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여러분! NoMatterWhat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얼마 전에 에스파냐 편이 죽어서 특별 성교육을 쓰는 바람에 도시하고 성에 대해서는 못 썼었죠. 그래서 꽤 성교육 텀이 길었습니다. 여튼 기다려주셔서(진짜 기다리시는 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감사합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성교육 이후로 어디를 쓸지 고민하다가(에스파냐는 쓰기 실었고요) 퍼득 떠오른게 오스트리아였습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졸고 있던 때의 의식의 흐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암튼 이번 성교육은 오스트리아입니다.


오스트리아. 일단 역사나 지리에 관심이 없으면 오스트레일리아와 착각하기 십상인 나라죠. 오스트리아? 너 호주 잘못 말한거 아니냐? ㅂㅅ ㅋㅋㅋㅋㅋ이라는 취급을 받기 아아주 쉽습니다(제 경험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오스트리아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였는지 다 아실 겁니다. 그 오스트리아의 심장이 빈(Wien)입니다. 오늘 가져온 건 이제는 사라진 빈의 성벽과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독일어 빈보다는 영어 비엔나가 더 익숙하죠. 비엔나 커피도 여기서 나온거고요. 암튼. 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해서 말을 해야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을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 잠시 설명드리자면,


  • 신성로마제국황제 및 독일왕 (1273~1292, 1298~1308, 1438~1806)
  • 오스트리아 황제 (1804~1918)
  • 보헤미아 왕위 (1306–1307, 1437–1439, 1453–1457, 1526–1918)
  • 헝가리 왕위 (1526~1918)
  • 크로아이티아 공위(1526~1918)
  • 스페인 왕위 (1516~1700)
  • 포르투갈 왕위 (1581~1640)
  •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위 (1815~1866)
  • 일리리아 왕위 (1816~1849)
  • 갈리시아와 로도메리아 왕위 (1772~1918)
  • 달마티아 왕위 (1815~1918)
  • 멕시코 황제 (1864~1867)
  • 독일 연방 의장 (1815~1866)
 아 존나 길어 

이것도 공작위하고 대공위는 다 뺀겁니다. 그 아래 백작위나 후작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암튼 이렇게 대단한 가문의 시작은 많이 초라했습니다. 알프스 아래어 조용히 짜져있는 조그마한 백국이었거든요. 이 가문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하는 것이 대공위 시대를 거치면서였습니다. 대공위 시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위가 끊겨 왕좌가 비어있던 때였습니다. 이때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던 제후들은 저어기 구석에 박혀있는 그렇게 귄력이 없는 애를 끌어다 앉히는데, 그게 합스부르크 가였습니다. 

이 이후에 점점 성장하기 시작한 합스부르크 가는 15세기 부터는 황위를 계속해서 이어가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유럽 곳곳에 자신의 씨(?)를 뿌립니다. 흠, 표현이 뭔가 이상한데 그냥 넘어 갑시당. 아무튼 여러 풍파를 거치며 20세기 1차대전 이후에 황실이 없어질 때까지 중부 유럽의 패자로 집권합니다. 

암튼 빈은 대강 13세기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의 심장으로 기능합니다. 잘나가던 합스부르크의 중심이었던지라 인구도 역시 많아서 17세기 정도 되면 11만의 인구를 자랑하죠. 물론 빈이 항상 잘나갔던 건 아닙니다. 15세기 중반 이슬람 세력을 막아내던 동로마제국이 무너지자 오스만 제국은 본격적으로 유럽을 사정권 안에 두었고, 중부 유럽의 중심도시였던 빈은 오스만을 막아내야하는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폴란드 꺼ㅡ억

그래서 두 차례(1529, 1683)나 빈이 포위된 채 공방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특히 2차 빈 포위 당시는 거의 넘어갈 뻔 하기도 하고요.

1차 빈 포위 당시의 지도. 도시 주변에 있는 것들은 오스만 제국의 군대이다.

팬심으로 넣는 윙드 후사르. 얘들 아니었으면 2차 빈 포위때 빈은 함락되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빈은 꿋꿋히 살아남습니다. 이후로 뭐 나폴레옹 손에 떨어지기도 하고 혁명도 일어나고 합니다만. 암튼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새 19세기 중반이 됩니다. 



시간이 이렇게 흐르고 나니까,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성벽과 해자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위 지도처럼 성벽에 각을 둔 것은 포탄을 도탄시키기 위한 것이었는데, 화약의 위력이 강해지면 저딴 것도 걍 의미가 없죠. 그래서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저걸 해체하기로 합니다. 사실 우리 한양 도성의 성벽(산 위에 둘러져 있는 거 말입니다)같이 있어도 크게 불편함이 없으면 노상관이지만 저건 좀 많이 불편해 보이죠. 더구나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시인구가 많아져 이미 인구밀도는 넘쳐나는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저랬던 성벽은 




이렇게 도로가 됩니다. 두번째 지도에 ring이라고 써진 것이 원래 성벽이 있던 곳입니다. 저렇게 성벽을 밀고 건설한 도로를 링 슈트라세(Ringstrassen)라고 합니다. 환상(環狀)도로 라는 뜻입니다. 

이 링 슈트라세는 곧 빈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됩니다. 이 주위에 19세기 당시에 건물이 많이 올라갔거든요. 시청사, 국회의사당, 빈 대학, 부르크 극장, 자연사 박물관, 국립 오페라 극장, 제체시온(분리파 전시장), 무지크페라인(빈 필하모닉의 거점), 콘체르트하우스(연주회장), 슈타트파르크(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무덤이 있는 공원), 공예미술박물관 등등. 엄청 많습니다. 그래서 빈을 모두 즐길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링 슈트라세 주변만 거닐라고 추천하곤 하죠.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예술의 도시 빈의 절반은 이 링 건설 후에 나오게 됩니다. 그러고보면 참 성벽 잘 날렸다 싶네요. 성벽 밀고 그거 따라 링 같은 도로 만들면 여행하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담이지만, 빈의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순간은 제국이 무너지고 황실이 해체되기 얼마 전입니다. 합스부르크의 성장과 함께 성장한 도시가 가장 빛난 순간이 그 주인이 무너지기 직전이라니 아이러니 하죠. 아마 다시는 못 볼, 그 직전이라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일수도... 

암튼 이번 오스트리아의 성교육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성교육 대상은 성진국입니다. 아마 주말 즈음해서 올라갈 듯 한데, 안 올라오면 이 인간 퍼 자나보다 생각하고 좀만 기다려주세요 ㅎㅅ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