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어 지명을 한자로 적을 때는 음차나 훈차를 해서 적었으며 고유어 지명을 한자로도 적는 거 자체는 한글 창제 후에도 흔했음.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 토지 정리와 행정구역 정리를 하면서 법정리라는 걸 만들고 한자로 쓴 지명을 그대로 공식 법정리명으로 채택하여 한자어 지명으로 굳어져버림.

 

그래서 '범물동' 같은 경우는 원래 그곳에 호랑이가 많아서 호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범울'이었다가 '범물'로 변한 것을 음차해놓으면서 凡勿, '무릇 하지 말라'라는 지명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뜻이 되었음. 훈차로 했으면 虎鳴이 되어 호랑이가 많은 마을이라는 걸 잘 나타내주는데.

 

보통 훈차가 공식 지명이 된 걸 보고 원어 보존이 되지 않았다고 까는 경우가 많은데, 난 어차피 전근대에 지명의 발음은 엄청 많이 바뀌었고 지명에 드러난 지역 인식은 뜻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발음보단 뜻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함. 그래서 난 오히려 음차가 공식 지명이 된 걸 더 안 좋아함.

 

그리고 법정리는 보통 여러 개의 마을을 합쳐서 한 법정리로 했는데 보통 마을들 중 하나의 이름을 땄지만, 군청 소재지 같은 경우 군의 이름을 따 어느 마을의 이름도 보존되지 않은 경우가 많음. 예를 들면 보성읍내에서는 동외, 명륜, 태평, 가마실, 인사 마을을 한 법정리로 묶었는데, '보성리'로 하는 바람에 어느 마을도 이름에 들어가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