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아이치 현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약 3일 간 아이치현의 곳곳을 돌아다녔고 마지막 날 동행해준 친구가 차 끌고 근처 역인 미카와안죠(三河安城) 역에 내려줘서 그대로 도쿄로 향하는 특급 코다마에 탑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날씨는 9월이었는데 정말 엄청나게 더웠습니다, 안그래도 더운데 옷이나 머리카락이 땀범벅이되서 정말 불쾌했습니다. 
표를 구매하고 난 다음 재래선 역에서 멍때리고 있다가 신칸센 승강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열차 출발 2분 전에 간신히 달려서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충전이 가능한 차량 맨 앞쪽 좌석 창측에 앉고나서 열차가 출발했는데 얼마 안가 바로 다음 역인 토요하시 역에서 멈추더라고요. 
그 때 깨달았죠, 코다마는 각역정차하는 열차라는 걸. 
아 그냥 나고야로 돌아가서 노조미 타고 갈 걸(...)
그래도 이미 탑승했는데 뭐 어차피 시간도 남으니까 그냥 창 밖이나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가기로 했죠.
바로 그 때 아주머님이 아주 급하게 달려와서 열차에 타시더라고요. 얼마나 급했는지 막 땀도 흘리시고, 막 숨을 고르시다가 일단 제 옆 좌석에 앉더니 '죄송한데 이 열차를 타면 XX역에 정차하나요?' 라고 물으시더군요. 
전 그때 열차가 어디 역에 정차하는 지도 잘 몰랐지만 일단 스마트폰으로 알아본 다음 어디어디 역에서 재래선으로 갈아타야 되는 것 같다고 얘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차가 출발하는데 아주머님이 너무 지치고 목말라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저도 목 마르기도 하고 해서 그 다음 역에 잠깐 동안 정차하는 사이에 재빨리 승강장 밖으로 나와 자판기에서 생수 두 병을 뽑고 다시 들어와서 아주머님에게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감사하다고 가방에서 곤약 젤리를 꺼내서 주셨습니다. 저도 참 뿌듯했고요.
그리고 한 30분 동안 짧게 대화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아주머님은 용무로 아이치현에 왔다가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이었고, 제가 한국인이라는 걸 말하니까 일본 대학생인 줄 알았다면서 깜짝 놀라시기도 하고, 제 여행 이야기도 좀 풀면서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머님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얼마안가서 도중에 내리셨고요. 
저는 사소한 경험에 좋은 기분이 되어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신칸센에 몸을 맡겨 도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열차가 시즈오카의 미시마(三島) 역에 정차했을 때 탑승한 한 젊은 여성분과 눈을 마주쳤는데요. 
얼굴이 진짜 너무 제 타입인 겁니다 ㄷㄷㄷ. 순간적으로 설레이는 바람에 제대로 주시는 못했고요.
여성분이 두리번 거리다가 우연히 제 옆자리에 앉았는데 심장고동이 막 느껴지더라고요.
곁눈으로 힐끔보니까 얼굴선도 가늘고 핑크색 입술에, 피부도 약간 태닝한 듯이 살짝 갈색 톤에, 볼에 주근깨가 있었는데 화장끼는 없어보이고 그게 또 너무 청순해보이는 겁니다.  
청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몸매가 매끈해보여서 너무 잘 어울리고...하여간 정말 갸날프면서도 건강해보이는 인상의 여성분이었습니다. 
그 분위기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투명하다라고 할까요
목에는 하얀 필름 카메라를 매고 있었는데, 이 사람도 혼자서 여행한 건가? 대학생일까? 어디에 살까? 등등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는 그런 느낌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사기 때문에 일부러 뻔히 쳐다보지는 않았고요, 태연함을 유지하면서 가기로 했습니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깨에 부드러운 머리카락 감촉이 느껴지더군요. 
옆을 돌아보니까 여성분이 많이 피곤했던건지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주무시고 있더라고요;;;
막 곤히 잠에 빠져들어있었는데 정말 개이득인 순간이었습니다. 냄새도 정말 향기로웠고요. 잠자는 얼굴도 대박 귀엽고.
하여간 깨울까 말까 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했습니다 ...라는 건 개소리고요 제 사심 때문에 그냥 놔뒀습니다 ㅎㅎ
그러다가 잠에서 깼는지 다시 고개를 원상복귀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여성분에게 '졸리신 것 같은데 창가로 자리 바꾸실래요?'라고 기대고 자기 편하게 창측자리를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여성분은 고맙다고 하고 저와 자리를 바꿔 앉고선 다시 잠에 들었죠.
그런데 한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깨더라고요. 
그런 상태로 계속 있으니까 뭔가 말은 걸고 싶긴 했는데 제가 워낙 쑥맥이라서 초면에 적극적으로 말을 걸지는 못하는 성격이라 ^^;
하여간 그 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은 다 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연락처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죠.ㅠㅠ

근데 제 착각 혹은 기분 탓이겠지만 그 때 여성분도 뭔가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가끔씩 이쪽을 힐끔 보시더라고요.
뭔가 하여간 그 자리에는 오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혼잡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후끈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내는 그런 분위기를 여성분도 캐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도중에 한번 눈이 마주치니까 여성분이 수줍은 듯이 미소를 지었는데.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 미소입니다.

그리고 열차가 오다와라 역에서 발차했을 때 여성분이 머뭇거리다 저에게 묻더군요.
'あの、次の駅が新横浜駅ですか?(다음 역이 신요코하마 역인가요?)'
그래서 전 'はい、次の駅です(네. 다음 역이에요)' 라고만 대답하고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모처럼 대화할 기회였는데, 거의 종점이기도 하고 시간에 채여서 찬스를 제발로 찬 듯한 기분이 들어 약간 씁슬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열차는 그렇게 다음 역인 신요코하마 역에 도착하고 그녀는 짤막하게 감사인사를 하며 열차에서 내려 유유히 제 갈 길로 떠났습니다.
그녀가 열차에서 내린 후 약간의 허탈감과 말을 걸지 못한 후회가 남긴 채로 저는 종점인 도쿄역에 도착했고요.
다음 날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기 까지 그 일이 인상에 남아서 회상에 젖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가는 도중에 있었던 일이라서 비록 그 여성분과 대화를 나누거나 연락처를 알게 되거나 뭐 그런 일은 없었지만.
일본 속담에一期一会(이치고 이치에)라고 신칸센을 타면서 스쳐간 짧은 인연이나 만남이 개인적으로 되게 감성포텐을 터지게 만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녀를 두고 新幹線のお姉さん(신칸센에서 만난 누나)라고 가끔씩 친한 친구에게 농담으로 썰을 풀기도 하는데.
사람 인연은 운명에 좌우된다고 만남이라는 건 참 신비롭고, 서정적이네요. ㅎㅎ 
실제로 그 짧은 시간에 저는 운명을 느꼈습니다 ㅋㅋㅋ
그리고 저는 그 이후로 일본에서 어디를 갈 때 시간여유가 있으면 코다마를 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꼭 코다마 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