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의 계절이 바뀌어 봄이 되었다. 따쓰한 일광 속에서 새싹이 피어나듯이 이 곳 아이들도 민들레 씨처럼 세상으로 퍼져나가 자리를 잡아간다. 



"그거 알아? 수현이도 이번에 나간다네" 


"우리 또래 여자애들은 이제 없는 거야?" 


"그런갑네" 


영구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떨궜다. 나이가 찰 수록 마음 속에선 조바심과 불안이 늘어진다. 그런 와중에 짝사랑까지 떠난다면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 가슴이 차가워진다.



"뭔가 여자애들은 남자애들보다 입양이 잘되는 느낌이네"


영구는 애써 태연한 척 졸린 듯한 말투로 대화를 이었다. 


"왠지 알아?" 


"왜 그런데?" 


"응? 나도 모르니까 물어본건데?"


"...적어도 너가 여기 못 떠나는 이유는 알겠다." 


영구는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정색했다.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이 친구마저 없었으면 못 견딜 정도로 자신은 위태롭단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르냐 영구야?" 


뒤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린다. 이영. 영구의 오랜 친구이지만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그런 어색한 사이다.



"알면 좀 알려줄래 영아?" 


"사람들은 말이지 기본적으로 우릴 꺼린다고. 봉사니 뭐니 와서 같이 웃고 떠들지만 말이야. 그건 전부 사회의 관심을 얻기 위한 위선이야!" 


일장 연설을 시작한 이영은 흥분한 듯 검지를 세워 하늘을 가리켰다. 울화 섞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까치들이 도망치듯 날아가고 있었다.



"흐음. 선생님은 우리가 소중하다는데?" 


영구는 그 광기 어린 연설에 흥미를 느꼈다. 일부러 이영을 자극 시키기 위해 장단을 맞춰 그에게 건네 주었다. 


"개소리! 여기 아이들이 정말로 소중한 존재라면 학군이 좋은 도시에 있는 게 정상 아니냐? 하지만 이 보육원은 제대로 된 학교도 없는 촌구석에 있지. 왜? 님비 현상 때문이다. 부모 없는 것들은 학교에서 민폐만 끼칠 거라 속단한 거야." 



침 튀기며 말한 덕택에 마지막 목소리는 갈라졌다. 숨을 돌리는 이영은 조금 진정된 듯 다시 입을 뗀다.


"참. 본론은 여자애들이 남자애들보다 입양이 잘되는 이유였지? 간단해 사람들은 다른 집안 남자가 자기 가문을 잇는다는 걸 불쾌하게 여기거든. 하핫 정말 바보 같아. 일제강점기랑 전쟁 때문에 가문은 커녕 개족보가 따로 없을텐데 하하." 



벤치에 털썩 주저앉은 이영은 실이 끊겨버린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무게감이 전혀 없어 보이는 몸에 영구는 손을 갖다 보았다. 차가웠다. 


"너희들 있잖아. 입양 간 여자애들 따위 부러워 하지 마... 입양이라기 보단 분양에 가까워. 귀여우니까 키워보는 거다. 진짜 자기 핏줄이라 생각하고 기르는 인간은 없어." 


"그래. 알겠어 영아." 


"...우리 생각 하는 건 우리 밖에 없다고 젠장할" 


내내 까칠했던 놈이 어깨에 올려져 있던 영구의 손을 강하게 어루만졌다. 강압적인 힘에 손이 흰색으로 변해버렸다. 


"야야. 아프잖아! 오늘 따라 왜 이러냐?" 


"도플갱어." 


"뭐?" 


"나 말야 저번에 도플갱어를 봤어. 뭐랄까 기억은 애매한데... 봤던 건 확실해" 


삭막해진 공기를 뚫고 웃음소리가 진동한다. 아무리 심각해 보여도 애는 애구나 하고 영구는 생각했다. 어찌나 웃었는지 구역질까지 느껴진다. 



"너 설마 그 괴담 믿는 거냐? 도플갱어를 보면 죽는다는 괴담"


"안 믿어. 적어도 죽진 않겠지... 하지만 말야. 자신이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다니 존나 이상하잖아 그거."


"걱정마 악몽이라도 꾼 거겠지." 


"아니야... 내 눈으로 봤어 나를... 진짜로..." 


"알고 보니 침대 옆에 거울이 있었다는 전개?" 


"아니." 


"어쩌면 쌍둥이가 있었다는 출생의 비밀일지도?" 


"오 그거 잘됐네 진짜 가족이 생기는 거잖아." 


완전히 놀림 받는 위치로 격하 당한 이영은 분한 듯 이를 악물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진짜 아니라고!" 


어느새 두 명은 멀리 도망가고 있었고 이영은 둘을 쫓아갔다. 하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달리는 탓에 속도가 붙지 않아 둘을 놓쳐버렸다.


"우린 이제 혼자야! 혼자!" 


---



다음날 아침 식당에 이영이 보이지 않았다. 원장님은 밤중에 아파 해서 병원에 갔다고 둘러댔지만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영구는 누구보다 불안감을 느꼈지만 곧 모두 해소되었다. 



"영구야. 기뻐하렴 너네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단다."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님 화를 내야 하는 건지 도통 몰라서 구름을 걷는 듯 두루뭉실하게 복도를 걸었다. 발바닥에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아 이따금씩 다리에서 아찔함이 느껴졌다.



"잘 있었니?" 


어머니라 소개 받은 여성은 생각보다 더 젊어 보였다. 아무런 속내 없는 순수한 웃음에 영구는 마음 속에 응어리진 불신감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진짜 우리 엄마에요?" 


"그럼. 너무 늦어서 미안해."


"와... 나는 난... 내가 혼자인 줄 알았어요." 


어느새 저항할 수 없는 눈물이 닥쳐오고 영구는 넋이 저만치 날아갔는지 안경도 벗지 않고 눈물을 닦아내느라 콧등에 상처가 났다.


"엄마는 널 버린 적이 없어. 잠시 여기 맡겨 놨을 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면담은 끝났다. 



영구는 곧바로 입양 수속을 위해 짐을 챙겼다. 입양 날짜까지 보육원 아이들과 심심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어머니가 기다리는 내일로 향했다. 이영이 끝내 보육원으로 복귀하지 않아 찝찝한 뒷맛이 남았지만 개의치 않으려 노력했다. 



어머니는 좋은 사람 같으니 자신이 이 곳 친구들과 만나는 걸 허락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다음날. 새벽이 밝아지고, 입양 수속 절차의 마지막인 신체 검사로 향한다. 보육원 지하로 향한 영구는 옷을 탈의하고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았다.


병원에서 맡았던 날카로운 소독제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의연하게 수술대에 누웠다. 그런 영구도 다음 장면에선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건너편 수술대에 자신과 똑 닮은 아이가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엄마! 저건 뭐에요?! 제가 두 명이에요! 저거 대체-!" 


"진정해." 


"도플갱어에요? 저 죽는 거에요? 대체 뭐냐고요!" 


"엄마 말 잘들어. 저 아이는 네 쌍둥이 형이야. 여기 온 김에 겸사겸사 같이 검사하는 거고" 


"...정말요?" 


"응. 도플갱어라니 멍청한 착각이네."


"아아 그렇죠? 헤헤" 


영구는 위화감을 느꼈지만 곧 마취제 때문에 서서히 상념부터 시작해 의식까지 싹 쓸어져 내려간다. 


마지막으로 없어진 생각은 이영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수술 완료했습니다."


"잘 끝났나요?" 


"네. 악성 종양이 있는 장기들을 모두 클론의 장기로 대체했습니다." 


"하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럼 곧바로 클론의 사후처리에 대해 논의하죠." 


의사는 영구의 손가락에 붙어있던 테이프를 떼어냈다. 식별 번호 0-9가 피 때문에 완전히 가려졌다.


"아 그거 말이죠. 혹시 재활용할 수 있나요?" 


"글쎄요. 심장을 억지로 뛰게 한 뒤 뇌를 줄기 세포로 재생하면 되지만..." 


"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장비가 여의치 않아 잘 안될겁니다. 저흰 무면허 의사니까요. 다시 살려봤자 최소한의 생명활동만 할 줄 아는 반송장이 될 겁니다. 이러면 이식할 장기 상태도 좋지 않고 언제 뇌기능 저하로 죽을 지 몰라요." 


"흠..." 


"자녀분의 예후가 걱정된다면 한 번 더 배아줄기세포를 인공 자궁에 넣어 복제 인간을 생성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안정성과 비용 측면 모두에서요." 


"네 그럼 그걸로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사는 중요한 이야기인 듯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다음 클론에게 좀 더 신경 써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놈들도 사람이랑 똑같아서 감정이 있거든요. 나쁜 마음을 가지고 시설에서 도망치는 날엔 저희가 끝장날 수 있어요."


"아...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네. 다음 아이는 좀 더 일찍 방문해서 어머니의 존재를 각인 시키세요. 꼭" 


"네..." 


"마치 꾸중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실제로 최근 탈출한 사례가 발생했거든요. 여기 보육원의 2-0개체가"


"이영... 이영..." 


영구의 입에서 마지막 단말마가 튀어나왔다. 의사들은 화들짝 놀라 저마다가 즐겨 쓰는 욕을 뇌까린다.


"깜짝이야. 아직도 살아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