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침대



 나는 오랫동안 내 자취방에 사람의 몸을 찍은 X-ray 사진을 걸어놓았다. 내 몸을 찍은 것은 아니었다. 정리가를 붙여놓은 것을 어느 갤러리에서 구입한 건데, 실제 사진을 확대시켜 놓은 것이라는 말 외엔 아무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도 사람의 뼈를 찍어놓은 거라면 누구의 것이든 상관 없었다.


 내가 방 안에 그 사진을 걸어놓은 건 껍데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의 몸과 내가 안고 있는 사람의 체온이나 살의 감촉에 너무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누구의 부분이든 내가 사랑한다고 느껴지는 모습도 어디까지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어, 나는 누군가와 격하게 뒹굴고 난 후에 내 침대에 앉아 그 커다란 X-ray 사진을 가만히 올려다보곤 했다. 내가 생각해도 굉장한 기행이었다.


 하지만 내 방에서 자고 가는 여자들은 어딘지 모두들 하루키적인(하루키의 소설적인)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다들 신경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어쿠스틱 기타를 칠 줄 안다던가, 남자친구가 따로 있다거나, 아니면 재즈를 좋아한다거나 죽고 싶어한다거나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른바 유유상종이라고 부를만한 부분인지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애들은 침대 옆에 걸려있는 거대한 해골을 보고서도 내심 힐긋거리기나 할 뿐 따로 불만스럽게 여기진 않았다. 아마 나도 그녀들처럼 일정부분 하루키적으로 행동한다는 게 오히려 적잖이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라고, 나는 짐작하곤 했다.


 실제로 나를 보면, 기껏 X-ray 사진까지 걸어놓고도 이런 바보같은 밤과 관계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어쩌면 하루키의 소설 속에 나오는 방황하는 청년의 표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내게는 순문학 작가의 등장인물 같은 그럴싸한 고민이나 우수어린 사고방식 같은 건 없었다. 나는 그저 문학을 전공하는 학과의 남학생치고는 꽤 반반한 편이었으며, 또 드물게도 독서와 근육운동을 병행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환경상 여러 여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 성욕으로 지탱되는 말도 안되는 관계를 (특히나 그 수많은 진취적이거나 사랑에 대해 고찰하는 시와 소설을 읽으면서도) 다양하게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한 사람 분의 훌륭한 괴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한편으론 내가 X-ray 사진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했다는 점에서 문예지망생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은 지켰다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상대방의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연기를 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와 침대를 같이 썼던 여자들 중에서는 우울증 약을 먹는 사람이 많았으며, 그런만큼 스물 넷이 되기 전에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었다. 출산율 하락과 더불어 자살은 유행처럼 번져가는 시대에서 그건 아주 독특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죽은 여대생과 자본 적이 있다는 사실은.

 그런 만큼 나는 역시ㅡ 내게 안겨있는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기 위해, 그것이 결국 골격 위에 겹쳐져 있는 껍데기와 다른 모든 근섬유에 대한 감정을 뿐이라는 것을 자주, 늘 기억해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털어놓자 어떤 여자애가 어딘가 굉장히 무심해보이는 얼굴로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나 그리스 신화책에서 자기가 만든 침대에 맞춰 여자를 죽이는 산적 얘기를 읽은 적이 있어. 지나가던 행인을 잡아서 자신 침대에 눕힌 다음에, 그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억지로 당겨서 죽이고 침대보다 길면 도끼로 잘라 죽였대."


 나는 그게 내 침대와 나의 해골 사진을 보고 느낀 감상이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관계 후 나를 바라보지 않는 그 애의 무표정한 얼굴에 겁을 먹어 물어보지 못했고, 얼마 후에는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기 때문에 물어볼 기회는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것 역시 굉장히 하루키의 소설처럼 느껴졌지만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닐 지도 모른다. 그 애는 교문 앞에서 목을 매달았고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밤에 숲 속에 들어가 자살한 소설 속의 나오코와는 다르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일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는 커다란 X-ray사진이 있다. 게다가 그런데도 내 방에는 누군가가 계속 찾아오니까. 생활은 이어나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나는 이 노르웨이산 침대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기로 했다.




(생각나서 업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