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태양이 하늘을 밝힌다. 쌍둥이 별의 축복받은 대기를 수십 마리의 고룡이 가로지른다


제각기 다른 생김새를 지녔지만 등에 수십만권의 도서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만은 같았다. 부드러운 날갯짓으로 유유히 부유하는 영물들 사이에서 유선형의 비행선들이 정해진 항로를 따라 비행한다. 외부 엔진의 도움 없이 떠도는 비행선들은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들을 피해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광경.


현대 인류에겐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풍경은 이곳의 일상일 뿐이다.


이야기의 시작과 종착지.

등장인물들의 낙원.

통칭 네러티브 월드라 불리는 세계.


저승과 이승,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세상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높은 탑, 바벨이 자리 잡고 있다. 겉은 황금으로 도색되어 성스러운 위용을 드리우고, 내부는 빛깔 좋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탑이다. 층수는 2000층, 현재도 개설중이며 네러티브 월드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은 모두 이곳으로 모인다.


이승의 인간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최근 들어 탑은 조용할 날이 없다. 그렇게 귀를 찢어지는 전화벨 소리와 눈 앞을 가리는 서류가 날아다니는 판국에 유난히 한적한 1500층 208호 사무실. 사내는 오랜만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


"흠,일이 없구나."


따뜻한 카페인 덩어리가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을 만끽하며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열린 창문 틈새로 들어온 첫 번째 바람이 무질서한 머리를 어루만졌다. 뒤이어 들어온 두 번째 바람은 정겨운 잡음과 섞여 귓가를 간지럽혔다. 바람의 노랫소리, 그 속에 담긴 일상을 누비던 사내의 영은 곧 바깥의 소란으로 관심을 돌렸다. 단순한 변덕이었다.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엿들은 대화는 지루함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 빠아앙!!!


"거기! 빨리 비켜!!"


촌스러운 옷차림의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가 탄 비행선을 고룡이 틀어 막은 모양이다. 창세기 이후, 모든 창작물은 동등하다는 선언 이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용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의 이야깃거리로 등장한 영물. 인류의 상상력이 자연을 필두로 발휘되던 당시, 네러티브 월드에서 막대한 힘을 자랑하던 이들 중 가장 보편적이었던 용들은 자신들이 한낱 배달부라 업신여기던 직책을 떠맡게 되었다. 


'물론 상부의 입김이 컸어.'


고귀한 기상을 뽐내는 주인공들이 도서를 운반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겠는가. 그것은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조연들이 배달부 노릇을 하게 된, 하찮은 이유였다. 


'처음엔 불만도 많았지.'


붉은 용을 필두로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느라 진땀 흘리던 때가 엊그제 같다. 평화적으로 제압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온갖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제 몹쓸 주둥아리를 놀려 그들은 진정시켰던 나날들이란! 돌이켜 보니 이곳의 역사서는 그 통한의 수백년을 한 줄로 망라했더라.


[소설관리 부서 말단이었던 렌이 용들의 반란을 잠재운 공로로 제1해결사가 되다]


였나......나 참, 어이가 없어서.


어이없을 정도로 간결한 축약을 떠올리니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들끓는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연거푸 쓴 물을 들이켰다. 어차피 내뱉지도 못할 말이지만. 고작 음료에 불과한 녀석이 주는 위안은 무시할게 못되었다. '카페인'이란 성분을 묘사한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다시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치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이쪽도 규정속도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 


근래 sf소설이 양산되면서 공상과학기술이  반입되자 고룡들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인간의 허영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첨단 기술은 신화 속 이들보다 더 방대하고 구체적인 묘사를 자랑했다. 이곳에서 묘사는 실재와 동일시되는 개념. 세력을 키운 SF장르는 기어코 운송업무를 고룡들과 양분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이는 고룡들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대전쟁에서 패한 직후, 강압적으로 배달부 일을 떠맡은 그들이다. 자신들에 버금가는, 혹은 뛰어넘는 기술이 등장한 이상 노예처럼 대우 받을 필요는 없지 아니한가. 허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용의 주둥아리가 다시 한번 열렸다.


<피차 같은 업(業)을 떠맡은 이로써 이해해주었으면 좋겠군.>


'설마 그들이 배달부에 진심이 될 줄이야.'


수세기에 걸친 고룡들의 노고가 그 썩을 역사서에 기록된 이후, 그들은 자신이 맡은 업무에 자긍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본성을 아는 이로서 실로 경탄을 금치 못할 변화였다. 특히 대전쟁 시절, 놈들의 포악한 파괴행위를 치가 떨리도록 겪은 이로써. 아마 믿음직스러운 후배의 보고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꽤나 오랜 과거를 되네이던 사이. 성질 급한 사내는 모욕적인 언사를 발휘하며 고룡을 재촉했다.


"알겠으니까 빨리 비키기나 해!"


<......>


결국 푸른 고룡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갔다.  사내는 그제서야 툴툴거리면서 비행선을 움직였다. 블랙홀 엔진을 장착한 쇳덩어리는 허공에 붉은 실선을 남기며 자취를 감췄다. 확연한 속도차에 사내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분명 DS-8562 함선이었지.'


운송부서에 경고 좀 해야겠다. 보니까 신입인 것 같은데 저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생각 의외로 꼰대가 많은, 수직적인 업무환경에서 혀는 제 목덜미를 가장 가까이서 위협하는 비수나 다름없다. 이것은 수천년의 세월동안 내가 체득한 교훈 중 하나였다.


'물론 잘 사용하면 또 그만한 무기가 없다만.'


- 쾅!


"좋은 아침입니다. 선배님."


그래. 바로 저 녀석처럼 말이야. 


"근데 너는 표정이 문제야."


"네?"


"......실언이다. 방금 말은 잊어라."


무심코 뱉은 속마음을 수습했다. 혼잣말이 늘어나니 이렇듯 실언도 늘어간다. 부족한 사회성이 여기서 드러나다니...살짝 수치스러웠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달랬다. 아무튼, 제 후배인 알란. 흔히 알이라 부르는 친구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들어왔으니, 필시 귀찮은 무언가가 들어왔음에 틀림없다. 


가령 일이라든가, 일이라든가, 일이라든가. 


날카로운 눈매를 자랑하는 알은 내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이제 막 뽑은 듯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 각종 수치, 도표들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으나 정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빌어먹을 보고서의 제목이었다. 다시 한번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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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중한 웹소설 목록의 조회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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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내용을 훑어보았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이 수치는 너무하지 않는가. 


현세에서 독자가 작가가 되는 괴이한 현상이 있음은 익히 들어왔다. 개중 일부는 심심풀이로 손을 놀렸겠고. 갑자기 영감이 솟구쳐 미친듯이 적어내린 이들도 있겠다. 하룻강아지들도 모이면 범 한마리를 능히 당해낼 수 있지 않는가. 묘사나 전개는 딸려도 괜찮다. 그들의 가공할 만한 상상력이 네러티브 월드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백짓장도 맞들면 낮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겠는가. 


허나, 이 가여운 하룻강아지들이 간과한 점은, 창작의 무게란 쉬이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영감은 찰나와 같다. 쌓이고 묵혀온 내안의 무언가가 터져나오는 순간. 피어오른 불꽃이 그들의 머릿속을 비출 때, 인간은 의식의 동굴 속에 감춰진 비밀을 엿보곤 한다. 그것들은 환상적이며, 현란하고, 경탄이 절로 나오는 진리의 일부. 인류는 무한한 노력과 우연의 산물로 이러한 기밀을 엿볼 기회, 즉 네러티브 월드와 연결될 기회를 얻는다.


허나, 오래가지 않는다. 


천기를 천기라 부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은 작가들의 작품들도 초반에야 신선하다는 평을 듣지 얼마안가 상상력의 밑천이 들어난다.  때문에. 한순간의 욕망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글을 싸질러 완결까지 이끄는 작가들은 드물기 마련이다. 가여운 하룻강아지들. 초보 작가들이 대개 그렇다. 지금 이순간에도 버려진 세계가 몇이나 될까. 이런 책임감 없는 족속들이라고는!


그리고 인류가 또 하나 간과한 점이 있다면


“연중 작품 중엔 유명사이트에 등재되었던 웹소설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승의 경계를 넘기 직전입니다. 아무래도, 출장.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뒤처리를 우리가 떠맡는다는 점이다. 


알은 뻣뻣한 자세를 유지한 채 얼굴을 찌푸렸다. 서류를 넘기는 손길에서부터 귀찮다는 기색이 만연했으니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나 역시 귀찮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깝다.’


아직 반쯤 남은 커피를 미련 가득한 손길로 내저었다. 비현실적이게도, 공중에 뜬 커피잔이 요상한 효과음과 함께 사라졌다. 허공엔 상투적인 문구가 걸려있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윽고 문구는 검은 잉크가 되어 어디선가 날아온 함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평소 애용하던 코트를 걸치곤 믿음직한 후배를 불렀다. 

 

“가자.”


이승과 저승.

그 사이에 낀 소설 속 세계.


그 분간을 넘어서는 등장인물들을 막기 위해 난 오늘도 구른다. 


아니다. 정정한다.


굴렀고, 구르고, 구를 예정이다.


‘아. 사직서 마렵다.’


정말 거지같은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