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강호, 평범하디 평범한 17세이다.’


이런 망상을 지껄이다 보면 내 비참함이 줄어들 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 맘속의 중2병 감성을 건드리면 자연 치유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뭐, 결론적으로 치료는 안됐지만 나름 좋은 일들도 있다.


‘지금 난 하고 있다. 멋진 가사를 쓰는 일을.’


지금 컴퓨터엔 작곡 프로그램이 켜져있다. 보표에 한땀 한땀 수놓은 음표들, 한 달을 꼬박 새어 만든 만큼 정성도 듬뿍 담았다.


“오오 멋있었어.”


곱씹어보니 참 대단한 대사였다. 웹소설 도입부로 넣으면 괜찮을 법이었다. 어울린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내 안의 천재성에 감탄한 것 자체만으로 좋은 수확이다. 


“뭐가 멋있어?”


물론 늘 좋은 일이 있을 수는 없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괴물이 딴지를 걸지만 않았어도 평범하게 좋은 일로 남아있을 수 있을텐데. 아쉬운 법이었다. 


“동생아 너는 이해 못 할 거다.”

“이해를 하든 말든 알 바 아니고. 주말에 하루종일 집에만 처박혀있지 말고 나가서 운동 좀해.”


여동생 이가은이다. 나이는 15살. 한창 중2병에 빠져있을 나이. 하지만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오오 동지여.”

“아 징그러. 그 말투는 대체 뭐야?”

“그냥 지나가라.”

“싫은데.”

“엄마 부른다.”


깨갱.


아무리 그래도 부모찬스를 쓰는 건 반칙 아닌가. 안 그래도 공부하라고 닦달인데 마주쳐서 좋은 일은 없을 터였다.

 

“알겠다.”

“아 언제까지 저럴 거야 유치하게.”


고1이면 조금 늦바람으로 인정해주지. 사람이 정이 없다 정이. 모름지기 고1이면 이제 한참 뛰어놀 나이인데 말이다. 그 사실을 존중하는 것만으로 인의예지의 실천 방안임을 모르는 것인가.


“아 됐어. 분위기 초칠거면 내 방에서 나가.”

“방이 있으면 진작에 나갔지.”


이럴 때마다 집 좁은게 한탄스럽다. 언젠간 이사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17년인생이 아직도 태어난 곳을 못 벗어나고 있다. 그 사실에 시선이 창밖으로 향한다. 오후 3시.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햇살은 눈에 띄게 강렬했다. 나가면 쪄죽을 것이다. 분명.


“근데 오빠 뭐하고 있었는데?”

“나? 작곡중이었지.”

“정말? 어디 한 번 들려줘봐.”


아직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노래여서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용기를 내서 앞부분만 들려주기로했다. 


스페이스바를 눌러 재생하자 검은색 바가 움직이며 노래를 재생했다. 참으로 황홀하고 감격적인 멜로디에 동생도 귀가 멀겠지 분명.


“아 개구리네.”


이 반응은 예상 못했다.


“구리다니?”

“내가 듣기엔 구린데?”

“어디가? 어떻게? 왜?”


머릿속 물음이 점점 커져만 갔다. 내가 듣기엔 이렇게 평가절하될 곡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멜로디도 흔해빠졌고 반주는 시끄럽기만 하네.”


그렇게 심하다고? 


물론 나야 이제까지 작곡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날라리 인생이었지만 이건 또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구라지?”

“아니 이건 진심인데?”

“나쁜 놈.”


내 한 달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진이 빠진다. 내가 이 음악을 작곡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래도 멜로디는 조금 괜찮은 면도 있었는데. 수정해볼래?”

“응?”


그래도 동생이라고 좋은 점도 집어 주는구나. 저 놈 나름의 응원이었다. 같이 산 지가 얼만데 이 정도는 안다.


“어디가?”

“맨 처음 부분에 올라가는 부분 있잖아. 이걸 좀 맛깔나게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알았어 수정해볼게.”

“그래 열심히 하고. 운동 좀 나가.”


동생이 고개를 돌렸다. 자식, 누가 이기나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