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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경제학의 생산요소에는 노동력, 토지, 자본이 있음. 각 요소는 임금, 지대, 이자를 발생시키는데, 철도로 인한 운송비 하락이 결국 이들의 수렴을 가져옴. 


 곡물법 폐지, 자유무역의 확산으로 관세 인하 분위기가 고조되고, 운송비 인하와 기술의 발달로 관리 부담과 보험료가 줄었는데, 이는 결국 전 세계적인 가격 수렴을 불러옴. 


 구세계와 신세계에서 밀 가격 차이는 93%에서 16%로,  선철 가격 차이는 85%에서 19%로, 제련 동의 차이는 32%에서 0%로 줄었고 섬유는 역전됨. 밀과 쌀을 모두 소비하는 인도의 영향으로 쌀 가격도 점점 동조됐고.


 임금과 금리는 노동력과 자본이 부족한 신세계에서 높았고 지대는 토지가 부족한 구세계에서 높았는데, 19세기 중-후반 이들이 점점 수렴되는 모습을 보임. 


 지대는 당연히 신세계의 곡물과 육류가 유럽으로 대거 건너오면서 농지 가격이 수렴된 거. 자본시장은 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자율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심지어 자본과 신용의 전송도 가능해짐. 미국이나 프랑스나 인도나 비슷비슷해짐.


 임금 수렴은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한데, 가장 유력한 설명은 신세계의 높은 임금이 이주를 유도했다는거? 결국 유럽인의 이주로 임금 격차도 점점 줄었음.  1900년 아르헨티나의 실질임금은 이탈리아의 3배였지만 지금은 역전되어 이탈리아가 5배 넘게 높음. 


 어쨌든, 미국 노동자들과 영국 지주들의 패배에 반해 영국 노동자들과 미국 지주(농민)은 승리한거임. 19세기 말에는 이에 대한 반발이 자유무역을 수용한 제2제정 프랑스를 시작으로 멕시코, 영국, 미국에 퍼져나갔음.


 프랑스는 드넓은 내륙국이고 농업국가였음. 19세기 당시 영국 인구의 1~20%가 농업에 종사한데 반해 프랑스는 아직도 대부분의 노동력이 농업에 종사했음. 게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져서 자본시장까지  망해버림. 


 그런 상태에서 출발한 공화국이 농민 표를 무시할순 없었기에 점차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됐고, 관세장벽으로 프랑스 농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전개됐는데, 보호무역이 늘 그렇듯이 별로 좋은 결과를 내진 못함.


 영국에서는 네빌 체임벌린의 아버지인 조지프 체임임벌린이 20세기 초 몰락하는 산업(특히 철강)을 보호하기 위해 영연방 블록관세를 주장하기도 했음.


 이와중에 자유무역으로 차별화된 길을 걸은 덴마크는 공업국가 루트 대신 협동조합과 품질좋은 돼지고기와 낙농업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개방적인 경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음.


 독일은, 유럽에서는 토지가 남아 도는 상황이었지만 미국, 아르헨티나 등 너무 강력한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망하게 생긴 융커들이 보호무역을 주장하기도 했음.


보호무역에 대한 결과는 다음 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