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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짐짝처럼 실려서 몽롱한 정신으로 몇번 숨쉬고 나니, 이미 버스는 언제나와 같이 일터에 도착해 있었다.

내던져지듯 버스에서 내린 노인은 잠시 정류장에 앉아서 숨을 돌렸다. 잿빛의 도시를 가득 매운 공기는 그다지 이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노인에게는 그것조차 감지덕지였다.

"쿨럭! 쿨럭! 느흐끄허어어억..."


 마지못해 들이마신 공기에 어지러운 정도로 심하게 기침을 하고나니, 노인은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한마디 말이 떠올랐다.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분명 옛날에는 공기가 이렇게 탁하지 않았다. 망할 기업이 주거구역 전체를 컨트롤하고, 자신은 그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삶을 살지 않았다. 더더욱 이렇게 무기력하지도 않았다.

그랬었다. 분명 노인의 삶은 옛적에는 그런 모습을 띠지 않았었다. 옛날에는. 적어도 옛날의 자신은 이런 거지같은 삶을 살만한 사람 또한 아니었다.

"... 우라질."

하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다 죽어가는 비루한 몸뚱어리, 세치 혀로 토해내는 외마디 욕설, 그리고 구해내지 못했던 수많은 삶 중 하나. 자신의 비참한 삶뿐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냥의 시간은 이미 오래전에 끝나버렸고, 노인에게 남은 것은 그 비참한 삶이라도 연명해나가는 것뿐인 걸.

노인은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산 세월만 벌써 올해로 20년이었다. 그렇기에 노인에게는 이제 더 이상 그것에 성낼 힘 조차 없었다.

손목시계가 시끄럽게 울린다. 만일 일어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맞춰 놓은 알림이다. 이제는 일어나야 할때라고 요란하게 알리는 그 소리에 노인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 팀장이 옴팡지게 성내겠구만."

노인의 일터는 정류장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격벽 근처에 있는 그곳까지 걸어가는 데에는, 절름발이인 노인에게도 10여분이면 충분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높게 솟은 격벽의 끝이 안 보일 즈음까지 걸어가면, 익숙하면서도 꼴 보기 싫은 회사의 로고가 그곳에 찍혀있었다.

[ 레이크 코퍼레이션 ]

과하게 커다란 크기로 박아놓은 그 로고에서 시선을 조금만 내리면 구역 번호인 057이 적혀있었고, 조금 더 밑에는 헤진 명판 하나가 붙어있었다.

[57구 노출변이체 부산물 처리팀]

"지랄... "

다시 봐도 과장이 심한 그 이름은 볼때마다 욕이 새어나왔다. 짬처리한다는 걸 저리도 장황하게 써놓다니.

  그것은 그렇게나 잘나신 기업께서 좋아하시는 이미지 메이킹이 분명했다.

이런 더러운 잡일도 세분화하고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서 대접해준다는 생색이 그렇게 부리고 싶었을까. 노인은 그것이 참 못마땅했다.

그래서 노인은 늘상 정식 명칭인 노출변이체 부산물 처리팀을 내버려두고 자신의 일터를 짬통이라고 불렀다.

헌터가 되지 못한 사회의 쓰레기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거기에 자신들이 처리하기 힘든 쓰레기들을 내버려서 치우게 하니 그것이 짬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노인은 그 짬통에 오늘도 제발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띡 -- 루퍼트 콜린스. 신원 확인 되었습니다."

딱딱한 기계음이 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두꺼운 문이 옆으로 덜컹하고 열렸다.

오랫동안 보수를 안한 탓인지 쇠 긁히는 소리와 함께 느릿느릿 열리는 문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자, 익숙한 사람이 해체용 칼을 든 채 노인을 맞이했다.

"아. 루퍼트씨! 오늘도 지각하셨네요~"

30대 초반 정도 되어보이는 작업복 차림의 남성이 놀리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 남자는 데이비드 스톤. 진중함 따위는 없는 남자는 팀의 막내였다. 늘상 바보같이 쪼개면서 남들 놀리고나 다니는 실없는 녀석 --- 이라고 노인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가신 것 보니까 오늘도 잔뜩 마시고 오셨나 보네요? 팀장님이 보면 아주 난리나시겠는데요."

"시끄러. 이눔아. 일할 준비나 퍼뜩 혀."

퉁명스럽게 그리 말하고 노인은 네에하고 대답한 후 해체용 칼을 만지작 거리는 데이비드의 옆을 지나가서 자신의 사물함을 열었다.

사물함에는 늘 쓰던 해체용 칼, 대걸레 및 여러가지 청소도구와 보호장구가 들어있다.

거기서 해체용 칼과 보호장구를 꺼내 빠르게 찬 노인은, 뒤에서 핸드폰이나 하면서 시시덕 거리고 있는 데이비드의 뒷통수를 퍽하고 때렸다.

"일할 준비나 하라니까. 뭣허는겨?"

"아야! 왜 때리세요! 거기다 지각까지한 루퍼트씨한테 듣고 싶지 않은 말인데요. 그건!"

"팀장이랑 다른 눔들은? 먼저 내려간겨?"

"아! 그거요. 들어보세요! 신입이 왔다고요! 이제 저도 막내 탈출이에요!"

"신입이라구?"

"저어기 팀장님 방에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거에요. 가보실 거에요?"

그 말에 노인은 고개를 휙하고 돌려 팀장의 사무실을 쳐다봤다. 사무실 작은 창문으로 몇몇 사람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비쳤다.

잠시간 넘실대는 실루엣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노인은 혀를 쯧하고 차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서 짐을 챙겨들었다.

"괜히 뭣허러? 우리는 먼저 내려가서 일이나 혀자구."

그렇게 말한 노인은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얼마 안 있어서 띵 소리와 함께 도착한 엘레베이터에 노인이 올라타자, 잠시 노인과 사무실 문을 번갈아보던 데이비드는 급히 노인을 따라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런데 루퍼트씨. 이번 신입 교육담당이 루퍼트씨인 건 알고 계신거죠?"

노인은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같지도 않은 소리일까.

"우라질. 고놈의 교육 담당은 저번에 나카무라헌테 넘기다구 해놓구. 요번에도 내한테 떠넘기는겨?"

불만이 머리 끝까지 차오른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험한 세월이 골을 내놓은 얼굴 가죽을 보기 흉하게 일그러트렸다.

  데이비드는 그렇게 골을 내는 노인을 어떻게든 달래주려는 듯 살갑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나카무라씨는 지난 번 작업때 부식액 뒤집어쓰시고 상태가 말이 아니잖아요~ 그나마 경력도 있고 기술도 있는 분 중에 멀쩡한 분은 루퍼트씨밖에 없어요. 아시잖아요?"

하지만 그런 데이비드의 살가운 미소도, 친절한 목소리도 크게 소용이 없는 듯, 노인은 여전히 잔뜩 찌푸린 얼굴로 노란 엘레버이터 문만을 노려보았다.

"고럼 욕이나 허질 말던가! 지난번에는 자격이 읎느니 뭐니 허면서 개지랄을 허고는 다시는 안 맡기겄다고 혔으면서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는 것이 가당키나 혀?"

"그래도 팀장님 입장도..."

"씨부럴! 나는 아적까지도 그눔이 왜 팀장인줄을 모르겄어! 그 번들번들한 샌님이!"

노인은 그렇게 소리치며 재수 없는 팀장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 깔끔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를 한, 단정한 외모의 그놈을 떠올릴 때마다 노인은 속이 끓어올랐다.

마치 이 쓰레기들과 자신은 조금은 다르다는 듯, 여기서 지식과 이성을 가진 자는 마치 자신 밖에 없다는 듯 행동하는 샌님. 딱 그 정도 놈. 노인은 그를 그리 생각했다.

  "결국 이 그지같은 누런 쇠상자에 실려가는 퇴물인 건 마찬가지면서 그 육시럴 눔... 오늘 그 눔이 나 찾으면 어디 있는지 모르겄다구 혀!"

  덜컹대는 엘레베이터는 노인의 그 호통과 함께 바닥에 다다랐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익숙한 연녹색의 복도가 나오자, 노인은 가래침을 퉤하고 엘레베이터 안에 뱉어버리고는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장구를 뒤집어 썼다.

눈 앞이 뿌얘지고 자신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자, 노인은 또 이 지긋지긋한 일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진저리가 났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나마도 노인이 제대로 할줄 아는 일이라고는 이런 일밖에 없는걸.

그렇기에 노인은 또다시 연녹색의 저승길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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