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아-

회색의 구름 아래로 물이 쏟아졌다. 불이 꺼진 전등, 태양 빛 한 줄기 안 들어오는 어두운 청색의 교실이 눈에 보였다. 애들마저 떠난 자리에는 침묵만이 존재했다. 들려온 것은 리듬에 맞추어서 건물과 창문을 때리는 폭우와 가끔 들려오는 천둥소리 정도?

온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얼음처럼 차가워진 코에, 입김이 안개처럼 미약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엄지로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의 메신저 앱 아이콘을 눌러보았다. 5명 밖에 없는 대화 리스트 중 보였던 그녀의 이름은 어느 정도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아직 나를 차단하지 않았다는 의미니까. 사과하기 위해 엄지로 앱을 누르려던 순간 가슴쪽에서 무언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삭이듯.

너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나 준비한 시험을 망쳐버렸는데. 나처럼 요리 쪽을 전공으로 하는 시내로서 중요한 시험인데 나한테 엄청 실망했겠지. 당장 멀리 볼 것도 없이 아까 만났을 때도 그냥 지나쳤다. 이 한마디와 함께.


나 몰라 쟤.


양 어깨에 매어진 가방의 묵직함과 함께 교실 밖으로 향했다. 복도는 창문을 부딪히는 빗물과 걷는 소리만 들려왔다. 고요함. 이거 말고 딱히 표현할 길이 없었다. 세상이 망하고 혼자 남는다면 이런 기분이려나. 인류가 전멸돼서 남은 인간은 나 하나뿐이라면.

한참 걷다가 육안으로 보인 교실의 광경이 다리를 멈추게 해주었다. 가스레인지, 환풍기, 그리고 조리용 테이블은 어느새 조리과 앞까지 왔구나 라는것을 알려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평소에는 요리하느라 뜨거웠을 공기가 매우 차가웠다. 위에 뭐라도 안 입으면 온몸이 떨릴 정도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프라이팬이 눈에 보였다. 누가 치우는 것을 깜빡했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손잡이를 쥐어보았다. 마치 내 손에 쫙 들어오는 듯 편한 그립감을 느끼면서 당기고 올리기를 반복했다. 평소 같았으면 뒤집기 연습을 위해 안에다 쌀들을 넣는데.

"간단한 요리 정도는 괜찮겠지."

어깨에 매던 가방을 테이블 위에다 올려놓았다.

틱-틱-

가스에 불이 붙여졌다. 얼음처럼 서늘했던 공기 또한 따뜻해졌다. 너무 뜨겁지도 약하지 않은 중간 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놓은 뒤 떡볶이 떡과 비엔나소시지를 가방에서 꺼내었다. 원래는 조리 시험에서 써먹으려고 준비한 것들이지만 시험이고 나발이고 물 건너갔으니갔으니 뭐.

이왕 하는 거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식용유를 뿌렸다. 황토색의 튀김 흔적은 아삭한 식감 덕에 입맛을 더 오르게 해줄 테니까. 어느 정도 달궈진 팬 안의 식용유가 미약한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한 뒤 소시지와 떡이 담긴 플라스틱 봉지를 뜯으려 하였다.

"계집! 아직도 집에 안 갔어?"
"!?"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았다. 붉은색 머리카락을 한 피어싱을 한 건장한 크기의 남자애, 딱 봐도 모자라게 생긴 비만 체형의 남자애 그리고 얼굴은 뽀얗게 해서 원숭이와 같이 생긴 껄렁한 애 한 명.

"너, 왜 혼자 남아 있냐? 또, 애들이 너에게 일거리 다 넘겼어?"
"너희들이야 말로, 여기 왜 있어? 돌아가지 않아-"
"애들에게 따돌림 당했다가, 또! 또! 혼자 남고!"
"자기 따돌린 지는지 모르겠지. 남장여자애니까! 우호호호-"

듣지도 않은 채 가위로 줄 자르듯 말을 끊었다. 나를 놀린것이 너무 좋았는지 서로가 하이 파이브까지 하면서. 저것들 분명히 선생님들이 세 명을 부른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쯤 교무실에 있어야 해야 하는 것들이 왜 여기에…. 

"야 그만 해라. 듣는 애가 불쌍하잖아."

이들 중 붉은 머리로 염색한 그 애가 내 앞에 다가오면서….

"제 소꿉친구에게 차여서, 고통받는 와중인데."

말이 끝남과 동시에 키키키키키키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만하고 원숭이가 재밌다는 듯 혹은 들으라는 듯 대놓고 귀에 거슬리는 웃음을 내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돼지 한마리가 꿀꿀, 원숭이 한마리가 끼익끼익 하고 우는 모습과 비슷했다.

"아까 우리가 봤어. 한시내가 너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지? 말걸었는데도 그냥 지나가더라?"
"하긴. 시험 시간에도 빠졌으니 그대로 눈 밖에 나버린거지!"
"시험 빠졌어! 빠졌어! ㅂ ㅅ! ㅂ ㅅ!"
"너희들 때문이잖아!"

마음속에부터 올라오던 것들을 토해내니 금세 조용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저것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모두 저 세 명 때문이었다. 조리 시험을 놓친 것도, 시내가 나한테 실망한 것도.

"너희들이 창고 안에 가두지만 않았어도, 시험에 늦지 않았어. 내가 너희들에게 뭐 했길래 그러는 건데?"
"아이참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잖아? 친구끼리 장난도 못 쳐?"
"맞아 우리는 친구잖아! 친구!"
"친구! 친구!"

친구는 뭐가 친구야. 기분 좋다는듯 웃는 저것들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이 한 짓에 대해 어떠한 반성이 없다는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그리고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장 받고 뿌듯해하는 어린아이처럼.

"너희 셋, 이젠 그만 가라. 응?"

가스 밸브를 끄기 위해 스위치를 잡았다. 저 세 명 얼굴 보니까 밥맛 제대로 떨어졌다. 억지로 먹은 음식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해 피가 느리게 흘러 손이 차가워질 거 같았다.

"너희하고 상대하기에 싫고, 슬슬 집으로 돌아가 봐야-"

퍼억-

내 몸이 무언가로 인해 걷어차면서 그대로 조릿대 앞에 쓰러졌다.

"야 계집!"

곧이어 마치 굶주린 개들이 쓰러진 나에게 몰려들어 그대로 짓밟기 시작했다. 퍼억-퍼억! 하는 소리가 귀로 들려왔다. 나를 구타하는 것을 온몸으로 막으면서 저 할 일이 없는 것들에서 말이 들려왔다.

"우헤헤헤헷!!! 재밌어!!! 너를 패면 기분이 좋아!"
"얼굴은 여자애처럼 곱상하게 생겨서! 정말 재수없었어! 왜 태어났어!"
"오늘 스트레스 쌓였는데! 마침 잘됐어! 고마워 친구!"

뼈가 하나씩 부러지는 감각이었다. 귀로 들려온 것은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웃음과, 밟을 때마다 들려오는 구타 소리뿐이었다. 할수 있는 것은 양팔로 얼굴을 감싸는 거뿐이었다. 이빨 나가지 않게 이를 꼭 다물면서.

"야... 야.... 비…. 비켜!!"

얻어터지느냐 흐려졌던 시야가 돌아오니 돼지 한 마리의 기름진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미약하게 남은 빛에 의해 반사되는 날붙이는 식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것도 부엌칼을.

"내가 얘! 조각낼 거야!"
"오오!"
"이걸로! 얼굴! 조각내서! 무슨 얼굴 되나! 궁금했어!!!"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본능을 느낀다고 했던가. 생존을 위한 본능이 몸 스스로가 나한테 말해줬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주변의 두명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주먹을 쥐고 있었다. 빨리 하라고 재촉 하면서.

"자자-고기 썰 시간이다-"

얼굴을 조금 위로 들어보니 손잡이가 보였다.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오늘의 밥은, 삼겹살 구이-계집애 얼굴로 만든 상추-"

치이이이이익-!

"꿰에에에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찢어 버릴 거 같은 크기로. 열기가 느껴지는 손을 바라보니 내 양손에는 프라이팬이 들려 있었다. 한참 동안 불에 달구어진 무쇠의 팬이. 붉은 머리와 원숭이는 내가 한 행동 때문에 놀랐는지 뒤로 물러섰다.

"엄마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

양손으로 가린 얼굴에는 미약하게 연기가 올라왔다. 자기 엄마를 애타게 찾는 돼지를 부추기면서 붉은 머리와 껄렁이는 나를 노려보았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계집애 같은 ㅅㄲ가!"

곧바로 뽀얀 얼굴을 한 원숭이가 내 목을 잡았다. 캬아악-하는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침 뱉으려는지 입술은 거품으로 뒤덮였다.

"하도 혼자 있길래 놀아 줬더니 이렇게 배신을 해!? 계집애 같은 ㅅㄲ가-"

치이이이익-

튀김옷을 입은 고기가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교실이 매웠다. 얼굴을 감싼 기름이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는지 선체로 울부짖는 돼지와 달리, 물가 위로 나온 생선처럼 쓰러진체 펄쩍 튀어 오르고 있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에 뒷걸음 치는 붉은 머리였다. 히익-하는 짧은 비명을 내뱉으면서. 고통으로 인해 몸부림치는 돼지와 원숭이들의 모습은 그조차도 기겁하게 만들었나 보다.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묘석 같은 이빨을 들어내면서.

"네가, 이런다고-"

말을 잇기 전, 주먹을 쥔 채 달려들었다. 내 얼굴을 부실 기세로.

"겁을 먹을거 같-"

주먹이 닿기 전 귀가 먼저 반응했다. 주먹질의 소리가 아니었다. 망치 같은 무겁고 둔탁한 도구의 소리였다. 충격이 가감 없이 손으로 전달되었다. 무언가를 때릴 때의 미약한 떨림과 함께 찾아온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

눈앞의 현실이 극의 시작처럼 걷어졌다. 나한테 주먹질하려던 붉은 남자애의 눈가 쪽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돼지는 여전히 엄마를 찾으면서 한쪽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였고, 뜨거운 기름으로 범벅된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바닥을 나뒹구는 원숭이 한 마리가 보였다.

가스의 불을 끈 뒤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면서 밖으로 달려갔다. 이성을 잃은 체로, 오로지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너 이 자식 거기 안 서!!!?"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이 나를 쫓아 왔다. 그 어떤 것보다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 외친 고함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포식자가 발톱으로 찢은 뒤 산 채로 잡혀 먹힐것이다 라는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

빠아앙-하는 귀를 울리는 경적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시내로 나와 있었다. 태양 빛조차 내리지 않는 회색의 하늘 아래에 촘촘히 세워진 빌딩들 사이에 빗물들이 건물들에 비추어진 불빛들 사이를 지나 내려오고 있었다. 폭포처럼. 내 옷을 통해 스며 들어가 전신을 물로 흠뻑 젖히게 하였다.

한참 뛰어서 그런지 숨이 찼다. 목 밖으로까지 나오는 거친 숨을 내뱉으면. 비틀 거리는 다리에 의지 하며 한 걸음씩 걸어갔다. 혹시 나를 찾은건가? 라는 생각에 뒤를 쫒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못 찾은 건지, 그냥 포기한 건지.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이 입으로 들어갔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기관 속을 젖히는 느낌은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거친 숨을 진정시켜 주면서 양다리의 피로감도 조금 풀리게 해주었다.

오른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들어보니 검은색 원형의 스테인리스 금속이 보였다. 그 금속을 플라스틱 재질의 손잡이가 받쳐주고 있었다.

"내가 이걸로…."

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언가가 태워지는 소리 그리고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비명. 아직도 손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안구 주위를 때렸을 때의 둔탁한 느낌.

요리 도구로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이건 요리할때 쓰는 도구이지 누군가를 때리라고 쓰는게 아닌데.

양 팔이 축 내려 가면서 회색 솜털로 뭉쳐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폭우는 내 얼굴 정면을 젖혀갔다. 숨쉬기조차 어려워서 이대로 있다가는 물에 빠져 익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단 집으로…."

짧은 한마디와 함께 육교로 향하는 다리로 걸어갔다. 여전히 피로가 풀리지 않은 다리로 한 계단씩 올라갈 때 정강이와 무릎이 떨리고 있었다. 도끼질로 인해 쓰러지기 직전의 나무 처럼.

계단을 다 오른 뒤 나는 실감할수 있었다. 이젠 이 다리만 건너면 집으로 돌아갈수 있다고. 폭우로 인해 차가워진 몸을 따뜻한 목욕물에 담그면 한결 낫아질거라고...

"저기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그 삼인방이 계단 위로 올라와 나하고 얼굴이 마주친 것이다. 내 얼굴을 본 뒤 검지로 나를 가리킨 채 달려와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내 주변을 에워쌌다.

"내 얼굴! 어떻게 할 거야!! 눈에서 피가 나고 있어! 병원비 물어내 당장!"
"너 때문에, 내 얼굴 반쪽 튀겨졌어!"
"엄마!!! 엄마!!! 내 얼굴에 화상!! 쟤 때문에!!"

서로 밀쳐가면서 자신들의 얼굴에 난 상처들을 가리켰다. 돼지는 얼굴 반쪽이 물집 덩어리, 뽀얀 얼굴 반쪽이 튀겨진 듯 갈색의 화상 자국들로, 빨간 머리에는 자신의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피 묻은 손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면서.

"이 계집자식!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당장 말해!"

빨간 머리 애가 가까이 오려고 하자 나는 프라이팬을 휘둘렀다. 내색 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행동은 나를 놀라게 했다. 이걸로 또 사람을...

"이 자식! 드디어 미쳤나! 요리사면서 그걸로 사람 죽이려고 하네!!!"
"나 그냥 너랑 놀아준 거뿐이잖아!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데!"
"병원비, 물어내!! 내! 내!!"

사냥감을 궁지에 몰리려는 듯 세 명은 서서히 나하고 거리를 좁혀 갔다. 난간에 가까워지면서 슬쩍 고개를 돌아 밑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승용차로부터 시작해서 깔리기만 해도 쥐포로 만들 트럭까지.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뒤로 갔다가는 그대로 떨어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계집이! 대답좀 하란 말이야!!"

퍼억!

빨간 머리가 내 배에 발길질을 하였다.

"...어?"

시야가 뒤집어 졌다. 미끄러 지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내 몸이 그대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난간을 잡을 틈도 없이.

"야! 야!"

위에 패거리 세명이 난간 위에 고개를 내밀었다. 평소의 재수없는 표정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지금 한 행동에 대한 반응이었다. 현실을 인지 못하는, 말그대로 경악으로 가득찬 표정.

마치 나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는 그들에게서 외침이 들려왔다.

"정성운-!"

중력의 손에 사로잡힌 나는 끌려가는거 외에는 할수 있는게 없었다. 자석에 이끌리는 쇳조각 처럼 차들이 지나는 도로에 떨어진 나는...








마치 필름이 잘리는 감각과 함께, 의식이 끊겨졌다.








                                                                                              Episode 1. 여정의 시작은 한국에서.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