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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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은 언제나처럼 아주 오래된 붉은 사각기둥 건물 맞은편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드넒은 길이 한쪽은 지원에겐 아픔이 서린 숭례문 쪽으로, 다른 쪽은 씁쓸한 과거를 가진 남영동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주차장에서 나오자 저편에서 조 씨가 그녀를 불렀다.


“여기야, 미세스 리. 이미 다 와 있어.”


선글라스에 등산용 아웃도어 바람막이까지 입은데다 심지어 등산용 가방까지 매서 그 모습은 영락없이 동네 아저씨 같았다.


“위장… 한 거야?”


조 씨는 머리를 긁적였다.


“레나랑 인호도 그렇게 물어봤는데… 이게 위장처럼 보이나?”


“가방 안에는 뭐 들어있어?”


“마선형 씨 만날 때 입을 양복이랑 기타 등등. 가자, 곧 열차 시간이야.”


지원 일행은 평양으로 향하는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나운서가 낭랑하면서도 무감정한 문화어를 읊었다.


“고객 여러분 안녕하십네까? 우리 렬차는 평양역을 거쳐 신의주역까지 가는 고속 렬차입네다. 저희 렬차원은 고객께서 편안히 려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네다.”


지원이 조용히 물었다.


“지난번에 원산 갈 때는 저렇게 안 했는데?”


조 씨가 답했다.


“평양을 거치니까. 아직 그때에 향수 비슷한 걸 가진 사람이 많거든. 사실 저거도 굉장히 표준어화 된 거지만.”


다시 순식간에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차는 빠르게 달렸다. 기차는 단 2번, 개성과 사리원에 잠시 정차하더니 고작 1시간여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 문이 특유의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열리자,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역에 내렸다. 조 씨가 말했다.


“사회주의 락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하!!”


레나가 속삭였다.


“왜 저런데요?”


지원이 답했다.


“난들 아냐.”


“가자, 평양 용병들은 평양교육대학교 쪽에 있어.”


지원이 말했다.


“지하철 타는 거지?”


“그럼. 레나, 저기 꾸벅꾸벅 조는 친구 빨리 끌고 와.”


레나는 비몽사몽한 인호를 질질 끌며 두 사람을 따라갔다. 조 씨는 지하철 입구로 움직이며 말했다.


“지하철 타고 금방이야.”


그때, 지원은 주변을 빠르게 살피더니 조용히 조 씨에게 말을 걸었다.


“조 씨, 아무래도 ‘쥐새끼’들이 붙은 것 같아.”


평양에 도착한 뒤 시종일간 유쾌하던 조 씨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쥐새끼라… 몇 마리 정도지?”


“티가 나는 건 3명, 전부 건장한 남자들이야. 그보다 좀 더 있을지도 몰라.”


“레나, 확인해 봐.”


레나의 눈이 반짝였다. 아마 거리의 CCTV를 확인하는 것일 거라고 지원은 생각했다.


“확실히… 3명 정도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어요. 그것도 엄청 수상하게 말이죠.”


인호가 말했다.


“오히려 우리보고 미행하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 같군요.”


“자신이 있는 거야. 아마 어딘가에 동료 수십 명이 매복해 있겠지. 어떡할까, 조 씨?”


“일단 이리로 가자. 인호, ‘낚시 가방’은 잘 잡고 있어.”


지원 일행이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자, 그들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 커다란 역사(驛舍) 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 끝에, 지원 일행은 모퉁이에서 사람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들도 따라 방향을 트는 순간…


“거기까지.”


지원과 인호, 조 씨가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중간에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 (지원에게 받은) 권총을 겨눈 조 씨가 말했다.


“조용히 손 들어. 소리지르지 마.”


그를 시작으로 세 남자 모두 손을 들었다. 지원이 물었다.


“CCTV는?”


레나가 답했다.


“방금 전 영상만 돌아가고 있어요.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5분 정도는.”


다시 조 씨가 말했다.


“그럼 빨리 대답해 주실까? 왜 그렇게 당당하게 우리를 미행했지?”


지원이 물었다.


“정체가 뭐냐?”


인호가 물었다.


“누구 명령을 받았지?”


잠시 침묵이 흐르자, 지원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의 관자놀이에 당장이라도 총알을 박아 넣을 듯 총구를 들이 밀었다.


“빨리 대답해. 우리 바쁜 사람들이야.”


코트를 입은 남자가 답했다.


“마선형 동지가 보냈습니다.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다 하셨습니다.”


조 씨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다른 셋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우리가 믿어야 할 이유는?”


“의심이 간다면, 믿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마선형 동지께선 자신을 근거 없이 의심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미세스 리, 인호. 총 내려. 이 정도로 당당한 걸로 보아하니 맞는 것 같네.”


두 사람 모두 총을 내리자, 코트를 입은 남자는 코트를 펼쳐 안주머니에서 두 장의 카드를 꺼내 조 씨에게 건넸다.


“고려호텔 객실 카드입니다. 마선형 동지께서 수배하셨습니다.”


조 씨가 카드를 받자, 남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마선형 동지께서 내일 오전 11시 평양전쟁기념관에서 자기측 정보원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내일 오전 11시, 평양전쟁기념관입니다. 그럼…”


세 사람은 빠르게 사라졌다. 조 씨가 말했다.


“그럼… 가볼까? 고려호텔.”


역의 바로 맞은편에 우뚝 솟은 고려호텔은 과거 존재했던 최악의 독재국가의 그림자가 느껴질 정도로 강한 압박감을 자랑했다. 입구에서부터 당당하게 ‘1985년 개장 당시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로 시작되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고, 내부 역시 통일 이후 계속된 리모델링으로 인해 굉장히 깔끔하고 고급스러워졌지만 곳곳에서 과거의 흔적이 느껴졌다. 조 씨가 말했다.


“방이 2개니까 나랑 인호가 1502호, 미세스 리와 레나가 1503호를 써. 체크아웃은 내일 오전 10시니까, 9시 40분에 로비에서 보자고.”


지원은 레나와 함께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지원이 본 그 어떠한 호텔보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웠으며, 벽면 한쪽 전체를 차지한 창문으로 평양시의 전경이 들어왔다. 지원이 잠시 멍하니 바깥의 야경을 바라보는 동안,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쭉 들리더니 레나가 긴 머리카락의 물기를 짜내며 다가왔다.


“언니~ 뭐 봐요?”


“야경. 서울이나 다른 도시 야경은 봤지만, 평양은 또 색다른 느낌이 있어.”


지원은 저 멀리 보이는 삼각뿔 모양 건물, 고려그룹의 본사를 바라보았다. 레나 역시 그 옆에 서서 같이 야경을 바라보았다.


“흐음~ 이렇게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보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아요. 서울타워도 몇 번 못 가봐서…”


“그 마선형이라는 사람,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잘 대해주는 이유가 뭘까? 이 방, 보통 비싼 방이 아니야.”


“글쎄요? 하지만 우리한테 의뢰를 맡긴다면 보통 의뢰는 아니겠죠. 그보다 언니…”


레나의 팔이 지원의 어깨 위로 올라가자, 지원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 팔을 잡았다.


“안돼.”


레나는 앙탈을 부렸다.


“아 왜요오오~!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인데! 한 번만 해요! 지난번에는 해줬잖아요!”


“안 해줬어!! 가서 잠이나 쳐 자!”


레나는 눈에 띄게 투덜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다행히, 침대는 싱글 사이즈 2개였다.

다음날, 지원과 레나는 시간에 맞춰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이미 인호와 조 씨는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딱 맞춰 왔네. 가자. 1시간 정도 걸릴 거야.”


지하철을 타고 달린 끝에 도달한 평양전쟁기념관은 각종 무기가 전시된 드넓은 광장과, 그 뒤편에 거대한 석조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조 씨를 제외한 모두가 그 거대함에 할 말을 잊은 상황이었다.


“예전에는 금수산태양궁전인가? 뭐 그런 이름이었어. 김일성과 김정일의 미라가 설치된 곳이었지. 물론 이젠 아니지만. 둘의 시체는 대충 바다에 뿌렸다고 알고 있어. 그나저나 그 남자는 어디 있을까?”


그 순간, 그들의 뒤로 그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어찌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는지, 가장 먼저 반응한 지원은 이미 총부터 겨누고 있었다.


“오셨군요, 따라오시죠. 마선형 동지는 그곳에 계십니다.”


그가 지원 일행을 이끌고 간 곳은 전쟁기념과 맞은편의 한창 공사 중인 고층 건물이었다. 아직 마감도 채 되지 않아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계단을 타고 내려가, 그나마 잘 꾸며진 지하실에 도착하자 그는 허리를 굽혔다.


“이 문 뒤에 마선형 동지께서 계십니다. 그럼…”


다시 어두운 복도에 침묵만 감돌자, 조 씨가 나서서 문고리를 잡았다.


“가볼까?”


문이 열리자, 확 밀려 들어오는 담배 특유의 쩐 내에 다른 이들은 물론이고 지독한 골초인 지원마저도 눈살을 찌푸렸다. 곧바로 보랏빛 조명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동무들… 기래, 왔는가? 손님이 왔는디 담배 냄새가 나서 어떡하나?”


조 씨가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내래? 맞다우, 마선형이야.”


얼핏 봐선 군용 상자나 기계 위에 그녀가 걸터앉아 있었다. 새빨간 점퍼 밑에 순간 계절을 착각할 것 같은 크롭티와 짧은 반바지를 입은 그녀는 시체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창백한 피부-물론 사이버웨어일 것이다-에 빼빼 마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40살이 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젊은 얼굴이었지만, 지원은 그 눈과 조명 탓에 검붉게 빛나는 머리카락에서 그녀가 사람을 수도 없이 죽여온, 자신과 비슷한 여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럼… 여기 앉아 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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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어는 자료가 부족해서 쓰기 힘듬. 어차피 설정상 통일된지 40년이나 지났으니 걍 표준어와 섞였다 치는 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