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Ludus World" 세계관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세계관 설정집 보기}

└본 작품은 시간 순서대로 정렬했을 때 1번째 이야기입니다 (1/48)

└장르: 저가형 턴제 RPG


1. 직업을 바꿨습니다


<정말로 직업을 변경하시겠습니까? 스탯은 바뀌지 않으나, 모든 고급 스킬셋들은 초기화되며, 이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는 거대한 나무 앞에 서 있었다. 마을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그런 외곽 지방이었고, 따라서 대화가 통하는 생물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한 조언을 구할 만한 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내 결정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미 몇 번이나 생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


그렇게 말하자, 나무 앞에 둥둥 떠 있던 글자들이 곧 사라졌다. 그러더니, 곧 나무에서 나한테 빛을 쏘았다.


순간, 이 빛이 타인들, 특히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딱히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빛은 금방 사라졌다.


주위의 다른 동물들도 빛 때문에 눈을 깜빡이거나 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이 빛은 나에게만 보이는 거겠지.


<축하합니다. 원소술사에서 사냥꾼으로 직업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이 역시 나한테만 들리는 목소리다. 나는 그 목소리가 정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상태창을 열었다.


-

이름: 재스민

나이: 3세

종족: 들크

직업: 사냥꾼

-


좋아, 제대로 직업이 바뀌었다. 사실 방금부터 미묘하게 느끼곤 있었다. 지금 오른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가 갑자기 묵직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들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다.


그럼, 직업을 바꾸기 위한 스팟에서 어떻게 직업을 바꾸는 데에 성공했으니, 다시 마을로 돌아갈 차례다. 어떻게 됐든 직업을 바꾸기는 했으니 장비도 사냥꾼의 그것으로 바꿔야 한다.


애초에 우리 마을이 마력 계열 직업들이 득세한 마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간혹가다 마법을 못 쓰는 들크들이 다른 직업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에 대한 장비도 있게 마련이겠지.


고급 장비, 까지는 아니고 초급 장비더라도 어떻게 구할 수는 있을 거다.


어쨋든 진짜 슬슬 마을로 돌아갈 차례다. 아무리 마을 근처라고는 해도, 날개로 퍼덕 퍼덕 날아가다가는 꼬박 반나절이 걸리니까, 당연히 이럴 때는 순간이동 마법으로 날아가는 게 편하다.


나는 지팡이를 들고 외쳤다.


"텔레포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다시 한 번 외쳤다.


"텔레포트…?"


이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 했다. 내가 열지도 않았는데 제 멋대로 상태창이 열렸다.


<이 스킬을 쓰기에 적절한 직업이 아닙니다.>


아 맞다. 생각해 보니까 직업을 바꿨었지 참. 생각해본 적도 딱히 없었는데 텔레포트 정도면 꽤 고급 스킬이긴 하다. 아마 얼음 화살이나 화염구 같은 기본적인 마법은 되겠지만, 마나 포인트도 줄어들었을 거니 괜한 마력 낭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계속 여기 있다가는 걱정하는 친구나 마을 수장이 달려와 줄 수도 있긴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걸 기대하기엔 너무 늦었다. 아니면 마을 귀환석을 쓸까?


<던전이 아닌 곳에서는 마을 귀환석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랬었지 참. 게다가 가장 가까운 마을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 직업 변경의 전당을 빠져나가자마자 귀환석을 쓴다고 해도 다시 이리로 돌아올 뿐이겠지.


그럼 어쩔 수 없지. 직접 걸어서 마을로 가는 수 밖에 없다. 나는 허리를 한 번 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위랑 풀이랑 나무랑 흙이랑 벌레들이 눈 안에 파노라마처럼 들어왔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간단히, 지도만 보고 순간이동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마을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상시 가동 포탈도 없다. 하긴, 우리 종족은 웬만하면 다 직업을 바꾸지 않으니까, 만약 바꾼다고 해도 마력 계열에서 다른 마력 계열로 바꿀 뿐이니 텔레포트를 못 써서 문제 될 일은 없었지.


"지도, 펼쳐줄래?"


지도를 펼치는 건 직업에 상관 없는 기본 기능이다. 이것까지 금지되지는 않았을 거다. 역시 상태창이 곧바로 나타나 지도를 펼쳤다.


<라카풀 숲 지역입니다. 현재 위치는 델로 마을 외곽의 '직업 변경의 전당'입니다.>


나는 한동안 지도를 멍하니 봤다. 문제가 해결 된 건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 어디로 가야 마을로 갈 수 있다는 거지? 어느 쪽이 동서남북인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방위 좀 알려줘."


그래서 나는 상태창에다가 그렇게 물어보았다. 물론 상태창은 만능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마 안 될 거다, 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 스킬을 쓰기 위한 레벨이 부족합니다.>


안 되는 건 맞았지만, 지원하지 않는 기능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면 사냥꾼이면 방위를 잘 다루는 게 중요하겠지.


…물론 그렇다고 현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다. 레벨이 부족하다면, 레벨을 올려야 되는데,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현 레벨에 맞는 장비를 구해야 하고, 장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몬스터를 사냥하다가 어떻게 장비를 드랍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선 내가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을까?


화염구나 아이스 애로우로는 멧돼지 하나도 즉사시키기 어렵다. 거북이나 구렁이 같은 일반급 몬스터는 경험치가 말 그대로 눈꼽만큼밖에 오르지 않을 거고.


그래도 포기하면 안 된다. 어쩌면 나름대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다시 한 번 상태창을 열었다. 이번에는 스탯을 보기로 했다.


-

직업: 사냥꾼

힘> 12/100 (사냥꾼한테 필요함)

기술> 35/100 (사냥꾼한테 그다지 필요 없음)

속도> 14/100 (사냥꾼한테 필요함)

마나> 72/100 (사냥꾼한테 발톱 때만큼도 필요 없음)


현재 레벨: 허접 사냥꾼

-


상태창을 보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상태창을 열기 전에도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외길로 원소술사의 길을 걸었던 만큼, 스탯이 변동되지 않기에 사냥꾼으로서의 실력은 조금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 허접은 아니잖아 허접은.


그렇지만 이 냉혹한 세계에서 제일 냉혹한 건 상태창이라는 말이 있듯, 내가 아무리 징징대도 바뀌지 않는다.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지도를 펼치면 현재 위치가 어딘지는 표시 되지 않을까. 그걸 네비게이션 삼아서 걸어가면 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직업 변경의 전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정말 나가시겠습니까? 마을이 아닌 곳에서는 현재 위치가 표시되지 않습니다. ('현위치 표시' 패시브 스킬이 있는 자들 제외)>


이건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나 냉혹할 줄은 몰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혹시 오늘이 그 날인가? 인간들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진다는, 그 거짓말을 하는 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인간이 아닌데? 지금 무슨 해괴한 이벤트를 하는 건가?


아, 아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야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는다. 여기서는, 저 현위치 표시 패시브 스킬을 내가 익힐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현위치 표시 스킬은 사냥꾼, 암살자, 첩자, 전령, 사수, 기사의 견습 단계일 때 수련 가능합니다.>


즉, 지금 단계로는 익힐 수 없다는 말이다. 적어도 힘과 속도의 스탯 합이 40은 넘어야 한다. 이걸 언제 올려.


차라리 지금 익힐 수 있는 스킬이 뭔지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거다. 물론 강력한 스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냥꾼의 근간이 되는 스킬들이 몇 개 있을 테니 그걸로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


<사용 가능 스킬: 저질 함정 설치, 저질 매복, 저질 사격>


아니 이번에는 왜 또 이상한 수식어가 붙는 걸까. 적어도 현재 랭크가 허접 사냥꾼이면 스킬셋도 통일되게 허접 합정 설치나 뭐 그렇게 되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든 나를 조롱하려는 건가?


일단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 세 스킬은 발동하는 데 마나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전에서 써보기 전에 여기서 시험 삼아 써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선 저질 함정 설치부터.


"저질 함정 설치."


그렇게 함정이 깔렸다. 아니다. 이걸 함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놓고 고기처럼 생긴 무언가가 있고, 그 위에 가시들이 대놓고 보인다. 함정이라기보다는 이걸로 누구를 잡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함정 비슷한 무언가였다.


그나마 의의를 찾자면 이 함정을 본 몬스터들이 경계하다가 주춤거리는 그 틈을 찔러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정도겠지. 애초에 사냥꾼이라고 해서 꼭 정정당당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다만 그 틈을 찌르는 게 허접 사냥꾼이 할 수 있는 일인지는 제쳐두고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저질 함정 설치가 이 정도면 매복이나 사격 둘 다 기대는 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사격은 사수 전용 스킬인 거 같은데 왜 있을까.


뭐, 해보면 알겠지. 다음은 사격을 시험해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나무나 그런 곳에 대고 사격을 할 수는 없으니까 방금 설치한 함정에다 했다.


"사격."


<이 스킬을 쓰기 위한 레벨이 부족합니다.>


"저질 사격."


꼭 앞에다 저질을 붙여야 한다는 건가. 어이가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별다른 오류 메세지 없이 탄환이 나가긴 했다. 게다가 함정에 설치된 고기에 정확히 맞았다!


단순히 우연인지 아니면 내 기본적인 능력이 뛰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맞춘 게 기적이다. 물론 표적이 움직이지 않는 적이라는 건 감안해야겠지만, 아무튼 훌륭하다.


그렇게 고기를 확인하러 갔다. 하지만 고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고기에 탄환이 맞은 걸 내가 봤는데.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탄환을 찾았을 때, 왜 초탄에 고기를 명중시켰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운이나 실력이 좋았던 게 아니다. 단순히 저질이라고 해서 명중률이 떨어지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었을 뿐이다.


무참하게 찌그러진 탄환을 주웠을 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냥 데미지 자체가 별로 들어가지 않는 수준을 넘어 아예 무의미하다. 유의미한 데미지를 주려면 눈이나, 수컷이라면 고환 정도를 맞추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맞아줄 상대방이 과연 존재할까.


이렇게 되서야, 저질 매복도 안 봐도 뻔하다. 그냥 단색 원단을 임시로 만들어서 숨는 거겠지. 냄새나 열 차단도 안 되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시험삼아 저질 매복을 썼을 때, 나는 내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음을 실감했다. 굳이 실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세 가지의 스킬을 전부 써보고 알게 된 건, 무엇 하나 쓸 만한 게 없다는 점이다. 굳이 따지자면 함정 설치랑 사격을 기가 막힌 타이밍에 기가 막히게 써서 어떻게든 적을 주춤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럴 바에야 슬라임을 500마리 잡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 하, 진짜 600마리를 잡아야 되나?


결국 나는 전당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뭐라도 해야 진행될 거다.




2. 강제 패배 전투

"…"


"누구야!'


뒤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기에 한껏 긴장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휴우, 깜짝 놀랬네."


범인은 몬스터, 라고 부르기도 뭐한 평범한 황소개구리였다. 아니, 물론 경험치가 들어오기는 한다. 아주 조금밖에 들어오지 않긴 하지만 들어오는 건 들어오는 거다.


"저질 사격."


근데 이거, 사냥꾼이면은 기술명을 외치지 않아도 스킬이 나가게 할 수 없나.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사냥을 할 때는 매복 등 은밀히 숨는 것도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니, 그래봐야 상태창이 뭔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레벨이 올라야 은밀히 기술명을 외칠 수 있습니다, 같은 소리나 하겠지.


"깨굴!"


그래도 사격을 할 때 정확히 눈을 맞추면 유의미한 데미지가 들어간다. 적어도 몬스터에게 어그로는 끌린다.


-

몬스터 종류: 황소개구리

힘>4/100

기술>8/100

속도>13/100

마나>9/100

분류>일반급 몬스터. 획득 예상 경험치 30, 개구리 점액 드롭 확률 10%

-


적어도 이렇게 상태창이 뜨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적어도 이 놈은 생각보다 마법력이 약하다. 원래 황소개구리라고 하면은, 마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서 우리들의 주 사냥감이 되곤 하는 약한 동물이니까.


개체마다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다른 애들보다 마법력이 50% 정도 밖에 안된다. 그나마 다른 개체와 달리 속도가 빠르네.


뭐, 딱히 상관 없다. 어쨋든, 저질 사격은 비용이 아예 들지 않으니까 미치도록 난사해도 아무런 디메리트가 없다. 다시 한 번,


"저질 사격! 저질 사격! 저질 사격!"


<스킬을 쓰기 위한 쿨타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 0:13>


"깨구울!"


"갸아악?"


상태창이 갑자기 내 스킬을 막았고, 황소개구리는 나를 향해 물기 공격을 했다. 데미지는 많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끈적끈적하니 불쾌하다.


나는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계획이 많이 틀어졌다. 쿨타임을 생각하지 못한 게 실책이었다.


'제길…'


가장 힘든 건, 황소개구리가 나에게 데미지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고작 1에서 2 정도의 데미지일 뿐이고, 자연 회복으로 충분히 낫는 정도지만, 데미지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암울했다.


내가 고작 저딴 몬스터에게 hp를 낭비했다니, 같은 교만함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약한 데다가 장비도 없기 때문에, 마을까지 돌아가기 위해선 항상 일 대 영의 교환을 해야만 한다. 내 유한한 자원을 하나도 소비하지 않고 몬스터를 사냥해 경험치를 벌어야 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약한 몬스터를 만나도 몸싸움 같은 기본 공격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반격하는 동안 아무래도 데미지가 분명히 들어오기 때문에.


게다가 지금 제일 약한 몬스터인 황소개구리를 만나서 이 꼴이란, 말이 안 된다.


"개굴?"


내가 식은땀을 흘리고 여러가지 머리를 굴릴 때, 갑자기 개구리가 돌아갔다. 뭐지? 분명히 몬스터는 몬스터의 둥지 아에 있는 게 아닌 이상 자연 회복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깎여진 체력 때문에 어그로가 풀렸을 리도 없다.


설마 여기가 몬스터의 둥지인가 하면, 그것도 딱히 아닌 것 같고.


맞다, 그러고 보니 몬스터 도감에서 황소 개구리에 대한 설명을 할 때 그런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움직이는 것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던가. 그래서 도망치는 먹을 것을 찾는데는 선수지만 숨어있는 먹잇감을 찾는 데는 영 맹탕이라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만히 있으면, 개구리에게 반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후, 이제야 일방적인 딜 교환이 가능해지겠군.


"저질…"


아니다. 조금 더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사격을 하면 이쪽으로 어그로가 다시 끌리고, 또 도망가는 것은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아예 한 번 더 꼬는 것도 방법이다.


"…매복."


저질 매복 스킬을 썼다. 솔직히 내가 봐도 너무 아니다 싶은 수준의 매복이긴 하지만, 매복이 얼마나 그럴듯한지는 매복 기술 시전자에 달린 게 아니라 사냥감에 달린 것이다. 내가 엄청 그럴듯하게 숨어봐야 단순히 숨기한 하면 열화상 카메라 한 방에 뚫리듯이, 엄청 허술하게 해도 저 몬스터의 눈이 옹이구멍이기만 하면 실전에서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 되는 거다.


그러면, 이제 저 황소개구리가 내 모습을 눈치채지만 않으면 되는데, 여기서는 솔직히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몬스터 사이의 개체 차이도 분명히 있으니까 아무리 저 정도 시력이라도 들킬 가능성은 있다.


"저질 사격."


그나마 다행인 건, 스킬을 시전하기 위해 굳이 크게 소리를 지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겠지. 만약 그랬다가는 매복이나 함정 설치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사냥꾼이면 아슬아슬하게 몰라도, 첩자 직업이나 어쌔신 직업은 또 어떡할 방도가 없으니.


"깨구울!"


이번에도 눈을 노려서 맞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조금 다른데. 게다가 개구리의 몸이 울긋불긋하고 빛나기 시작했다. 저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소위 '딸피' 임을 나타내는 현상. 즉, 방금 쏜 저질 사격이 크리티컬이 뜬 것이다! 이건 꽤 횡재다. 이 정도면 저질사격 한 방으로 끝난다. 쿨타임 15초만 지나면 저 개구리는 나의 경험치가 된다.


"개구울…"


분명히 한 대 얻어맞았는데 누가 쏜 건지 몰라 주위를 둘러보는 개구리. 내가 있는 쪽을 보기는 했지만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넘어갔다. 그러는 동안에 시간은 계속 넘어가고, 어느덧 다시 쿨타임이 찼다.


"저질 사격!"


이걸로 마지막이다. 이번 저질 사격도 개구리의 눈일을 정확하게 맞추었고, 황소 개구리는 그대로 죽었다. 정말, 그대로 죽었다. 그냥 그렇다고. 마침 사냥꾼의 장비를 떨어뜨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고, 그것까지 바라는 게 욕심인 건 알고 있지만, 아무튼 답답한 사냥은 계속될 터였다.


<레벨 업! 축하드립니다.>


레벨 업이라고? 분명히 일반급 몬스터 하나 잡았는데? 설마 직업 변경시 무슨 이벤트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직업을 바꾸면 레벨업하기 위한 경험치가 초기화된다거나. 뭔지는 몰라도 스탯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있으니 다행이다.


물론 그렇다고 더 배울 수 있는 스킬이 있는 건 아니다. 저질 사격 2 같은 스킬이 있긴 한데. 그런 스킬이 있다고 해도 별 쓸모 없는 건 매한가지니까. 적어도 일반 사격 같은 스킬이 개방되기 전까지는 봉인이다.


"개굴."


어쨋든, 저질 매복과 저질 사격을 잘만 조합해서 사용하면 황소개구리를 아무런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냈으니, 앞으로는 황소개구리를 사냥할 때 똑같은 방법으로 하면 될 거다.


"개굴."


게다가 휴식을 할 필요도 없다. 아이템을 쓴 것도 없고, 체력도 마나 포인트도 꽉 차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바로 다음 황소개구리를 찾아서 갈 차례다.


"개굴."


마나는 조금 더 아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마을까지 갈 때 개구리만 만난다면 좋겠지만, 만약 강적을 만날 때, 마법사용 기본 스킬들로 어떻게든 탈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굴."


홱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뒤에서 황소개구리가 있을 거다. 자기 나름에는 내가뒤를 돌아보고 있을 때 몰래 접근해서 데미지를 줄 생각이었지만 이미 다 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렸다가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


"얕보였나 보네."


몬스터랑 들크랑 언어가 통할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한 말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


"개글."


황소 개구리인데, 크기가 말이 안 되게 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 몸의 10배는 되는 거 같은데. 일단 첫 번째는 평범한 황소개구리가 아니다.



-

특수 몬스터 출몰! 거대 황소 개구리, 피 라카푸르둠

힘> 57/100

기술> 44/100

속도> 19/100

마나> 66/100

분류-일반급 몬스터(특수/희귀급), 획득 예상 경험치 300, 개구리 점액 드롭 확률 100%, 레어 장비 드롭 확률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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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확실히 잡기만 한다면 매력덩이인 몬스터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아주 사소한 문제인데, 저 몬스터는 내가 절대로 잡을 수 없는 스펙이라는 점이다.


내가 직업을 바꾸기 전이라면 혈전 끝에 이길 수도 있는 상대였겠지만, 사냥꾼인 나는 절대로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쳐야 한다.


내 선택은 간단했다.


"파이어볼!"


일단 마법을 날린다. 그것도 10초 안에 가지고 있는 마나의 9할을 쏟아붓는다. 원해서 그만큼 쓴 것은 아니다. 마나 스탯은 높지만 직업을 바꾸는 바람에 마나 총 저장 용량은 작아져서, 도망치기 위해 필요한 공격 마법을 한 번에 쏟아부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상태창을 대충 봤을 때 속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으니, 이대로 죽어라 뛰면서 날아다니면 탈출할 수 있을 거다.


"개굴."


개구리가 크게 울기는 했지만, 그런 거 가지고 하나하나 쫄아있다가는 도망치기도 전에 먼저 마음이 꺾이고 만다. 이대로,


"개구륵."


그 때,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멈추었다. 게다가 내 배에 뭔가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 싶어 고개를 숙였다.


"젠장할."


배에 분홍색 뭔가가 감겨 있었다. 이거, 무조건 저 놈의 혀다. 순간 몸이 들렸다. 혀가 내 허리를 꽉 붙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한다. 어디로 가긴, 보나마나 저 입 속이겠지.


날붙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혀를 푹 찌르고 긴급 탈출이라도 했겠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애초에 장비가 없어서 마을로 들르려고 한 거니까.


"안돼! 마을로 돌아갈래!"


나는 보이는 것도 없이 빨려들어가면서 그렇게 소리쳤다. 이 세상에 기적은 없다. 그래서 그렇게 절규한다고 해서 일이 절로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단순힌 비명이었다.


아니, 아니다. 마지막 수단이 있었다. 개구리에게 삼켜지기 직전, 귀환석을 꺼냈다. 어차피 몇 걸음 안 떨어진 곳으로 가겠지만, 적어도 거기서 이 거대 황소 개구리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남요새로 이동합니다. 취소까지 0:05>


"빨리빨리빨리! 5초면 이미 개구리 위장 속에서 녹겠다!"


나는 귀환석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재촉했다. 그런다고 빨리 이동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나머지 5초 안에, 나는 개구리 입천장에 뒤통수를 박았고, 정신을 잃었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이런 글을 처음 써봐서....피드백 적극적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