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


 컨퍼런스 홀의 회의실로 들어가자 꽤 많은 인원이 있었다. 대략 마흔 명 정도였다. 


 교내에 남아있는 교수진들 대부분이 참석해 있다. 조교를 한 명씩 데리고 있는 쪽이다. 


 아마 3학년 화이트 요원들로 보인다. 


 또, 학생회와 각 부서의 부장급 인원─4학년 졸업반 학생들─이 구석 자리에 모여있었다.


 반면, 이재형처럼 목격자 또는 소식을 알게 된 평범한 학생들도 몇 명 정도 보였다.


 얼마간 얼떨떨하게 있는 동안, 수많은 인원들이 몰려들었고. 그 거대해 보이는 홀은 테이블과 의자가 부족한 까닭에 금세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대사들이 회의실 홀 곳곳에서 들려왔다. 특히 교수 쪽 상황이 그래 보인다.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것이 역력히 눈에 띈다.


-유지보안부에서 확인된 사안인가?

-카일 교수는 뭘 하고 있다는 게야? 아직도 잡무나 보고 있는 거냐? 놈이 비상상황 총 책임자 아니었나?

-황재정 학생회장이 대리로 출석했다고 합니다. 카일 교수는 오고 있다고 하는데…

-썩 꺼지라 그래! 학생이 낄만한 자리가 아니잖냐! 학생은 그냥 잠자코 듣기나 하라고 해!

-여기 괴현상에 대한 긴급 보고서입니다.

-소스는?

-마법부입니다. 아직 근본적인 원인은 찾지 못했다는 것 같습니다.

-씨부랄, 무능한 마법부 놈들 같으니…


 한편,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정서준 교수님은 10분 후 도착이시랍니다.

-그리고 10분도 엄연한 지각이지.

-아그네스 교수님처럼 항상 시계를 체크하는 부류는 아니시니까요.

-아그네스 와츠 폰 메리골드 교수님으로 부르기로 했을 텐데? 

-네. 아그네스 와츠 폰 메리골드 교수님.

-한 번 더 틀리면 다음부턴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만들어 줄 테니까. 주의하도록 해.


 콩트인지 뭔지 모를 대사들도 들린다.


-왜 이 늦은 밤에 모인 거죠? 적색경보 정도의 대사건이려나? 정말이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고 참석한 건가? 적색경보 맞네.

-네네. 개띨구 빡대가리라 죄송합니다아.

-자네는 말버릇이 그러고도 조교 맞나?

-몰라요. 당신이 끌고 왔잖아요. 미티 교수.

-하여간 자네 싸가지 하나는 인정협회에서도 오지게 인정하는 바였었지.

-어쩔티비~

-크윽… 질수 없네. 저쩔에어컨!

-유치하긴. 진짜 개찐따같아요 교수님.

-자네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나.


 풍자를 위한 만담도 빠지지 않았다.


-교장놈은 아직도 초월계에 있대?

-몰라. 소식이 없어. 그나저나 어서 행정 쪽 인원들이 와야 회의가 시작될 텐데.

-그러게나 말이다. 회의는 대체 언제 시작이야? 자정은 이미 넘은 것 같은데.

-총무부는 그냥 형식상으로 끌려 왔겠네. 이 건이랑 관련도 없는데. 부장만 불쌍하군.

-뭐가 불쌍한 부장이냐. 1학년 과자파티 예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있어.

-4학년이? 1학년 거를? 진짜 개 쓰레기였네. 총무부에게 실망이다. 우우.


 이제, 중요한 이야기다.


-목격자보단 그래도 학생회 쪽 인원이 더 많네.

-목격자는 애초에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어. 아마 이제 더 안 올걸?

-학생회 소문으로 두 명을 못 찾았다고 하던데?


 두 명. 거기에 얼떨결에 같이 소식을 들은 이재형과 서운명, 그리고 유하나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괴현상 대책 위원회 구성원에 소식을 알 뿐인 일반 학생은 포함되지 않는다. 출석만 권유할 뿐. 직접 목격한 경우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미 이재형은 회장에 와 있었으니 그 못 찾은 인원에 포함될 리가 없다. 둘러본 결과, 서운명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1학년들-즉 목격자들-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 명은 정말로 못 찾았다는 것이다.


 유하나가 출석하지 않았다. 이재형과 유하나는 같은 입장이었으므로 아까 동행했어야 했다. 왜 그녀는 출석하지 않은 걸까. 이건 중요한 문제다. 이재형은 이 문제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 혹시 하나 못 보셨나요?”


 “아까 봤단다.”


 “왜 안 데려오신 거죠?”


 “여기에 그 아이는 필요 없단다. 발 닦고 편히 잠이나 자라고 하렴.”


 “…”


 「그런 건가. 약자의 철저한 배제. 그래. 그것이 '아카데미'가 지향하는 정의에 가까우니까.」


 그러나, 예상외의 인물이 한술 더 떠 시비를 걸어왔다. 


 “맞아여. 걔는 왜 우리 아카데미에 있는 건지 궁금하다니까여?”


 ─뭐?


 “벨리아. 심한 말은 삼가려무나. 천박하구나.”


 “그치만… 원래부터 친했던 이재형 빼면 착해 빠진 아리랑 우둔한 살비에르 정도만 하나를 상대하지, 이 학교에서 그 애를 진심으로 같은 학생이라고 여기는 애가 어디 있겠나여?”


 「저 자식…」


 이재형의 차가운 주먹에 꽉 하고 혈관이 돋아난다. 그의 어두운 시선은 허리춤에 찬 검으로 향하기 직전이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 하지 마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에 뭔가 씌인 것을 보곤 이재형은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건 정신 계열 오염이잖아. 얼마나 방치를 해뒀는지 눈동자에서까지 드러나다니. 안정제를 한 번도 안 맞은 거냐?」


 말 안 듣는 것도 정도가 있지. 재형은 이미 의사 말 안 들었다가 생고생만 한 동료들을 수없이 봐왔다. 재형은 이제 되려 벨리아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저런 중증은 약으로 치료해야─」


-푸욱.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벨리아의 피부에 뭔가가 꽂히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이재형은 조금 커진 눈으로 벨리아가 있었던 왼편을 바라본다. 바라본 그 장면에는 김지현이 오른팔을 옆으로 휘둘러 벨리아의 팔오금에 어떤 주사기를 쑤셔 넣고 있었다. 약이 벨리아의 몸속으로 주입되고, 즉각 약발이 돌았다.


 “앗, 으우욱!”


 벨리아의 다리가 풀리고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났다. 이윽고 떨리는 목소리가 가냘프게 새어나왔다.


 “흐… 크으윽… 앗……”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만다. 그 상태로 벨리아는 어깨와 다리를 베베 꼰다. 소리만 들어선 끈적한 교성으로 오해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고개는 천장을 향했고, 눈동자가 위로 젖혀진다. 갑작스런 충격에 눈꺼풀과 미간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안정제를 주사했단다. 좀 어떠니?”


 벨리아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해선 안간힘을 써 정신을 붙들고 있다. 입을 열어 간신히 말을 뱉어낸다.


 “오… 오오옥? 하… 언니이이… 기분이 이샹해여어. 아아… 왠지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 가타여어… 엇, 으윽. 긋?!”


 벨리아의 반쯤 튀어나온 핑크색 혀 끝에 투명한 액체가 모여 툭 툭 떨어진다. 눈동자는 헤벌쭉하여 완전히 뿅 가버린 꼴이 되어 있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으읏, 뛰어욧… 하그읏…”


 “재형이에게 아까의 실언을 사과한다면 아마 처치해 줄 거란다.”


 “으웃, 내가 미아내에애… 히에읏… 앗?!  미, 안해…”


 이재형은, 어딜 보고 사과하는 거냐. 라고 생각한다. 벨리아는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일어서려 할 때마다 다리가 어긋나고 중심이 흔들린다. 


 이에 따라, 고개가 이리저리 어긋나 중심을 못 찾을 때마다 트윈테일로 묶어놨던 빨간 머리칼이 찰랑인다. 여기에 꼬리마저 이성을 잃고 사방팔방으로 날뛰었다. 발정 난 고양이 같은 꼴이다. 


 누군가는 흥분하고 누군가는 천박하다고 여길 것이다.


 “후훗, 사과는 일이 끝나고 하려무나. 그때 해도 늦지 않으니까.”


 벨리아는 지현 선배의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장난감 코너에서 생 떼쓰는 초등학생마냥 절박해 보인다.


 “허윽… 지현 언니이 죄송해요오… 지, 지금까지 놀렸던 거… 전부 사과할 테니까…앗?! 제발료오오옷-?!”


 한 번의 블랙아웃이 그녀를 덮치며 다시 한번, 소녀가 무너져 내린다. 그다음 또 한 번의 질척한 신음이 시작될 무렵. 또박또박 올곧은 목소리와 또각또각 반듯한 하이힐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 벨리아! 재형이도 안녕? 그리고 언니도 있었구나.”


 아리. 2학년 B반의 반장이다. 아마 학생회 소속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억지로 온 모양이다. 아리는 이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하곤 중재에 나섰다.


 “무슨 소란이야? 싸우는 것 같던데. 그리고 어… 벨리아 쟤 상태가 왜 저래요? 좀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고 있네요… 하핫.”


 “안정제 효과란다.”


 아카데미의 어떤 남자도 감히 연심을 품을 수 없을 정도로 올곧고 빛나는. 고결함과 아름다움의 꼭대기에 있는 그녀. 이재형은 아리의 하늘빛 머릿결을 동경해 왔다. 


 그 머릿결은 낮엔 먼지 하나 없는 청정한 대기처럼 푸른 꿈빛이며, 저녁 시간대가 되면 누구보다 상냥한 포근포근 오렌지이고, 밤에는 차분한 위로를 건네는 우주처럼 다정한 흑색이다. 매 순간순간 그녀 주위에서는 생기가 맴돈다.


 “재형아, 오랜만이네. 이번 현장은 어땠어?”


 현장이 어땠냐고 묻는 것은 ‘아카데미’의 학생에겐 형식적인 인사다. 어차피 현장의 어떤 일도 자세한 언급을 하는 것은 금기를 어기는 행위였고, 그것을 모든 학생들이 알고 있었으니. 이런 질문이 학생끼리의 형식적인 인사 문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항상 그렇지 뭐. 아슬아슬했어.”


 “다 다음번엔 같이 파티할래? 나랑 제대로 호흡 맞춰주는 애가 너밖에 없어. 부탁이야.”


 그는 마음을 숨기려, ‘동료’ 연기를 한다. 늘 잘 해오던 것이 연기였으니까. 과하지 않게 함께할 구실을 만든다.


 “좋아. 그럼 다음 정기휴가땐…”


 그러나, 아리는 이재형을 그저 ‘동료’로 생각하는지, 말을 돌린다.


 “그건 그렇고 벨리아 쟤 무슨 일이야? 저렇게 망가진 건 처음 보는데. 뭐랄까 좀… 야해.”


 “…시원한 사이다 한 캔의 결과야.”


 헤실헤실 그저 기분이 좋은 벨리아는 아리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다. 이 이상 이재형이 직접 복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원래부터 선 넘던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영 기분이 이상하긴 하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최소한의 선을 지킬 줄 알던 녀석이 갑자기 그러다니.」─라고 생각한다. 


 저런 꼴로 학생회 모두가 있는 곳에서 창피를 당한다니. 쌤통이었다.


 지금도 몇몇 시선이 못 본 척 흘깃하고. 저쪽을 보고 지나간다. 재형은 그 시선을 느끼는 게 퍽 즐거웠다. 벨리아는 그저 바닥에 동그라져 있는 중이었다.


 “아하하, 아리야아~ 나 지금 기부니 너무 죠아아…”


마치, 그녀가 뱉은 문장의 마지막엔 하트가 올 것만 같았다.


 “음… 언니 대체 무슨 약을 놓으신 거예요?”


 “안정제란다. 농도를 열 배 정도 높여 두었지만, 성분은 같으니 똑같은 용어로 부른 것뿐이지.”


 “헉, 그거 안 그래도 마약성 강하다고 조심하라던 건데요.”


 “약 개조에 대한 건은 비밀로 부치면 좋겠구나.”


 “물론이죠. 언니. 언제 저도 좋은 포션 부탁드려요. 아, 저런 거라면 사양입니다.”


 “정색도 무르구나 너는.”


 “이렇게 생긴 걸 어째요. 선배가 날카로운 인상이라니까요? 전 둥글어서 화내도 주변에서 진심인지 몰라요, 정말. 이럴 땐 언니가 부럽다구요.”


 한편 벨리아는, 아직도 약발이 떨어지지 않은 듯했다.


 -흐히히. 기분져아…

 -야. 벨리아. 너 나한테 사과할 거 있지 않았냐? 아까 발언, 사회적으로 매장되어도 이상할 거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헤헤헤... 에헤헤…♡

 -미치겠네. 이거 약발 언제까지 가?

 -최소한 회의 시작 전까진 계속 저 상태일 예정이란다.  

 -누님, 그러다가 진짜 교장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요?  

 -두려울 것 없지.

 -진짜 막 나가는 거 아니에요? 회장 형이 뒤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요. 허가 안 받고 하는 약물 개조는 좀 위험한 것 같은데…

-후후후, 꽤 돈 되는 포션도 있는데. 관심 있니?

-누님 포션 사업에 절 끌어들이는 거라면 전 빠질렵니다.


몇 분간 잡담이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 회의실 홀에 뭔가 조짐이 보였다.


-응? 재형아 저기 봐 저기. 스크린 켜졌네.

-이제 뭔가 하려나 보네.

-치지지직.

-끄유웅.

-지지직 지지이직.

-아, 재형아 나 금방 어디 좀 다녀올게.


 마이크 조정음과 전자 펄스의 교합음이 들리고 거대 스크린에 불빛이 들어왔다. 뭔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모두는 본능적으로 집중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모두 정숙하세요.”


 “…그래서, 이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는 목격자들과 학생회 인원, 각 부처 부장들, 학생회 담당 교수진들끼리 괴현상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침묵이 회의실을 뒤덮고, 잠깐의 그 조용을 느끼던 진행자는 이내 말을 잇는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적색경보 시 대표는 카일 트레이페 교수님이 맡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카일 교수님. 회의를 시작해 주십시오.”


 “…”


 카일 교수는 마이크를 받아들곤, 작게 헛기침을 하다가. 침묵한다. 그가 단상에 서 모여있는 학생들을 향하여 눈빛을 보낸다. 그렇게 계속 있는다. 묵언의 순간이 이어져 장면이 되고, 묵언의 장면이 이어져 회의실이 통째로 무음에 가라앉는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있을 것처럼 꼿꼿이 서 정적을 지켜낸다. 


 군중은 침묵이 길어지자 웅성대기 시작한다. 소란은 멈출 줄 모르고 번졌다. 웅성거림은 잦아들 줄을 몰랐다. 그 두런거림이 지나치게 달아올라 불쾌하게 느껴지기 직전, 그는 아주 어렵게 입을 뗐다. 


 “이 자리에 모이신 학생회 및 각 부서 부장 여러분께. 다소 피곤한 소식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그러자, 웅성웅성하던 회장이 한순간에 고요했다.


 “아직 괴현상을 파악하지 못했고, 확인하는 중입니다. 그런 고로 매뉴얼 대로 행동합니다. 부서 제도를 해체하고 팀 단위 조직화에 들어가겠습니다.”




† 3 †


형식적인 관례들을 진행하고 있는 도중, 키가 작은 장발, 그리고 실눈과 안경이 돋보이는 두 남자는 1학년으로 보이는 어리숙한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하나를 데려왔다. 


 목격자로 보이는 그 1학년 둘은 어리버리한 기색을 내보이며 적절한 자리를 찾아 기어들어 갔다. 이미 의자는 없었기에 바닥에 앉는다.


 그렇게 지루한 형식적 절차가 끝이 나고, 자정이 사십 분 쯤 지나서야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교수진들과 학생회 임원진, 각 부서의 부장들의 열띤 토론이 회장을 에워쌌다. 수많은 의견들이 나와 서로가 서로를 논리의 창으로 찌르는 광경이었다. 물론. 처음에나 그랬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괴현상의 원인에 관한 추측은 엉뚱한 의견들로 메워진다.


 공간 중첩 시스템에 충돌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실종된 학생들은 따라서 마탑으로 송환되었을 것이고, 안전할 것이다. 하는 낙관론부터.


 어째서인지 이계의 균열이 생겨나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혹은 바깥 차원에 존재하는 세계의 관리자가 아카데미 마법 보안을 뚫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학생실종사건과 결계 고장이 동시에 일어났다. 라는둥의 터무니없는 음모론까지.


 각 부처와 교수팀에서는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았지만, 실속있는 의견은 없었다. 형식적이고 뭔가 있는 척하는 의견뿐이었으므로 회의에 큰 진전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금세 끝나는 절차가 있었다.


 팀 단위 조직화에서 각자 어떤 팀에 소속될지는 정해져 있었으므로, 그에 대해서는 신속히 처리됐다. 


 남은 것은─카일 교수에 따르면 내일 비상 조회(朝會)에서 할─역할 분배였다. 이것은 원래 비상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이 있었기에 빠르게 끝낼 수 있던 절차였다.


 카일 교수는 모든 일에 대해 거의 혼자서 빠르게 주도했다.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그 덕에 아침까지 계속될 뻔했던 이 의미 없는 회의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카일 교수는 평소엔 과묵하지만, 수업에서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에게 지금의 회의는 '수업'일 것이다.


 그리고 몇 개의 확인 절차가 끝나고 회의가 마무리될 시간인 새벽 세 시 반의 지금.


 “그나저나, 회의를 마무리할 결론을 짓는 데 진전이 없는 것 같은데, 질문 하나 할까요? 여러분, 혹시 1학년 신입생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회장의 분위기는 쌀쌀했다. 침묵. 누구도 단상 위에 홀로 선 카일 트레이페 교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분위기상으로 그럴 수 없었다. 단상 위의 그는 회장 끝에서 끝으로 유유히 걸어가며,


 “우리, 올챙이 적 시절 정도는 떠올릴 수 있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 육백 명이 실종된 상황이라고 했었지요. 전체 1학년 학생 수는 천이 조금 넘고요.”


 관중들은 정적이 계속이다.


 “수백만이 넘는 경쟁에서 거르고 걸러 입학한 아이들입니다. 일반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나가는 진도의 네 배 수준은 어렵지 않게 따라오는 총명한 친구들입니다.”


 꿀꺽─ 침을 삼키며 계속한다.


 “현장에서의 괴로운 전투도 그중 일부는 버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끝나자 능글맞게 웃고 있던 표정이 싹 가셨다.


 “학생회에 제언한다. 이따위로 숨겨서, 얻는 게 뭐지? 괴현상 대책 위원회. 너희들도. 왜 이 지경까지 와서 1학년 학생들에게 예상되는 사건의 전말이며 원인이며, 하물며 피해 상황과 규모가 어떤지 조차 공개하지 않았어? 하다못해 서버상의 게시판에라도 올릴 수 있던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심지어 카일 교수는 학생회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교수. 학생 입장에서 쉽게 반론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나 좋으니 대답 좀 해 보시라고. 응?”


 재촉해 보지만, 절벽에 대고 소리지르는 꼴이었다. 메아리만 돌아왔다. 이런 얼어붙은 공기가 돼버린 것이 아니꼬웠는지, 그는 뻣뻣한 자세를 잡다가 다시 그 능글맞은 표정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말입니다. 1학년 학생들의 상황이 어떤지 알고 계십니까?”


「몰라. 그런 거.」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재형으로서는 1학년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학생인데, 심지어 신입생 첫 파티─시작의 파티─도 결성 전이라 그들과 접촉한 2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몇 없다. 여자를 꾀려던 몇몇 바보들이 다가가는 걸 보긴 했지만, 학생주임에 의해 일제히 거절당했다.


 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차갑고 굳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단상 위의 한 명만이 자답했다. 답답한지 이마에 손을 대각선으로 갖다 대며,


 “하하, 어떻긴 어때. 난리가 났겠지. 과반수의 인원이 실종됐어. 목격자를 찾아낸다고 해서. 그걸 애들이 모를까? 우리 이 정도로 지능이 떨어지는 인간들이었습니까?”


 한숨을 푹 내쉰 뒤에,


 “학생회 여러분은 지금까지 회의 기록이랑 자료는 준비해 두었습니까?”


 한가민이 뻘쭘하게 손을 들었다. 살짝 떨리는 손끝을 감추며 종종걸음으로 단상 위에 올라섰다.


 “어, 그게. 실종 시간은 17시 16분 경, 대조 결과가 확인된 건 17시 42분 경이고…”


 “지금 당장 그 내용 학생 전원에게 방송해.”


 “네…? 그렇지만 그건 제 권한이…”


 “경우에 따라선 학생회를 일시 해체할 권한도 내게 있지.”


 “…읏.”


 “그러니까 지금까지 회의에서 있었던 일들 전부. 방송해. 볼륨은 최대로 키워서. 아카데미 전체에.”


 그는 뭔가 떠올린 듯이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아, 송출 기계가 여기 없다고?”


 “그 문제가 아-”


 카일 교수는 그의 말을 가볍게 끊어내고, 흑단발의 한 여학생을 가리켰다.


 “거기 너. 방송실로 가서 준비해 둬. 준비가 끝나면 다시 돌아와 앉아.”


 구석에 콕 박혀있던 서운명이 그 명령을 듣고는 도망치듯 회장을 뛰쳐나갔다. 한가민은 안 그래도 실눈이던 눈을 질끈 감고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경직된 구조의 학생회와 교내 부처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보안에 치중한 나머지 알려야 할 정보조차 숨기려 들어 자신들이 독점해 버린다. 


 그렇기에 학생회 소속이냐 아니냐가 학생들 사이에서는 마치 일종의 계급장이나 완장처럼, 권력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었다. 


 학생회의 본분은 정보의 독점이 아닌 관리라는 것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이걸 짚어 꾸짖은 카일 교수에게 교내 각 부서 부장들 중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1학년을 과소평가한 학생회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결국, 한가민은 회의에서 있었던 모든 내용을 일반 학생들과 1학년에게 방송했다. 문서에 적힌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일. 아니 지금 당장 1학년 아카데미 커뮤니티는 난리가 나 있겠지. 어쩌면 이미 난장판이 돼 있었지만,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당히 압박감 있게 진행된 회의는 막을 내렸다. 카일 교수는 그의 마지막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자면. 교내 일정은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될 예정이니 일상으로 돌아가십시오. 부서에 할당된 일이 팀 단위로 새로 할당될 뿐이니 크게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일단 너무 겁먹지 말고 평소 하던 일을 하세요. 문제는 저희 교수진들이 책임지고 찾아내겠습니다. 학생 여러분의 보호는 우리들의 몫이니까. 회의 마칩니다. 가시던 길 가세요. 이제. 내일 아침에 봅시다. 모두 좋은 밤 되시길.”


 괴현상대책위원회가 해체되고, 참석한 인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점차 흩어졌다. 궁시렁대던 분위기도 가시고 어느덧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되지 않은 애매함이 남아있었다. 뭔가, 끊긴 느낌이었다.


 이재형은「그게 뭐였지?」하고 생각한다. 


 답을 생각해낸 이재형은 곧바로 누군가를 찾아 컨퍼런스 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309호에서 나와 모든 복도를 뛰어다닌다. 모든 문들을 열어젓힌다.


 그렇지만, 동이 트기까지 찾아다니던 그 누군가는 찾을 수 없었다. 


 무릎을 짚고 한숨을 내쉬며 체념할 수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마주쳤던 아리의 행방이 묘연했다. 기억을 짚어본 결과, 회의 내내 아리의 목소리도, 모습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서운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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