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꾸며진 건물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어수선한 간판 걸치고 하늘을 바라보면 다당류는 부끄럽게도 극성입니다.


나에게 있어 타협이란, 딜레마의 결과를 보기 좋게 꾸미는 도구에 불과했다. 행위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이다. 나는 나로서 최선의 선택을 하였고, 결과는 최선의 결과이다. 나는 최악의 선택과 그로 인한 최악의 결과를 회피하였으므로 결과적으로 나의 결과는 가능한 최고의 경우이다.


여섯을 세고 거리로 돌아와 물을 뿌린다. 그리 높진 않게 흩날린 열소가 시야의 가장자리로 부지런히 몰려든다. 그러나 추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더위의 치마폭으로 기어들어갔지만 기어코 머리는 내밀고 있으려 한다. 그는 무지의 얼굴을 한 희롱이다. 모욕적이고 모멸적인 눈썹에는 핏줄이 없다. 마치 남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도 정상이라는 듯이, 물론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는 불쾌함이 입가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거울로 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불쾌함. 그런 불쾌함이 부채질을 늦추게 하는 것이다. 


도서관, 즉 책을 대여하고 반납하는 장소는, 아주 좋은 도피처이다. 종이 몇 장 사이에 기억이 날아가며, 검지손가락에 은근슬쩍 묻어 공기중으로 사라지는 슬픔은 주변의 무엇과도 구분할 수 없다. 


초록색 유리병에 대한 기억은 나의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것이기도 하나 나의 가족들의 것이기도 하고, 내가 아닌 수많은 이들의 것이기도 하며, 내가 아닌 수많은 이들의 가족들의 것이기도 하다. 그 부정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쳤다면 햇빛조차 밝음과 가장 반대되는 모습의 악으로 변질하며, 아무리 고매한 귀부인의 섬섬옥수 같은 손이라 한들 그 타락의 대사가 들리면 즉시 추악한 탕녀의 것으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그게 전부이다. 타락의 대사? 타락의 대사가 아니라 쾌락의 대사겠지. 그는 항상 단어 선택에 끔찍했다. 조금의 실수도 의미 전달에 크나큰 오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다. 참, 실력은 괜찮은데 단어 선택 같은 부분에서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실수가 잦다.)


장담할 수 있다. 그녀에게 기회란 없다. 수많은 생각을 정리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침입하려 든다. 피가 아래로. 내 뒤에 소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그건 나야. 내 머릿속에 숨어든 늙은이의 말은 듣지 않을 테다. 소파가 어쩌느니 초록색 병이 어쩌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는 저 거적데기 노인네가 중얼거리는 헛소리고, 아무튼,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나다. 나는 충분히 괴롭고 충분히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항우울제도 몇 개나 받아 왔는데. 정신병원에 다시 가긴 싫다. 그러니 제발, 어르신, 꺼져 주시면 안될까요?




그녀가 막아야 한다. 불쌍한 운명의 여인을 별 아래에 걸어야 한다. 지하철의 남자아이는 가망이 없다. 유일하게 그녀만이 가능한 일이다. 




정리하기:

먹고 싶은 거-생쌀 하링  삼겹살  

해야 할 일:약은 식사 다음에 자격증공부

토요일: 휴일은 두개 평일 다섯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