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민재."

 

 목례를 하고,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해 준다. 내 앞에 있는 두 아가씨는 내게 꾸벅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서는 옥탑방 옥상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근데, 뭔가 잊어 버린 것 같은데. 

 아! 

 

 "성희 씨, 잠깐만요!"

 

 나는 목소리로만 그녀를 불러 세우고서는 헐레벌떡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서는 지갑을 갖고 나와서, 리돌에게 손에 집히는 대로 지폐를 꺼내서 건네 주었다. 그러고서는 리돌에게 신신당부하였다.

 

 "자, 성희 씨가 골라주는 대로 옷은 사는데, 옷 사는건 이걸로 계산하는거야. 알겠어? 먹을 때 성희 씨도 좀 사 드리고, 같이 다니면서 폐 끼치지 말고. 괜히 땡깡 부리지 말고."

 

 그렇다. 명색만 보호자라는 양반한테 받은 돈도 있는데, 옷가지 사는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성희 씨야 호의로 그렇게 이야기했다지만, 그래도 말이지.
 성희 씨는 방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잠시 갸웃 하더니, 리돌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을 보고서는 휘둥그렇게 눈을 치켜떴다. 그러더니, 어리둥절하게 지폐뭉치를 들고 있는 리돌의 손을 그대로 번쩍 들어다가 내 손에 얹어 주었다.

 

 "아니에요, 민재 씨. 괜찮아요. 리돌 오늘 옷 사주는거,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돈은 신경 안 쓰셔도 되요. 진짜 필요 없어요."

 

 "아니에요, 성희 씨. 아무리 그래도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인데 이렇게 까지 폐를 끼치게 만들 수는 없죠. 데리고 나가 주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데요. 이거 갖고, 성희 씨도 맛있는 것 좀 드시고 하세요."

 

 "아니, 그래도..."

 

 "아니..."

 

 '아니' 대잔치다. 나와 성희 씨는 중간에 있는 리돌의 지폐를 그러쥔 주먹을 양쪽에서 손으로 잡고서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듯이 서로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한국 사람의 미덕인 겸양의 과도한 실천에, 중간에 있는 리돌은 혼자서 춤추는 목각인형 마냥 나풀거리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결국 억지로 리돌의 손에 돈을 쥐어서 보낼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광고 찍듯이 리돌의 손을 서로에게 토스하던 우리들은, 결국 세 명이서 손을 맞잡은 기이한 포즈로 1층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도 한참을 실갱이를 하다가, 결론을 내게 되었다. 리돌의 옷은 내가 준 돈으로 결제하고, 점심은 성희 씨가 사는 것으로. 물론 나야 전부 부담을 하고 싶었지만, 성희 씨가 너무나도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이 타협을 하게 된 것이다. 뭐, 먹을 거야 어차피 저 녀석 아무거나 다 잘 먹으니까 상관 없을 거고, 옷이야 성희 씨가 직업이 프로 모델인데 잘 골라주겠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일을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내 방으로 올라갔다.

 

 

  모텔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손님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상 과제는 청결이라 하겠다. 생각해 보자. 여기 오는 사람들의 목적은? 물론 실제로 잠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신나는 레슬링 한 판이 목적이다. 이런 사람들, 쉽게 말해 '쉬러' 오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이 나가자 마자 몇 분 안에 청소를 끝내고서 잽싸게 방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냥 단순히 치우기만 하면 되느냐? 그것도 아니다. 당연히 그들도 이전에 누군가 이 방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흔적들을 모두 지우는 것이 손님에게서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는 바람직한 접객준비자세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여기에서 객실 청소원들의 고충이 시작된다. 우리 모텔은 침구류가 모두 하얀색이다. 다른 색깔보다 하얀색이 청결해보이고, 깔끔해 보이고. 모두 좋다 이거다. 그런데 문제는 치우는 사람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쓸고, 닦고 치우고 하는데도 어디선가 나풀나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올라가게 되면, 이게 흰 침대보에서는 그렇게 티가 나게 된다. 요런거 하나 하나를 잡아주는 부분이 청소원의 가장 마지막 임무가 되시겠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다. 손님들은 이 가격이 적당하다고 생각했기에, 지불하고 방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우선은 청결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청소시에 한 번 이용한 장구류는 모두 갈아 끼우는 것이 원칙이고, 방 안에 쓰레기는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청소를 깨끗하게 하려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놓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게 모자란 부분이 있는 객실에 손님이 올라가게 되면...

 

 "저기요, 저희가 방이 지저분하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머리카락은 침대보에 그대로 있고, 쓰레기도 안 치우고 수건도 없는 방에 어떻게 들어가라는 거에요? 그래서, 바꿔달라고 한지 몇 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대답도 없어요? 저희가 여기까지 내려와야 겠어요? 네?!"

 

 청소 카트에 쓰레기봉투가 모두 떨어져서 지하 창고에서 가지러 1층에 내려오니, 어떤 커플이 프론트에 항의를 하고 있다. 여자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딴청을 피우고 있고, 남자가 프론트를 보고 있는 재혁이에게 격하게 항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재혁이는 언제나 그렇듯 고개를 조아리고 있고. 남자는 계속 재혁이가 저자세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으니, 기고만장한 듯 계속해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모름지기 프론트 직원이라 하면 저런 정도의 손님의 컴플레인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되는 법. 그 와중에도 재혁이는 나를 보고서는 눈짓으로 어서 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갈 참이었다. 나는 눈에 띌세라 부리나케 지하실로 내려가 숨을 죽였다.

 

 뭐, 다른 이유는 아니다. 당연히 저렇게 청소가 안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프론트에서 땍땍거리고 있는데, 백오피스에서 그대로 듣고 있는 지배인이 청소담당을 보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재혁이는 지배인이 날 보면 불똥이 튈 것을 예상하고서는, 나를 빠르게 피신시킨 것이다. 사실 그런데 저런 사람들이 내가 청소담당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나 좀 귀찮아 질 뿐이지, 지배인한테 별로 꿀릴 것은 없다. 내가 잘 해서 그렇다는 건 아니고, 같이 청소를 하고 있는 형우 녀석이 청소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완벽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본인 말로는 이딴 걸로 불려 내려가면 노이로제 걸린단다. 도대체 사람들이 이딴 데 왜 오는지 모르겠다며 말로는 궁시렁대면서도, 어쨌든 청소 자체는 완벽하게 한다. 그리고, 청소를 하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 아니다.

 잠시 지하 물류창고에서 봉투를 손에 들고 서 있기를 수 분. 드디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잠잠해 졌다. 다른 방을 배정받았던지, 아니면 환불받고 나갔던지. 프론트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엘레베이터로 직행하여 다시 9층으로 올라갔다. 

 

  봉투를 들고 올라간 객실에는, 문 앞의 카트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형우 녀석은 나를 기다리다가 그냥 지쳐 버렸는지, 객실 문을 열어 놓은 채로 비상계단에서 쉬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쓰레기 봉투를 카트 쪽에 던져 놓고서는 계단으로 향했다.


 
 숙박업소에 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호텔이든 모텔이든 복도는 모두 깔끔하기 그지 없다. 손님이 다니는 동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라던가 뭐라던가. 하여튼 그래서 객실에 들어가는 수많은 집기는 복도 이외 다른 곳에 배치된다. 우리 모텔 같은 경우에는 각 층마다 비상계단 출입문으로 나오면 바로 옆에 창고가 있다. 거기에 따로 들고 다니기 무거운, 수건과 침대보, 베갯잇과 같은 린넨들이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곳이, 직원들의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나야 이 곳밖에 일해 본 숙박업소가 없어서 잘 몰랐지만, 다른 곳에서도 일해본 형우 말로는, 이런 쉴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사람을 혹사시키고 일하는 거야?
 계단으로 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형우는 담배를 꼬나물고서는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형우의 등을 툭 건드리며 말을 걸었다.

 

 "야, 재혁이 청소 때문에 깨지고 있더라."

 

 형우 녀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하였다.
 
 "뭐야, 또 이반 때문이야?"


 "자세하게는 못 들었는데, 아마 그렇겠지? 나 내려갈 때 봤는데 재혁이가 그냥 나 다른 데 가 있으라고 그래서 정확하게는 못 물어보고 왔어."

 

 "그럼 우리겠냐. 내가 객실 올라오면 흠잡을 구석이 없어요, 그냥." 

 

 "그래, 너 잘났다. 청소는?"

 

 "쓰레기만 담으면 되는 수준까지 만들어 놨으니까, 어여 끝내고 다시 이쪽으로 와. 잠시 쉬었다가 하자."

 

 나는 짧게 알았노라고 대답하고서는 다시 객실로 올라갔다. 형우 말대로, 별로 정리할 건덕지는 그렇게 많지 않아 보였다. 나는 통에 담긴 쓰레기들을 봉투에 옮겨 담고서는,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