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보는 것은 어렵다. 10월 태양에 창문 넘어 눈이 아프다.




나는 나의 고요한 세상에 산다.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으나 아닌 사람도 흔하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많이 알진 못한다. 나의 세상이 고요한 까닭이다.


매일 아침은 알람이 깨우고 창문이 검다면 저녁을 먹는다. 넓지 않은 집은 고요하다. 저녁을 먹은 뒤엔 씻고 이를 닦는다. 화장실은 집보다 거대하다. 화장실이 아니라 대중목욕탕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다만 그보단 좁을 것이다. 그보단 비었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오면 책상 위에 하얀 알약 두 개와 물 한 컵이 있다. 자야 하는 시간이다. 그럼 나는 잔다. 첫 번째에 한 모금, 두 번째에 두 모금 마시고 나머지는 내일 마시겠다고 한다. 약이 목구멍 뒤로 넘어가면 침대에 누워 잔다. 


이불은 거칠다. 베개는 딱딱하다. 그리고 낮다.


일어나면 알람 소리가 들린다. 


알람은 없다. 소리는 있다. 물도 없다. 컵은 있다. 


달력은 조금 넘어가 있다. 닫힌 창문이 하얗다.


찬장에 손을 넣는다. 거친 느낌에 손을 뺀다. 그럼 나무 그릇이 있다. 나무 그릇 위에는 달걀이 놓여 있다. 그릇 위에 달걀을 깬다. 종종 제대로 깨진다. 거의 매일 껍질이 섞여 들어간다. 그보다는 가끔 노른자가 터진다. 터지지 않을 때도 있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식탁 위에는 작은 종이봉투가 겹겹이 쌓여 있다. 손 데기 겁날 정도로 위태롭게 보인다. 그러나 무너진 적은 없다. ‘아침’, ‘저녁’이라고 쓰인 투명한 봉투들이다. 종이인지는 모르나 질감이 비슷하다. 


속에 든 하얀 가루가 비쳐서 멀리서 보면 종이처럼 하얗다.


어디선가 본 약 봉투와 비슷하다. 겨울에 전기 절약하기는 어렵다.


나는 달걀이 담긴 그릇에 하얀 가루를 뿌린다. 아침이기 때문에. 가루는 짜고 달다. 짠 동시에 달다. 두 맛이 어우러지지 않는다. 식탁에 앉아서 고개를 뒤로 젖힌다. 달걀은 맛이 없다. 비리고 식감도 이상하다. 


액체와 고체 사이의 위치가 불쾌하다. 노른자는 괜찮다. 


아침을 먹으면 머리가 아프다. 두통은 멈추지 않는다.


먹어야 할 이유를 찾고 있다. 옛날부터 그랬던 것 같다. 결론은 없다. 여러 가지 나왔지만 믿기 싫다. 그럴듯하지만 근거는 없다. 결정한 이론은 없다. 여러 이론이 있다. 나에게는 그것을 믿을 이유가 없다. 


모두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선교이다. 나는 개종하지 않는다. 


머리가 아프다.


아침을 먹으면 화장실에 들어간다. 대리석 벽이 두껍다. 칫솔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렵다. 치약도 마찬가지다. 둘 다 찾는 날은 드물다. 하나만 찾은 날이 대부분이다. 둘 다 찾지 못한 날도 있다. 칫솔로는 이를 닦는다. 치약이 있으면 이에 바른다. 치약은 달다. 입속에 들어가 있으면 삼키고 싶은 충동이 든다. 삼킬 생각은 한 적 있다. 그러나 삼킨 적은 없다. 


그런 기억은 없다.


이를 닦으면 방에 나온다. 책상에 종이가 놓여 있다. 일거리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내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나는 번역가다. 


번역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이 번역가의 일이라는 확신도 없다. 내가 번역가라는 사실만 안다. 


합리적인 추론이 싫다. 내 일만큼 싫어한다.


의자에 앉는다.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종이에 빼곡하게 쓰인 기호들을 읽는다. 그럼 머리에 어떤 일정한 형태의 기호들이 떠오른다. 이것들은 떠나지 않고 남아서 내 머리를 후려친다. 기호를 모두 읽으면 종이를 거꾸로 뒤집는다. 머리에 떠오른 기호들을 뒷면에 연필로 옮겨 적는다. 연필은 책상 옆 서랍에 있다. 주황색 하나에 파란색 하나다. 모두 옮겨 적으면 두통이 사라진다. 아침을 먹은 후에 생긴 두통이 사라진다. 


나의 일은 끝난다.


일이 끝나면 졸리기 시작한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잔다. 


이불은 부드럽다. 베개는 부드럽다. 


그리고 둘 다 높다.


잠에서 깨어나면 배가 고프다. 아침엔 그렇지 않고 오직 저녁에만 그렇다. 창문은 어느새 검게 변해 있다. 공복감이 배를 쥐어뜯는다. 식탁에 금속 재질의 상자가 있다. 얇은 철판으로 덧대어 만든 상자다. 상자를 열면 나무 그릇이 있다. 투명한 막으로 감싸져 있다. 그것을 벗기면 만두와 비슷한 무언가가 놓여 있다. 적어도 뜨겁다. 


피는 하얗다. 윤기는 나지 않는다.


약간 단맛이 난다. 달걀보다는 낫다.


‘저녁’이라고 쓰인 종이봉투를 뜯어 안에 든 가루를 뿌린다. 만두에 찍어 먹는다. 가루는 아침의 것보다 달다. 


저녁의 가루를 아침에 뿌릴 수는 없다. 아침의 가루를 저녁에 뿌려야 하니.


저녁을 먹으면 화장실에서 들어가 씻고 이를 닦는다. 바닥에 던져진 옷이 하얗다. 

씻기는 쉽다. 문 바로 옆에 수도꼭지가 있다. 낮아서 머리에 대고 뿌릴 수는 없다. 손에 받아서 씻는다.


비누는 가끔 있다. 없으면 치약으로 닦는다. 그럼 몸에서 단 냄새가 난다. 핥은 적은 없다. 그럴 생각은 한 적 있다. 치약이 없으면 물로만 씻는다. 그럼 몸에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핥을 이유가 없다. 그럴 생각도 한 적 없다.


씻고 나오면 옷이 바뀌어 있다. 색은 같다. 가슴팍에 모자를 쓴 초승달의 사진이 있다. 옷을 입는다. 


책상 위에 하얀 알약 두 개와 물 한 컵이 있다. 자야 하는 시간이다. 약을 먹고 물을 마신다. 컵에 물이 반쯤 남는다. 

나는 침대에 눕는다. 잠이 온다.


꿈은 꾸지 않는다. 꾸었더라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즐거움 없이 산다. 그것이 슬프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