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요?"

  현태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저 더 이상 생각하지 싫다고 선언하는 것 뿐이잖아요?"

  도로시는 무심하게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군단 말이지."

  미술관 한쪽편에 도로시와 현태가 서 있었다.

 "이런 것들은 전부 가식이에요.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든 간에, 저는 이것들이 공간 낭비라고 봅니다. 자. 나가서 햄버거나 먹죠."

 "너야말로 이 작품들을 보고 더이상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 아니야?"

 "아니요. 저는 물론 이 작품들의 시도에 대해서는 존중해요. 의미있는 시도였어요. 하지만 나는 그저 여기에 있기가 싫습니다. 제가 선택한 길로 가야죠."

  도로시는 생각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한 길? 그런 곳으로 가기에 그녀의 생각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했다. 어쩌면 그녀가 노력하기 싫어했을 수도 있다. 그녀는 아무것도 이룬 것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연줄을 이용하여 유리로 된 부자집의 가정부가 되었을 뿐이다. 그녀가 하나 잘한 것은 자신이 가꾸고 있는 집 안의 책들을 전부 읽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래. 너 마음대로 생각해. 너 마음대로 꿈꾸고 행동해라."

 "안그래도 그럴 거에요."

 현태가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고 도로시는 그것을 잽싸게 뺐었다.

 "도구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지. 뭐 어때. 이제 너 혼자서 머릿속으로 논문을 쌓아올려봐. 마치 한여름 밤의 모래로 지어진 바벨같은 것이겠지만."

 "그래요. 저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해요. 오늘 밤에도 잘 때 재미있는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보는건 어떠니? 그러면 더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단다."

 "당신은요?"

 "나? 나는 가정부야."

 "연애 상대로써 저는 어때요?"
 "너무 어려. 애같아. 그래서 싫어."

 "이런."

 "그래도 내 생각에는 너를 좋아해줄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가요....."
 둘은 전시관을 나와 기념품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으로 갔다. 도로시는 그것들이 건전해보였다. 현태에게는 그것들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짜들이 세상에 널려있어! 진짜는... 진짜는 바깥에 흩날리는 벚꽃같은게 진짜야!"

 가게에 있는 점원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현택을 흘끗 본다.

 "벛꽃을 가까이에서 보면 그 얇고 구불거리는 다섯개의 작은 꽃잎이 겨우 매달려있는 걸 볼 수 있어. 그리고 그 꽃잎들은 구불구불하게 자라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려있어. 나뭇가지는 수십 갈래로 뻗어나와있고 그것들이 분화된 곳 하나하나를 거슬러 올라가면 밑동으로 내려가게 되지. 그렇게 전체를 보면 나무 한그루가 얼마나 아름다운 개체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어. 한편 공원에는 나무를 잘라서 공중을 걸어다닐 수 있는 보도를 만들어두기도 하지. 그 보도를 따라 걸으면 경사면을 밟지 않고도 언덕을 오를 수 있거든. 그렇게 나의 인지는 공원의 형태로 넘어가게 돼. 그건 다른사람들, 정확히 말하자면 사업의 결과물이지.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들이 하는 일이 최대한으로 사회에 공헌될 수 있도록 노력한 셈이지. 그리고 나는 그것을 평가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고. 그러다가 문득. 그렇게 하나하나 평가하던 중에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들에 대해서 나는 그것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거기에 비로소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거야. 그런 과정이 삶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도로시는 그것을 그저 듣는다. 그녀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저는 그저 도련님이 싫을 뿐이에요."

 "내가 왜?"

 "제멋대로인데 나한테 무례하기까지 하잖아요? 기본이 안되어있어. 기본이."

 현태는 그것을 듣고는 고개를 대충 까딱거린다.

 "나는 질풍노도의 나이이기 때문에 실수는 하기 마련이고 누나가 그걸 이해해주면 저는 감사할 따름이에요."

 도로시는 진심을 말한다.

 "나는 너가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란다.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것 말이야. 물론 나도 아직 많이 서툴어. 그러나 우리 둘다 조금 더 노력해보면 되지 않을까?"

  "아니에요."

  둘은 전시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리 둘은 둘다 실패의 경사면을 타고 아래로 끝없이 내려가고 있을 뿐이에요."

  도로시는 눈에 힘을 준다.

  "좋아. 좋아. 나는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운동방정식을 계산할 수 있어. 뉴턴 역학..... 라그랑주 역학...."

  "경사면의 각도는 30도. 질량을 m. 마찰계수를 μ. 또 뭐가 있을까?"

  도로시는 앞서 걸어나가서 건물 밖의 계단을 내려간다.

   "아무튼... 엄청 빠르게...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현태는 뒤따라간다.

   "누나 잡으러 갈거에요."

   "나한테 앵기지 말아라."

   "누나 남자친구 없잖아요."

   "나 여자친구 있다."

   "진짜 재미없어.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을 수 있지?"
    도로시는 멈춰서서 하늘을 보면서 말한다.

   "그래. 너가 생각하기에 세상은 의미없겠지. 지금의 일상도 별 의미가 없을거야. 그저 시간낭비일 뿐일테고. 우리는 아마 역 근처의 빵집에서 먹을것을 산 다음에 같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겠지."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나는 너희 부모님의 명에 따라 너희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정돈하고 집안일을 해내지. 그건 나에게 있어서 노동이긴 해. 나는 세상에 꼭 의미같은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무언가에 매혹되본 적도 없어. 단지, 내가 마음속으로 이런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은 해. 그저 사람구실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 그러다가 조금 즐기고 싶으면 계획해서 여행도 떠나고. 나는 너에게 말하지 않은 숨겨둔 남자친구가 있단말이지. 그걸 너가 농담으로 듣든 말든. 나의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나는 쇼핑몰을 둘러보고 사고싶은 것들을 사. 필요없는 것들은 버려. 나는 그냥 세상이 변화는 것을 감각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 아무튼. 자정이라서 하늘이 어둡거나, 대낮이라서 하늘이 푸르게 발거나 뭐든 4월의 하늘이야. 그래. 너처럼 더이상 생각하기 싫어질 때가 있겠지. 아마 너가 누구보다 더 해체주의를 잘 할 것 같이 보인단 말이야."

   "뭐. 인정할까? 말까? 해체주의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그냥 생각이 하기 싫어진단 말이야."

   "그건 너가 생각이 많아서 그래. 그 생각에서 한 발짝 멀어지는 것을 연습해봐. 그리고 진짜 어디로 가야하는지. 나침반이 어디로 가르키고 있는지를 확인하란 말이야. 나침반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둘은 혼잡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나는 그런거 몰라. 직접적인 것을 말해주세요."

   "바로 정답이라는 거야. 효율적인 경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최선. 누군가는 어떤 것을 10초만에 답할 수도 있고 느릿느릿한 사람은 60초정도 걸릴 수 있겠지. 그러나 중요한 건 1시간 정도 헤메다가 결국 적절한 답을 찾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일주일을 싸매고 있어도 이상하게 헤메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거야. 사실은 둘다 중요해. 사람들은 서로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서로 보완완할 수 있다면 목표하고자 하는 바를 이상적으로 이룰 수 있겠지."

  도로시는 길거리를 보았다.

  "여기는 벛꽃이 막 핀 것 같네. 지기까지 오래 걸리겠는걸."

  현택은 문득 민석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것을 추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길거리에 나와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에서 나와서 무엇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택은 말했다.

  "벛꽃을 묘사하는 건 기술적 어려움이에요. 그리고 저는 도로시 누나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집에 가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체계적이고 명징하게. 그러나 아마도 실패할 것 같아요. 지금 느낌으로는 반반이지만 아마 결과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아주 높아요."

  도로시는 현택이 그녀의 눈을 보는 것을 본다.

 "그런데 저는 당신한테 이성적으로 이끌리지는 않아요. 물론 저의 성욕. 어느정도 크기일까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니, 제가 괜한 짐을 부과한 것 같아요. 그냥 흘려버려요. 누나는 밥맛이에요. 저는 다른 여자를 찾으러 나설겁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저는 제 자신의 모순을 해결해야 합니다."

  도로시는 그를 잠시 보고서 다시 하늘을 본다.

 "저는 도련님이 어떤 것에 매혹되어 있는지를 조금 더 연구하고 싶네요. 그래. 뭔가 의미있는게 있겠지."

 버스가 도착하고 현택은 말했다.

 "저는 이런 그럴싸한 막말들의 대화에 불합격을 줄 수 밖에 없어요. 우리 둘다 정신 못차리고 있어요."

 "그 돌고래랑 찍은 사진은 예쁘던데. 그거 엽서나 하나 살껄 그랬나."

 버스가 출발한다. 현택은 잠이 밀려드는 것을 느낀다. 버스 밖으로 벛꽃이 휘날려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