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입학 후 처음 도전하는 위험도 권운(卷雲)급의 현장 임무. 이제는 2학년이 된 이재형에게 있어 이번 임무도 역시 격렬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아직, 스승에게 받은 그 검을 빼 들 정도는 아니었으나 퍽 진 빠지는 임무인 건 분명했다. 


 그는 임무를 마치고 난 뒤 현장 근처에서 조우한 화이트 요원─공부만 한 샌님들을 뜻한다─에게 받은 보고서 파일을 오른손에 꼭 쥐고, 붕대 투성이의 반대쪽 어깨와 팔을 창문에 걸친 채 하체 전체에 고정장치가 잔뜩 채워진 조금 우스운 꼴로 콕핏에 앉아 있다.


 이 작은 시퍼런 흰색의 사각형에서 창문이란, 은밀추진체 내부의 작은 유리로 덧댄 부분을 말한다. 이 추진체는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어 기체 내부는 완전 무소음에, 하늘 속에서는 어떤 것에도 탐지되지 않고, 물리적으로 보는 것도 불가능한 마법의 물건이다. 


 소름 끼칠 정도로 적막한 기체 내부, 그 속에서 엄청난 가속도를 견디며 이를 악무는 이재형과는 달리 마탑 셀레스티아로 향하는 하늘길의 공기는 한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


 그는 자세를 비튼다. 검집이 부딪히는 가벼운 마찰음, 거기에 심호흡을 하는 숨소리가 무음 속에 울려퍼진다. 이재형은 이번 임무를 되새기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진이 쫙 빠지게 생긴 놈들. 새로 보고할 미확인 개체. 갑작스레 등장한 신병기의 위력에 공포에 질린 파티원들의 표정. 적군의 의미심장한 통화기록. 연결되는 관계도와 공화국이 숨겨왔던 비밀들. 현장에서 간신히 채취했던 샘플의 폭발─


 그만하면 됐다.


 그런 피곤한 것들을 되새길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이재형은 적당히 빠져나왔고 파티원들도 모두 살아남아서 각자 복귀 프로토콜을 수행하거나 남은 자유시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다시 아카데미로 복귀… 인가.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통칭 '아카데미', 실제로는 국가정보원 산하의 첩보기관 겸 기밀부대의 양성 기관. 그 정식 명칭은 최고 기밀이다. 따라서 ‘아카데미’의 학생에게도 그 명칭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찌 됐건, 이제 현장 시즌─즉 필드 시즌─이 끝나고 스쿨 시즌에 돌입한다. 시즌 마지막 임무가 끝나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갑작스레 죽을 걱정 없이 완벽한 삶을 즐길 수 있으리라. 완전히 그렇지도 않지만, 전장에서의 삶보다는 나을 것이기에.


 “후우……”


 이재형은 한숨을 작게 내쉬곤 보고서를 휘리릭, 하고 넘기며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중력의 방향이 바뀌는 느낌이 들며, 그의 적갈색 동공에 씌워진 HUD 렌즈 위로 주황색 네온사인 빛의 『잠시 후 도착』이라는 딱딱한 글씨체의 팝업 메시지가 작게 떠오른다. 


 「슬슬 도착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검은색 방호용 실드를 허리에 맨 카트리지에서 분리하자, 그의 검은색 판갑 코트가 원래의 붉은 색으로 돌아온다. 왜 붉은 색일까. 그건 그가 레드 요원─요컨대 무력지원에 특화된 요원─이기 때문이다. 마력석으로 된 그 방호용 실드 배터리는 거의 빛을 잃었다. 포화 사출 캐스팅이나 어펜디드 재킷을 사용하는 저격 총 두어 발쯤을 더 맞는다면 아마 완전히 깨졌을지도 모른다.


 마탑 착륙층에 도킹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온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언제나 그렇듯 지문 인증을 완료한다.


─인증 완료.

─기체가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문이 열립니다. 

─보안 절차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마탑-추진체 중개로에서 무력체계 동기화를 비활성화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탑과 이어지는 중개로 복도에서 이재형은 작은 알약을 삼킨다. 그의 눈앞에 작은 마법진이 몇 개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그의 바지 허리춤에 달린 기계가 꺼진다.


『무력체계 동기화 비활성 상태』


─수고하셨습니다. 복귀를 환영합니다. 

─2학년 B반 이재형 학생의 복귀 프로토콜을 종결합니다.

─임무 보고서를 제출하고 확인서를 받아 가까운 시일 내에 학생회실에 제출하십시오.


 ‘제 2 IHTM 착륙장’ 이라고 쓰인 안내판 아래로는「마탑 셀레스티아 2399층」이라고 좀 더 작은 글자가 새겨 있었다. 잠깐 동안 그는 복도 끝의 창문으로 다가가 시선을 내려 아래를 비껴다 본다. 아찔할 정도의 높이다. 


 드넓은 도시의 수많은 건물들이 모자이크처럼 수놓아져 한 폭의 건조한 시랑(市廊)의 도면을 그린다. 몇 초 정도의 여유를 만끽한 그는 유유히 복도에서 나와 마탑 위의 부유섬에 위치한 ‘아카데미’로 가기 위해, 어딘가로 향한다.


 복도를 연속으로 걷다가 계단을 오르고,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방향을 바꾸어 가다가 이내 세 번째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두 계단씩을 오른다. 그렇게 매번 지나오던 루트라는 듯 무심하게 인포데스크로 향한다. 부유섬까지 이동 캐스팅을 해 줄 항법사를 배정해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그는 무언가 잘못된 듯 조막만 한 동공으로,


 “응?”


 재차 눈을 비벼보지만, 원래라면 아카데미로 올려보내 줄 항법사를 배정해 줄 직원이 있어야 할 자리엔, 진공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각종 사무용 도구들과 그 아래 비어있는 의자만이 우두커니 있을 뿐이었다.


 좀 오래 걸릴 모양인지 그 데스크 위에 전시되어있는 책상달력엔 보란 듯이 <외출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재형은 얼굴을 손바닥에 묻고는 바로 앞의 벤치, 다시말해 대기 순번을 기다리는 용도의 길다란 의자 가장자리에 앉았다. 지금으로서 항법사를 만날 방법은 없었다.


 항법사는 현장 시즌이 끝날 지금 시점엔 외출이나 장기 휴가 같은 ‘자리를 비우는 일’이 엄격히 금지될 터였다. 


 그가 임무를 무리하게 일찍 마친 것은 맞지만─그걸 증명하듯, 인포데스크 주위로 선 줄들은 부유섬 관광을 목적으로 마탑을 찾은 일반인들로 가득하다. 이런 식이면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짜증이 난 듯 혀를 찬다.


 더 이상 초조함을 견딜 수 없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다른 직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하던 차에, 백발의 노인 하나가 이재형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는 노인을 알아본다. 마치 엄청난 거물을 본 듯, 눈동자가 커진다.


 그 노인은 친근히 환영해 온다.


 “이야. 자네는 저 위쪽의 '아카데미' 학생 아닌고?”


 이재형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너무 늙어버린 노인에게 그 말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됐어, 요놈아. 하나라도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허허. 올려보내 주마.”


 노인의 어깨에는 작게, 자신이 셀레스티아의 탑주였음을 뜻하는 팔각성 모양의 뱃지가 빛바랜 영광을 은은히 드리우고 있었다. 그 노인은 ■■■─

 

 


† 2 †

 

 백발의 노인이 흐리멍텅한 눈을 부라리고 있다. 바로 직전 다림질을 한 듯 주름 하나 없는 백색의 옷을 입고, 자신의 키보다 큰 지팡이를 짚으며.


 “어엉? 야 뭐라카노?”


 “네? 혹시 또 들리지 않으셨나요 할아버님? 다시 말하겠지만, 저를 ‘아카데미’로 전송시켜 주세요.”


이 할아범도 예전만큼 건강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자그마치 288년을 살아온 이 노인은 이전 셀레스티아의 탑주이자 과학적 마법 연구방법론의 혁신자로 거론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역사상 가장 높은 마탑 셀레스티아. 현존 인류 최강의 마탑 셀레스티아. 그 탑주였던 인물.


 그런 인물도 세월의 풍파는 이기지 못한다. 결국, 또박또박 소리를 질러야 알아듣는다.


 ─라고,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듯 이재형은 떠오른 생각들을 그럴듯하게 이어붙였다.


 그는 같은 말을 한 번 더, 다만 힘껏 고함을 지르며 뱉어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그제서야 알아들었다는 듯, 셀레스티아 2399층 특유의 탁 트인 개방감을 자랑하는 창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뻗었다.


 “아~ 저어기 말이제? 아카데미는 7번 부유섬이든가?”


 가리킨 편엔 하늘 속 아득히 빛나는 열여덟 개의 부유섬 제도가 조그맣게 뭉뚱그려 있었다. 이곳이 도시의 가장 높은 마천루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득하다는 것이 한층 더 와닿는다.


 “고럼 복장 단디 하고. 셋 세기 전에 문으로 드가뿌면 대갈빡이 남아나지 않을꺼니 조심하그라.”


 요즘은, 즉 먼 옛날부터, 그냥 도시 위 부유섬의 교통정리중이다. 아마도 그런 비슷한 게 아닐까.


 이재형은 이 할아범이 정확히 뭘 하는지 따위엔 영 관심이 없었다.


 임무. 수행 완료. 보고서는 일흔여덟 페이지.


 「복귀하면 시작의 파티 동료였던 유하나, 아리 그리고 살비에르가 반길 것이고 앞으로 석 달 정도는 지금보다야 행복한 아카데미 생활을 할 수 있을 테지. 할아버지. 쎄빠지는 임무를 마친 이 고단한 몸 좀 쉬게 어서 아카데미로 귀환시켜 주세요.」

─라고 생각하며 그는 백일몽에 빠진다.


 “숫자 셀테니까 잘 보고 드가래이. 아, 쓰리. 아, 투우~, 워어언~”


 타이밍에 맞춰 호쾌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가 버튼을 누르자 마법진이 작동하고─


─파아앗!


아카데미 정문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빠지직. 빠직.

─와장창!


「뭐야 이거. 결계가 불안정한 건가? …무슨 일이지?」


 이재형의 바로 뒤에서 보안 결계 특유의 셧다운 되는 소리가 났다.


─슈우우웅


 「염병할. 하필 고장 나도 귀환한 바로 직후에 고장 나 버리다니.」

 「보안 결계는 안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고장나곤 하는 물건이었지. 1분. 아니 30초만 늦게 왔어도 전이 주문은 실패하고 아카데미는 불가피 사례를 인정하여 공짜 휴가를 내줬을 텐데. 어쨌건. 저 멀리 정문에서 날 반기는 그림자 하나가 있는걸 보니. 안심이다. 아마 저기서 줄곧 기다렸겠지. 유하나.」

 ─라고, 또 그는 몽상 속에서 혼잣말을 되뇌었다. 


 그리곤 마음이 놓인 듯 작게 미소짓는다.


 은밀추진체 : Invisible Human Transporting Missile, IHTM 또는 은밀추진체라고 부른다.


 부유섬 :  레비테이션 캐스팅을 통해 지각을 들어 올려 하늘 위에 올려놓은 섬. 지름 수십 미터의 작은 규모부터 지름 십 수 킬로미터 단위의 거대한 규모의 섬까지. 모두 ‘부유섬’이라고 한다. ‘아카데미’는 「마탑 셀레스티아」가 관리하는 18개 부유섬으로 이루어진 부유섬 제도 「황금 강의 열여덟 물보라」의 7번째 섬으로, 그 규모는 지름 약 4.6 킬로미터이다.


 항법사 :  마도사의 일종. 주로 비행, 이동, 전이 또는 흐름 정렬 캐스팅에 특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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