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y4bZu56EylA












"저 왔어요."


아버지가 침대에 누운 채 간신히 눈을 마주하셨다.


"콜록콜록!!!"


가래침을 실컷 뱉으신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너 때문에 방금 10년은 더 늙었다!"


여전하시군.


나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몸은 좀 어떠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아주 죽겠다보면 몰라?"


말을 마치자마자 다급하게 약을 찾아 흡입하시는 아버지.


어릴 적부터 수 없이 보았던 장면이지만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몸이 안 좋아져도 마약은 계속 생각나시나 보죠?"


그러자 아버지가 다 풀려 버린 동공을 하신 채 천천히 입을 떼셨다.


"루이절대로 백인을 믿지마라절대 그래서는 안 돼."


지겹도록 들은 말이었다


여태까지 공감하던 말이었지만 다이애나 때문일까.


아버지의 말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자신들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일해줬는데어떻게 음식에 마약을 타서 줄 생각을 하지아주 사악한 놈들이야."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아버지가 답을 원하셨다.


"그렇지루이?"


난 매번 해드린 대답을 할 뿐이었다.


"맞아요아버지."


그러자 아버지가 더욱 열을 내며 말씀하셨다.


"노예해방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그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아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자기들의 노예로 만들려하지." 


아버지가 크게 한숨을 쉬시며 말을 이어 가셨다.


"마약 같은 비겁한 수를 쓰는것에 양심의 가책도 없지아주 더럽고 악독한 생각만 하는 놈들이다."


난 그런 아버지의 손을 붙잡으며 침묵을 유지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일 밖에 모르셨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이불을 덮어주셨던 희미한 기억뿐.


그런 아버지와 동료들에게 백인 사장은 회사를 떠나가지 못하게 음식에 조금씩 마약을 타서 주었다.


그 충격적인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된 때이미 아버지는 심각한 마약중독이 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병이 생겨 몸져눕게 된 상황에서도 마약을 제일 먼저 찾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흑인들이 마약을 하는 것엔 치를 떨면서 뒤에선 본인들이 더 강한 마약을 찾는 모습.


자신들이 하는것은 즐기는 것이라고하나의 문화라고 하는 이중적인 그들의 잣대.


내가 머리털이 날 무렵부터 숱하게 봐 왔고 증오하던 그들의 추악한 모습이다.


그렇기에 극단주의자인 아버지라 해도 이것만큼은 아버지의 의견에 깊이 공감했다.


울적한 기분이 들어 아버지의 손을 더욱 꽉 잡자 아버지가 입을 여셨다.


"루이너는 유일한 내 자랑이다백인들도 절대 무시 못 하는 게 너야알고 있지?"


또 매번하던 말이 시작될 것 같아 아버지의 말을 끊어 내었다.


"알아요아버지저도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지겹지도 않으신지 매년 같은 말을 해도 뿌듯한 표정을 지으시는 아버지.


"거짓말이런 약쟁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니그렇다면... 손주는 언제 보여 줄거냐?"


백인 여자 친구가 있고곧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공연을 보러 와 줬으면 좋겠다.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전혀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빙 둘러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마음에 겨우 말을 꺼냈다.


"이번 주말에 아는 사람이 공연을 해요아버지를 모시러 올게요."


다이애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천천히 설득해도 되겠지.


아버지가 우악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공연무슨 공연 말이냐?"


괜히 부끄러워져 머리를 긁어댔다.


"재즈예요그것 말고도 다양한 볼 거리가 있으니..."


그러자 아버지가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셨다.


"재즈너한테 이상한 바람이라도 분거냐?"


"그럴 수도 있겠네요저한테 되게 중요한 공연이라 그래요."


내 말에 아버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게 크레올 놈들의 음악인건 알고 있지 않냐?"


"알죠잘 알아요그렇지만..."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나 진짜 흑인도 아닌 그런 놈들이 만든 음악을 들으러 오라고?"


난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아요아버지 말이 다 맞는데..."


"그런데?"


제발 벼락 같은 호통만 치지 않으시길 바라며 겨우 용기를 내었다.


"이젠 세상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그냥 음악이라 생각하고 한번 들어 보러 가요아들인 기분 좀 내보게요."


결심하고 겨우 내뱉은 말에 아버지가 날 뚫어져라 쳐다보시곤 말씀하셨다.


"너 변했구나이상한 물이 들었어!"


그럼 그렇지.


그래도 여기까지 들어주신게 어디일까.


쇠고집도 나이가 드시더니 조금 꺾이긴 했나보다.


난 그나마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해보세요그럼 또 올게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닫고 나가려 했다.


그 순간뒤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이!"


"왜 그러세요?"


"몇 시에 데리러 올 거냐?"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는 아버지를 겨우 관객석에 앉혔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잠시 친구를 보러 다녀올게요."


알았다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다이애나가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괜히 들뜨는 마음


단걸음에 그녀가 있는곳으로 달려갔다.


대기실에 들어서자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 앉히는 다이애나가 보였다.


다가가 손을 맞잡자 서서히 눈을 뜨는 그녀.


"블루문?"


"나 왔어오늘 정말 아름다워."


"정말다 자기 덕분이야아버지는?"


"모시고 왔지지금 관객석에 계셔."


그러자 다이애나가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너무너무긴장되는걸맘에 안 들어하시면 어떡하지?"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오늘 공연과 상관없이 당신이랑 결혼하겠다 말할 거야얼굴만 비춘다고 생각해."


"그것 참 엄청난 위로가 되네요."


그때 몇 번 노크를 하고 열리는 대기실 문.


"다이애나 씨? 10분 뒤 무대 시작합니다준비해주세요."


그 말에 다이애나의 손을 잡고 무대 뒤로 데려다 주었다.


앞선 공연자의 연주소리가 들려왔고 수많은 관객들이 커튼 사이로 보였다.


긴장 되는 듯 이전처럼 손을 심하게 떠는 다이애나.


그 모습에 손을 꽉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아반드시 잘할거야."


"사랑해블루문당신이 옆에 있어 행복해."


온기를 전해주자 서서히 떨림이 멈추는 그녀의 손.


"블루문정말 미안한데 대기실에서 물 좀 가져다줄 수 있을까?"


"물론이지얼른 다녀올게."


그녀의 말에 다급하게 대기실로 달려가 물을 찾았다.


쉽게 찾아지지 않는 물병에 구석구석을 뒤져 보다 이내 다이애나의 가방을 들쳐 보았다.


가방 안 깊숙이 들어가 있는 물병.


아무 생각 없이 물병을 꺼내려 손을 뻗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만져졌다.






이게 뭐지?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거칠거리는 촉감


무언가 꽉 차 있는 느낌.


괜한 호기심에 물병과 함께 꺼내 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황토색 종이봉투.


'blue' 라고 봉투 위에 쓰여진 다이애나의 글씨.


그녀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


혹시 중요한 물건을 빠트렸나 싶은 마음에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을 들여다보자 보이는 더욱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손을 집어넣고 몇개를 집어 보았다.


손을 들어보니 어색한 것들이 내 시선을 가득 채웠다.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그럴리가 없다고 믿고 싶은것일까.


그러나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내려놓을수 있었겠지.




마약이다.


그것도 심각한 환각을 보게 될 수 있는 마약.






일반인은 절대 건드리지도 못할 수준의 약이 그녀의 가방에서 무더기로 나왔다.


몇 번이나 그녀의 손 때를 탄 것인지 형태가 일그러진 약도 수 없이 놓여져 있었다.





설마 다이애나가...?


그럴리 없지...


말도 안되는...


정말 그녀의것이 맞는걸까?


사랑하는 그녀와 마약은 어울리지 않는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녀에겐 아주 작은 경우의 수 조차 허용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도할 수 도 없었다.


아닐것이다.


아니어야만 한다.


이럴 리가 없다고 몇 번이나 되뇌어 봤다.


'blue'


소중하단 듯 적어 놓은 그녀의 글씨.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눈 앞에 당장 펼쳐진 현실.


받아 들여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현실에 쉽게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느낌에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멍하니 약들을 바라보며 몸을 덜덜 떨기만 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그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게 된 나.


순간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대기실 안을 아무 의미 없이 빙빙 돌았다.


현실을 부정하려 위안을 생각해봐도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녀가 마약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필시 이 정도의 양이라면 아버지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중독자 일 것이다.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다.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속단은 절대 금물이라고...


답답함에 심장이 미칠 듯 타올랐다.


제발 이 모든 게 진실이 아니길 빌며 생각을 정리했다.


단지 마약을 하는 것으로 문제 될 것은 없다.


내가 옆에서 그녀를 돌보고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면 될 뿐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진실을 마주한 내가 이전처럼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긴 시간 동안 나를 속여 온 그녀를 내가 더 이상 신뢰할 수는 있는걸까?


계속해서 강한 의구심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갑작스레 처음 그녀와 만났을때가 떠올랐다.


그날 처음으로 환영을 보게 되었던 것도알 수 없이 계속 그 정체가 궁금해졌던 것도...


들뜬 기분으로 그녀에게 고백을 하게 된 것까지...


그녀의 입술이 닿은 트럼펫을 함께 했다.


따스하게만 느껴졌던 입술.


그 포근함을 나누던 모든 순간들.


그 모든것이 환각이었고 단순히 마약 때문이었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나 자신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진실된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도...


마법처럼 그녀에게 끌려갔다 생각한것도...


모두 거짓이었다.




그녀를 사랑하긴 한 걸까...? 


다이애나는 이럴줄 알고 있었던걸까?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숨겨왔다니...

아버지를 나락으로 빠트린 백인들과 똑같은 모습이지 않은가.


항상 사랑해왔던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계속 함께하고...


지켜주고 싶던 그 모습이...


사악한 속내를 숨긴 채 나를 조롱하는 눈빛이었다니...




진심 어린 사랑의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실패를 두려워하던 내가.


솔직하지 못하고 진정한 나를 마주 보지 못하던 내가...


그녀가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고그녀만 있으면 모든것이 성공이라고 느껴왔는데...


그녀에게 속아 크나큰 실패를 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계속 함께 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술수가 성공한것에 매일 뿌듯한 미소를 지었겠지.




너무나도 깊은 사랑이 끔찍한 증오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쥐어 잡고 흠씬 두들겨 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경멸의 시선을 가진 채 언젠가 돌아올 다이애나를 기다렸다.


고요한 대기실에서 차갑게 서리가 낀 듯한 마음을 가지고 문이 열리길 지켜 보았다.





그때 밖에서 다이애나의 공연이 끝마쳤는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 관객중에 아버지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들끓는 분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머리가 터질 듯한 두통과 격하게 차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리만 감싸쥐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 문을 열며 행복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다이애나.


"블루 문여기 있었어내 평생 최고의 밤이야!!!"


한껏 소리를 지르며 들어오는 다이애나.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죽일듯이 그녀를 노려볼 뿐.


좋지 않은 내 모습을 직감이라도 한 듯 다이애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섭게 왜 그래무슨 일 있었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시선을 피했다.


당황하며 나를 살피는 다이애나.


열이라도 확인하려는지 이마에 손을 올리는것을 힘차게 쳐냈다.


그 행동에 놀란 다이애나가 천천히 뒷 걸음질을 쳤다.


난 꼴보기 싫은 행동에 금세 약 봉투를 들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러자 봉투가 터지며 수 많은 마약이 촤라락 흩뿌려졌다.


입을 틀어 막으며 놀라는 다이애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꺼내며 말했다.


"더러운 약쟁이 년."


다이애나가 눈물을 왈칵 쏟으며 말했다.


"약쟁이라니어떻게 그런 말을..."


"그럼 저건 뭔데?"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모습에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젠가 내 아버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지백인들이 억지로 약을 먹여 평생 중독으로 고생하고 계신다고."


말없이 계속 눈물만 흘리는 다이애나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당신을 보러 온 날이야뭐 느끼는 것 없어?"


"아니야...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 절대 아니야..."


내 손을 붙잡으려 하는 다이애나의 손등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녀의 손이 빨갛게 부어오르건 말건 무시하고 소리쳤다.


"아니긴 뭐가 아니지??? 약을 한다는 건 그렇다고 치지어떻게 지금까지 나를 속일 수 있어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토록... 그토록...!"


목이 메여와 다음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제발 말하지 말아 달라는 다이애나의 표정을 보았지만 그저 내뱉었다.


"그토록 사랑한다는 눈빛을 짓던 것도 다 거짓이었군어떻게 감쪽 같이 날 속일수 있어?"


"그런 적 없어단 한 번도...! 당신에게 그런 거짓된 일을... 그런적은 절대 없어... 제발... 블루 문... 한 번만 믿어 줘..."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어 눈을 질끈 감았다.


"좋아백번 양보해서 당신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있었다고 하지내가 가장 화가 나는 게 뭔지 알아?"


잠시 침묵을 이은 뒤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의 연주를 들으면서 환영이 보인다고 했었지?"


제발 변명 같은 변명을 들려줘다이애나.


"그게 모두 마약 때문에 생긴 환각이었다고그런 말을 할 때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런 모습으로 날 대할 수 있지사실은 헛소리를 하는 내가 재밌기라도 했던건가?"


난 울분에 가득 차 대기실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달빛 아래에서!!! 마음?! 마법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블루 문... 한번만 내 말을...!"


"처음 트럼펫을 불어보라 할 때 의심 했어야 했어마약을 한 추잡한 입이 닿은 것을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불게 한 거야?"


"그런 말도 안되는...! 사실..."


"닥쳐!!!"


깜짝 놀라는 다이애나를 비꼬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군내가 흑인이니까만만하니까!!!"


"아니야... 아니야...! 제발...!"


"회계사로 성공한 흑인을 마약으로 붙잡아 편하게 살려고라도 했던 모양이지놈팽이처럼 틀어박혀 트럼펫이나 불어대려고 말이야맞지?"


그러자 달려와 나를 껴안으며 엉엉 울부짖는 그녀.


"미안해블루 문제발... 진정해... 내가 다 미안해... 제발 설명할 수 있게 해 줘..."


난 그런 그녀를 밀치며 일어섰다.


"설명무슨 설명이 필요하지우연히 만난 것뿐인데 점점 마음이 끌리는 것부터 이상 했어."


바닥에 흩뿌려진 마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모두 당신을 향한 진심이 아니라 더러운 마약 때문이었다고난 당신을 사랑해서 함께 한 게 아니라 당신이 묻혀 놓은 마약에 이끌렸던 것뿐이야어떻게 그런 사악한 짓을...!"


"블루문!!! 제발...! 사실대로 다 얘기할게."


그녀가 오열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사랑을 두고 맹세 해당신을 만나고서 단 한 번도 약을 입에 대지 않았어정말이야..."


난 냉담하게 답했다.


"한번 지껄여보시지."


다이애나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겨우 입을 떼었다.


"트럼펫을 시작하고 우울증을 앓게 되었어... 그러나 병원에 가긴 힘들어서 주변에서 약을 찾게 되었던 거고... 이건 아직도 후회하고 있어."


"우울증그래서 봉투에 'blue' 라고 적어놓았던 거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다이애나.


"작년에 공연이 실패했던 그 날기억하지?"


"그게 뭐?"

"잭과 당신이 기회를 준 날부터 완전히 약을 끊어 봤어그러나 긴장이 너무나 올라온 탓에 무대에서 약 생각이 났고... 도망쳐나가 바로 약을 할까 생각을 했지만..."


"지금 그딴 헛소리를 하는 이유가 뭐지?"


"한번만 들어 줘...! 그때 날 위로하러온 당신의 얼굴을 보자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진정 됐어..."


"그 말을 믿으라는거야?"


"나도 그런 나를 의심 했지만... 당신의 사랑에... 나도 변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됐어...! 당신이 나를 안아줄 때손을 맞잡아줄때 마음이 안정되었고 약 따위는 쳐다 볼 필요도 없었어..."


난 잊지 못하는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말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다 이해가 되네그때 대기실에서 극심히 불안해 보이던 것도내가 당신을 위로하러 갔을 때 방금까지 울먹이던 사람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것도전부 약 때문이었군."


"아니야!!! 정말 아니야...! 그 날 약은 하지도... 그 이후로 당신을 사랑하면서부터 단 한번도 약에 대한 생각 따위 해본 적 없어..."


믿을 수 없는 말에 그저 소리쳤다.


"약을 하지 않았다고당신과 처음 춤을 추며 남자로서 가장 행복했던 그때어쩐지 내 마음이 이상하게 들끓어오르더라니단순히 당신의 입에 남아 있던 마약 때문이었어솔직하게 말하지?"


"그런...! 정말 거짓말이 아니야!!!"


"그 날은 그렇다고 치지내게 처음 트럼펫을 불게 한 날에는그 날도 약을 하지 않았나그런데도 난 환각을 본 것이고?"


"정말 미안해... 당신이 그런 식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는... 겨우 그 정도로 그럴것이라 어떻게 생각 할 수 있겠어?"


이제야 시인하는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만그만 얘기해더러운 약쟁이가 지금까지 나를 속여 왔다는 게 치가 떨려 참을 수가 없군."


난 바닥에 있는 약을 짓밟으며 소리쳤다.


"다 끊었다고그렇다면 오늘은 왜 약을 가져온 거지?"


그러자 다이애나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오늘만큼은 절대 실수하고 싶지 않았어!!!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 온 것뿐이야... 입에 가져다 대지도... 가방에서 꺼낸적도 없어... 당신이 옆에 있었으니까... 함께 있어줬으니까..."


"믿을 수가 없군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약은 내가 잘 알아누군가 옆에 있어 준다고손을 맞잡아 준다고 해서 절대 그만할 수 없어."


난 대기실 문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오늘 공연도 약 덕분에 성공적이었겠지처음부터 나에게 미칠 영향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거야?"


부르르 떨리는 주먹을 더욱 꽉 쥐어 잡았다.


"만에 하나라도...! 오늘도 당신과 기쁨에 겨워 키스했다면... 당신처럼내 아버지처럼...! 약의 노예가 되었을 거야그렇지?"


그러자 오열하는 그녀


"블루문... 가지마... 제발... 난 진실만을 말했어한 번만... 한번만...! 차분하게 날 안아 주면서 얘기할 수 없을까?"


블루문정말 말도 안되는 이름으로 날 부르는 군.


"블루문이라고 부르지 마!!!"


난 온몸이 떨리는것을 겨우 참아내며 말했다.


"내 이름은 루이야백인들의 멸시와 차별에도 당당히 성공한 아들이라고."


"루이... 제발 이러지마...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해당신이 알 수 없을 정도로...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약쟁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당신사실은 내가 아니라 환각 속의 남자를 좋아했던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다신 나랑 마주치지 마우린 여기서 끝이야백인들을 믿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어야 했어."


쾅하며 대기실 문을 닫자 하염없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어떻게... 그런짓을... 나 따위는... 역시 그 정도의 배려도 받지 못할 사람이었다는거야...?"


그런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에 갇혀 있을때


밖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겨우 정신이 차려지는듯 했다.


관객석에 홀로 남겨 둔 아버지가 걱정되어 곧장 달려 나갔다.


예상한 것과 다르게 즐겁게 공연을 즐기는 아버지의 모습.


난 부서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나가요이제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졌어요."


당황하시는 아버지.


난 묵묵히 아버지를 부축하여 휠체어에 앉힌 뒤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거리를 말 없이 걸어가며 가슴속에 타오르는 눈물을 씹어 삼켜냈다.


그때 아버지가 말을 거셨다.


"무슨 일이 생긴 거냐루이?"


"아니에요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자 콜록거리며 말을 이어가시는 아버지.


"생각보다 괜찮은 공연이었는데 말이야아쉽게 됐구만!"


난 그 모습에 슬픔을 티 내지 않으려 겨우 입꼬리를 들었다.


"재미 있으셨어요다음엔 재즈 말고 다른 곳으로 가요."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그런데..."


"왜 그러세요?"


"재즈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던 걸특히 백인 여자 주제에 트럼펫은 꽤 잘 불더구나그 노력만큼은 인정하마."


내가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말이었겠지.


원래라면 기뻐하며 달려가 그녀를 꽉 안아 주었겠지.


아버지의 말을 듣자 참아왔던 눈물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크흐흑... 크흑..."


떨어지는 눈물이 아버지의 어깨에 닿자 아버지가 놀라셨다.


"왜 그러냐내가 재즈가 좋다한 게 그렇게 충격인거냐?"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자 내 손을 붙잡으시는 아버지.


"변했군... 변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