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 Pouli Stin Hysteria/A Bird in The Hysteria


 날 때부터 저주를 받은 이들은 저주에 대해 

알지 못한다.


후술하게 될 나의 기이한 광증도 내가 자란 가족 안에서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모든 인식이 그를 만난 이후로 뒤바뀌었다.





ένα πουλί στην ὑστερί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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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나는 재작년까지 오스트리아에 머물며 광증에 일가견이 있다는 의사들을 여럿 찾아가 보았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모두 나의 증세를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관적으로 진단한 나의 병은 히스테리, 즉 성적 불감증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앓는 질환으로 흔히 알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내 여성 가족들에 관한 정보를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를 함구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지 나 자신조차 당최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작게는 내 유년기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어머니, 조모, 증조모... 더 없이 많을 조상들, 나의 모든 저주가 무수한 그들로부터 비롯된 탓에 결국 나는 혼란스러워지고 만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조차도 이야기의 시작점이 결코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와 인생은 그 끝과 시작이 명료해 보이면서도 단연 그렇지 않은 것이기에, 내 삶의 근원을 밝혀내겠다는 거창한 포부보다는 겸허한 기록자의 자세로 이 글을 써 내려 가고자 한다. 나는 걸출한 문학가들이 가진 삶의 통찰력 같은 지혜들이 전무하다. 그저 눈앞의 욕망을 좇으며 실수를 반복하는 부류의 인간일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자신의 삶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는, 첫 번째가 이 저주의 연쇄를 끊기 위함이며 두 번째로는 이 글이 그를 위한 추도문이기 때문이다.




독자들께서는,

부디 당신을 보살피는 손을 물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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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계참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나름의 태생적인 불안을 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어머니와 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어머니는 그녀의 기질적인 불안 탓에 극심한 광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와 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파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어머니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그녀에게서 뻗어져 나온 가지일지언정, 나는 그녀를 모른다.



반면에 나의 누이들은 어머니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미약한 정서불안만을 지녔던 나와 달리 누이들은 어느 정도의 광증을 가지고 있었다. 광증에 시달리던 그녀들, 어머니와 누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같이하며 유대를 형성했다.

그녀들은 함께 있을 때 마치 묵상하는 수도자처럼 평온해 보였다. 또한 그녀들은 종종 감정적인 과잉 상태에 빠져 웃거나 울어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저도 서로를 끌어안고 또 부둥켜안았다.

하녀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괴상하다며 욕을 해대기 바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와 누이들이 아무리 괴상하게 보일 지라도, 그녀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나는 그녀들이 형성한 정신적 일체를 남 몰래 계속 동경했다.

나에게는 그녀들처럼 서로의 처지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와 누이들 간에는 내가 간섭할 수 없는 친밀감이 쌓여 있었고, 이따금 나를 돌보던 하녀들은 어디까지나 사용인일 뿐이었다.

응당 어린 시절에 나를 이끌어 주었어야 할 아버지마저도 집에 오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어린 나는 비참한 철새와도 같았다. 

나는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려 하녀들을 줄곧 따라다녔다. 그것은 내게 비이성적이고 혼란스러운 어머니와 누이들의 생활에서 벗어나, 근면하고 활기찬 노동자들의 생활을 단편적으로나마 체험케 했다.

하녀들을 따라 층계참을 발을 디딘 후,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나오는 주방에선 온갖 음식들과 연기의 냄새, 부산스러운 말소리와 금속 도구들이 부딪히는 잡음이 가득했다. 그 떠들썩한 공간은 내게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나는 가능했다면 하녀들과 계속 함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와 누이들 사이에 속할 수 없었듯이 하녀들 사이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주방의 하녀들에게 있어 일을 성가시게 만드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그리고 나 또한 아무리 어렸다고 해서 그들이 은연중 내보이는 기색을 모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매일 상황을 보아가며 적당한 시점에 주방에서 나와야 했다. 그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선 당최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 지 몰라 계속 집 안을 방황했다. 그것은 여러 번 겪어도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집 안에는 어머니와 누이들의 공간,

하녀들의 공간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도 나의 공간만큼은 없었다.


내가 매일 오가던 층계참,

그것은 공간의 경계이자 누구의 것도 아니다. 주방과 가족들의 방을 연결하는 그것은 내가 머무르기를 허락받은 유일한 곳이었다. 어쩌면 그 층계참은 절실히도 나와 닮아있었을 지 모른다.




 아마 나의 태생적인 불안은 이러한 경험 탓에

더욱 심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끊이지 않는 배척은 내 심경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나는 내가 극심한 광증에 걸리기마저 바랐다. 그렇게 된다면 어머니와 누이들이 날 받아들여 줄 것만도 같았다. 게다가 나는 내가 하녀들 중의 하나가 되길 바라기도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소심한 아이였을 뿐 광인이 아니었으며 나는 그저 이 집안의 장남일 뿐 하녀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집에서 가장 희미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존재를 확고히 하고자 수없이 층계참을 오르내리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존재에게 귀속되고자 하는 욕망이었을 뿐, 

진정한 존재의 확립이 아니었다.



                                                                        —

잉걸



 내가 홀로 분투하던 간에, 시간은 흐르고 나는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그 무렵엔 아버지가 한동안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내 입학을 준비하기 위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그가 어머니와 누이들을 요양병원으로 보낼 궁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첫 입학은 가족의 분열과 함께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학교생활은 역설적이게도 집에서의 것보다 훨씬 더 충만하게 느껴졌다. 내가 라틴어에 큰 소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선생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탁월했던 내게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것은 내 생애의 첫 경험이었다. 생애에서 처음으로 나의 존재가 명료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난생처음 맛본 관심은 머지않아 내게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주었다.

들불이 삽시간에 타오르듯 강렬한 감정들이 속수무책으로 나를 향해 밀려왔다.

선생들이 가볍게 눈짓하는 것이나, 학생들이 우연히 내가 있는 방향으로 의자를 돌려 앉는 것, 청소부의 기침 소리 등의 하잘것없는 일들이 모두 내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했다.


어딜가나 사람들은 나를 응시하고 있다. 거리의 행인들은 저들끼리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 행색에 관해 떠들고 있다.


마치 내가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된 것만 같았다. 선생들이 내게 어느 정도 더 주었던 관심은 부싯돌이 되어 나를 온통 불태웠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일들이 장작이 되어 불길을 거세게 했다. 그 일들이 어떤 사소한 의미조차 없는 것일지라도 나는 그것으로 인해 타올랐다.




(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