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메모리! 승부다! 그러니까 사탕 좀 골라줘."

"사탕?"

이번에는 뭐 하려는 지 궁금해지는 지경이었다. 자꾸 승부하자니 뭐니 하면서 이상한 것들 막 가져오더니 오늘은 또 뭘까.


"이번엔 또 뭐? 사탕 골라서 뭐하려고? 이번엔 무슨 승분데?"

"그, 그런 거 있어. 착각하지마. 딱히 사탕이 목적인 건 아니라고."

계속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성적 가지고 이겨먹겠다 그러더니 갈수록 내용이 이상해져갔다. 그러더니 요즘은 그 내용이 대체 어떤 목적으로 접근한 건 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얘를 어떻게 떨어뜨려 놓아야하나 별의 별 수를 다 써봤는데 소용없었다.

 

"그냥 네가 골라. 알아서 해."

"그래도! 내가 고르는 거랑은 다르지!"

눈이 너무 반짝거렸다. 부담스러웠다. 변명거리를 찾아야 되는데... 대충 프리바 핑계 대면 되겠지.

"귀찮으니까 프리바 찾아가."

"그치만 걔는 학원이니 과외니 뭐니 많단 말이야."

"아직도 안 끊었대?"

프리바가 고3이 끝났는데 아직 학원을 안 끊었다고? 그렇게 학원 싫어하던 애가?

"뭐, 대충, 그러니까, 걔네가 좀 집이 빡세잖아? 아무튼 그니까 아무튼 너밖에 없단 말이야. 자, 가자? 빨리 안 오면 끌고가버린다?"

뭔가 자꾸 얼버무린다. 자꾸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있었다. 내 경험에서 미루어보건데, 이건 진짜 위험신호였다. 이번엔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그때 저 멀리 센사가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아, 그래, 얘한테 떠넘기자.

"야, ㅅ..."

"됐으니까 좀 와! 죽인다?"

그순간 오네가 갑자기 팔을 홱 당겨 끌고갔다.

"왜, 왜, 왜? 아니, 나 싫다니까?"

"안 해주면 덧나? 왜 자꾸 안 따라와?"

"내가 왜? 아 또 무슨 짓을 하려... 아, 잠만 넘어져! 넘어진다고!"

"그냥 좀 따라오라면 따라와!"

"아니, 잠만..."


그렇게 계단을 내려갔다. 한 발 한 발이 오네가 당기는 힘 때문에 속도를 못 이기고 헛디딜 뻔 했다.


그렇게 몇 분을 끌려가 도착한 곳은 동네 마트였다. 내가 온갖 불평불만을 쏟고 있는 사이 오네가 곧장 사탕 코너로 갔다.


드디어 오네가 갔구나. 드디어 얘로부터 해방이다 기뻐하면서 이제 다른 데 몰입하자고 생각했다.


그 사이 생각해보았다. 이런 관계는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생각해보면 참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작년인가 제작년인가부터였을 것이다. 오네 토오네가 성적으로 승부 걸자며 선전포고했다가 나한테 처참히 깨졌다. 근데 졌는데도 딱히 타격이 없다는 듯이 다음 시험에서도 승부를 걸자며 더 졸졸 쫓아다녔다. 명분이 생겨서 좋았던 건가.

운동회 때는 나한테 승부걸었다가 결국 무승부가 됐었다. 굳이 나랑 같은 조 하겠다고 깽판치다가 결국 나랑 다른 조가 됐는데, 굳이 동네 공원으로 불러다가 게임을 시켰는데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몇 달 전에는 오네가 처음으로 이겼다. 식당에서 음식이 누구 게 먼저 나올 지 맞추자더니 자기 예상이랑 틀렸는지 내 것이 더 먼저 나왔던 것이었다. 그때 오네는 분명 이게 먼저 나오는 게 아니였냐며 중얼거리며 매우 저기압이었다. 사전조사까지 단단히 준비한 듯 했다. 그러다가 특유의 유니크한 두뇌회전으로 금방 고기압으로 바뀌더니 이제 1승이니까 앞으로 계속 너를 이겨먹겠다며 달라붙어서 더 주구장창 시달려야 했다.

그후로도 계속...

잠깐만, 내가 걔 생각을 왜 하는 거지? 모처럼 얻은 자유의 기회인데 얘 생각만 하고 있다니. 이렇기 시간을 날려먹기 싫었다.

그나저나 오네는 나랑 같은 대학을 들어왔다는데...


"있잖아, 뭐가 좋을 것 같애?"

어느새 오네가 카트를 끌고 왔다. 카트에 갖가지 사탕들이 가득 나열되어있었다. 아니, 수북했다. 이렇게나 사탕 브랜드가 다양했나 싶을 정도로 포도맛, 딸기맛, 체리맛에 이어 크기도 초소형부터 거대한 막대사탕까지 굉장히 다양했다.

"이걸 언제 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내가 얼마나 준비했는데. 근데 뭘 좋아할 지 몰... 됐고, 일단 이렇게나 많이 챙겼다고. 얘는 부드러워서 좋고 얘는 설탕이 묻어있고..."

"좋아하다니, 뭐가?"

"그야..."

그러더니 오네가 얼굴을 붉혔다.

"넌 몰라도 돼, 미친놈아! 그걸 굳이 끄집어내야겠어? 죽어!"

그러더니 발길질을 했다.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화내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알았어, 알았어. 골라줄게. 골라주면 되지?"

"어, 응!"

오네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이번엔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려 그러는 걸까.

"그래서, 어디보자... 일단은... 다 괜찮아보이는데? 뭐 다 괜찮고. 맛도 다 좋고. 정하기 힘들겠는데? 그리고... 어 잠깐만 또 가져온다고?"

쓸데없이 내 취향이랑 다 맞는 것 같았다. 이건 대체 언제 뒷조사한 건지 등골이 오싹했다.

오네가 내가 정하기 힘들다는 말에 사탕을 다시 한 아름 가져왔다.

"그럼 얘네들은? 내가 먹어보니까 좋길래 너도 먹여보고 싶은데."

"이거? 이거는..."

"그럼 얘네는? 얘도 좋았거든? 아, 이거는? 그리고 얘도..."

그렇게 계속해서 품평이 이어졌다. 자꾸 내 사탕 취향을 캐물어서 짜증나긴 했는데, 오네가 자꾸 캐물어서 하나하나 다 답해줬다.


근데 솔직히 모르겠다. 예전에는 별로 신경도 안 썼는데 이렇게 놓고 보니까 다 맛있어보였다.


"그냥 대충 얘네로 해."

대충 좋아보이던 거 몇 개 집어서 따로 빼놨다. 그러자 오네가 걔네들을 다 집더니 말했다.

"그럼 이거 다 산다?"

"어? 어, 알았어."

왠지 모르게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화이트데이라서 기분 탓인가보다.


그러고나자 오네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승부다! 자기가 받은 사탕을 네가 나보다 더 좋아하면 네가 이기는 거다!"

이거보다 좋은거? 어... 음... 잠깐 뭐 사주지? 아, 아까 봐둔 거 있지.

"자, 그럼 어디 한번 사탕을 골라봐라."

"자, 이거."

"너같이 허접한 놈은 못 고르겠지만... 잠깐, 뭐?"

"그리고 이거랑 이거랑... 얘네 이렇게 다."

오네가 잠시 멍하니 서있더니 동공이 흔들렸다. 그러더니 얼굴이 점점 빨개지고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아니, 이렇게 금방 해버리면 내가... 아니, 뭐야, 내가 좋, 내가 이거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고..."

"아까 나랑 얘기하면서 말했잖아? 이런 거 좋아한다고."

"그, 그, 그,... 아무튼... 몰라, 싫어! 변태! 그새 이런 거 언제 캐낸거야!"

나를 살짝씩 치면서 고개를 돌리더니 머리에서 김이 빠지는 듯 했다. 살짝 귀여... 아니, 귀찮아질 것 같았다. 반응 조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렇게 계산대로 이동해서 결제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오네가 비닐을 뜯더니 벤치에 앉았다.

"하나 꺼내서 먹자."

벤치에 앉아서 나도 봉투 하나를 깠다. 표면에 설탕이 묻어있는 딸기맛에 사과맛 섞여있는 사탕이었다. 평소에는 딱히 거들떠보이지 않을 거였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땡겼다.

"그거? 뭐야, 너도 그거 있었어? 그건 나한테 준 거잖아. 딴 거 골라."

그 말에 의아해서 바라보니 진짜 똑같은 사탕이었다. 맞다, 이거 얘가 좋대서 산 거지.

그래서 다음 거는 청포도 맛으로 골랐다. 가운데에 하얀색 줄무늬가 있는 거였는데, 안에 시럽과 식초를 섞어 만든 듯한게 들어있어 단맛과 신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제품이었다.

"잠깐만, 그거..."

그러더니 오네가 자기 봉투에서도 같은 걸 골랐다. 크기만 다른 거였을 뿐 완전히 같은 제품이었다.

"뭐야, 나 따라 고른 거야? 재미없어. 변태. 다른거!"

그래서 다른 것도 꺼내보았다. 그러고나니 꺼내도 꺼내도 계속 비슷한 거였다. 난 괜찮아보이는 거 골랐을 뿐인데 이렇게 되다니 놀라웠다.

"이래선 승부가 안 되잖아. 어디보자, 이게 마지막이네? 뭐야, 이렇게 되면  마지막에 하나는 안 겹쳐야 되는데."

그러더니 마지막 것을 꺼냈다.

"자, 이거. 너도 있어?"

"다행히 그건 없네."

그렇게 승부가 진행되었다. 오네가 받은 마지막 남은 사탕은 거의 젤리에 가까운 부드러운 형태의 사탕이었다. 반면에 내가 마지막으로 남은 사탕은 표면에 설탕이 묻어있고 안에 시럽과 비타민C가 들어있는 흰색 줄무늬가 있는 딸기맛 사탕이었다.


"자, 그럼 시작이다."

오네가 사탕을 한 번 먹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기분좋게 음미했다. 얼마나 몰입했는지 행복에 젖어있는 듯다. 내가 아는 오네개 아니었다. 그러더니 이내 시식평을 남겼다.

"입에서 살살 녹아서 좋아. 너무 달지도 안 달지도 않고 적당히 잘 만들어서 잘 질리지 않을 것 같아서 좋아. 색깔도 영롱하게 잘 뽑혀서 파스텔톤이라 심미적으로도 좋아. 3가지 맛을 동시에 넣었는데 서로 침범하지도 않고 따로 놀지도 않고 서로 잘 어울리는 게 좋아."

그 후로도 칭찬 일색을 늘어놓았다. 자꾸 좋아좋아 거리면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거의 몇 분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오네가 말을 마치고 턴을 나에게 넘겼다.

"자, 이제 네 차례야."

"알았어, 알았어."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상대방이 고른 사탕을 더 좋아하면 승리라면서 나한테 너무 사탕을 성심성의껏 골라준 거 아니야? 이걸 왜 이제야 깨달았지?

그러나 그런 생각보다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어느새 입에 사탕이 들어있었다.

입에 사탕이 굴러다니는데 오네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부담스러웠다.

"저기, 너무 빤히 쳐다보면..."

"왜, 부끄러워?"

엄청 기대하고 있는 듯이 눈이 초롱초롱거렸다. 그와중에 표정은 또 요망했다. 시선을 살짝 옆으로 흘기며 한쪽 눈을 거의 감고 있었다. 애초에 승부랑은 상관없이 나를 수치사시키는 게 목적이었구나 생각했다.


"일단은 사탕이 입에서 잘 녹는 게 좋아."

"그리고?"

"입에 잘 안 달라붙는 게 좋아."

"그리고 뭐가 좋아?"

"그리고 딸기맛이 입에 오래 남는 게 좋아. 그리고 또..."

그렇게 한쪽의 강요에 의한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오네는 내가 끝에 '좋아'거릴 때마다 눈에 띄게 좋아라하고 있었다. 놀려먹는 건개 싶었다. 이러면 내가 어떻게 말하냐고. 

그러면서도 내 입은 한 번 말하자 적응이 되었는지 일장유수로 쏟아내었다. 좋은 이유가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한테 맴도는 게 좋아. 겉이랑 속이랑 달라서 속을 알면 알수록 끌리는 게 좋아. 저돌적으로 들어와서 나를 함락시키려드는 게 좋아. 그리고..."

오네가 가면 갈 수록 얼굴이 달아오르더니 배배 꼬고 있었다. 부끄러운지 얼굴이 달아오르고 동공이 지진하면서 고개를 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꼬리는 올라가있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설마 나 지금 사탕을 묘사한다는 게 얘랑 비슷하게...

그러다 오네가 갑자기 뭔가를 버티지 못한 듯 급발진했다.

"아 됐어! 그냥 네가 이긴 걸로 해! 나가죽어!"

오네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나한테 홱 발길질했다. 나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발언들에 내 머릿속이 혼란으로 차올랐다.

그렇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는데 오네가 먼저 말을 텄다.

"몰라! 싫어! 꺼져!"

그렇게 오네가 도망치듯 사라졌다. 가면 갈 수록 빠르게 가다가 어느 정도 거리가 나 내가 안 보이는 듯 하자 방방 뛰어서 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니잖아? 내가 왜 걔를... 내가 왜 그랬지?

생각해보니까 설명이 안 되는 게 한 둘이 아니었다. 나는 얘를 굳이 왜 데리러 따라간 거지? 사탕 고르는 데 왜 그렇게 진심이었고?

그보다도 더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이 사탕들이 원래 내 취향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라면 있어도 안 먹었을 것들이었다. 설마 쟤가 좋아한대서? 그래서 바뀌었나?

혼란스러웠다.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하지 않았다. 자꾸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되고 새로운 가능성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아닐거야. 에이, 설마.


벤치에서 도망치듯 박차고 일어나 집을 향해 갔다. 그러면서 봉투를 열어 내가 첫번째로 깠던 사탕을 하나 집었다.

이상하게 맛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맛없다거나 과하다거나 하는 느낌이 없었다. 마치 오네가 했던 말처럼... 어? 또?


그렇게 집으로 들어왔다. 바로 침대로 직행하면서 머리를 정리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내린 결론은 딱 하나였다.

나는 오네를 좋아한다.


그렇게 사탕은 그날 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