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달렸다.자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달려왔는지도 잊고, 어디서 어디로 갈지로도 모른 채로 계속 달렸다.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달빛과 별빛을 등에 지고 계속해서 말이다.이미 뜯겨나간 왼팔의 소매는 너덜너덜해져있었고, 들짐승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는 벌어질대로 벌어져서 근육과 힘줄이 고스란히 보일 것만 같았다.그런데도 하얀 설원 위에  발로  소년은 그저 눈앞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그것 외에 그가   있는 것은 없었다.


하얀  위에 붉은 피가 떨어져 물들어가도자신의 피부를 찢고 지나간 짐승의 발톱 자국과 화살 자국이 벌어져도그는 전혀 고통스러워보지 않았다.되려 개운하고 상쾌해보였다.


그가 그렇게 대지에서 도망치려는 생각이라도  것처럼밤도 낮도 잊은 채로 하얀 눈을 박차고 마치 자신의 머리 위를 비추는 태양에게서 도망치려는 듯이 계속 달리자 그는 설원을 벗어나 상록수가 우거진 숲에 도달했다.그의 잿빛 눈조리개가 예리하게 반짝였다.사냥용 작살보다도 날카롭게.


평생 흰 눈과 흰 짐승, 파란 바다와 하늘 만을 바라봐온 소년에게 새카맣도록 짙푸른 침엽수가 자라난 숲은 새로운 경험이었다.그런 숲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천진난만해서 사냥은 커녕 벌레 한 마리도 제대로 죽인 적 없는 어린아이같았다.


그러나 소년의 천진난만한 태도와 달리 그의 몸 상태는 좋아보이지 않았다.너덜너덜거리는 근육과 피부, 심하게 벌어져 피냄새를 풍기는 상처, 거의 부서질락말락하는 엽총과 이미 반으로 토막난 작살.

그에게서는 숨기지도 못할 정도로 짙은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소년의 눈은 빛났다.

잿빛의 암늑대  마리가 아까 전부터 자신의 뒤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침엽수림의 질척한 진흙은 소년의  가죽옷을 더럽혔고, 스리소니 따위를 비롯한 온갖 짐승들이 소년을 노렸으나 소년은 총대를 휘둘러 짐승들을 쫓아내곤 계속 뛰어갔다

.

그는 늑대가 자신의 그림자를 밟으며 쫓아오는 것을 모른  계속 달렸다.

늑대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그저 소년의 뒤를 조심스럽게 쫓을 뿐이었다.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소년이 걱정되어 따라온 어머니처럼 보일 정도였다.


 넓은 숲을 소년이 통과하는 동안 해가 저물어갔다.그는 여우 한 마리도 제대로 죽이지 못할 정도로 약했다.그가 살던 부족에서도 특히 약했기에 버려져 죽을 운명이었다.그럼에도 숲을 통과한 소년이 핏빛의 노을을 전신에 흠뻑 뒤집어쓴 모습은 어엿한 부족의 사냥꾼같았다.장성한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처럼 의연하게, 암늑대는 뒤에서 노을을 뒤집어쓴 소년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은 숲을 지나고도 계속 달렸다.늑대도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소년은 노을마저 저물어 어둠이 깔린 후에야 어느 호수 앞에서 달음박질을 멈추고 그 거인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거울처럼 잔잔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호수에  하늘 너머의 별바다가 고스란히 비쳐보였다.

별똥별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호수의 중앙에 떨어지더니 빛을 잃어갔다.소년 역시 그렇게  것이라고 예언하듯 말이다.소년은 왠지 모를 불쾌감에 미간을 살짝 구겼다.


소년은 이제 지친 듯했다.지금 소년에겐 작살을 휘두를 힘이나 엽총을 쏠 힘은 없었다.오히려 그는 총과 작살을 지팡이 삼아 서있기도 버거웠다.꺼져가는 생명이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연기 냄새를 맡은 짐승들이 몰려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소년은 호숫가에 총과 작살을 내려놓고 피에 젖은 가죽외투를 벗었다.늑대는 소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진녹색연두색, 청록색, 춘록색이 뒤엉켜 흔들리는 초록의 바다같은 풀밭에는 다홍색의 양귀비가 드문드문 피어있었다.소년은 그나마 성한 오른손으로 양귀비를 꺾어 꽃다발처럼 모았다.


그것을 뒤에서 보고 있던 늑대는 소년의 행동이 의문스러웠으나 그것을 이해할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그럼에도 소년을 그냥 놔둔 것은 암늑대 나름의 배려였다.사냥감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


소년은 그것도 모르고 설원에 떨어진 핏방울과도 같은 색의 꽃을 소중히 안아든 채 풀숲에 앉아 미소지었다. 호숫가 전체가 그 소년만의 왕좌가  것처럼 말이다.


늑대는 소년에게 조금 더 다가가 앉아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늑대를 올려다보았다.

불룩 나온 뼈가  드러나 초췌해보이는 몰골임신한 상태에서 무리에서 쫓겨난 어미 늑대인  했다.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어?”


늑대는 대답하는 대신 소년의 앞에 앉았다.

호박색 눈이 소년의 눈을 바라보았고소년은 늑대를 빤히 바라보았다.불룩 나온 젖과 배를 보아 출산을 앞둔 듯했다.


“너도 나도 신세가 같구나…”


소년은 측은한 듯 늑대를 바라보았다.

무리에서 쫓겨난 사냥꾼 둘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힘이 다 빠진 지금은 어차피 저항해봤자 둘 다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소년은 꽃을 무릎에 올려두고 오른팔로  손으로 늑대의 잿빛 귀를 쓰다듬었다.


 먹어. 먹여살릴 가족이 있잖아.”


소년은 자신이 영웅이라도  것마냥 웃어보였다.

그것이 소년이 마지막으로  말이었다.

그러더니 눈을 감은 소년의 몸은 힘을 잃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 사지가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늑대는 인간의 언어를 자세히는 몰랐지만 대략은 알고 있었고, 소년이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아니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그럴 생각이었다늑대는 송곳니로 소년의 목덜미를 물었고붉은 꽃잎과 피가 풀숲에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