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 혹은 좌익적 스탠스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들에게 가장 친숙한 사회 이념이 뭐냐'고 물으면, 대개 사회민주주의라고 답한다. 이건 내가 대학 시절에도 그랬고, 세대가 바뀐 지금 대학생들도 대체적으로 그렇게 답한다. 그에 반해 보수 우익에 속한 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지 '정치를 떠나, 원래부터가 보수적이었다'고 답한다.


좌파들이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 정감을 갖는 이유는, 그게 기존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면모를 과감히 떨치고 맹목적 이념과 싸움이 아닌, 조화와 협력, 그리고 타협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친하게 지내서 부딪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것이거든. 이점은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한 자들이라면 본능적으로 알 테고 말이다. 일단 투쟁의 양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이지. 나는 대학시절 꽃병을 열심히 만들었지만, 요즘은 그걸 누가 학교에서 만드냐?


어쨌든 이 익숙한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 간략하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그 전에, 정치나 역사 등처럼 인간의 이념 체계를 자극하고 지배적인 내적 가치를 종용하는 학문을 공부할 때는 인터넷이 아닌, 도서관과 학교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웹 상에서의 모든 정보가 거짓이라거나, 잘못됐다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당장 내 주변에도 나무위키에 문서 기여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말 똑똑하고 돈도 많고 가방 줄도 아주 긴 박식한 양반들이다. 그러나 스스로 책을 들춰보고 펜으로 대학 노트에  직접적으로 '쓴' 학생들이 결국 고학년이 돼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갖고 졸업하거나 대학원에 온다. 아, 물론 이글루스 같은 블로그에 혼자 공부한 걸 정리하고 써보고, 고쳐보고, 선대 학자들의 글을 모방해보며 사고를 다지는 작업이 익숙하다면 그것도 훌륭하다. 수단이 뭐든 간에, 찾아보고 꼭꼭 씹어 소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최대한 쉽게 썼다. 글이 조금 길지만, 내가 글을 쓸 때 현학적으로 표현하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최대한 풀어쓰고 최대한 쉽게 썼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들도 많이 가지고 왔다.


1. 국가의 정치와 체제를 기술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

먼저, 정치적 이념은 기본적으로 국가 체제를 정의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물론 과거에 생겨났던 인터내쇼날을 위시한 정치 단체들은 마르크스의 유훈에 따라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것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한때 정당 운동의 목표 또한 국가의 타도였던 적도 있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 정치 이념을 지닌 모든 사회가 국가가 아닌 것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다음을 보자.


사람들은 늘 두 개의 단어로 그 나라의 정체성을 설명한다. 대표적인 게, '자유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등이지. 여기서 '자유', '사회'는 그 국가가 지닌의 경제적 이념의 기술을 뜻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체제의 기술을 뜻한다. 따라서 교과서에서 늘 말하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은 자유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결합을 뜻하는 것이지. 또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의 결합을 뜻하는 것이고. 이것이 1차적으로 드러나는 해당 국가의 정체성을 기술하는 방법이야.


'대한민국은 자유 시장 경제 이념을 준거적 가치로 삼아 국민이 지닌 주권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지속시키는 국가, 즉 자유 민주주의 국가.'


2. 정통 사회주의 국가와 사회민주주의 국가와의 구별, 사회주의란?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돼 있는 사람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결코 결합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 하지만 이미 사회주의 국가들은 많고, 또 이들 중에는 민주주의 체제로 운영되는 국가들도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런 나라들은 한국보다 정치, 경제적 건전성이 높은 나라들도 있다. 최근 모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근무하는 페미니스트 여자 강사가,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완전 같으니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한 적이 있다. 학문의 편식이 이런 폐해를 낳지.(내 수업을 듣는 남학생들도 잠재적인 성범죄자라고 한 것은 덤) 고등학교 대입 논술 준비하는 애들도 구별하는 걸 박사 학위 취득자가 모르다니. 어쨌든.


먼저, 사회주의자들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외국인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Where are you from?', 혹은 군대에서 신병이 오면, "너는 어디 사냐?"잖냐. 즉, 사람들은 타인을 대할 때 그 자의 출신지나 인종, 국적을 묻는다. 그러나 정통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게 아니라, "너는 자본가냐, 노동자냐?"라고 묻는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그 자가 어떤 나라 사람이든, 어디에 살든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적 규모의 사회주의 인터내쇼날 같은 게 만들어지는 것이지. 사회주의의 이념이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전 세계적으로 퍼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인종과 국적, 사는 곳이 달라도 일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정통 사회주의 국가는, 집권하는 정당이나 단체, 혹은 계급은 올곧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가를 말하는데, 바로 노동자 계급이 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모든 경제적 재화들을 사회를 위해 공동 분배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멈추면 보통의 사회주의인데, 한편에서는 이런 혁명을 멈추면 또 자본가들이 생길 수 있으니, 마치 사람 몸에 피가 돌듯, 혁명 또한 영원히 순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등도 있지. 사회주의에서는 여기에 국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동시에 이들에게 있어 주권은 '국적을 지닌 국민이 아닌, '노동자'이기에 계급 자체가 사회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에는 민주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중공이지.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추대된 것이지, 중공 국민들이 투표로 뽑은 게 아니니까. 이게 사회주의를 아주 아주 아주 간략하게 내린 정의다.


3.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쉽게 시작하면, 위에서 언급한 사회주의, 즉 경제적 재화들을 사회를 위해 공동으로 분배하는 것에 민주주의 체제를 결합시키면 완성되는 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다.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결정적 차이점은 노동자가 주가 되되, 사회를 지배하는 건 노동자가 아니라 국민, 즉 모든 권력은 계급이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지. 우리의 6공화국 9차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적용되면 사회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지.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들은 처음부터 이게 적용이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 그 자신, 혹은 그에게서 파생된 정치적 이념들보다 대개 온건적인 편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카우츠키의 설명 방식을 차용해 볼게. 네오 마르크스주의자인 카우츠키는 사회민주주의가 정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도 알았던 거지. 마르크스주의에서 시작된 급진적 사회주의 운동의 말로가 어떤지를. 카우츠키는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비판하는데, 뭐냐면 바로 민주주의를 끌어다 쓰는 거였지.


고인 물은 썩는다. 그래서 자본가들로 인해 다시 압제가 시작되기 전에 끊임없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고인 물을 내치고 새로운 물을 돌리자는 건데,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여기에 주안점을 뒀다면, 카우츠키는 그 혁명의 주체를 다름아닌 국민으로 치환시킨 거야. 국가 통수권자들과 국회의원들은 임기가 있으니, 때려부수지 않고도 정당한 방식으로 지배 계급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지. 사회민주주의가 왜 점진적이라는 것인지 이제 감이 오지? 그래서 카우츠키는 민주주의 체제의 완성 단계인 국민 주권 국가가 사회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기본적 토대가 된다고 주장한 거야.


그래도 카우츠키도 어디까지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대목이 드러나는데, 뭐냐면 능력에 따라 불평등이 용인되는 자본주의의 체제를 그저 보고 있을 수만은 없던 것이지.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이 이뤄지면, '모든 사람들이 능력과 필요에 따라 재화들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가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공산주의까지 가는 과도기를 사회주의라고 했던 것이고, 그런데 카우츠키는 약간 다르게, 자본주의를 넘어 이상 사회로 간다는 표면적 양상은 마르크스와 흡사하지만, 그는 그 끝이 공산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라고 본 거지. 그래서 이 과도기에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를 넣은 것이고.


자본주의에 대한 해체 작업은 최근 150년 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에 나타난 케인즈 주의는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희대의 센세이션을 일으켰지. 갑자기 왜 이 얘기를 하냐면, 이때 자본주의를 타도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사회주의자들도 반드시 타도해야 한다는 게 아닌, 바꾸는 것으로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줬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을 보고. 그래서 1960년대에 대두된 수정자본주의라는 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고. 이 수정자본주의는 특히 일본에서 활발히 연구됐고, 이 영향을 받은 한국 등지에서도 논의가 빠르게 진행됐지. 자본주의도 스스로 돌아본 거야. 자신들의 과오는 정녕 하나도 없었냐고. 동시에 사회주의도 마찬가지.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가 비슷하다 생각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지.


다시, 카우츠키는 여느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다르게,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발전의 임계점은 사회적 불평등 따위의 전형적인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지점이었지. 체제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고치는 것으로 더 나은 사회가 온다고 믿었고, 그게 실현되면 비로소 사회민주주의 사회가 이룩된다고 본 것이야. 나 또한 십 여 년 전 카우츠키를 공부하면서 굉장히 가슴이 떨렸던 적이 있었다. 당시엔 군대에서 몰래 읽고 있던지라, 가슴이 떨린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동시에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이 말이 잘 먹히는 사례가 바로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다. 지금까지는 경제 체제를 중심으로 설명했지만, 사회민주주의는 비단 이런 걸로만 설명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그래서 가져온 게 다음이다.



아주 유명한 '지식채널e-핀란드의 교육' 편이다. 이미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야. 사회민주주의를 교육 쪽으로 끌어오면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는 거다. 내가 방금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동시에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고 했지? 이 영상을 보면 이해가 될 거다.


어쨌든 사회민주주의라는 수박의 겉을 한번 훑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