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일 만에 글 쓴다. 한 달 정도 글을 안 썼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글을 쓰지 않은 기간이 짧아 신기했다. 그래도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놈이 2주일 동안 글쓰기를 안 했다고 생각하면 꽤 긴 것 같기도 하다. 전에 구상해놨던 소설도 잠시 머릿속의 구석에 박아두고, 내 뇌가 창의력의 짜릿함을 맛보며 어떻게 쓸지 고민했던 주제도 같이 구석에 던져놨다. 계속 소설을 쓰고 글에만 인생을 바쳤다면 구상한 것들에게서 장롱 냄새가 배서 못 써먹게 되겠다고 불안해하고 아쉽게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태양은 한 번 졌지만, 다시 얼굴을 내민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갑자기 떠오른 문장이다. 내 인생의 태양과도 같았던, 음악. 음악이 다시 내 인생에서 취미라는 가벼운 영역을 벗어나 다시 꿈이라는 크고도 무거운, 그러면서도 활기찬 영역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왜 이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음악을 다시 하고 싶어진 이유가 크게 두 가지다. 하나, 봇치 더 록을 보고, ost를 듣고, ost속의 기타 소리에 빠져서. 둘, 그림을 업으로 삼으려 하는 친구가 잠시 흔들리면서 내게 가볍게 밴드나 해볼까 하고 말을 툭 던져서.

 예전에 음악을 직업으로 삼으려 했을 때의 이유보다 초라하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교회를 가며, 노래를 부르고, 들으며 즐거웠고, 초등학교 때 어쩌다 동요 대회에 나가 본 것, 텔레비전에서 처음 들어본 EDM이라는 장르의 신선함에 충격을 받은 것, 기타를 치며 미친 듯이 빠져 죽어라 연습했던 것, 기타 덕분에 찐따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된 것.

 결국 저 이유를 내팽개치고, 허무함에 몸부림치다 도망치듯 글쓰기로 와 허무함을 떨치기 위해 죽어라 써보고, 어느새 새 지식을 배우는 것에 재미를 붙이고, 소설 읽는 걸 공부라는 이유만으로 읽는 게 아닌, 재미를 위해 읽는다는 이유도 붙고, 글 쓰며 친구에게 보여줘 친구가 재밌다고 한 것에 기쁨을 느끼고, 그날그날 글 쓰고 힘이 빠지는 느낌에 취하고, 소설을 끝까지 쓰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고, 등단을 해서 내 글을 책으로 내고 싶고, 세상에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 싶음을 느끼며 글쓰기에 빠졌다. 도망치듯 시작했지만, 어느새 나는 글쓰기에, 글에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 여친을 잊지 못하고 떠올리는 게 이런 느낌일까. 연애는 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아니, 한낱 그런 감정 하고는 이건 다르다. 내 마음속에는 꺼진 줄 알았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불씨로 살아남아 있었고, 저 작은 두 숨결에 불이 커진 것이다. 나는 작곡을 하고 싶고, 더 많은 음악적 지식을 통해 뻔한 노래가 아닌 신선한 노래를 만들고 싶고, 땀에 젖은 상태로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음악에 빠져 희열을 느끼고 싶다.

 글은 포기하지 않았다. 잠시 음악을 위해 잠시 쉴 뿐. 글은 여러 자잘한 이론을 몸으로 느껴보고 인터넷에서 어떻게든 찾아서 공부해 봤으니, 이번엔 이론 없이 했던 음악에게 이론을 배울 시간을 양보하는 것이다.

 대학교도 가지 않고 방구석 백수로 지내는 나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진 않다. 또, 아무 일도 안 하고 부모님 등골만 빼먹는 밥벌레로 살기도 싫다. 나는 지금까지 꿈을 꾸며 살았고, 꿈에게 보살펴졌으며, 꿈속에서 살았으니까. 나는 어찌 보면 돈키호테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자잘한 것에서 꿈을 키우고 꿈속에서 사니까. 그러나 나는 풍차를 거인으로 보는 멍청이가 되고 싶진 않다. 멍청하게 꿈속에서 허우적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음악 이론도 공부하고 있다. 예전에 기회가 되어서 대학교에서도 쓴다는 화성학 교재를 얻었는데, 음악을 포기하고 나서 그 책을 다시 펴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을 펴 공부할 때마다 머리가 으스러지는 기분이 들지만, 내 꿈을 위해서 매일 공부 중이다.

 음악을 위해 글은 잠시 뒤로 미룬다. 음악 이론을 다 배울 때까지.

 태양은 한 번 졌지만, 다시 얼굴을 내민다. 앞으로 태양이 저물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