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칼 받았죠?"



아이가 우리 앞에 섰다.


7명의 임산부를 기다리는 7명의 산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4명이 우리 일행이었다.


임산부는 기이하게도, 다들 백발이 많았는데도 노령은 아니었다.


'카타콤에서 백발 임산부를 돕는 때아닌 산파 대행' .


어쩜 단어 하나하나가 전부 이렇게 주옥 같냐.


무당 여인이 손을 들었다.



"이 칼은 왜 들라고 한 거에요?"


"그건-."


"으으으, 아흐으윽!"



누군가의 비명을 계기로 땅굴 분만실에 비명이 전염되었다.



"아아읏, 아아악!"


"배, 배가아아!"


"머리 받고 빼세요. 어서!"



머리?


치맛자락 들춰야 한단 거야?


아무래도 전생적 관점으로서 이건 신사도에 어긋나는....



"거기 새로 들어오신 분 뭐하세요! 어서 빼세요!"



이런 씨.


남의 속살 즐기는 취미는 고상하지 않지만 별 수 있나.


얼굴을 들이밀었다.



"분명히 요괴 잡으러 왔는데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나리가 투덜거렸다.


실로 그러했다.


꼬마 지휘자에게 보고하였다.



"이보시오, 머리가 안 보이오!"


"어두워서 그런 거 아니에요?"


"손에 짚이지도 않는데 그 무슨 황당무계한 말이시오?"


"그럴 리가요. 계산이 틀리진 않았을 텐데."



나리도 참견하였다.



"나도 안 보이니라. 아직 이른 게 아니냐?"


"이러면 안 되는데.

다른 분들 아무도 안 보이세요? 머리."


"저 보여요!"



무당 여인이었다.



"산모님 숨 들이쉬세요. 내쉬고. 들이쉬고.

하나둘셋에 힘 주세요.

하나 둘 셋!"


"아아읏, 아악, 아아아!"



달리 할 일도 없던 다른 산파들은 무당 여인의 분투를 감상했다.



"산파님 너무 힘들어요. 아파요."


"힘내셔야죠. 애 아빠 누구에요?"


"몰라요. 어느날 덜컥 생겼어요."



어째선지 이 대목에서 우리를 지휘하던 카타콤의 어린 아이는 불편한 얼굴을 했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어, 어, 어, 없어요!"


"어머니 세번 부르면서 힘 주세요. 실시!"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 이거 익숙한 광경인 걸.


쓴웃음을 지었다.


왜 웃느냐며 나리가 옆구리를 찔렀다.



"나리는 평생 모를 게요."



나는 그렇게만 답해두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각자의 산모들이 그 즈음부터 재차 반응을 주었다.


손을 놀리고 있던 게으른 산파들은 그제서야 바삐 남의 치맛속으로 돌아갔다.



"보여요?"


"코빼기도 안 보여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무당 여인의 간절한 응원이 신경 쓰인 터라,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관찰을 계속했다.



"힘 내세요. 아직 반절도 안 나왔어요!"


"머리, 요?"


"머리요."


"아으으 세상에."


"할 수 있어요. 포기하시면 안 되요.

저도 포기 안할 테니까!"



무당 님아.


님이 포기 안 하는 건 지금 연관이 없는 거 같은데요.


한마디 하려다 관뒀다.



"당신도... 후, 임신하셨네요."



저쪽 산모가 헉헉거리며 말했다.


무당 여인은 서두르는 어투로, 산모는 숨이 가쁜 어투로 대화를 이었다.



"예. 그러니까 이참에 애 어떻게 낳는지 봐둬야죠."


"당신네... 애 아빤 누구에요?"


"저도 몰라요. 어느 날 덜컥 생긴 거라."


"똑같, 네요. 저희."



무당 여인이 그 말에 멈칫하였다.



"그러게요. 똑같네요."


"그쪽도 배 보니 금방 출산할 거 같은데...

애가 태어나면 뭘 먼저 하고 싶으세요?"


"씻겨야겠죠. 핏물에 절어서 나올텐데."


"후후후. 그야... 당연히 하는 거고요.

하아하아... 아이랑 같이 하고픈 거."


"글쎄요.

지금 저는 나그네라서요.

아이를 데리고도 여행을 다니지 않을까요."



이번 낙호의 요괴만 토벌하면 나리의 임무가 끝난다.


나리의 임무가 끝난다는 건 동행하던 우리의 일거리도 끝난다는 건데

무슨 여행을 더 하겠단 거람. 저 여인은.


아니면 까먹었나? 나리의 본래 임무.



"아니면 원래 집으로 돌아가서

원래의 일을 해도 좋겠고요."


"원래... 뭐하고 사셨는데요."


"점 봐줬어요. 마을 사람들.

점 봐주고 돈 받고. 무당이니까요."


"하아하아, 그런가요.

저도... 점 좀 봐주세요."


"무슨 점이요? 아이 성별?"


"으윽, 으으음."



땀을 줄줄이 흘리는 산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 여인이 품에서 산통을 꺼내 몇번 흔들었다.



"좋은 징조에요!"


"그런가요...?"


"귀여운 여자아이래요.

잔병치레를 자주 앓겠지만 효심이 깊고 재주가 많다네요.

소소하게 살다 무탈하게 죽을 운명이래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무당 여인의 산통은 안 맞기로 유명하니까 거꾸로겠구려.

건강한 남자아이고, 재주는 적지만 몸은 건강하겠소.

장래에는 크게 될 운명이겠고."


"어느... 쪽이건 마음에 드네요."



산모가 후후하고 웃었다.


내 산모는 바가지를 긁었다.



"산파님, 은, 남의 집 산모 말고 저한테... 신경을 쓰셔야죠...!"


"내가 할 일이란 게 없잖소.

아! 진통 효능이 뛰어난 약이 있는데, 하나 드리리오?"


"어떤 건데요...?"


"나도 잘은 모르오. 타인에게 산 것이니."



주머니를 뒤적였다.


비싼 값을 주고 샀던 레시피가 여기 어딘가에.


찾았다.



"읽어보겠소."



레시피의 내용을 낭독해보았다.



"우선은 물고기 비늘을 불에 바싹 그을린다.

한번 태운 황을 그을린 비늘과 함께 물과 섞는다.

그 후 동굴에 고여있던 물을 채취해, 햇볕에 말린다.

잘 말랐으면 건더기가 남을 테니, 방금 전의 혼합물과 섞는다.

비율은 영업비밀이니 공개하지 않는다...."


"위험해... 보이는데요."


"... 그건 그렇구려."


"안 먹을게요... 하아."


"그렇게 하시오."



무당 여인쪽은 그새 친해졌는지 자기 산모와 이런저런 미래의 일을 떠들었다.


비슷한 처지니 공감되는 걸까.



"와! 보여요. 머리 끝부분이에요."



머리가 보인다고 하고 몇분 되지 않아 아이가 나왔다.


어째 퍽 빨리 진행되는 분위기다.


무당 여인이 아이를 받아들었다.


갓 출산을 마친 여인이 헉헉대며 물었다.



"어떤가요...?"


"남자아이네요. 건강해보여요."


"애가... 안 우는데요?"


"별일 아니에요. 맥박은 제대로 뛰고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무당 여인이 아이 발바닥을 때렸다.


아이가 "응애애" 하며 울었다.



"보셨죠? 팔팔하잖아요."


"정말이네요. 기운 차기도 해라."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아이는 뚝하고 울음을 그쳤다.


무당 여인이 자신의 배를 내려보았다.



"엄마를 알아보나봐요. 예쁘기도 해라.

저희 애도 이러면 좋을 텐데."


"아비도 모르고 밴 아이라지 않았소?

그렇게 기대되시오?"



내가 비꼬았다.


시샘의 감정도 약간 들어가 있었다.



"그야 저도 처음엔 싫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 안에서 계속 살아왔으니까요."



무당 여인이 아기를 산모에게 안겨주었다.


아기는 수건에 싸인 채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문득 산파들을 지휘하던 아이가 다급해졌다.



"아기 넘기지 마세요! 들고 계셔야 해요."


"왜요?"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칼, 칼 어디 두셨어요?"


"콜록."



신생아가 기침을 했다.


"춥니? 아가야" 라며 산모가 배시시 웃었다.


갓난아기는 "콜록콜록" 하고 두차례를 더 했다.


카타콤의 아이는 산모의 손을 잡고 무당 여인을 독촉했다.



"칼 꺼내시라고요. 어디 두셨어요?"



산모를 잡는 꼴이 독특했다.


지친 산모를 격려하는 느낌이 아니라 산모의 손을 구속하는 느낌으로 잡고 있었다.


이윽고 아기가 네번째 기침을 했다.



[콜... 켈룩.]



아기의 몸이 갈색으로 변했다.


머리엔 뿔이 두개 솟아났다.


입이 길어졌다.


몸집이 커졌다.


체모가 수북하게 자라났다.


다리엔 발굽이 생겼고 엉덩이엔 꼬리가 돋았다.


아이는 어른만큼 커진 손으로 침대를 짚었다.



[그륵.]



한마디와 동시에 아이가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한순간에 아이의 몸이 성인 여성에 필적할 수준이 되었다.


더는 아이가 아니게 된 아이는, 괴물은 목을 돌리며 자신이 태어난 환경을 내려다보았다.



"이, 이게 뭐에요?"



무당 여인이 파래진 낯으로 물었다.



"... 아가?"



산모의 낯도 파랗게 질려있었다.



"뭐기는 뭐에요! 방금 봤던 요괴지.

칼 잡으라고 했잖아요, 제가!"


[음머어어.]



요괴는 팔을 뻗었다.


산모의 가슴을 향해 뻗었다.


어미의 가슴에 닿는가 싶더라니 요괴의 손이 사라졌다.


가슴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 같았다.



"앗, 아앗, 아...!"


[음무우.]



산모의 헬쑥한 얼굴이 한층 더 헬쑥해졌다.


앙상한 팔은 더욱 앙상해졌다.


몇초 되지도 않아, 산모의 얼굴은 뼈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꾸로 소 요괴는 얼굴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자리의 산모, 산파는 모두 아연실색하여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칼! 칼 어딨냐고요!"



판단력의 회복이 빨랐던 건 나리였다.



"칼 여깄느니라!"



나리가 자신의 칼을 아이에게 넘겼다.


아이는 그것을 그대로 요괴의 흉부에 찔러넣었다.



[머어어. 음머어.]



요괴가 울부짖었다.



"약팔이!"



나리의 부름 덕에 나도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불을 찢어 둥글게 구겨서 던졌다.



"커져라!"



요괴의 몸집보다 조금 커진 이불 조각이 요괴에게 직격하였다.


손을 모아, 공기를 가두는 시늉을 했다.



"옭아매 가둬라."



이불 조각이 요괴에게 들러붙어 요괴를 구속했다.


요괴의 저항 탓에 천조각에 구멍은 숭숭 뚫렸지만

이불은 성공적으로 요괴를 감금했다.


반 해골바가지가 된 산모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신음했다.



"아기... 내 아기."



아무도 쉬이 반응할 생각을 못하는 문장.


담당 산파였던 무당 여인만 간신히 대꾸할 뿐이었다.



"... 딸꾹."



그마저도 비언어적 대꾸였다.


무당 여인의 딸꾹질이 진정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



"집중하거라."



나리가 토벌 작전의 회의를 멈추었다.



"어찌 정신이 다른 곳에 가있느냐."



나리의 지적은 타당했다.


무당 여인과 총잡이 여인이 산만했다.


타당했지만 가혹한 면이 있었다.


산만하대도 고의성이 있는 산만함은 아니었다.


겁에 질려 도무지 집중할 수 없어서 비롯된 산만함이었다.



"미안혀."



마을에 들어서고부터 통 말이 없어진 총잡이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꼬 생각이 나서 그랴."


"뭐가 말이더냐."


"봤잖여. 쭉정이가 된 모습들."



쭉정이. 그러고보니 관아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지.


그때 이미 봤던 건가.



"내일... 내일 저녁에 혀. 회의."


"마을의 상황이 심각한데 어찌 내일이네 모레네로 미루겠느냐."


"그라믄 내일 아침에 허든가.

그때꺼진 맴 추스를 테니께."



나는 비교적 쌩쌩한 편이었지만 무당 여인이 패닉에 빠진 얼굴을 보고 있긴 괴로웠다.



"그리 하시오 나리.

본래가 마을에 당도하면 첫날은 느긋이 여독을 풀지 않았소."



그 이후, 7명의 산모가 낳은 아이가 모두 요괴로 변하진 않았다.


변한 건 맨 처음의 그 아이 뿐이었다.


임시 산파였던 우리도 고생을 많이 하진 않았단 것이다.


그래도, 지친 건 지친 것이었다.



"하긴 50년 전에 과거 보겠다고 한양 갈 때도 길을 서두르는 놈들은 다들 자빠졌지." 



나리가 동조했다.


이 꼬맹이 뭐라는 거야.


네가 어떻게 오십년을 살아.


십오년을 살았대도 안 믿겠는데.



"말마따나 내일 하자꾸나. "



나리가 먼저 방을 나섰다.



"후딱 자갔소... 자고 잊어야지."



이어서 총잡이 여인도 나갔다.


방이래도 개미집처럼 만든 땅굴 속에서 방이다.


방문도 없고 방음도 안 된다.


"왜 내 아가만" 이라며 지친 산모가 조용히 훌쩍이는 소리도, 생생하게 들렸다.


"다행이다, 내 아가는... 내 아가는" 이라며 우는 다른 산모의 말도, 생생하게 들렸다.



총잡이 여인의 혼잣말도 들렸다.



"이릏게 무서운디 어떻게 한 겨.

응? 성님."



지금까지 대적했던 요괴들과 뭔가 달랐다.


직접 아기를 받고, 직접 아기가 요괴로 변하는 걸 봤다.


요괴에게 당해가는 꼴을 직접 목격했다.


총잡이 여인과 무당 여인의 공포는 그런 데서 유래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산책이나 하러 가지 않겠소?

소 요괴들도 밤에는 좀 잠잠하다던데."



무당 여인을 유혹했다.



"초겨울 밤의 찬바람은 임신한 몸에는 안 좋습...."



무당 여인은 예까지 말하고 말을 정정했다.



"가겠습니다. 가죠."



*



땅굴 내의 회의실로 들어온 순서를 거꾸로 되짚었다.


지상에 올라와보니 과연, 꼬마의 말이 맞았다.


반인반우半人半牛의 소 요괴는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무당 여인은 몸이 무거워서인지 지팡이를 들었다.


산적한테서 빼앗은 그거다.



"꽤 애용하는구려? 그거."


"애욕愛慾한다고요?"



왜 한동안 잠잠하나 했다.



"애용愛用한다고 했소."


"어쩐지 강한 기운이 느껴져서요. 요새 몸이 무겁기도 하고."


"같이 빼았었던 부채는 신통한 보물이었소. 그것도 영물일 테지."


"아마 이 지팡이도 사용법을 알기만 하면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사용법이란 게 달리 있소?"


"아무렇게나 휘두른다고 되는 건 아닐 테지요.

도사님도 도술 쓸 때 간혹, 손을 꼬거나 하시지 않습니까?"



그게 그것과 비슷한 건가?


나는 쉬이 이해 못했다.



"뭐, 지금으로선 걸을 때 쓰는 정도지만요."


"어쨌거나 마음에 든 듯하니 다행이구려.

선물이라 생각하시오."


"본래 도사님 물건도 아니었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잠시 침묵.


척 봐도 귀해보이는 이 지팡이.


몇몇 장식을 보면 부채보다도 귀해보인다.


요괴가 만든 거 같진 않다.


어느 산신령이 실수로 떨어뜨린 걸 산적들이 줍기라도 한 걸까?


만일 그런 거라면 그 산신령, 지금쯤 배깨나 아플 테지. 



"나면서부터 흰 머리는 아니랬어요."



무당 여인이 대뜸 말했다.



"누가 말이오?"


"방금 그 임산부들이요. 젊은데 흰 머리가 성성했잖아요."


"그게 전부 새치였단 말이오?"


"새치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희게 샌 거랬어요.

어느 날부터 천천히 샜다고 했어요.

어느 날부터 천천히 배가 불러왔듯이."



어?


익숙한 이야기인데.


무당 여인이 배에 손을 얹었다.



"저랑 똑같죠."



아.


아아.


무당 여인이 두려워하던 건 소 요괴가 아니었다.


소 요괴이면서, 소 요괴가 아니었다.



"제 아기도, 요괴가 될지 몰라요."



소 요괴가 나올 상황이었다.



"제가 죽여야할지도 모르고요."



무당 여인이 눈가를 훔쳤다.



"애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지 얼마 안 됐는데...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이제 어떻게 해요, 도사님? 낳았는데 진짜로 요괴가 된다면...."


"반인반우半人半牛의 소 요괴가 출몰하게 된 건 이 마을에 거대한 황소 요괴가 날뛰고부터라고 했소.

그 '거대한 황소 요괴' 란 놈이 아마 따개비와 거북이 이르던 원흉 요괴겠지."



걔들이 말하던 건 젖소였지만 그거나 그거나.


무당 여인을 가까이에 당겼다.


너무 추워보여서였다.


품에서도 무당 여인이 눈가를 비볐다.



"원흉인 황소 요괴를 무찌르면 괜찮아지지 않겠소?

미완성된 저주는 원흉을 쓰러뜨리면 풀린다고 했으니."


"저주는 다 진행됐어요...

제 머리카락을 보세요. 이제 검은 머리는 티끌도 없잖아요."



달빛이 어렴풋하여 분간하기 쉽지 않았지만 검은 머리는 거의 없었다.



"와 보고 눈치챘어요... 머리가 새는 게 저주의 증표에요."



흰 머리는 저주의 진행 정도였던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요괴를 낳았던 산모는 유독 흰 머리 비율이 높았다.



"배가 과하게 빨리 부푸는 것도... 흑, 안에 든 게 인간이 아니어, 서, 그랬던 거고요."



무당 여인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끝났어요. 이제... 흑, 이제, 하윽, 다 끝났어요... 흐윽흑!"


"절망하지 마시오. 혹시 모르잖소."


"혹시, 히끅, 모른다뇨.

지나가다... 산신령이라도 나타, 흑, 나타나지 않으면, 흐읏! 바뀌지 않는데... 흐앙!"



이런 상황인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암담한 심정에 할 수 있는 짓거리라곤 "너무 울지 마시오" 라는, 있으나마나한 말 뿐이었다.



"죄송해요, 흐윽... 너무, 너무 무서워서, 흑."



찬 공기를 맞으며 우는 여인은 과하게 비극적인지라 적어도 들어갈 만한 건물이 없나 둘러보았다.


가까이에 무당집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있었다.



"이리 오시오."



손을 잡아끌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불을 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여 제대로 신통력이 있는 무당이라면, 작금의 상태에 손을 써줄 수 있지 않을까.


밤톨만한 희망을 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 수북한 먼지만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걸까.



"먼지말고 있는 건... 뜻모를 벽화뿐이구려."



넋을 놓고 벽화를 관람했다.


벽화는 4개. 전후좌우로 그려져있었다.


왼쪽에 남생이가 그려져 있었다.


뒷쪽엔 따개비가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엔 어디선가 본 듯한 막대기가 그려져 있었다.


앞쪽엔 황소였다.


... 응?


어어?


어?



"이보시오. 무당 여인. 이것 좀 보시오."



무당 여인은 울기에 바빠,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녀를 재촉했다.



"당신, 이걸 좀 보라니까."


"왜 자꾸.... 히끅, 그러, 세요...?"


"저기 있는 황소가 혹시 우리가 처치해야 하는 황소 아니요?"


"네...?"



무당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촉촉하게 젖은 눈이 어쩐지 머리에 꽂혔다.


그녀가 전후좌우를 살폈다.


한번 살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번 살피고, "어라" 라며 의아하단 분위기를 내었다.



"이쪽이 동쪽, 흐읏, 이라고 하면...."



무당 여인이 진정되지 않은 마음으로 방위를 셈했다.


세번 살피고는, 좋지 못하던 낯빛에 어쩐지 희망이 스쳤다.



"뭔가 본 게요?"


"네... 흐읍!"



무당 여인이 숨을 가다듬었다.



"기쁜 소식... 이에요."


"뭘 본 게요?"


"보다뇨. 속살 같은 건 하나도 안 봤어요."


"그 '보다' 가 아니오."


"알아요. 농담이에요."



'다신 농담하지 마시오. 재미 없으니' 란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무당 여인의 얼굴이 펴지고 있어서, 딴죽을 걸기는 미안했다.



"희망이요."



무당 여인이 말을 보탰다.



"저주를 뿌리부터 태워버릴 수 있는... 희망이 있어요."



*


또 백업하는 걸 까먹은 것이다.
이번화 원본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