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광고가 반짝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연인과, 가족과, 친구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는 와중에 한 남자만이 쓸쓸하게 터덜터덜 거리를 걸었다. 주변 사람들은 남자를 ‘문붕’이라고 불렀다.


“춥고… 배고프고… 외롭다… 벌써 크리스마스 이브구나. 여친도 없고, 직장도 없고, 미래도 없는데 돈도 없어. 이제 남은 돈은 고작 3만원… 씨발, 그냥 다 써버리고 죽자. 죽는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거리를 걷는 문붕, 뭐라도 먹을 요량으로 거리를 오가던 그의 눈가에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행인들은 그 남자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거나, 흔하디흔한 거리의 노숙자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하지만 문붕만큼은 그 남자에게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이 추운 한겨울에 그나마 따뜻한 지하철역에 있는 다른 노숙자와는 달리 거리에 나와 있었으며 옷도 매우 비루했고 무엇보다 돈을 달라는 신호나 행동, 바구니 같은 것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수염이 성성한 남자에게 문붕은 무슨 생각인지 다가가 물었다.


“안 추우셔요?”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문붕은 처음엔 그 남자가 그 자세로 얼어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남자의 눈에는 생기가 있었고 피부도 금방까지 실내에 있던 것처럼 따뜻했다. 남자는 문붕의 손을 덥석 잡았다.


“미안하네, 청년. 미안한데 밥 좀 사줄 수 있겠나?”


“네? 제가요?”


당연히 문붕은 몹시 당황했다. 아니, 처음 보는 사람한테 다짜고차 밥을 사달라니, 이 무슨 염치인가?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하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


문붕은 결국 편의점에 데려가 남자에게 컵라면을 사줬다. 조용히 컵라면을 먹은 남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맙네, 복받을 걸세.”


문붕은 헛웃음을 지었다.


“복… 허울 좋은 소리네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복은 삶에서 누리는 행운이라고 하죠? 전 제 인생에서 한번도 행운 같은 건 누려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실패하기만 했고, 좋은 일이라고는 전혀 없었죠.”


남자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돌아보세요, 당신에게 행운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미래에도 말이죠.”


“미래? 제 미래는 없습니다. 그보다 말하는 본새가 마치 종교인 같군요.”


“종교인이라… 허허,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기만 하는 사람 아닙니까?”


“낮추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낮은 사람이지요.”


“언제나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기, 붕어빵이라도 드시지 않겠습니까? 1000 원어치면 됩니다.”


문붕은 완전히 그 남자의 페이스에 말리고 있었다. 결국 붕어빵을 1000원어치 샀고, 어째 적혀 있던 것 보다 많은 붕어빵을 남자와 나눠먹었다.


“삶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이비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문붕의 입에서는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전 희망이 없습니다. 전 배운것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본디 무지하고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는 법입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저기,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전 당신이 부탁한 대로 밥을 사드렸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달라붙는 이유가 뭔가요?”


남자는 여전히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따라오시면 답 해드리지요.”


“혹시 종교단체 가입 권유, 뭐 그런건가요? 전 교회 안다녀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에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중 저를 지켜본 것은 당신 뿐이니까요.”


때마침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나오자 문붕은 불만을 내뱉었다.


“그러고보니,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커플들이 서로 놀아나는 거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 겠지요. 어찌보면 그들이 가장 예수가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남자가 그렇게 답하자 문붕도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그의 생일은 내일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남자는 어느 어두운 골목 앞에서 멈춰섰다.


“희망과, 겸손과, 믿음이지요.”


문붕은 적잖게 당황했다.


‘여기까지 끌고 와서 뭐지? 서, 설마 장기매매?!’


그때, 갑자기 새하얀 것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었다.


“홀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하늘도 무심하군요.”


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혼자라니요, 이렇게 저와 함께 있지 않습니까.”


남자가 두 손을 내밀자, 문붕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문붕은 남자의 손목에 깊은 흉터가 있는 것을 알았다.


“당신, 손목에 흉터가…”


그 순간, 남자의 몸에서 빛이 일었다.


“이제 시간이 됐군요. 전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두 팔을 벌리며 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동시에, 대로변에서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리 크리스마스.”


문붕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남자는 온데간데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 추위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자의 손을 잡았던 그의 손은 따스했다. 문붕은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마음속에 있던 절망은 저 멀리 사라져 있었다.


“낮에… 교회라도 한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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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전도 소설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