접어둬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