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원소(?~202)

자는 본초, 낙양 출신.

후한 최대의 귀족 가문 원씨 일가 출생. 다만 어머니가 천민인 얼자라서 가문의 지원은 별로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본처 태생인 원술보다 더 출세했으니 그건 자신의 능력. 

외모도, 카리스마도, 정치력도, 모든 면에서 절친 조조 이상으로 뛰어났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이 두 친구의 운명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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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는 백관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나가서는 절을 동문 위에 걸고(관직을 버린다는 뜻) 기주로 떠났다. 동탁이 당장이라도 원소를 죽이려 하자 이유가 만류하며 말했다.


"큰일을 결정하지도 못했는데 함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동탁이 태부 원외에게 말했다.


"그대의 조카가 무례하나 내 그대의 체면을 보아 관용을 배풀어 용서하겠소. 폐립의 일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원외가 말했다.


"태위께서 보시는 바가 옳습니다."


"감히 대의를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군법으로 처리하겠노라!"


군신들이 대경실색하여 말했다.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연회가 끝나자 동탁이 시중 주비와 교위 오경에게 물었다.


"원소가 이번에 가버렸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주비가 말했다.


"원소가 몹시 화가 나서 갔으니 만일 급히 뒤쫓아 잡으려 한다면 틀림없이 변고가 일어날 것입니다. 게다가 원씨는 4대에 걸쳐 은혜를 널리 배풀어 문하생들과 오래된 부하들이 천하에 두루 널려 있는 데다, 만일 호걸들을 받아들여 무리를 모으기라도 한다면 영웅들이 이때를 이용해 일어날 것이니 산동(관동)은 공의 소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군 태수 자리를 주신다면, 원소는 죄를 면하게 된 것을 기뻐할 것이고 공께서도 분명 근심거리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경이 말했다.


"원소가 일을 꾀하는 것은 좋아하나 결단력이 없으니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군 태수 자리를 하나 더해주시고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동탁은 그 말에 따라 바로 사람을 보내 원소를 발해태수로 임명했다.


9월 초하룻날, 황제를 청하여 가덕전에 오르게 하고 문무관원들을 모았다. 동탁이 검을 뽑아들고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


"천자가 어리석고 나약하여 천하의 군주로는 부족하다. 여기 책문이 있으니 당연히 여러분께 낭독해드리지요."


바로 이유에게 책문을 낭독하라 명했다.


"효령 황제께서 일찍이 신하와 백성을 두고 붕어하시고 황제께서 대통을 계승하시니 온 천하가 의지하며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황제의 타고난 자질이 진중하지 못하고 위의가 엄격하지 못하며 선황제의 상중에도 나태했으니, 불량한 품성이 이미 명백하여 제위를 욕되게 했다. 황태후 또한 국모로서의 예의도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 모범을 보이지 못했으며 국정을 통솔함에 있어서도 정세가 불안하고 어지러웠다. 영락태후(동태후)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뭇사람이 입에 올리며 의심을 품고 있었다. 삼강의 도리와 천자의 법도에 잘못이 없다고 하겠는가? 진류왕 협은 성덕이 성대하시며, 행동 또한 단정하고 공손하여 상중에는 몹시 슬퍼해 사악한 말은 입에 담지도 않으셨으니 그 훌륭한 명성은 천하가 모두 들은 바다. 마땅히 대업을 계승하여 만세의 대통을 이어가실 분이로다. 이에 황제를 폐하여 홍농왕(弘農王)으로 삼고, 황태후는 정사에서 물러나게 하노라. 청컨대 진류왕을 황제로 받드니 이것은 천명에 순응하고 인심에 부합하는 것으로 백성의 바라는 바를 위로하고자 하노라."


이유가 책문 읽기를 마치자 동탁이 좌우를 큰 소리로 꾸짖어 황제를 대전에서 끌어내리게 했다. 그러고는 옥새를 묶은 채색 명주 끈을 풀게 하고 북쪽을 향해 몸을 곧게 꿇어앉게 한 다음 신하로서 명령에 따르게 했다. 또한 태후를 불러 태후 복장을 벗기고 칙령을 기다리게 했다. 황제와 태후가 함께 울부짖었고 군신들 중에 비참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상서 정궁(丁宮)이 말했다.


"하늘이 한실에 화를 입히니 재난이 더욱 커지고 많아졌소. 옛날에 정나라 제중(祭仲)이 소공을 폐하고 여공을 세우니 '춘추'에서 그 임기응변이 크다고 했소. 지금 대신들은 사지을 헤아려 계획해야 하고 진실로 하늘과 사람에 부합하니 만세 부르기를 청하리다."


동탁이 진류왕을 청하여 대전에 오르게 했다. 군신들이 알현하고 경하를 마치자 동탁은 하태후를 부축하여 홍농왕, 황비 당씨와 함께 영안궁에 기거하게 했으며 궁문을 봉쇄하여 군신들이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도록 금지했다. 가련한 소제는 4월에 등극하여 9월에 폐위되었다. 


동탁이 세운 진류왕 유협은 자가 백화(伯和)이고 영제의 둘째 아들로 바로 헌제(獻帝)인데, 이때 그의 나이 9세였다. 그는 연호를 고쳐 초평이라 했다. 동탁이 상국이 되어 황제를 배알할 때 찬례 시 성명을 부르지 않고 관직만 칭하고, 조정에 들어갈 때도 종종걸음으로 빨리 걷지 않으며, 황제를 뵙고 정사를 논할 때 패검을 풀고 신발을 벗어 어전 밖에 두지도 않으니 그 전횡이 비할 데가 없었다. 이유는 동탁에게 걸출한 명사를 등용하여 인망을 얻어야 한다고 권하며 재주가 많은 채옹을 천거했다. 동탁이 그를 불렀으나 채옹은 오지 않았다. 화가 난 동탁이 사람을 시켜 채옹에게 말했다.


"내가 누구든 멸족시킬 수 있는데, 채옹이 오만하다면 멸족의 화가 그리 오래지 않을 것이다."


두려워진 채옹은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복종했다. 채옹을 본 동탁은 크게 기뻐하며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승진시켜 시중으로 임명하고 매우 친밀하게 우대했다.


한편 소제와 하태후, 당비는 영안궁에 갇혀 지냈는데, 의복과 음식이 점점 줄어들었고 소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어느 날 각 지의 호걸들이 군사를 모아 동탁을 치려 한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이유에게 무사 10명을 데리고 영안궁으로 가서 폐위된 소제를 죽이라고 했다. 하테후, 당비와 함께 누각 위에 있던 소제는 궁녀들이 이유가 왔다고 보고하자 깜짝 놀랐다. 이유가 독주를 올리자 소제가 그 까닭을 물었다. 이유가 말했다.


"봄날이 따사로워 동 상국께서 특별히 수주(장수를 기원하는 술)를 바치는 것입니다."


하태후가 말했다.


"수주라고 했으니 네가 먼저 마셔보거라."


이유가 성내며 말했다.


"네가 마시지 않겠다는 말이냐?"


좌우에 단도와 흰 명주 끈을 앞으로 가져오라 말했다.


"수주를 마시지 않겠다면 이 두 가지 물건을 받아라!"


당비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첩신(여성의 자신에 대한 경칭)이 폐하를 대신해서 술을 마실 테니 원컨대 공께서는 모자의 목숨을 보전해주십시오."


이유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네가 무엇이라고 왕을 대신해 죽는다고 하느냐?"


이유가 이에 술을 들어 하태후에게 주면서 말했다.


"네가 먼저 마셔라!"


하태후는 눈물을 흘렸다.


"옛날 오라버니가 십상시를 치기 위해 대책 없이 사람을 부르더니, 십상시보다 더한 역적이 들어와 이런 환란을 일으켰구나."


이유가 소제에게 마시라고 재촉하고 다그치자, 소제가 말했다.


"내가 작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오."


소제는 당비의 손을 잡더니 대성통곡했다.


"그대는 재가하여 날 잊고 살아주시오."


이야기를 마치자 소제와 하태후는 서로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유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상국께서 보고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너희는 시간을 질질 끌어 누가 구해주기라도 바라는 것이냐?"


태후가 욕설을 퍼부었다.


"역적 동탁이 우리 모자를 핍박하니 하늘이 돕지 않을 것이다! 네놈들은 악행에 협조했으니 반드시 멸족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이유가 버럭 성을 내더니 양손으로 태후의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 그러고는 무사들에게 호통쳐 당비를 궁 밖으로 쫓아내고 짐주를 소제 입에 억지로 부어 죽였다. 돌아가서 동탁에게 보고하자 하태후는 문소릉의 영제와 합장하게 하였고 소제는 중상시 조충이 마련해 두었던 묘혈(成壙)에 장사지냈다. 이로부터 동탁은 매일 밤 입궁하여 궁녀들을 간음하고 용상에서 잠을 잤다 *


동탁은 하태후가 죽은 뒤 태후의 일족을 멸하고 하진의 계모 무양군을 죽였으며 이미 죽은 하묘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반으로 자르고 저잣거리에 버렸다. 하진의 일족 중 살아남은 것은 하진의 아들 하묘와 부인 윤씨, 그리고 하묘의 아들 하안 뿐이었다. **


한번은 동탁이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 양성 지방(예주 영천군. 현 허난성 덩평 인근)으로 갔다. 이때는 2월이라 마을 사람들이 사새(농민들이 토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남녀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동탁은 군사들에게 그들을 에워싸서 모조리 죽이라 명하고는 부녀자와 재물을 강탈하고 수레에 싣게 했다. 죽인 백성의 머리 1000여 급을 수레 밑에 매달고 수레들을 앞에서 부터 끝까지 서로 연결하여 도성으로 돌아와서는 도적떼를 죽이고 대승하여 돌아왔다고 떠벌렸다. 성문 밖에서 사람들의 수급을 불태우고 부녀자와 재물은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여남 사람 월기교위 오부(伍孚)의 자는 덕유(德瑜)로 동탁의 잔혹함을 보고는 분노하고 증오하여 불만을 품고 단도를 숨겨 적당한 시기를 기다렸다가 동탁을 죽이려 했다. 일찍이 그는 조복 속에 패도를 품고 동탁을 만나러 갔다. 오부는 말을 마치고 작별을 고한 뒤 떠났고 동탁은 일어나 오부를 작은 문까지 전송하고 손으로 오부의 등을 어루만졌다. 이때 오부는 칼을 뽑아 동탁을 찔렀지만 힘이 장사인 동탁은 양손으로 그를 꽉 붙잡았다. 그때 여포가 바로 들어와 오부를 잡아 당겨 쓰러뜨렸다. 동탁이 물었다.


"누가 네놈에게 모반하라고 했느냐?"


오부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너는 나의 군주가 아니며 나는 너의 신하가 아닌데 무슨 모반이 있겠느냐? 너의 죄악이 하늘에 가득 차서 사람마다 너를 죽이기를 원하노라! 내가 너를 거열하여 천하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오부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여포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이 일 이후로 동탁은 출입할 때면 항상 무장한 군사들의 호위를 받았다.

이때 발해에 있던 원소는 동탁이 권력을 남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왕윤에게 밀서를 전달했다.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역적 동탁이 하늘을 속이고 황제를 폐했는데도 사람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소. 공께서는 제멋대로 날뛰는 그들을 내버려두고 못 들은 척하니 어찌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고 충성을 다하는 신하라 하겠소? 이 소는 지금 병사를 모아 훈련시키며 왕실을 깨끗이 청소하고자 하나 감히 경솔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소. 공께서 마음이 있으시다면 즉시 명령을 받들어 따르겠소."


밀서를 받은 왕윤은 깊이 생각했으나 도무지 계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 시반(입직, 그러니까 당직근무 중이라는 뜻.) 작은 방에 옛 신하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왕윤이 말했다.


"오늘은 이 늙은이의 생일이라 저녁에 여러분을 집으로 초청하고자 하니 조촐하게 술이나 한잔하시지요."


관원들이 모두 말했다.


"꼭 가서 축수(생신 축하)하리다."


그날 저녁 왕윤은 후당에 연회를 베풀었고 공경들이 모두 모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왕윤이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통곡했다. 관원들이 놀라 물었다.


"사도께서는 귀한 생신날 무슨 까닭으로 그리 슬퍼하십니까?"


왕윤이 말했다.


"사실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니오. 여러분들과 담소나 나누고 싶었는데 동탁이 의심할까 두려워 핑계를 댔을 뿐이오. 동탁이 군주를 기만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사직이 조석으로 보전하기 어렵게 되었소. 고조 황제께서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초나라를 멸망시켜 천하의 강토를 통괄하신 것을 생각하면, 지금에 이르러 동탁의 손에 무너지게 될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소. 그래서 내가 이렇게 우는 것이오."


그러자 모두가 소리 내어 울었다. 그때 좌중에서 한 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깔깔 웃었다.


"조정에 가득 찬 공경들이 날이 밝을 때까지 울다가 다시 밤이 되도록 울기만 하니, 울어서 동탁을 죽일 수 있겠소?"


왕윤이 보니 바로 효기교위 조조였다. 왕윤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너의 조상 또한 한나라의 녹을 먹었는데 지금 나라에 보답할 생각은 않고 도리어 웃고 있단 말이냐?"


조조가 말했다.


"내가 다른 일로 웃는 것이 아니라 여기 계신 여러분께서 동탁을 죽일 계책 하나도 내놓지 못하기에 웃는 것이오. 이 조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원컨대 즉시 동탁의 머리를 잘라 도성 성문에 걸어 천하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왕윤이 자리에서 비껴 일어나며(상대에 대한 존경과 겸손을 표하는 동작) 물었다.


"맹덕에게는 무슨 고견이라도 있소?"


조조의 계책은 무엇인가?


* 하태후와 소제의 죽음: 연의에선 두 사람이 같은 시점에 죽는 것으로 서술했지만, 실제로는 하태후가 189년 9월, 소제가 190년 3월에 각각 독살당했다. 또한 소제의 죽음은 반동탁 연합군의 준동을 알게 된 동탁이 살해한 것이며, 소제의 아내 당비는 연의와 달리 이때 죽지 않았다. 소제와 당비의 작별인사는 필자의 창작.


** 하씨 일가: 연의에선 좀 생략되었지만, 실제로 동탁은 하태후를 독살한 후 하진의 일가를 몰살했다. 하함의 생몰년도가 부정확해 그 당시 살아남은 것이 몇 명인지는 갈리나, 여기선 하함과 그의 아내 윤씨, 그리고 하함의 아들 하안이 살아남아 도망친 것으로 설정했다. 여기서 살아남은 하안은 한~참 나중에 나오니 기억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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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가 여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