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이재형은 느끼고 있었다.


 아직도 보안 결계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기껏 저녁 약속을 잡은 살비에르를 골려줄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결국, 교내 식당에서 맛없는 식빵 정도를 깨작거리다가 찝찝한 뒷맛을 뒤로하고 배만 채워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교내 식당은 늘 그랬다. 수많은 국가에서 학생들이 심사되어 들어오며, 심지어 개중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도 일부 있었으니까. 그들의 입맛은 인간과는 판이하게 달랐고, 이재형은 1학년 때,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크하하, 야 비르다이어. 넌 딸기잼에 그렇게 구역질이 난다고? 이해 할 수가 없구만 그래.”


 아카데미 식당의 메뉴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빵이나 웨이퍼 형태의 베이스 재료가 전부였다. 


 나머지 수많은 토핑들은 종족 별로 나뉜 셀프 바에서 직접 골라서 담아야 했다.


 특히 피부가 연보라색인 종족들은 인간이 도저히 먹기 힘든 종류의 토핑을 아주 맛있게 퍼먹어댔다. 재형의 예전 동료였던 비르다이어 역시 연보라색의 피부를 가졌고, 결국 이재형과 비르다이어는 임무 동료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도시에서 식사를 함께한 적이 없었다. 


 그것을 감안한다고 쳐도. 교내 식당의 메뉴는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조금 실망한 채로, 살비에르와 유하나, 그리고 이재형은 기숙사의 휴게실로 돌아가 잡담을 하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가장 강렬해지는 때. 그리고, 착한 아이라면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이재형 네가 연기했던 백작 역은 백작 부인이 거의 다 완성 시킨 거 아냐? 나도 그 상황 정도는 제대로 연기할 수 있다고?” 


 “풉. 유하나 네가? 살비에르는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야, 안 그래?”


 “음. 그건. 곤란.”


 잡담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고, 별로 재미도 없었다.


 그러다, 살비에르가 쥐고 있던 휴대폰에 알림이 떠올랐다. 


「뭐지?」


 “미안. 가. 보겠다.”


 “에에엥? 그렇게 갑자기?”


 “어어, 야! 어딜 가!”


 살비에르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건지 어쩐 건지 도중에 휴게실을 나가버렸다. 어디로 간 건지 방향이라도 살피려 했지만, 그가 있던 곳에 남은 건 타버린 전이 탈리스만(符籍) 뿐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허락받지 않은 마법 사용 시 어떠한 경우든 벌점 3점. 그렇다는 것은, 이번 일이 벌점 3점보다 급한 중요 사항이라는 것. 


 그렇게 저녁 파티는 해체됐고, 유하나는 A 승강기를 타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이재형도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E 승강기에 탔다.


─13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그 녀석이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 하지만, 이런 막무가내인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어쩌면 학생회에서 긴급 소집 연락이 왔는지도 몰랐다. 아까 학생회장이 회의를 할 예정이라고 했으니. 그 알림은 학생회에서 온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런 식의 어설픈 추측 뿐 이재형은 정확한 이유를 몰랐다. 이재형은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갔다.


 -세베트. 나 왔다. 


 세베트는 늘 컴퓨터 책상에 앉아 2차원 소녀들이 가득한 게임을 했던 동료였다. 이재형은 그가 신기해 보이기는 했다. 게임이라면 풀 3D 몰입형 게임이 개발된 지도 3년이 다 되어가는데 굳이 2차원 소녀 게임을 한다라…


 상당한 집착의 결과물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컴퓨터 자리를 확인한다. 없다.


 「뭐야, 어디 갔어? 맞다. 막바지라 해도 지금은 일단 현장 시즌이었지.」


 아무도 없었으며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항상 귀찮은 티만 내던 세베트도 늦게나마 현장에 나갔을 테다. ‘야레야레 쇼가나이나-’ 하면서 현장에 나갔을 것이다. 놈은 그런 이상한 대사를 참 많이 했었다고. 이재형은 기억하고 있다.


 이재형은 착각해버린 자신이 우스웠는지, 자그만 한숨을 쉬며 어쨌든 언제나 알아서 잘살고 있을 것이라 넘겨짚는다.


 권민규, 도르그단, 세베트. 룸메이트들도 각자의 임무가 끝나려면 일주일은 훨씬 멀었다. 일주일 전후로 돌아오면 결계 고장으로 인한 인정휴가를 얻는 건 불가능하다. 몇 시간이면 고쳐지거나 길어야 하루 정도 더 걸릴 것이다. 


  「그게 녀석들의 운명인 거다. 불쌍한 것들.」 이라고. 이재형은 속으로 비웃는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다. 원래 4명이서 쓰던 텅 빈 C동 기숙사 방은 왠지 아늑했다. 시간이 꽤 지나고 얕은 잠이 엄습해 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면은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 


 이틀만의 제대로 된 수면을 즐기고 있던 차에 불청객이 그를 습격해 왔기 때문이었다.


 -똑, 똑, 똑. 


 「누구지? 이 시간에.」


 자정이 가까운 한밤중이었다. 


 노크 소리를 제외하면, 옆 방에서 코를 고는 소리와 매 층마다 있는 기계실의 윙윙대는 소리 정도만이 전부였다. 


 너무나 조용해 수상함을 느낀 이재형은 긴장하여 심장 박동이 빨라지자, 안맥동(安脈動)─내공의 일종─으로 침착을 되찾는다. 


 잠깐의 긴장과 함께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묵직한 권총을 빼 든다.


 천천히 전진하려던 차에, 문 앞에선 전혀 위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회입니다.”


 문에 나있는 작은 돋보기 구멍으로 문 앞을 살펴봤다. 커튼캔디 벨리아, 한가민, 샤킬로나 살비에르, 김지현.


 전부 학생회 소속 인원이다.


 「학생회에서 왜 날 찾은 거지? 괴현상 대책 위원회 인원에 나는 포함되지 않을 텐데.」


 “기숙사 앞으로 잠깐 나오세여.”


 「저 말투는…」


 “벨리아?”


 “어서 나와여. 당신, 학생회 소속은 아니지만 소식을 들어버렸기 때문에 긴급 회의에 참석하라고 하던데여.”


 “뭣, 나를?”


 붉은머리 양갈래 소녀. 거기에, 뒤쪽에는 꼬리가 달렸다. 


 입고 있는 스모키한 색감의 데님바지는 옷을 입을 때마다 불쾌하게 돋아나올 꼬리를 감안하여 꼬리뼈 부근에 작게 구멍이 나 있을 것이다. 


 그런. 건방지게 생겼고. 실제로도 건방진. 그 소녀는 콧방귀를 뀌며,


 “흥. 착각하지 마세여. 당신을 학생회에서 특별 취급 하는건 아니니까, 같잖게 학생회에 기어오르지 말라구여.”


 누가봐도 틱틱대는 것처럼 새침한 태도로 그를 반겼다.


 이재형에게 있어 녀석이 기어오르는 건 놀라울 이유가 없었다.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 위원회 회의에 소집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어째서 굳이 내가 참석해야 하는데? 그 회의에 소식만 아는 정도의 사람은 필요 없을 텐데.”


 “헛소문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져. 다시 말하지만, 당신을 학생회에서 특별 취급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 마세여. 허접 검사 이재형.”


 오늘은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는 벨리아였다. 조금 눌러줄까. 하고 생각한다.


 “나도 조만간 입회 예정이거든?”


 “아직은 아니잖아여? 허접 주제에.”


 -파닥파닥파닥.


 일정한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채찍 같은 꼬리가 벨리아의 재밌는 점이자 열 받는 점이다. 인간과 거의 비슷한 계열이라, 그 꼬리 말고는 인간과 모든 점이 유사하다. 

 

 아마 1종 이종족이었나. 싶다. 인간과는 가장 가까울 것이다. 뱀파이어 혈통이라고 했었는지 뭔지. 


 이재형은 거기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 오래된 귀족들은 이미 몰락했고. 유전자는 너무 많이 희석되어 버렸다.


 -파닥파닥.


 여전히 꼬리는 획 획 공기를 가르지만 말이다.


 “간만에 쉬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쉴 틈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진데여? 중학생 시절 한창 보던 소설 속 아카데미 동아리 활동의 환상은 입학과 동시에 망가져 버렸다구여.”


 아카데미에 제대로 된 동아리 따위 없다는 걸 알고서 얻은 정신적 충격은 이재형 본인도 피차 마찬가지였다. 영화, 소설, 드라마, 만화, 연극 등등 모든 매체에서 아카데미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그저 판타지에 불과했다.


 이런 곳인 줄 누구는 알았을까. 이런 곳이라는 것을, 저 아래. 도시 사람들에게 발설하는 것 만으로도 이곳의 보안을 정면으로 어기는 셈이기에, 심지어 그런 '의지'가 아카데미에 모니터링 되는 것 만으로도. 


 개인의 존엄은 아주 위태로워 진다. 결국 환상은 환상일 뿐이었다.


 “판타지는 판타지로만 남는 게 건강에 좋아─”


 어찌 됐건, 이재형은 의아했지만 일단 방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문이 열리고, 얼굴들이 보인다.


한가민, 샤킬로나 살비에르, 김지현.


 나머지 인원들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조만간 입회할 학생회에 찍히면 정말 곤란하기에. 이재형은 적당한 선을 지키며 투덜대기로 했다.


 “야 살비에르. 그럼 1학년 600명 증발이 진짜라는 거야? 넌 그걸 믿냐? 단순히 학생회장 혼자서 확인했다고 말했을 뿐이잖아.”


 키 작은 살비에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서있던 김지현은 선배로서 주의를 줬다.


 “입 조심하거라. 이재형. 이 사안은 다른 학생들에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김지현의 일갈에, 기다렸다는 듯 한가민이 맞장구친다.


 “지현이 말에 동의해. 아직 아카데미에 남은 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하면 97퍼센트는 이 사건에 대해 모르거든. 이 소식이 루머가 되어 퍼지면 얼마나 끔찍한 비효율이 재생산될지…”


 그는 늘 손에 자료를 들고 보고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숫자에 익숙한 인간이다. 


 선배라고는 해도 이재형은 그가 현장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강하지는 않은 대신 머리가 좋아 학생회의 두뇌 역할을 한다나 뭐라나.


 이재형은 좋아서 17세 인간 남성의 몸으로 강해질 수 있는 한계까지 강해진 게 아니었다. 


 특출날 정도의 지능을 갖추지 못하여 화이트 요원은 적합성이 없었다.


 마법 적성이 꽝이었기에 블루 요원도 불가능해 힘을 키웠다. 


 블랙 요원을 하기엔, 그는 너무 눈에 띌 정도로 힘을 주체하지 못했다.


 다른 특이 재능을 발현하지 못했기에 순수 무력으로 가치를 증명했고, 제식 소총부터 빈 요구르트 깡통까지. 


 레드 요원으로서 그는 안 다뤄본 무기가 거의 없었다.


 마법 적합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일찍이 블루 요원에 포지셔닝되어 학생회 가입 할당량을 먼저 취할 수 있었던 벨리아는, 이런 그의 상황은 알 턱이 없이 그를 놀리고 있었다. 


 이재형은 조금 이를 악물고 긁힌 기분을 드러낸다.


 “으디로 그는데…? 벨리아.”


앞서가던 벨리아는 뒤를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빨간 양갈래 머리 하나가 재형의 코에 스친다.


 “컨퍼런스 홀 309호 회의실로 가여. 아 진짜, 왜 그렇게 질척이는 거에여? 잠자코 따라오기나 하라구여.”


 -파닥파닥파닥


 저 날뛰는 꼬리. 한번쯤 움켜잡고 싶다고 생각한 학생이 그 뿐만은 아닐 것이다.


 “너… 학생회 들어갔다고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냐? 적 만들지 않는 게 좋을 텐데?”


 “흥. 이재형 당신은 입회해 봐야 제 적수도 안 될걸여? 어딜 허접 주제에 기어오르나여?”


 “이해해주거라 괴물 꼬마야. 벨리아는 지금 바깥에서 얻은 정신오염을 치료 중이란다. 평소보다 열 단계는 더 새침하지.”


 재형은 곧바로 납득했다. 녀석의 성격이 약간 과격해진 건─과격해졌다, 라기보다는 겁을 상실한 건─그 때문이었나.


 “그렇군요. 케이스 번호가 M인가로 시작하는 그거죠? 원래 저러진 않는데 이상하다 했어요.”


 “…흥. 지현 선배도 조용히 따라오기나 해여. 저런 허접이랑 얼굴 보고 회의나 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힘빠진다구여.”


 -파닥파닥파닥파닥파닥.


 “꼬리좀 그만 흔드렴 벨리아. 정신 사나워 죽겠구나.”


 “아. 넵.”


 -텁.


 벨리아는 수줍게 자신의 꼬리를 잡고 진정시켰다. 꼬리 끝이 아직도 조금씩 파닥거린다. 결국,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이스 샷입니다. 선배.」라고, 생각하는 중, 살비에르는 걱정스런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크흠. 벨리아. 우린. 아직. 목격자를. 전부. 가려내지. 못했다. …어떻게. 할. 거냐. 회의. 곧. 시작이다.”


 이에 한가민은 가르마를 넘기며 가볍게 맞장구친다.


 “맞아. 지금 목격자가 추산 20명은 되는 모양인데, 아직도 두 명 못 찾았잖아.”


 “아 몰라여. 그건 그렇고 지금 시간에 교수님들이고 학생회 소속이고 뭐고 다 모이는 게 말이 되는 거에여? 자정이 다 되어 간다구여!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쉴 틈이라고는 1분도 허용이 안 되나여?”


 또 꼬리가 움직인다. 휙 휙 공기를 가르며.


 「적당히 나대는 게 좋을걸 벨리아. 네가 저 선배의 진정한 차가움을 몰라서 그래.」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이미 김지현은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김지현은 등을 굽혀 벨리아와 똑바로 시선을 맞추곤, 소름 끼치는 미소를 드리웠다. 벨리아가 약간 주춤하며 한 걸음 뒷걸음친다.


 “어. 뭐, 뭔데여?”


 “듣고 놀라지 말거라. 지금은 붉은색 경보란다. 학교의 마법 보안이 직접 공격받았어.”


 아카데미의 보안 수준을 뚫는 것은 현존 최상위 마법사, 그러니까 열두 계 위의 마법사 중 하나가 와도 꽤 오래 걸릴 일이다. 이토록 한순간에 뚫리는 건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말도 안 돼. 아카데미는 역사상 최고의 보안이 아니었던 거에여? 그냥 1학년 학생들이 실종 당했다고만 들었는데여…”


 “벨리아. 네. 말. 대로. 최고의. 보안은. 맞다. 그러나. 그게. 뚫렸다는 게. 문제였다.”


이재형도, 그의 말에 동요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굳게 믿던 것이 방금 그의 발언으로 뭉그러졌으니.


 “뭐, 제대로된 증거는 있겠지? 응?”


 “그렇다 재형. 한가민. 선배가. 자료를. 가지고. 있다.”


 “선배, 그럼… 자료라도 좀 보여주세요.”


 “응. 여기. 확인된 사안이야. 교내에 남아있던 유지보안부 8인 중 부장 포함 6인이 인정했어. 아까 19시 42분 경 퀀텀 팅커로 코드 4991 상황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현재 상황과 대조해 본 결과 외부에서 공격했을 확률은…”


 “닥쳐였! 안그래도 머리 깨질 것 같은데 가민 선배의 토 나오는 숫자 얘기는 이따가 회의실에서나 하라구여!”


 “벨리아. 작년에 내 도움으로 수리물리학이랑 마술식작성법 낙제를 면한 거 잊지 않았겠지?”


 “하, 잘나셨어여. 현장에서 전혀 쓸모없는 물몸 허접 한가민씨.”


 한가민은 이제 봐주지 않을 예정이다. 정신오염을 감안 하더라도 선배에게 선을 넘었다는 표정이다. 그의 손목에 핏줄이 섰다. 미안하지만, 말싸움이라면 벨리아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


 “아카데미에 나약한 애들은 쓸모 없는거. 알지? 몸도 머리도 포함이라고. 그거. 왜 나랑 재형이랑 얘기하는데 네가 발작하는 거야? 뭐 잘못 먹었어?”


 현장 경험이 1학년 급으로 떨어지는데 뻔뻔히 학생회 임원급인 주제에 나한테 ‘나약한 애들은 쓸모가 없다’고여? 웃기지 마세여!

─열 배 정도 새침 농도가 증가한 지금의 벨리아라면 이런 생각도 할법하다.


 “누가 누구한테… 당신은 얼마나 잘했다구여? 자료나 발표하며 꿀이나 빠는 주제에. 항상 발로 뛰는건 난데여? 허.접. 한가민 선배?”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네.」


 “뭐? 아무리 오염 영향이라지만 이 이상 덤비면 나도 봐주는거 없다? 콩알만 한 녀석이 겁도 없어 아주?”


 한가민은 끼고 있던 뿔테안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안경. 그리고 실눈. 봉인 해제 장치가 두 개나 있다. 


 1차 봉인 해제가 코앞이었다.


 옅은 미소가 그의 입술에 드러났다.


 “흥. 하나도 안 쫄리거든여?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시끄럽다. 너. 벨리아.”


 “닥쳐여 살비에르. 간장공장 공장장이나 연습하세여!”


 “그건… 상처. 슬프다.”


 “자. 모두 그만하면 됐지 않니? 컨퍼런스 홀도 곧이란다. 가민이랑 살비에르는 목격자를 계속 찾아주길 바라마.”


 “맡겨줘. 10분 내로 찾아올 테니까. 따라와 난쟁이 학생.”


 “잠깐. 선배. 준비가. 아직.”


 “10분 내로 안 찾으면 네 눈깔을 총알로 쓸 테니까.”


 한가민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비에르의 어깨를 잡고 뛰쳐나갔다. 살비에르는 옷깃을 휘날리며 끌려가 점점 멀어져 갔다.


 “벨리아는 특히 정신 안정제를 한 번 더 맞는 게 어떠니? 여기 있단다.”


 벨리아는 아직도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으… 그 기분 나쁜 주사를 더 맞으라구여? 말 같지도 않아여 정말. 의사 말대로 하루 세 번을 다 맞다간 뇌가 못 버틴다구여. 이틀에 한 번이면 족한 주사를 무슨. 그건 그렇고 선배가 그걸 왜 가지고 있어요?”


 “왜?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니?”


 “하… 됐어요. 두통약이나 한 번 더 먹을게여.”


 -으음, 꼴깍.


 그렇게 우당탕탕 좌충우돌로. 살비에르와 한가민은 목격자를 수색하러 갔고, 벨리아와 김지현. 그리고 이재형은 컨퍼런스 홀까지 전진했다.


 몇 분 뒤면 자정의 시간. 회의가 시작될 것이다.


이종족 : 인간과의 생물학적 유사도를 따져 1, 2, 3종 이종족으로 분류하고 서로 다르게 취급한다. 1, 2종 이종족만이 인류 연합에 속한 국가에 체류 또는 거주할 수 있다. 3종 이종족은 요수로 분류되어 요수 연합령에서 인류 연합령으로 넘어오는 것을 인류 측에서 막아서고 있다. 물론, 1, 2종 이종족이 섞여 들어온 지가 오래되어 인류도 더 이상 이전의 인류라고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열두 계 위의 마법사 : 열두 계 위의 마법사란, 말 그대로 계(system) 위에서 마치 신처럼 모든 것을 관조하며 조작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마력자 및 매개마력자 운용력을 가진 마법 사용자를 말한다. 그러한 마법사 열둘을 가리켜 「열두 계 위의 마법사」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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