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떠있는 날에는 문이 닫혀있다. 가게 이름은 월간휴무, 달과 달사이에 쉰다는 얘기다.

문이 열리는 날에는 달이 안보인다. 가게 이름은 월간무휴로 바뀌어, 한달내내 문을 연다.


가게에 나온 남자는 하얀 입김을 내쉬며 조용히 담배를 물었다.

이 지역, 이 도시의 명물로 남았으면 하는 가게의 앞에서 남자는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입김과 다른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워올라 어렴풋이 옅어진다.

남자는 들끓어 오르는 가래를 억누르며 조용히 다시 입에 담배를 물었다.


하늘은 맑고 예쁘게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달이 없는 하늘 아래에서도 별들은 달처럼 아름다웠다.

남자는 그런 하늘을 보며 행복한 상상을 하곤 한다. 언젠가 나도 이 가게처럼 명물로 남길 바라는 가게를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라는 상상을 말이다.


남자는 가래를 뱉고 반쯤 남은 담배를 밟아서 끈 뒤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남자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안주들과 술이 반쯤 남은 술병, 그리고 비워지지 않은 반대편의 술잔이 보인다.


남자가 이 가게를 오면 하는 습관 중 하나였다. 죽은 자를 기리는 건지, 아니면 술을 비워줄 사람을 기다리는 건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남자는 자신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마시고 다시 술을 채웠다. 쓴 목넘김이 싫었지만, 남자는 게워내고싶지 않았다.

명물 중에 명물인 이 가게 안에서 게워낸다면 다음부터는 이곳에서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해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손님, 괜찮으세요?"


남자가 이 가게를 명물로 여기는 이유는 음식도 분위기도 그렇지만, 그 중 최고는 지금 남자의 눈 앞에 있는 직원 때문일 것이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소녀, 우상이자 마스코트라고 볼 수 있는 소녀가 있기에 가게의 분위기는 더욱 활기가 느껴졌다.

그런 소녀이자 직원이며, 가게 안에서의 햇살과 같은 아이가 그를 걱정해주고 있다.


남자에겐 더도 없는 좋은 즐거움이었겠지만, 아직도 어색한 술의 맛은 기분을 미묘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술이 제 입에 안 맞는 거 같아서 말이죠."


남자는 자리에 일어나 소녀에게 카드를 건네며 계산을 부탁했다. 소녀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웃으며 카운터로 향했고 남자는 영수증과 카드를 받으며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 상황이 소녀에겐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이것도 자신의 독단적인 생각일까...


다음날이 되자 남자는 휴일을 만끽한 뒤 이른 저녁 즈음에 느긋하게 산책을 하던도중 우연히 가게 이름이 월간휴무로 되어있는 상태를 보며 오늘부터 다시 달이 뜰 것 같아 아쉬워했다. 그렇게 아쉬운 발걸음을 걸으며 가게를 지나칠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아니... 아저씨!"


가게에서 일하던 소녀였다. 자신을 보며 다급히 달려오는 소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학생이 그러한 가게 일을 도와도 되는 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소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원래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어제의 일이 떠올라 오늘따라 맞이해주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가게 밖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 말이예요. 어제는 죄송했어요. 괜히 제가..."


남자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녀를 보자 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소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그냥 어제는 입맛이 없어서 그랬으니까요."


"그렇다기엔... 반쯤 남긴 안주나 얼마 남지 않은 술이 신경이 쓰여요."


"이미 계산은 끝냈으니 신경쓰지 마요."


남자는 그렇게 소녀의 뒤로 걸어가는데 소녀는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 붙잡으며 말했다.


"제 마음의 빚은 계산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저녁을 살 수 있게 해주세요!"


".... 죄송하지만, 저는 학생에게 밥을 사주는 거면 몰라도 밥을 얻어먹을 처지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래도 저는 죄송하니까..."


남자는 가만히 멈춰 생각했다. 그때 어렴풋이 옛날의 자신이 떠올랐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감정에 가슴이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첫사랑과 겪은 이별이 어떠했는지 알기에 더 걸어간다면 똑같은 후회를 할까 두렵기도 했다.


"후회는 없어요?"


"네...?"


"저 때문에 비싼 곳 가서 돈을 내도 되는데 후회는 없냐고요."


남자는 소녀가 거절하길 바랬다. 겉으로 보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휴일이어도 허름한 옷을 입은 남자가 일찍 결혼했다면 그 정도 나이가 됐을 법한 딸 같은 소녀와 밥을 먹고 심지어 그 딸같은 소녀가 밥값을 내는 걸 보면 자신도 그렇지만, 지금 옷을 잡고 있는 소녀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저는 괜찮아요! 엄마한테 받은 돈도 있기도 하고... 여기서 알바하다보니..."


"좋아요.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남자가 간 곳은 작고 허름한 분식집이었다. 그곳 음식들의 가격은 다른 분식집보다 싼편이었지만, 바깥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찾지않는 곳이었다.


"저기... 비싼데로 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드세요. 여기는 싸고 양이 많으니까요."


남자는 순대와 떡볶이를 시키고 건물의 반대편에서 담배를 폈다. 분식집은 옛날과 다름 없는 모습이지만, 같이 온 사람만 달랐다.

남자는 이곳에서 첫사랑과 이별을 했고 그 뒤로도 첫사랑과의 이별이 생각이나 다른 애인들과도 길게 가지 못했다.

어쩌면, 그 기억을 잊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곳을 찾은 거였고 그러길 바라며 반쯤 핀 담배를 신발 밑바닥으로 비비며 껐다.


다시 분식집으로 들어가자 소녀가 행복한 얼굴로 떡볶이를 조금씩 먹고 있었다. 기다리다 눈치보며 먹기 시작한 것처럼 받은 것보단 조금 없어졌지만 양이 많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소녀는 행복하게 먹다 남자를 보고 당황하며 입을 닦고 고개를 숙였다.


"계속 먹어도 돼요. 신경쓰지 말고요."


"죄송해요. 제가... 배가 고파서..."


소녀는 우물거리며 말을 했고 남자는 가만히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소녀의 모습에서 첫사랑의 모습이 겹쳐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의 모습을 많이 닮은 소녀의 모습에 남자는 그저 물을 마시며 목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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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킨 음식들이 반정도 남았을 때 남자는 소녀에게 말했다.


"저는 여기서 사랑하는 첫사랑을 잃었어요. 원래 이런 건 다른 사람에게 잘 말 안하는데 너무 미안해 하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예요. 지금처럼 똑같이 떡볶이와 순대가 반정도 남았을 때 말다툼을 했거든요."


소녀는 입 안에 가득히 채운 뒤 입을 가리며 먹다 남자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남자는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이어서 말했다.


"저는 제 첫사랑이 저와 같은 대학교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러지 말라고 했거든요. 괜히 나 때문에 머리도 좋고 씩씩한 아이의 길을 망치는 거 같아서 말이죠. 계속 가겠다고 했는데 저는 끝까지 반대했죠. 그래서 그 아이는 화를 식히려고 밖에 나갔을 거에요. 그랬겠죠. 하지만 밖으로 나가자마자 빠르게 지나가던 차에 부딪혀 죽었어요."


소녀는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사레가 걸려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남자는 그 모습에 놀라 소녀의 등을 두드려주며 진정시켰다.

소녀는 물을 마시고 컵과 같이 들고있던 젓가락을 놓으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그런 말에 갑자기 사레가 걸려서..."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그래서 제가 말을 안하려는 건데... 제 첫사랑의 모습이 겹쳐보여서 그랬던 거니까요."


".... 그렇군요."


"네. 그 뒤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도 이렇게 같이 밥을 먹다 반쯤 남으면 그때 그 친구가 생각나더라고요."


"....."


남자는 살짝 눈물을 흘렸다. 자신도 왜 흘리는 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리워서 혹은 미안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소녀는 다시 젓가락을 집어 순대를 들며 말했다.


"혹시 저희 가게 이름이 왜 월간휴무인지 아세요?"


"아뇨... 잘 모릅니다."


"사실은 그 가게... 괴물들이랑 죽은 사람들을 위해 지어진 곳이었어요. 그들은 낮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 놓고 돌아다니기 힘들고 밤에는 달 때문에 힘을 빼앗길까 겁나서 쉽게 돌아다니지 못 해요. 그래서 달이 없는 날만 되면 가게를 열어서 음식을 원없이 먹으라고 존재하는 거죠."


소녀는 순대를 먹으며 이어서 말햇다.


"그래서 매번 각기각색의 괴물들이 찾아 들어왔어요. 어쩔땐 늑대인간이, 어느 날에는 눈이 한 개 밖에 없는 외눈박이들이 찾아오고 그랬죠. 그런데 딱 한 번 제 또래의 귀신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울면서 들어왔는데 들어와서 이렇게 떡볶이랑 순대를 시키더라고요."


"...."


"저는 왜 그런가 싶었는데 계속 울면서 그걸 먹었어요. 그 뒤로도 매번 와서 먹더라고요. 무언가 잊지 않으려는 거처럼 말이에요."


"....?"


"어제도 왔었는데 혹시 냄새 안났었나요?"


"주기적으로 담배를 피러 갔기때문에 영...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 그렇겠네요. 일단 이어서 말하자면 그 첫사랑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죠."


남자는 머뭇거렸다. 갔다가 모르는 사람, 아니 귀신이라면 어색함을 넘어서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될것만 같았다.

소녀는 남자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을 하다 깨달은 것처럼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 이러면 되겠다. 원래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귀신들은 추억을 가져가면 그곳으로 가게 되어있어요. 다음 번에 제가 사장님께 부탁해볼테니까 그때 이렇게 먹었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싸와서 오실래요? 원래는 안되는데 제가 한 번 빌어서라도 부탁해볼게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한번 해보고 안되면 그때는... 어... 모르겠네요..."


"..... 해보겠습니다. 모 아니면 도일테니까요."


"아 진짜요? 좋아요. 근데 이거 다 드신 건가요?"


소녀는 남은 떡볶이와 순대를 가리켰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남은 건 제가 다 가져갈게요"라고 말한 뒤 분식집 할머니에게 남은 걸 포장해달라고 말했다. 남자는 그 전에 떡볶이와 순대를 조금 먹으며 비워져 있는 자리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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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연락처를 받고 한참이 지난 뒤 소녀에게 문자가 왔다.


[아저씨! 아니... 손님! 지금! 지금이에요! 왔어요! 이번에만 된다고 허락 받았으니까 얼른 가져오세요!]


남자는 문자를 보고 급하게 포장한 음식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두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에 남자는 웃으면서 가게 밖으로 나왔고, 처음으로 담배를 전부 태우며 달이 없는 하늘을 바라봤다.


소녀는 남자가 계산하고 떠난 자리를 치우다 빈 접시 두 개와 비어있는 술잔 두 개, 그리고 비워진 술병을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손님, 드디어 만족하셨나봐요."


자리에 남아있던 손님은 살짝 웃으며 동전을 내고 사라졌다.


달이 떠있는 날에는 문이 닫혀있다. 가게 이름은 월간휴무, 달과 달사이에 쉰다는 얘기다.

문이 열리는 날에는 달이 안보인다. 가게 이름은 월간무휴로 바뀌어, 한달내내 문을 연다.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고, 길을 모르는 것들에게는 지도가 되어준다.

그렇기에 달이 없는 오늘도 그 가게는 문이 열린다. 모든 이가 만족하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