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의 내용은 가히 종교적 간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사진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던 피해자들이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세뇌라도 당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이내 사이비 종교에서 신자들과 교주의 동의하에 자행한 사건이 아니냐는 의견에 큰 힘이 실렸다. 추적이 어렵다는 것, 일곱 명의 피해자가 동시에 같은 범인에게 피해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 신원이 밝혀진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있고, 심신이 미약하며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상태라는 것, 그러한 모든 것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었다. 그러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했고, 이렇게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토록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를 옹호하거나, 이해하려는 의견들은 가볍게 묵살되었다. 이윽고 저렇게 자진해서 저런 고통을 선택한 사람을 굳이 살릴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살린다 한들 그들이 바라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 이후의 삶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이야기했다. 시민 자체 수사는 즉시 종료되었다. 그러나 수사는 계속 진행되어야 했고, 어찌 되었든 범인과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밝혀내야 하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신원을 밝혀냈다 뿐이지, 여전히 사건은 미궁 속 한복판이었다. 나머지 피해자들의 신원은 그 후로도 좀체 드러나지 않았다. 범인이 누구인지,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은 무엇인지 꼬투리조차도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사건이 해결될 거라는 믿음은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시간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4일 후, 서귀포시의 어느 마을에 번호판이 없는 화물트럭 한 대가 유유히 진입했다. 그리고 20분 뒤에, 진입했을 때와 같이 유유히 마을을 떠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뒤편의 숲 속에서는 개들이 짖는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왔다. 근처에 살던 노인은 그것을 수상하게 여기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걸어갔다. 원체 가구 당 개 한 마리씩은 흔히 있고, 묶여 있지 않은 개들도 많은지라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소리의 근원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노인의 몸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가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개들이 짖는 소리는 무언가 수상한 것을 발견하거나, 어떤 위협적인 것을 발견했을 때의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허기에 굶주려있는, 아주 극도의 허기의 굶주려 있을 때에 먹이가 눈앞에 있을 때 나오는 그런 종류의 울부짖음이었다. 고막이 아파왔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무리를 지어 주륵주륵 밑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산만한 맷돼지도 때려잡았었는데, 나도 늙기는 늙었구나. 노인은 그렇게 자신을 타박하며 발걸음을 때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자기가 소리에 가까워지고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공포가 그저 단순한 종류의 공포가 아니라는 것을 노인의 몸은 알아차리고 있었다. 장막을 걷어내듯 나뭇잎이 듬성듬성해지고, 숲 속의 공터에 당도했을 때 나타난 눈앞의 광경에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눈이 새빨갛게 충혈 된 이십 마리의 깡마른 도베르만들이 나무에 묶인 채, 

   침을 질질 흘려대면서 자기 쪽으로 달려 나오려 하면서 굶주림으로 가득 찬 짖음을 뱉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압도적인 살벌한 공기에, 노인은 숨조차 쉬지 못했다. 개들이 짖는 소리가 공기를 타고 자신의 몸을 때려댈 때마다,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신경을 자극했다. 노인은 한참을 그렇게 정지해 있다가, 자기의 앞에 커다란 접시 하나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접시 안에는 뼈째로 얇게 썰어낸, 핏물이 아직 빠지지 않은 채 송글히 맺혀있는 생고기들이 담겨 있었다. 노인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빠르게 그 숲을 빠져나왔다. 노인은 헐떡거리면서 경찰에 신고 전화를 넣었다. 도베르만이 이십 마리나 산에 묶여있다는 말을 경찰관은 쉽게 믿지 못했다. 말도 안 된다. 라고 경찰관이 말하자. 그럼 요새 TV에서 매일 나오는 그 미친놈은 말이 되어서 나오는 거냐고, 노인은 받아쳤다. 그러자 경찰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신고를 받아들였다.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경찰들이 동원되었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은 도베르만 이십 마리가 짖어대는 그 광경에 한동안 혼이 빨려나가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 광경은 근처에서 먹을 것들을 싹 쓸어와 그 도베르만들을 배불리 먹이고 나서야 사라지게 되었다. 도베르만 앞에 놓였던 그 접시는 없는 것처럼 취급되다가, 경찰 한 명이 뒷걸음치다 밟아 엎지르면서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게 되었다. 접시에 바닥면에는 이런 내용의 글씨가 정자체로, 황금색으로 프린팅 되어 있었다.

 

너희들이 당연하다고 믿던 것,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던 것들.

그것들이 무너지는 광경이 어때?

이런 고깃덩어리들로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들이야.

너희들의 울타리는 터무니없이 연약한 것이니까.

 

   거기에 있던 경찰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정확히 무슨 상황 속에 던져진 것인지 인식할 수 있었다. 경찰들은 허겁지겁 엎질러진 것들을 접시에 주워 담아서, 서둘러 자리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경찰들이 있는지도 몰랐던, 호기심이 가득한 중학생 한 명이 있었다. 그 중학생은 한참동안 그 현장을 배회하다가, 수풀 속에서 반짝이는 황금빛을 보았다.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가 떠도, 그 황금빛은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고 처음 그 자리에서 은은하게 반짝였다. 중학생은 그 황금빛에 다가가서, 그것을 주워들었다. SD카드였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도하기 전에 그 중학생은 SD카드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주변을 몇 차례씩 살펴보곤 빠르게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빨리 달려본 적이 없었다. 그 중학생은 자기 컴퓨터 앞에서 한참동안 그 SD카드를 들고는,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경찰서에 가서 제출하면 되잖아. 그렇게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렇게 속삭이기도 했다. 이런 게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은닉할 수도 있어, 잠깐 확인만 해보면 되잖아. 그게 뭐가 나쁜 짓인데? 소년은 후자의 목소리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소년은 SD카드를 컴퓨터에 꽂았다. 거기에는 동영상 하나가, 그것 하나만이 카드에 담겨있었다. 소년은 그 동영상을 재생했다. 처음에 나타나는 것은 회색의 시멘트벽이었다. 카메라는 고개를 돌리듯 휙휙 돌아갔다. 액션캠을 머리에 달아놓고 촬영한 영상인 모양이었다. 주위는 조용했다.어딘가 저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지만, 어딘가에 막혀서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은 오른손으로 전동 절단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FPS게임의 시점처럼, 절단기의 위치를 오른쪽 구석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절단기의 전원을 올렸다. 쒸이이잉, 하는 소리가 나면서 톱날은 빠르게 돌아갔고, 영상의 주인공은 절단기를 게임 캐릭터의 모션 같이 일관적이고 뻣뻣하게 휘둘렀다. 시멘트벽에 절단기를 몇 번 그었고, 벽에는 움푹 패인 자국과 함께 시커먼 그을림이 생겨났다. 영상의 주인공은 뒤로 몸을 돌려서, 바로 보이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왼손으로 문을 열었다. 두꺼운 철제문이 비명을 지르듯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그 안에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가 펼쳐져 있었다.

   어둡고 컴컴한 그 창고의 천장에는 빨간 조명등 하나만이 조용히 빛을 내뿜고 있었다. 벽에는 눈이 뽑히고, 귀가 잘리고, 머리가 모두 밀린 피해자들이 장식품마냥 밧줄에 의해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몇몇은 고개를 푹 떨군 채로 기절해 있었고, 몇몇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벽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절단기의 회전수를 올리자, 벽에 걸린 피해자들은 물 밖으로 꺼내져 도마 위에 올려 진 도미처럼 몸을 팔딱거리면서 울부짖어댔다. 한 명이 울부짖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울부짖었다. 오줌이 흘러나와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영상의 촬영자는 정육점 진열대 앞의 손님처럼 피해자들을 쭉 훑어보더니, 맨 오른쪽에 있는 여자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자에게 가까워지자, 벽에 달라붙어있는 수혈 팩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팔목과 허벅지에는 링거가 이곳저곳에 꽂혀있었다. 촬영자는 여자의 허벅지에 꽂혀있는 링거들을 뽑아내었다. 여자는 공포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질러대면서, 고개를 좌우로 마구 저어대었다. 달그럭거리는 소리가 왼쪽에서 들려왔다. 이윽고 화면 왼쪽 구석에서 접시 한 그릇이 슉하고 나타났다. 영상의 촬영자는 발목이 잘려있는 여자의 종아리 위로 절단기를 들이 밀어 넣었다. 절단기가 돌아가며 뼈를 파고드는 소리, 피해자의 끓어오르는 비명, 렌즈에까지 튀어오르는 빨간 선혈. 소년은 거기에서 동영상을 보는 것을 멈추었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날 것의 폭력에 압도되어, 소년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바지가 흠뻑 젖어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은 이 동영상과 연관된 사건의 모든 정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소년은 이 사건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었고, 범인이 던지는 메시지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방금 본 이것은, 이것은 아니었다. 방금 소년이 본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멈추어야하는 미친 짓이었다. 여과되지 않은 폭력이 이런 것이라니, 소년은 지금가지 흥미로만 이 사건의 접근했던 자신을 질책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 때 갑자기 모니터에 핏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모니터는 새빨간 선혈로 빨갛게 뒤덮였다. 기분 나쁜 기계음의 웃음소리가 최대출력으로 스피커를 통해서 터져 나왔다. 소년은 재빨리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컴퓨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가능할 수 있는 한 빨리 컴퓨터의 코드를 뽑았다. 컴퓨터는 퍽하고 꺼졌다. 소년은SD카드를 뽑고, 코드를 꼽고, 컴퓨터의 전원을 눌렀다. 그러나 컴퓨터는 전원만 들어갈 뿐, 새카만 화면만 출력할 뿐이었다. 소년은 자기가 너무 위험한 영역에 발을 담구었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미 일은 소년의 손을 한참 떠나있었다.

   약 두 시간 동안, 그 동영상은 유튜브에 소년의 구글 계정을 통해 누구든지 볼 수 있게끔 게시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년이 본 것을 보기 위해 달려들었고, 유튜브 측에서 동영상에 블럭을 먹이고 계정을 폐쇄조치했을 때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본 후였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공권력이 무능한 것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업로드한 계정을 추적해 경찰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에는 공포에 질린 중학생 소년만이 벌벌 떨면서 SD카드의 내용을 확인한 것에 대해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싹싹 빌어대고 있을 뿐이었다. 피해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은 다시 한 번 반전되었다. 비록 그들이 자진해서 선택한 고통이라도, 영상 속에서 그들은 분명 공포에 떨며 자기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명백히 거부하고 있었고, 그들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게임을 하듯이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고, 의도야 어떻든 지금은 그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이 상황을 유지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는 지금까지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던 이들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너희들은 그저 이 사건을 즐기기만 하고, 자기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마치 드라마 보듯이 흥밋거리로만 소비하고 있었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건의 잔혹성에 무덤덤해졌고. 하지만 이건 분명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고, 너희와 같은 사람이 저지르고 있는 잔학무도한 사건이라고.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지. 그렇게 말하기 위해 그 영상을 찍어서 남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이는 오로지 나뿐인 모양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더욱 더 강한 자극이 그들을 만족시켜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아무도 그렇게 솔직히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렇게 보였다.

   경찰 측에서는 아주 끔찍한 영상이었지만, 피해자들의 신체적 특징을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원이 되었기도 했다면서, 피해자들의 신체적 특징을 공고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경찰 측의 대처가 매우 미흡했었던 것을 인정하고, 폐쇄적이고 조직적인 이번 사건의 특성상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도움이 강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사건의 범인을 반드시 국민 앞에서 심판할 것임을 약속했다. 맨 마지막에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이라면서,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자를 공격하는 언행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한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음 사건은 바로 그 다음 날에 일어났다.

   오전 10시, 서울, 대전, 인천, 대구, 부산, 수원, 제주에서는 동물 가면을 뒤집어 쓴 사람들이 각 지역마다 한 명씩 나타났다. 그들의 손에는 가방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그들은 각자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 극장, 연극장, 야구장,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입구로 걸어들어가서, 프런트에 앉아있는 직원의 앞에 보란 듯이 가방을 들이밀었다. 직원은 하나 같이 이게 뭐에요? 라고 물었고, 동물 가면을 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쪽’에서 찾던 것들이에요.

   직원들은 어리둥절했으나, 분실물을 찾아서 돌려주려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는 그 가방들을 받아들었다. 동물 가면을 쓴 사람들은 그 가방들을 건네주고는, 마치 수증기처럼 어딘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방을 건네받은 일곱 명 중 여섯 명은 자신들이 받은 가방을 그대로 분실물 보관함에 쑤셔박았으나, 도서관 직원만은 달랐다. 그는 누군가 주인을 되찾아 달라며 물건을 맡기면, 그게 자기가 가져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만한 것 인지부터 생각하고는 했다. 두터운 지갑을 건네받으면 현금을 4분의 1쯤 챙기곤, 주인이 찾으러 오면 모르는 척 건네주었다. 주인이 지갑을 확인하곤 여기 20만 원쯤 있었는데, 라고 말하면, 다 안 가져간 게 어디에요.그래도 돌려주긴 했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 때 당시 그가 차고 있던 시계도 그렇게 챙긴 분실물 중 하나였다. 45만 원짜리였는데, 그는 주인이 그걸 찾으러 왔을 때 셔츠 소매 밑에 그 시계를 착용한 채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시계는 없었어요, 아쉽지만 누가 가져간 게 아닐까요? 주인이 CCTV 판독을 요청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으나, CCTV는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요. 라고 말하자 주인은 자신의 시계를 거기에서 포기했다. 그가 보기에 가방은 척 보아도 분명히 비싼 축에 속하는 것이었다. 명품에 관심은 없지만, 에르메스 상표 정도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비슷한 모델을 찾아내었고, 찾았을 땐 그 가격에 놀랐다. 천이백. 그의 팔 개월과 바꿀 수 있는 가격이었다. 이런 걸 잃어버리고 다니다니 팔자도 좋구만. 그는 혀를 쯧하고 찼다. 이런 가방엔 뭐가 들어있으려나, 그는 그렇게 무심코 가방을 열어보았고, 도서관의 침묵을 깨부수었다.

   경찰은 동물 가면을 쓴 사람들에게 가방을 넘겨받은 이들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명이 받은 가방에도 도서관 직원이 받은 가방에서 나온 것과 같은 것이 나왔다. 가방 안에서는 피해자들의 잘린 머리가 발견되었다. 그 잘린 머리의 목구멍과 입은 창자로 연결되어있었다. 이빨은 모두 뽑혀있는 상태였다. 가방에서는 또한 부고장도 발견되었는데, 봉투 안에 들어있는 종이에는 붓글씨로 이렇게 써져있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건 누군가 이미 소화시킨 것뿐이야.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건 모두 찌꺼기들이야.

너희가 스스로 찾아내서 얻어낸 게 뭐가 있는데?

 

   그 사건을 종합하기도 이전에, 이미 다음 사건은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려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오후 3시, 일산 MBC, 춘천 KBS, 전주 SBS, 대전 MBC, 서울 SBS, 부산 KBS, 울산 MBC 앞에서는 벌거벗은 나체의 사람들이 한 명씩 나타나 선물 상자를 들고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부탁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나체의 사람들에게 연관되지 않으려고, 모른 체하면서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쳐갔다. 나체의 사람들은 간곡히 애원하는 말투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걸 열어주세요. 꼭 열어야 하는 데 내 손으로 열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에요.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경비원들이 달려 나와 그 사람들을 제지하려고 했다. 경비원이 달려 나오자 그 사람들은 밝은 미소로 그들이 달려 나오는 것을 맞아주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해주었다. 경비원들은 예상치 못한 그들의 태도에 당황했다. 그들은 경비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걸 열어주러 오신 거죠? 이걸 열어줘야 우리는 집으로 갈 수 있답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선물 상자는 포장지로 덮여있는 것도 아니었고, 끈으로 묶여있지도 않았고, 테이프를 둘러서 밀봉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뚜껑만 열면 그만인 것이었다. 스스로 열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가는 길에 열면 안 된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꼭 누군가가 열어야만 한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겁에 질린 듯 두 다리를 벌벌 떨어댔다. 어쩔 수 없지, 하고 경비병들은 그 상자의 뚜껑을 열었고, 이윽고 경악에 가득 찬 얼굴로 상자를 들고 온 사람들을 구속했다. 그리고는 경찰에게 그들의 신병을 넘겨주었다. 그들이 들고 있던 선물 상자도 함께.

   선물 상자 안에는 정사각형의 락앤락 용기가 담겨져 있었고, 그 락앤락 용기에는 깔끔히 떼어내진 사람의 뇌가 들어있었다. 락앤락 용기 위에는 반이 접힌 엽서가 올려져있었다. 엽서 안에는 주민등록증이 들어있었다. 엽서에는 만년필로 쓴 글씨가 이렇게 적혀있었다.

 

너희들이 원하는 답은 모두 여기에 있어.

와서 물어봐, 헤집어 봐.

그렇지만 이 안에는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지.

 

   그 날 저녁, 8시 뉴스에는 그 주민등록증의 주인의 사진이 일제히 공개되었다. 그리고 내 눈 앞을 가로막고 있던 보이지 않는 껍질이 뚝하고 떨어져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일곱 명 중 세 명은, 남편과 키스를 하고 있던 그 세 명의 여자들이었다. 사진은 전부 구겨서 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 세 명의 여자들이라는 건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제야 나는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