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 채널

여러분은 일본인과 교류할 때 한일관계 같은 정치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나요?

워낙 민감한 한일관계이기 때문에 저는 제 입으로는 잘 꺼내지는 않는 주제입니다만, 가끔씩 이야기를 하고는 합니다.
오늘은 제가 한 일본인 가족과 직접 교류하게 되면서 나눈 경험을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일단 제가 말한 제목의 주인공은 저의 지인인 여고생 A양의 아버지가 되겠습니다.

A양의 아버님과는 약 2년 전 여름에 처음으로 집에 인사를 가게 됬을 때 만나뵈었습니다.
인사를 하게 된 계기는 당시 A양이랑 알고 지내게 된지 5개월 정도였고, 제가 일본에 왔다갔다 할때마다 만나는 사이였는데, 
시내에서 통금시간 직전까지 놀다가 A양이 연락을 깜빡한 바람에 저와 있다는 것이 들통이 난 사건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직접 사과드리러 가게 되면서 인사를 하게 된 상황이었죠.
첫대면 당시 저에 대한 인상은 최악이었습니다. 정말 잔뜩 긴장을 하고 갔습니다. 
A양이 말하길 자신의 아버지는 한국을 싫어하는 편이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혹시나 어디 수틀려서 얻어맞지는 않을까, 경찰에 신고당하지는 않을까...그런 각오로 현관 앞에서 인사를 드렸는데요.
다행이 부모님은 일부러 표정으론 내지 않고 정중하게 절 맞아 주셨습니다. ㅎㅎ
A양의 집은 시골에 위치한 전통 일본 주택이었고요. 
현관을 통해 다다미가 깔린 거실에 들어서니 어머님이 바로 옆에서 비디오 카메라를 세팅하고 계셨습니다 ^^;
(아마도 저에 대한 정보가 연령 밖에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여서 취하신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좀 많이 험악한 분위기였고요. 아버님은 나름 제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신 것 같은지 편하게 앉으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전 분위기상 바로 도게자 나올 자세로 각 잡고 빠르게 정좌 했고요ㅎ.
하여튼 모두가 정좌한 다음 저와 A양이 자초지종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하고 나서야 좀 긴장이 풀렸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가 이름을 밝혔을 때 A양 아버님이 한 5초 정도 멍을 때리고 하신 질문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는데요.
"北の人?南の人?(북쪽 사람? 남쪽 사람?)" 이라고 물으셔서 일단은 남쪽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ㅎㅎ
그러자 바로 "문재인은 정말 북한에 나라를 흡수시킬 생각입니까?"라고 말하시더군요. 
일단 그 자리에서 대답하기엔 좀 곤란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고요 ㅋㅋ
A양의 아버님은 제가 이름을 말하기 전까진 한국인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셔서 좀 신기해 하시더군요.
그 때문인가 그 순간 부터 좀 분위기가 풀리더군요. 일본어 어떻게 배웠냐고 하면서 막 궁금해 하시기도 하고...
아버님은 제 이야기를 이해해주신 건지 제가 A양과 친하게 지내는 걸 허가해주셨고, 대신에 어디에 놀러가서 늦게 들어올 때는 꼭 연락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땅에 박을 기세로 '肝に銘じておきます(명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그 날은 그렇게 첫 대면이 끝났습니다.
집을 다시 나서는데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좌를 오래해서 인지, 너무 긴장해서 인지...ㅋㅋㅋ

이때 부터 저와 A양의 가족분들의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첫 인사를 마치고 한 달 후에 저는 정식으로 다시 한 번 인사를 하러 A양의 집에 찾아갔는데. 
인사 드리러 가기 전에 A양이 아버지한테 제가 온다고 말하니까 문재인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더군요.
그 말을 듣고 사실은 저를 내심 마음에 안들어 하시는 건 아닌지 싶어서, 가족분들이 좋아하신다는 테미야게(선물)를 사들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A양의 집으로 향했지요. 
집 근처 역에 도착하니까 오후 5시 쯤 되었는데요. 어머님이 A양한테 전화로 소바인지 라멘인지 저한테 물어보라고 하셔서 소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A양의 집에 들어가게 됬는데, 이번에는 웃으면서 맞이해 주시더군요. 
다시 한 번 아버님과 대면하게 됬는데, 뭘 이야기 해야 될지 좀 뻘쭘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감사 인사를 드리면서 대화를 시도하니까 금세 잘 받아 주시더군요.
그러더니 다시 한 번 문재인 이야기가 나왔는데, 일단 문재인에 대해서 제 생각을 피로 하니까 흡족해 하시면서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야 중국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나선 한국이 점점 북한에 먹히고 있는 듯 한데 일본에 와서 정착 할 생각은 없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첫 만남부터 느낀 점이지만, A양의 아버님은 문재인에 대해서 굉장히 반일적이고 친북적인 인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스탠스 역시 반일 민족주의 사상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반일 감정이 없고,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걸 인식하고는 말씀을 줄이시더군요.

그리고 주문한 배달(철가방에 넣어 오더군요)이 오자 맛있게 먹으라고 한 다음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일본 시골 마을에서 먹는 배달 소바는 첨 먹었는데 신선해서 그런지 맛있었고요 ㅎㅎ
한 8시 쯤 되자 돌아가려고 했는데 막 비가 엄청 쏟아 지더라고요. 이때 아버님이 오시더니 묶을 데는 있느냐라고 물으셔서 딱히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하룻밤 머물고 가라고 제안 하시더군요. 
전 처음에 좀 갑작스러워서 사양하려고 했는데, 이 때 속물 발동해서 그냥 하룻밤 신세지겠다고 했습니다 ㅋㅋㅋ
A양은 신나서 방 청소 한다고 2층 방으로 올라갔고, 저는 그 사이에 아버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때 받은 질문이 '태권도를 할 줄 아느냐?'였는데 군대에서 전투태권도를 좀 배웠다고 대답하니까 좀 반응이 좋으시더군요.
그러면서 '일본의 젊은이들은 나약해서 군대를 보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여기에서 뭔가 군대를 군대라고 부를 수 없는 일본의 설움을 좀 느꼈습니다. 
이런 아버님에 비해 어머님은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위기였습니다.
시차가 있냐라는 둥 물으시기도 하고, 항공권이 싸다라는 말에 언제 한국이나 가볼까? 이 정도 셨구요.
A양의 할머님과 할아버님은 그저 하룻밤 숙객인 저를 먼 곳에서 왔다는 이유로 정말 극진하게 대접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정말 갈 때마다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A양의 가족은 무려 8명이나 되는 대가족이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장녀(A)양, 차남, 삼남, 막내동생이 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꽃집을 경영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었습니다.
자녀분들은 순서대로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보육원에 다니고 있었고요.
대대손손 그 마을에서 떠나지 않고 살고 있어서  참 타임슬립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시골마을은 이런 대가족이 아직도 많다고 합니다.
이 날 A양의 집에 머물르면서 다른 가족분들과도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린 동생들이 매우 귀엽더군요.

그리고 동시에 아버님이 20대 후반 외국인 남성인 저에게 딸과 같은 방에서 자라고 하시는 걸 보고 엄청난 컬쳐쇼크를 받았습니다...ㄷㄷ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까 태풍 때문에 귀국편이 결항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비행기를 재예약 하고, 잠시 A양의 방에서 대기를 타야 했는데, 여기서 꽤 가족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일하는 걸 중학생인 차남이 도와주고, 장을 초등학생이 삼남이 보고, A양은 막내동생 돌보기랑 요리를 담당하더라고요.
A양이 보통 또래들 보다 더 가정적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저도 삼남인 동생이랑 같이 장을 보러 가고 그러면서 많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고, 그 날 A양의 집에서 삼시세끼 다 신세를 진 다음 야간 고속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해 귀국했습니다.
이때 아버님이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하셨는데. 그 때 많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이후로 A양을 만나고 시간 날 때 마다 A양의 집에서 식사를 얻어먹거나 자고 가는 등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족 분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됬고, A양의 아버님도 자주 뵙게되니까 별명을 만들어서 부르시더라고요. 

하지만 작년에 한국의 강제징용 기업소송 문제와 일본의 대한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해 촉발된 민관의 반일 시위 때문에, 약간 일본에 놀러 가기 두려웠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때마침 우연하게 아버님의 페이스북 계정을 발견한 적이 있는데,과거 게시글 중에 넷우익이 주장할 법한 편향적인 내용의 글을 공유하고 있었거든요. 한국의 반일운동에 대해서 조롱하는 글이라던가, 국내 반일운동가에 대한 제재 서명 운동이라던가.
실은 아직도 나에 대해서 영 좋게 안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그랬습니다. 
실제로 가끔 A양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야후뉴스나 토라노몬 뉴스, 유투브의 우익 패널을 자주 본신다고 하더라고요. 
확실히 성향이 좀 그쪽인 분인건 확실했습니다. 
특징적으론 아사히 뉴스를 싫어한다는 점과 중국, 북한, 한국의 좌익 반일 세력에 대한 경계심, 우익사상가의 책을 주로 읽는 점.
평범한 한국인으로썬 불쾌한 부분이지만 저한테 여태껏 잘해주셨기 때문에 어떤 입장을 고수해야 될지 저는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생일 때 A양과 약속 때문에 다시 일본에 가게 되었는데, 무려 제 생일 파티를 온 가족이 준비해둔 겁니다.
그때 좀 폭풍 감동 먹어서, 개인적으로 아버님한테 '이 시국'에 절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눈물 흘리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좀 뜬금은 없지만 '원래 한국이랑 일본은 월드컵도 같이 개최하고 사이가 좋았는데 문재인 땜에 참 안타깝게 됬다'라는 한마디로 한일관계를 평하면서 A양과 저에게 '서로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버님의 사고를 개인적으로 알 수 있었는데, 요약하자면 국가와 사람은 별개라는 것 이었습니다.
즉 반일=적 이지만 한국인≠적 인셈이죠.
알고보니 아버님은 원래 대학시절 제2 외국어로 한국어를 전공할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한국인의 반일 기조를 깨닫고 한국에 관해 비판적인 의견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A양은 이런 아버지를 두고 '사실 우리 아빠는 한국인을 엄청 사랑한다' 라고 평가했는데요.
좀 비꼰 말이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이 말에 이해 갔습니다. 
아버님 본인의 입장에서는 반일 기조로 들어서는 한국인들이 안타까워 보인 거죠.

물론 아버님의 의견에 제가 전부 일뽕마냥 천황폐하만세 외치며 동조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꽤나 합리적인 사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다른 국적의 개인과 개인에게 있어서 편견이나 의견의 차이는 가질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로써 존재하는 게 인간관계의 끈끈한 정이라는 것을.
여태까지 제가 일본에 방문 해서 놀러올 때 마다 잘 대접해주신 가족분들을 생각하면 A양의 아버지를 단순한 넷우익 중년 아저씨로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요.(A양 본인은 아버지를 두고 그냥 넷 우익이라고 평가했습니다만...ㅋㅋ)

만약에 한국에 흔한 반일 감정을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 딸이 갑자기 일본인 남자를 데려온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만약 내가 같은 입장에 선다면 A양의 아버님과 같은 사고로 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평범한 일가의 가장이 속히 한국에서 말하는 넷우익, 혐한으로써 규정되는 부류라는 걸 느끼고 혐오와 일반화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이해 부족의 극단적 현상이 바로 혐오아닐까요.
혐한도 혐일도 결국 인간의 본질을 잘 모르고, 서로의 인생에 대해 잘 몰라서 벌어지는 일이죠. 

막상 제가 그 일상으로 파고 들어간 결과 아버님은 매번 만날 때 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번의 코로나 사태로 제가 무려 두어달 간 A양의 집에서 신세를 졌을 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예 둘이서만 드라이브를 간다던가, 담배를 나눠 핀다던가, 일을 도와드린다던가 등 여러 일이 있었는데. 
아예 우리 집에는 자식이 5명이나 있다면서 저를 다 큰 아들처럼 말하시기도 하고...
과연 이 아버님이 예전이라면 설마 자신의 집에 한국인 남성을 머물게 할 일이 생길 줄 알았을까요.

예를 들자면 제가 제안한 A양의 한국 방문 계획도 처음엔 부정적이었지만, 졸업후에 진정되면 보내겠다고 말씀하시고, 스스로도 제주도에 가 보고 싶다고 하신다던가. 한국의 코로나 대응이 매우 잘되고 있다고 일본도 배워야 한다던가 등등
꽤나 많은 사고의 변화가 생기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때 같이 아버님과 술 한 잔 걸쳤는데 본인 왈 사실은 자신은 우익이 아니라 좌익이라고 하시더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뭐 천황을 상징적으로써 존경하는 천황제에 찬성하는 좌익이라고...
하여간 역사문제나 영토문제 등 민감한 화제에 대한 의견 같은 부분은 못 들었지만, 
자세히 알고보니 넷우익도 아니고 오히려 야후 뉴스 댓글 등에서 중국인, 한국인을 혐오하는 의견 등에 의외로 매우 부정적이셨습니다.. 
그리고 흔히 일본우익=아베 지지자라는 편견과는 달리 아베와 자민당 지지자도 아니었고.
A양의 아버님의 경우는 뭐 일본에 흔히 있는 중도층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스탠스로썬 넷우익 테이스트를 느꼈는데.
인터넷에 퍼진 지식에 의존하는 중년층의 정보 편향 등을 고려해보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즉 처음에 제가 느낀 단순한 넷우익이라는 것도 아버님의 정치외교관에 대한 인식의 일부가 돋보였을 뿐 제 편견이었다는 것이죠.

결국 중요한 건 혐일도 혐한도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혐한인 인간도 완전한 혐일인 인간도 사실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상에서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 댓글창에 서로의 언어로 저주하거나 욕하지만, 눈을 돌려보면 별다른 자극도 없는 삶의 연속이죠.
서로를 알아야 혐오도 편견도 사라진다는 것을 저는 A양의 아버님과의 교류를 통해 확실히 깨달은 것 같습니다.

결론은 평화가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