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 리스트

1. Feedback

2. 자소서

3. Underground Rockstar

4. 암순응

5. 88

6. 한국(Remaster Ver.)

7. 역류

8. 회상록

9. 이유

10. 곡예사 Remix (Feat. Basick, P-type, Skull, Sikboy, Olltii, Minos, Brown Tiggerr, Jazzmal)


"느슨해진 한국 힙합에 긴장감을 주는 것 같다" 라는 평가는, 조광일의 곡예사에 대한 평가 중 가장 유명해서 밈이 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 댓글의 의미에 상당히 많은 힙합 리스너가 공감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는 조광일의 스타일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2010년대 초중반부터 유행했던 트랩과 SWAG 장르가 점자 힙합에 관심 없어하는 대중들에게 질타를 받았고, 그에 따른 분위기 전환과 그에 따라 <쇼미더머니> 역시 7번째 시즌 이후로 하반기에 방송 편성이 되어 연말 분위기를 뽐냈고,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감성 힙합이 많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하드코어 힙합을 좋아하던 사람들에게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극단적으로 싱잉랩 자체에 대한 회의적이고 적대적인 시선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언에듀나 노스페이스갓, 래원 같은 기믹 래퍼들을 듣기는 거북했던 사람들에게, 빠르고 시원한 속사포는 그들의 등을 긁어주는 스타일의 음악이었다. 그렇기에 조광일의 앨범은 '곡예사' 로 띄운 자신의 음악성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조광일의 태도는 첫 트랙부터 신기했다. 첫 번째 트랙인 "Feedback"에서, 그는 "날 무작정 쉴드치는 팬들 또한 문제" 라고 말하며, "어떤 게 별론지 제대로 된 논리 가지고 말하면 참고할게" 라고 말한다. 요즘 힙합 트렌드, 아니, 모든 힙합 트렌드를 따졌을 때 이렇게 대놓고 겸손한 태도는 흔하지 않다. 당장 동년에 나온 Northfacegawd의 <복덕방> 이라는 노래에서도 "누가 들어달라 했니, 넌 좀 듣지 마. 괜히 좆나 시비 걸어" 라는 가사를 썼다.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도, 그걸 사랑 관련 노래나 감성 노래가 아닌 가사에 녹여내는 힙합 아티스트는 드물기에, 나는 이 음반에 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지점은 적어도 2번 트랙 자소서까지는 이어졌다. 자신의 인생을 풀어내는 가수들은 많다. 아니, 그렇지 않은 가수는 아예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가수들은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감성 노래로 가지, 유쾌하거나 기운차게 하는 가수들은 드물다. 하지만 조광일의 자소서는 나름 유쾌하고 강렬하다. "집안 사정? 말하자면 긴데, 짧게 말하면 부유함, 더 짧게 말하면 부자" 라고 일축하는 그의 비범함은, 자신은 이 노래를 유쾌하게 풀어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점은 거기까지였다. 언더그라운드 락스타, 암순응, 88, 한국, 회상록 총 5개의 트랙이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기믹 래퍼, 싱잉 래퍼, 아무튼 실력이 떨어지는 불특정 래퍼 몇몇을 겨냥하고 분노를 쏟아낸다. 심지어 더 실망스러웠던 점은, 이런 주제가 이미 한 번, 아니, 그의 앨범 발매 이전 대부분의 노래들과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사실상 첫 데뷔곡인 "Grow Back" 부터,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해 준 "곡예사", 그 뒤로 발매한 "Two Hash Carls", "한국", "정리해고", "막말" 등 모든 노래 모든 벌스의 주제가 똑같으며, 이 점이 이번 앨범의 다섯 트랙에 사용된 것이다. 물론 그런 노래들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암순응"의 "내가 무너질 거라고 말했던~그 때화 지금 난 다른가" 부분은 마치 Tech n9ne의 <Speedom>에 피쳐링으로 참여한 에미넴을 보는 듯 했고, "회상록"은 자칫 평범할 수도 있었던 곡의 주제를 말 그대로 회상하면서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세 노래는 그다지 특기할 만한 점이 없었다. 특히 "한국"은 굳이 리마스터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감상이 있었다.


역류랑 이유도 그다지 특기할 만한 점이 없다. 역류는 단순히 대부분의 래퍼들이 그렇듯 가상의 헤이터를 두고 그들을 까는 내용이며(물론, 조광일의 랩 스타일에 많은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실재했다는 것이 사실인 만큼 "가상의" 헤이터는 아니지만), 어떠한 특이점도 없다. 단지 조광일이 이런 주제로 랩을 할 수 있다는 것만 알수 있을 정도?이유는 암순응 트랙 전체에서 가장 이질적인 감성곡인데, 가사는 이해하기 난해하며, 비트도 몽환적인지, 어두운지 종잡을 수 없는 비트로 오히려 실망스러움만 안겨주었다.


요약하자면, 이번 앨범은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든 앨범이다. 5점 만점에 2정 정도. 물론 1집 가수, 게다가 EP로 갑작스럽게, 한계가 분명한 스타일로 스타덤에 오른 뒤 내는 앨범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조광일 본인도 "미안해, 나도 내 상황이 처음이라" 라고 가사에 쓰기도 했고 말이다. 이후 조광일은 <쇼미더머니 10> 에 출연했다. 우승했지만, 조광일은 우승했다는 결과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이 있다. "가시" 나 "Wake up" 등의 억지 감성은 망했다. 조광일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호우주의" 나 "가리온" 등의, 유쾌하고 시원한 구성이 조광일을 돋보이게 한다. 그의 그런 유쾌한 장점이 가장 잘 돋보이는 곡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디스코나 출래"고, 다른 하나는 바로 비교적 최근 곡인 "라이언 일병" 이다.


조광일이 자기 장점을 잘 찾길 바라면서, 다음 앨범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