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대척점에 있을것 같은 두 생활. 그러나 여기에는 마치 평행이론과도 같은 유사점을 조금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글쓰는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패턴을 가질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연구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패턴에 대해 따로 넓고 깊게 조사해서 논문을 쓴다거나 하기도 뭣하니 그냥 내 습관들을 기준으로 고찰해보도록 하자. 그래서 이것은 수필이다.


  평소 어떻게 글을 쓰는가. 우선 분량을 기준으로 짧은글, 단편, 장편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다.
  짧은글에는 주로 운문-시, 산문-엽편소설 정도가 대표적이겠고,
  단편에는 운문-가사, 운문-시집, 산문-단편소설 정도가 있겠고,
  장편에는 산문-장편소설, 운문-연작 정도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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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글은 평소 떠오르면 간단하게 끄적이는 정도이다. 좀 부지런하다면 떠오를때마다 비망록이든 스마트폰이든 바로바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이렇게 한줄 두줄 쓴다 해도 그것들이 모두 향후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활동에서 매 순간 수행되는 작은 실험들을 떠올려 보자. 간단하게는 갑자기 궁금한게 떠올라서 정말 그런가? 확인해 보는 정도가 있다. 가령, 소금 5g이 물 10g에 다 녹을까? 아니라면 몇 °C에서 다 녹을까? 같은.
  내 경우는 반도체 측정이 먼저 떠오른다. 요 웬수같은 손톱끄트머리만한 녀석을 찍다 보면, 갑자기 이거 한번 터뜨려버리고 싶은데?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때 버려도 될만한 녀석을 하나 골라서 0V부터 200V까지 한번 땡겨보고, 한번으로 안되면 2번 3번 반복실험해 본다. 그것만으로도 간단하게 궁금증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걸 교수님께 보고할 정도로 가치있는 그런 작업은 아니다. 그냥 선후배들과 함께 토의하는 정도는 되겠다.
  순간적인 감상을 시로 표현하고자 하는 경우가 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이런 짧고 엽편적인 활동들의 공통점은 데이터만은 우선 남는다는 것이다. 내 평소 글쓰기 및 연구 체력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겠고, 이렇게 구석에 짱박아둔 데이터가 갑자기 어느 순간 필요해져 어딘가에 끼워넣어질 수도 있고, 이런 활동들을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고차원적인 발상이 떠오를 수도 있다.
  매슬로우 욕구계층이론마냥 배채우면 눕고싶고 누우면 자고싶어지듯, 간단한 성질을 확인하면 더 좋은 성질을 확인하고 싶어지고, 한번 글로 표현해 봤으면 더 좋은 표현을 써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혹은 바텀-업 또는 분할-정복(divide and conqure) 기법의 단편이라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경험을 조금 한 사람들은, 이제 매 순간마다 기록을 아끼지 않게 된다. "나중에 언제 또 필요파게 될지 모르니 일단 기록하고 짱박아두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매 데이터를 전부 저장하고, 현미경 사진들로 폴더가 폭발하고, 짧은 텍스트파일들이 범람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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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부터는 이제 논문작성을 위한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논문작성이라고 해도, 단편에도 엽편이나 마찬가지로 짧게 마칠 수도 있고 장편처럼 길게 이어질 수도 있듯, 짧은 letter부터 제대로된 article, 거의 책 한편 쓰는것 같은 review까지 여러 종류가 있겠고, 또는 매주 랩미팅마다 만드는 자료도 여기에 들어갈 수 있겠다.
  이러한 단편적인 활동들은 그래도 한 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하는 작업이 좀 많아지고, 본격적으로 참고가 될만한 문헌(레퍼런스)들을 읽기 시작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설계작업이 가미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단편으로 완결지을만한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그래도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갖춰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개연성과 핍진성이 받쳐줘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실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그러한 현실이 모티브가 될 수도 있고, 클리셰가 될 수도 있다.

  또는 클리셰란, 달리 말하자면, 주류문학으로 인정받기 위한 자료조사의 결과이며, 이는 곧 논문의 서론과 실험 방법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논문의 구조를 보자. 말이 논문이지 사실 모든 종류의 보고서가 똑같다.
  - 서론 : 과거 사례, 기존 이론, 실험 배경, 왜 이 실험이 의미있는가 등등을 나열하면서 본론의 내 실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내가 유사학문을 하는것이 아니라 기존의 주류학문에 편입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있는 힘껏 주창한다.
  - 실험 방법 : 재현 가능하며 나 뿐 아니라 이 연구를 읽는 너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것이 내 뇌피셜이 아닌,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선언한다.
  - 결과 및 고찰 : 그렇게 얻어진 결과를 서론에 나열했던 기존 이론에 대입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고, 이러한 정보들을 한데 모아 종합적으로 사고해 보면 새로운 이론을 얻어낼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 증명한다. 그러나 가끔 지나치게 천재적인 저자들은 자기딴에는 자명하다면 넘어간 부분들이 독자의 능력이 부족하여 불충분한 설명이었다고 지적받는 경우도 있다. 혹은, 너무 뇌피셜적인 내용을 근거로 들 경우에도 지적받기도 하는데, 이는 서론에 미리 증거를 제시해 두거나 지금 필요한 이 순간에 레퍼런스를 명시하여 선행 연구자를 끌고오는 방법도 있다.
  - 결론 : 그렇게 내 연구가 의미있음을 주장하며 마무리해준다.
  그러다 보니 나타나는 관습같은 특징으로, 만약 한 논문에 20개 레퍼런스가 있다면, 과장보태 그 중 16개는 서론에서 먼저 다 나온다고 보면 될 정도로, 기존 연구에 대한 조사와 압도적인 양의 논문 읽기가 연구자들에게 요구된다.

  단편소설에서 기승전결, 액자식 구성, 수미상관과 같은 구조적인 요소들은 실험 방법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클리셰와 핍진성, 개연성은 서론과도 같이 기존 문학적 시도의 차용이나 현실스러움과 독자의 공감을 유발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논문 서론을 쓰기 위해 많은 다른 논문을 읽어야 하듯,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많은 다른 이야기들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조서를 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어보면, 작가가 그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개미에 대한 자료조사를 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늑대와 향신료 역시 기막히는 중세묘사로 유명하다. 반면, "포위섬멸작전"이나 "태우는게 아니라 굽는거야"가 왜 비난받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점이 왜 중요한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즉, 일상적인 짧은 활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본격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설득력을 갖추고, 설계를 하면서 그에 맞게 제대로 데이터를 정보화 하고, 하나의 스토리로 완결해 내는 과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볼 수 있다.

  글쓰는 사람들에게 일단 간단하더라도 하나를 제대로 완결을 내보라고 많이들 강조하는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연구자에게는 결국 남는게 논문이듯, 글쓰는 사람들은 완결된 작품이 남는다. 이 과정에 하나의 완성되는 글쓰기 또는 연구 활동이 이뤄진다.

  또는 비로소 이 시점부터 대외활동이 이뤄지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에게 대외활동이란 작게는 세미나부터 학회, 전시회, 강연 등등이 있겠다. 설령 포스터발표를 한다고 해도, 간략화되었을 뿐 논문의 구성요소를 우선 갖춰야 함은 당연하다. 이렇게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를 들고 랩 식구가 아닌 다른 동료 연구자들과 본격적으로 토론을 하며, 부드럽게는 "신기한 연구 하시네요, 어려운거 하시네요, 이런건 좋은 의미로 듣도보도 못한 발상이네요, 많이 배워가네요" 이런 반응부터, "그건 이런 접근법을 활용하는게 어떤가요 하는 조언과 함께", "네가 맞네 내가 맞네" 서로 싸우고, "여기까지 봤으면서 이건 또 안해봤나요"하는 날서린 지적까지. 본격적으로 동료평가를 하는 연구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글작가들에게는 투고활동이 바로 이것이다. 크게는 신춘문예부터, 노벨피아-조아라, 작게는 커뮤니티 업로드까지 이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연구자들이 귀찮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열심히 주기적으로 학회에 나가는 것 처럼, 글작가들 역시 꾸준한 투고를 통해 독자들과 호흡하면서 서로 성장해 나가는 활동이 필요하다.
  막말로 읽어주지 않는 글/인용되지 않는 논문에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심지어는 이런 경구까지 있다 : Published or Perished, 출판되거나 폐기되(잊혀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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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적인 활동들은 그래도 일상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대내외에 증명해야 할 순간도 온다.
  장편을 낸다는 것은 수년에 걸치는 방대한 작업이며, 집약적인 노동력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논문활동이 한 학기의 학점을 내는 중간-기말고사라면, 이 활동은 졸업작품 발표라고 볼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는 학위논문발표, 평가 및 출판, 연차 보고서 작성 및 발표, 프로젝트 완료 보고서 제출 등으로 본격적으로 자기 연구의 물주에게 최종 결과를 보여주며 너네가 투자한 돈이 헛되이지 않고 이렇게 써먹을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고 증명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 자리가 잘 마무리되어야 좋은 평가를 받고, 그 평가들이 쌓여야 다음 연구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내며 계속 그 돈으로 새 연구를 할 수 았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상업적 출판이다. 어느정도 분량이 갖춰져야 인쇄하여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가질 것이고, 내용이 훌륭해야 인쇄소에 돈을 들여서 찍어낼 것이다. (혹은 자비를 들여서 극소량만 찍고 마는데, 이런건 부실학회와 같이 학술적으로 의미롭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이렇게 성공 해야 다음 작퓸도 기꺼이 출판을 해줄 것이다.
  전통적이지 않은 작가라도 마찬가지이다. 도전연재가 아닌, 노벨플러스, 네이버, 카카오 정기 상업적 연재나, 드라마 영화 극작가 등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따내는 것이 전업활동을 위한 기초이다.

  즉, 이쯤부터는 글쓰기든 연구든 그저 취미나 한낱 스펙이 아닌 전문가(프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제대로 상업활동을 시작해야 정말로 장편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며, 후세에까지 알려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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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모티브를 따 와 이번 수필을 적게 되었다. 사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여 겉의 화려한 장식들을 걷어내고 보면 그 골격은 대동소이하기 마련이다. 이번 글에서는 평소 느꼈던 이러한 인상을 구체화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비단 연구와 글쓰기 외에도, 우리 생활 각계각층의 많은 분야에서 이러한 평행이론들은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서품성사(사도전승)와 박사학위수여와 같은 권위에 의한 권위의 부여가 대표적이다. 제국을 지배하기 위한 관료제의 존재의의가 인간이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최대 숫자를 만족하기 때문일까. 이 모든 활동의 수행자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한계로 인한 제도(문화적 모방자, 밈)의 수렴진화의 결과일까. 다만, 이것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정말 많은 학계와 전문가 사회들이 힘을 합쳐 광활한 다학제간 연구의 형태로 이뤄질 것이나, 그 연구의 물주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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