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 냄새가 비강을 가득 메운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눈을 적셔 한쪽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목을 억지로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 제국의 갑옷을 입은 시체가 가득하다.


'저 만큼이 나를 죽이러 왔던 건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시체더미를 벗어나려고 일어난다


"철퍽!"


'젠장...다리에 힘이 다 빠져버렸어..'


흐르는 핏물에 젖은 땅에 얼굴이 처박힌다


이렇게 되니 내가 왜 기사가 되려고 했던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복수라는것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된것일까


이럴거면 도망가서 살걸 왜 이렇게 후회할 인생을 살았을까...


문득 내 인생이 눈앞에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


 리히트


어머니가 어릴적 지어주신 이름


흔하지 않은 이름을 지어준다고 찾은 이름이였다.


이 이름을 지어주고 

내가 어느정도 말을 알아들을 때 쯤

어머니는 그리 말하셨다


'리히트, 너의 이름은 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언젠가 세상을 밝게 빛내주렴?'


그 말을 하고나서 일주일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범인은 적국의 군인이였다.


적국, 노스카르


우리나라인 에브론디아와는 시초때부터 적대하던 그런나라.


우리 가족은 그런 나라 사이에 있는 국경지역에서 살고있었다.


그래도 국경지역이라고 해도 국경의 끝에 가까워

군인들이 들어닥치고 하지는 않는

그런 조용한 곳이였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이상했다.


사냥꾼이였던 아버지는 국경 외곽은 사람도 없고 숲이 넓은걸 보고 이곳에 집을 지었다.


아버지가 생각한대로 이곳에는 사냥감이 많이 있었고 우리 세 가족이 살기에는 사냥감의 양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사냥감이 잡히지 않았다


"흠....이때쯤은 사냥감이 잘 돌아다닐 시기인데 오늘은 왜 안보이지?"


"에이 여보 그런 날도 있는거지! 오늘은 이 엠마표 특제 감자수프 한번 만들어줄게 빨리 땔감만 가지고 들어와요!"


"응,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아버지가 땔감을 찾으러 나간 순간


아버지의 옆으로 은빛의 무언가가 지나갔고


창문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문을 발로 차는 소리와 함께 피로 물든 군인이 집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무언가 끼익거리는 목소리로 


"이곳은 우리의 황제 카롯님의 영역이다."


담담하게, 쓰레기를 버린다는게 당연하다는 듯이 피가 묻은 검을 들고 우리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검은색의 눈에 압도되어 

어머니가 내 눈앞에서 베일 때에도 나는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손의 피부가 뚫릴정도로 주먹을 꽉 쥐어봐도 할수 있는건 없다.


처음으로 무력감이라는걸 느낀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저렇게 죽는데도 움직여서 저항하지도 도망가지도 못한다는게 너무 싫었다.


그는 어머니를 베어내고 나한테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걸어오는 찰나의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그 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까전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로 


"잘가라." 라는 말을 내뱉었다


위로 치켜 올라가는 검에 눈을 감은 순간


저 멀리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날아오듯이 그 검을 

쳐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늘과도 같은 눈동자로 나를 보며

태양처럼 밝게 웃는 여자였다.


"이제 안심해, 구하러 왔어."


그 순간 은색의 빛이 그녀를 반으로 가를 듯 

내려쳐졌지만 그녀는 바로 몸을 틀어

남자의 팔을 베어내고 검을 반대로 하여 

목을 베어내었다.


미치 하나의 사진으로 보일정도로 유려하고 

깔끔한 동작이였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런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윽고 그 남자의 몸이 넘어지자 다른건 보지않고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


엄마가 손수 짜 주었던 스웨터가 피로 물들때까지

엄마를 흔들었다.


일어나라고 그사람 죽었다고 이제 안전하다고

그리 말하는데도 어머니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죽음이였다.



————



문득 정신을 차렸을때는 익숙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나를 내려다 보는 푸른 눈동자와 눈을 마주하자

다시금 눈물이 흘렀다.


그 현실이 꿈이 아니였다는게 끔찍하고 또 끔찍해서 울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몇분을 울었을까 눈물이 나오지 않을때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푸른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검은 눈과는 달리 상냥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울고 나니 천천히 시야가 선명해졌고

그 시야의 너머에서는 그녀가 울고 있었다.


"미안해....."


조용히 이 말을 계속 뇌까리며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조금 맑아진 정신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네본다.


"....저기, 누구세요?"


어른스러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로 울던 그녀가 이윽고 눈물을 멈추며 말했다.


"아....미안, 나는 제국의 기사인 아리엘이라고 해, 아리엘 그룬하르트."


들어본적 있었다


아버지가 가끔씩 들고오는 신문에 적혀있던 이름,

국경을 지키기 위해 왔다 했던 사람이였다.


"그사람은 왜......저희를......"


문득 이런 말이 나왔다. 


생각해보면 국경을 지키는 기사님인데 

왜 막지 못한걸까, 왜..


그 생각을 하던 순간 앞에 있던 그녀가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정말로."


그녀는 입을 열어 국경의 방비 마법이 적국에 의해 일부 망가졌고 그걸 확인하고 바로 달려왔지만 막을수 없었다고 하였다.


순전히 재앙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아........"


재앙이라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다시 울음이 터져나올것 같아서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재앙이 그렇게 찾아오는건가 생각하면서

세상이 원망스러워서 견딜수가 없었었다


"저기...나랑 같이 제국으로 가지 않을래?"


나를 지켜보던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다른게 아니라 이번 일때문에 이 지역이 봉쇄당할 가능성이 커, 적어도 이 근처에선 살기 힘들거야."


"그러니까 제국 성 안쪽에서 같이 살자, 이곳을 떠나는게 힘들건 알아....그래도 같이 가자."


그때의 나는 세상에 대한 증오보다 더 다른 사람이 무서워서였을까 그 제안을 수락하고 집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집의 앞에 묻고 그렇게 제국으로 향했다.


—————


제국에서의 생활은 편했다.


그러나 내 곁에 있던 부모님이 없다는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가 이렇게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편했다.


아리엘은 나를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국경 방비기사직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나를 돌봐주는데 열중하였다.


어느정도 회복이 되자 나를 어린이 아카데미에 등록시켜 주었다. 그곳에서 제대로 글을 배우고 다양한걸 배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


16살이 되던 해에 나는 아카데미 사회학부에 입학했다.


누나도 진심으로 기뻐해주었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웃었다.


그리고 1년뒤에


노스카르가 우리를 침략했다.


누나는 기사 신분이였기에 전장으로 향했다.


가기전에 누나는


"금방 돌아올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알겠지?"


"그리고 나를 용서해줘서 고마워...이번에는 꼭 지켜 내고 올게."


그렇게 말하고 전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달뒤


패전 소식과 들려온것은 누나의 부고였다.


—————


울었다.


계속 울었다.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면 누나의 사진을 잡고 계속 울었다.


부모님도 떠났고 아리엘도 떠나버렸다.


살기 싫었다.


그러다 누나가 쓰던 검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렇지


복수하자


저기 너머를 전부 죽이면 될거야


그러면 아무도 죽지 않을거야.'



검을 들었다.


무작정 휘두르면서 체력을 길렀다.


손이 다 까져도 붕대를 감고 휘둘렀고


근육이 비명을 지르면서 움직이지 않아도


계속 휘둘렀다.


1년이 지났을 무렵 기사단에 입단했다


조금 더 체계적인게 필요할게 같아서였다.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우며 빠르게 승진했다.


5년이 지날 무렵 강한 힘으로 

제국 5기사의 칭호를 얻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휴전을 깨고 노스카르를 침략하기로 했다.


최전방으로 자원해서 갔다.


황실은 황성을 지키라고 하였지만

이 기회를 놓칠수는 없었다.


최전방으로 향해서 닥치는대로 적을 베고 

전투마다 지휘관의 목을 베며 전진했다.


계속 전진하며 결국 총지휘관을 베어내었고 


영토를 침략해서 황성으로 직진하여


황제 카롯을 베어내 

노스카르를 전복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제국으로 복귀하자 환영행렬이 엄청 길게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 풍경에 뿌듯함을 느낄 새도 없이

복수에 성공했다는 생각과

허무하다는 감정이 섞여서 형용할수 없는 감정을 불러왔다.


그 길로 바로 황성으로 달려가 은퇴하겠다고 하였다.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은 알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원래의 집,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쌓인 먼지를 치워내고 오래전에 잠을 청했던 침대에 걸터 앉았다.


오래전의 추억이 내 마음 속을 간질였고

부모님의 사진이 눈에 들어오자

슬픔에 잠겨서 오랜만에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어머니가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리히트, 너의 이름은 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언젠가 세상을 밝게 빛내주렴?'


어머니의 따스했던 말이, 아버지의 단단했던 손이,

아리엘의 상냥했던 손길이 다시 생각나며 

나를 안아주었다.


'미안해...너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줘서....'


'아들...고생했어.'


그리웠던 엄마아빠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것 같았다.


'내가 지켜줬어야 됐는데....미안해.'


아리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것 같았다.


'이제는...일어나야돼.'


그래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


깜빡거리는 시야의 앞으로 붉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제국 1기사, 메서드


'아.. 황제 그놈이 결국 나를 버리는구나...'


그가 검을 뽑아내자 빛나는 검신이 눈을 괴롭혔고


이윽고 그 검이 휘둘러지고


목에서 짙은 통증이 느껴지려 할 무렵


【히든 업적:쓰러지지 않은 자】

【히든 업적:베어낸 자】

【히든 업적:눈물흘린 자】

【히든 업적:버려진 자】

【히든 업적:사랑받은 자】

【SYSTEM:총 다섯개의 히든 업적 달성 확인!】

【SYSTEM:전생 프로토콜 작동】


눈 앞에 반짝이는 글자와 함께 내 정신이 완전히 꺼졌다


—————




"으아아아악!"


분명 목이 베였을 터인데


정신이 갑자기 돌아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목을 매만지자 매끈한 목이 손에 감겼다.


그리고 앞을 보자 반짝이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SYSTEM:전생 프로토콜 작동 완료】

【SYSTEM: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인간에게 경배를】

【SYSTEM:앞으로의 인생이 행복하기를】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던 그때


문을 박차고 누군가 들어왔다.


"리히트! 괜찮아? 왜 그래!?"



엄마다


그리워했던


엄마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나온다.


"엄마....엄마....."


"악몽이라도 꿨어? 아이 괜찮아~"


그리웠던 상냥한 목소리가 귓전에 닿으니까

몇년동안 잊어버렸던 웃음이 다시 피어나왔다.


"이제 괜찮아졌어? 아침 먹으러 가자!"


새로운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게 이런건가.


정말.......정말로 행복했다.


———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익숙한 풍경이 나를 반겨주었다


아버지가 자주 입으셨던 붉은 사냥복을 걸치고 

식탁에 앉아 우유를 마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빨리 와서 아침 먹어, 토스트 식겠다."


무뚝뚝하지만 상냥한 아버지


그 모습에 다시 울음이 나올뻔 했지만 

삼켜내고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의 특제 토스트와 스프

고소한 냄새가 내 코를 간질인다.


식탁에 앉아 스프를 한술 떠 입에 넣으니 부드러운 감자의 향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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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한 나이는 14살인것 같다.


달력을 보니 전생에서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2년전이였다.


"아카데미를 다시 가야된다는거네."


전생에서는 누나가 죽고나서 자퇴하고 검술수련에 매진했지만 이번생은 제대로 다녀봐야겠지.


"그런데 학과는 뭘로하지?"


저번 생처럼 사회학부를 갈수도 있지만 검술학부도 좋을것 같다.


몇년동안 수련했던 검.


몸은 사라졌지만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수련해야되는지 알고있다.


검을 수련해서 다시 기사단에 들어가면 그녀를 만날수 있지 않을까?


'그래, 이번에는 복수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검을 잡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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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쓴 장편이자 마지막일거 같은 장편

생각나는대로 막 쓴거라 글 이상해도 그냥 봐주셈...


이후 스토리 방향은 눈나 찾아서 나데나데 순애물 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