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라,
회색빛 적적한 우리의 아파트를.

떠나가라,
푸른빛 우울하게 빙그레 구름 낀 하늘 아래를.

떠나가라,
주홍빛 서늘한 가정집 밑 등불을.

떠나가라,
재빨리 점멸하는 적색등 쪽을 흘러서

보리꽃이 피어오른 사막을 향해
홀로 걸어라.

주위에는 아무도 없이
수통 한 병과 해진 옷가지만 들고,

돛대를 피우지도 않고 태워만 가며
우리의 회색에서 멀어져 가라.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에 찬란함이 있을지니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아라,

묶여 있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