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낚아채지 않아 널브러진 성씨에
점착지에 얼기설기 그린 조잡한 가짜 우표를 대곤
기십 원어치 셀로판 테이프로 덮어 붙였다.

수백 장의 총보가 눌려 담긴 우편,
실링도 마치지 못하고 구름의 화성에 몰매를 맞아
악상 기호들이 진눈깨비에 젖어 방황한다.

도착했을 때에 연주할 수 있는 상태일까,
영원한 초연의 유예만이 우편 속에 남아
수많은 기호를 담은 채로 가라앉았을 테지.

첼로, 바순, 트롬본, 팀파니, 클라리넷, 트럼펫,
바이올린, 오보에, 피콜로, 플뤼겔혼, 튜바,
더블베이스, 심벌즈, 그랜드피아노, 비올라,

바다 앞으로 진눈깨비를 부쳤다.
피아노 협주곡 리 37 올림 바 단지 ¾동 라르고
비와 눈 사이 중음역대에서부터 비올라 무리가 시작하는 주선율에 이어 피아노가 날카로운 눈이 내리듯 단3도 관계의 반음계 스케일을 연주해라. 다음으로는 현악기의 앙상블 속에서 바순이 내뱉는 주선율의 변형, 두 번 되풀이된 후 피콜로플루트와 경쟁하듯 부선율을 연주해라. 피아니시모, 포르티시모, 아첼레란도, 리타르단도, 템포 II로, 박자는 ⅝, 이후 ⅜과 ⅞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박자와 함께 증6화음을 매개로 바 장조로의 전조를 진행한다. 수십 권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총보를 지나 일 악장을 끝낸 직후 연주되는 이 악장...

되풀이되는 사 분 삼십 삼 초 이 악장
가능한 만큼 페르마타를 붙여 연주해라.
비도 눈도 그칠 때에서야 존재하지 않는 삼 악장의 악보를 펼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