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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氏,龍氏 出于松壤國

(조선의) 강씨(康氏)와 용씨(龍氏)는 송양국(松壤國, 비류국의 별칭)에서 나왔다.

- 삼한습유기 (녹두처사라는 신원 미상의 인물이 신라의 나서산 석굴에 보관된 통일신라의 고문헌들을 참고로 만든 조선의 성씨의 기원을 다루는 야사서였던 것으로 보이고 원본은 현재는 소실되었고 조여적이 스승 위한조에게 구전으로 들은 내용이 청학집에 일문(逸文)이 인용되었음, 위한조는 본관은 장흥 위씨이고 도호가 청학상인이고 청학집이라는 서적이 이 사람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도가 인물들의 행적과 담론을 기록한 저서임. 삼한습유기의 내용중 일부는 원래 저자인 녹두처사가 아니라 청학상인 위한조 같은 후대의 인물들이 나중에 삼한습유기 원문에 내용을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金寬毅編年通錄云, “有名虎景者, 自號聖骨將軍. 自白頭山遊歷, 至扶蘇山左谷, 娶妻家焉, 富而無子.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이르기를, “이름이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있어 스스로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고 불렀다. 백두산(白頭山)에서부터 두루 돌아다니다가 부소산(扶蘇山)의 왼쪽 골짜기에 이르러 장가를 들고 살림을 차렸는데 집은 부유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 편년통록


한국사에서 강씨(康氏)는 통일신라 후기때 등장한 성씨인 신천 강씨 1본만 존재했다 나오므로 삼한습유기에 기록된 강씨(康氏)는 신천 강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송양국은 비류국의 별칭이고 비류국은 기원전 36년에 고구려에 정복된 이후 고구려 오부중 하나인 비류나부, 연노부가 된다.


고려사에서 시조 강호경과 그의 아들 보육성인(강보육)과 관련해 호경, 보육으로만 기록하고있고 성씨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것을 보아 신천 강씨는 원래 성씨가 없었고 이름만 사용했었고 통일신라 후기쯤에 중국식 성씨인 강씨(康氏) 성을 사용한 것으로 보임.


한국측 정사 기록에 최초로 등장하는 신천 강씨 인물은 태봉국(후고구려) 국왕 궁예의 아내 강비(康妃)이다.


삼한습유기 전승에 의하면 조선의 신천 강씨와 용씨는 고구려의 오부 출신 성씨가 됩니다.


신천 강씨는 고구려 멸망 이후 백두산 일대에 웅거하다가 8세기쯤 통일신라로 이주해 본래 고구려 남부 영토였던 패서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