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와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며, 그녀와 사귀는 그 행복한 시간에 조차 N은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확실히 N, 그녀 자신과 S는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습관, 성향, 성격. 동거를 하는 지금 생활이 파토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둘은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참아준다면 넘어갈 수 있었고, 사랑한다면 그조차 매력으로 변할테니. N이 절대적인 차이를 느끼는 것은 다른데 있었다. 


 언젠가 S가 악세사리를 버린 날이었다. 전에 다른 누구에게 선물받았다고 들은 귀걸이. 꽤나 아끼는 것처럼 보였던 귀걸이가 쓰레기통에서 반짝이는 것이 이상하다 여긴 N은 그것을 주워 S에게 건넸다. 


“쓰레기통에서 찾았어.”


“아, 괜한 수고를 했네. 그거 내가 버린거야.”


“왜?”


 그런 물음에 S는 시선을 돌린 채로.


“이제는 안 쓸 거니까.”


 간단하게 답했다. N은, 별다른 마음을 두지않은 채로 귀걸이에서 시선을 돌린 S에게 형용하지 못할 감정을 느꼈다. N, 그녀 자신은 결코 할 수 없는 일. 둘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 그것은 미련이다. 끊어내지 못하는 감정은 지금까지 N을 속박하고고 있었다. 어쩌면 과거와 산다는 말이 적당할 정도로. N은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바라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는 인종. 


 미련은 그림자처럼 N과 함께한다. 그렇기에 단편적인 기억, 그를 넘어서 추억이 된 풍경들은 언제나 N의 눈에 밟혔다. 이따금 우수에 찬 눈으로 거울을 바라본다면, N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은 언젠가 헤어져야만 했던 그 아이의 가을로 변해 있었다. 낙엽이 지는 날, 그 때로 돌아간 것 처럼. 그리고 그 날을 원하는 것 처럼. 그 아이만이 아니다.  선망의 대상은 공정하게 결정된다. N이 여름의 행복한 기억을 바라고 있노라면, 다른 한편에서는 어두운 터널에서 떨던 나날을 다시 되새긴다. 그 때 느꼈던 기분같은 건 N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어서. 시간 또한 똑같이 대한다. 


 그래서 S와 함께 사는 지금도 이전의 기억과 같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어딘가 냉정한 구석이 있지만 사랑하는 S와 함께하는 지금이 좋다고 N은 생각한다. 이 관계가 깨지는 일 없이 추억으로 남을 미래를 함께 맞이하고 싶다고. 누군가가 선뜻 10평 남짓한 방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이상 무너지지 않을 소망을 가슴에 품었다. 


 그런 둘의 어느 날. 좁은 방, 둘만의 우주로 주말의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방 하나 새로 구하려고.”


 S의 말 한 마디가 그 공간을 부수기 시작한다. N은 그런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애매한 표정을 짓는 N에게 S는 거듭 말한다.


“말 그대로야. 방 하나, 새로 구하는 게 좋지 않을까해서.”


“그럴 필요가 있어? 더 넓은 방을 원하는 거라면 둘이 돈 모아서…”


“아니, 혼자 나가서 살거니까 그럴 필요는 없어. ...헤어지자고 하는 게 더 나았으려나.”


 갑작스러운 결별 선언에 N은 난색을 표했다. 어째서 S가 저런 이야기를 꺼냈을까. 따로 불편한 게 있었다면, 진작 이야기를 했을텐데 왜 갑작스럽게 이 공간을 빠져나가려 하는 지 N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줘.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N은 그저 S에게 답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줄곧 생각했었어.”


 S는 곧장 답한다.


“언제까지고 너한테 매여 살 수는 없다고. ...전부 내 탓이야. 내가 너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하지만 시선을 피하는 그 모습에서, N은 어느 날의 기억을 겹쳐보았다. 귀걸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던 날. 그토록 차가웠던 S가 다시 그녀의 눈 앞에 있다.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결국은 차갑기만 한 사람. 


“항상 그렇게 냉정하게.”


 이리도 쉽게 관계를 끊어내려는 사람에게 N은 지금까지 쌓아온 말을 쏟아낸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부딪힌다.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는 것처럼 끝내버리고. 너는 지금 스스로를 탓하지만 결국 상처입는 건 나잖아. 아직 널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나만 슬프다고.”


“...”


“만약 이게 마지막이라면, 적어도 지금만큼은 차갑게 대하지 말아줘…”


 울음이 섞여 말끝을 흐리는 N을 바라보며, S는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차마 말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를 말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헤어지는 이유란 것은 결국 S와 N, 둘 모두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아. 이 순간에조차 끝내 숨기려고 하는 마음이 S에게 있었다.   


 하지만 결국 S는 말을 고른다. 다른 무엇도 아닌 오기가 그녀를 이끌었다. 냉정하다는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N에게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사랑같은 건, 난 할 수 없어.”


 다른 사람과의 사랑, N은 자연스럽게 주제를 이어받았다. 


“...E의 이야기야?”


“E도 W도. 다른 모두도. 너는 나와 사귀면서도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하고 있어. 그 관계를 차마 끊어내지 못하겠다는...말을 하면서.” 


 S는 여전히 N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로, 마치 변명하듯이 말을 이어갔다.


“나는...나는 너만큼 마음이 넓지 못해. 내 좁은 방 안은 너 하나만으로 가득 차. 다른 사람이 끼어들 구석같은 건 없어.”


“그러면 그대로 너는 나만을 사랑하면 돼. 지금까지랑 다를 거 없어. 우리는 앞으로도 쭉, 그렇게…”


“누가 그럴 수 있는데!”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운 S의 고성. 자신이 그런 말을 뱉었다는 것에 놀란 S는 손으로 황급히 입을 막았지만 더는 돌이킬 수 없었다. 한 번 새어 나오기 시작한 말이란 도저히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S는 끝까지 N을 사랑하고 싶었다. 모진 말을 주고 받으며 괴롭게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아. 

    

“...그런 너랑 만날 수 있는 건...아니, 아니야. 나는 그러니까…아직 축복을 빌어줄 수 있을 때. 내가 너를 미워하기 전에 헤어지고 싶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원망을 겨우내 집어 삼키며 뱉어야 하는 말을 끊임없이 고친다.


“이별을 미루면 미룰수록 우리는...내가 바라보는 너는…”


 한계에 다달아 같은 말만을 반복할 때까지. S는 그토록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을 잠자코 바라보던 N은 점차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향해 손을 뻗어, 쓰다듬어 주었다. 다른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따라가는 본능적인 위로. 하지만 그와 함께 내뱉는 말은.   


“다시 또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줘. 다른 모두처럼. 행복한 기억만을 다시 나눌 수 있다고 말해줘. 그렇다면...그렇다면 나는 괜찮아.”


 비굴하면서 이기적인 구걸이었다. N은 진정 S가 이별을 고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걸까? 겨우내 쏟아낸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도 그런 말을 뱉는다. N의 진의를 확인한 S는 한참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이 손의 온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하면서.

 

“행복하게 살아, 평생토록.”


 얼마 지나지 않아, S는 집을 나섰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S는 모진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신세졌다는, 잘 지내라는 의례적인 말만을 반복하면서 둘의 우주를 떠났다. 못내 마음을 끊어내지 못한 여자는 삶의 궤적에서 자신을 잘라내어버린 여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 N은 자신을 떠나간 S를 그렸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빌어주었던 축복을 끊임없이 재생시키며, 그런 말을 빌적에 보았던 S의 눈동자같은 건 애당초에 잊어버린 채로... S는 이미 그녀에게 있어 행복한 나날의 일부로 변해버렸다. 지금까지 N이 품에 안았던 다른 여자들처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연인들 중 한 명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