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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직접 삽화도 그려넣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7.

나는 개학일에 맞춰 학교에 갔다. 그날 아침에는 아주머니가 학교 갈 준비를 도와줬다. 아직은 혼자서 머리를 감는 것부터 옷을 입는 것까지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아주머니는 머리를 만져주면서 마치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간 너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조금만 손을 대도 짜증을 냈으면서, 오늘은 웬일로 가만히 있네."


그야, 나는 당신의 딸이 아니니까. 머리를 만지는 아주머니의 손길은 다정했다. 어쩔 줄 몰라 얌전히 있는 내가 귀엽다면서도, 슬퍼 보였다. 네가 예전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거겠지. 그나저나, 네가 매일 이렇게나 단장에 신경을 썼다는 걸 전에는 몰랐는데.


슬슬 문을 나서야 할 때쯤 현지가 찾아왔다. 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아주머니로부터 부탁을 받았다는 듯하다. 지금 보면 아주머니는 내가 너의 몸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었다기보다, 자기 딸이 친한 친구를 잃은 후에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내가 신발을 다 신었을 때쯤에 말했다.


"갈까?"


"그래."


평범한 척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있자. 학교까지 걸으면서 되뇌었다. 나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아직 부담스러웠다. 그러는 와중에 현지는 계속 나한테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 애가 하는 말을 흘려들었다. 그러나 그 중 한 마디가 나를 일깨웠다.


"근데, 잘 어울린다. 그거."


"응?"


그녀는 내 옆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못 보던 머리핀이잖아."


나는 그녀가 가리킨 곳으로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길쭉한 핀이 만져졌다. 나는 무심코 그것을 머리에서 떼어내려 했다. 그러자 현지가 막았다.


"어어, 빼지 마. 잘 어울린다니깐. 너도 봐봐, 저기."


그녀가 가리킨 곳은 휴업 중인 점포의 유리창이었다. 그곳에는 너를 닮았지만, 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여자애가 비쳐있었다. 유리창에 비친 그 녀석은 항상 기운이 넘쳤던 너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 표정을 죽을상이라고 하나. 거울에 비친 녀석은 걱정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아차, 싶어서 표정을 좀 폈다. 옆으로 넘긴 머리카락을 고정하고 있는 두 개의 빨간색 일자 머리핀은 조금이라도 산뜻함을 더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네가 그걸 하고 있던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개학 첫날에 딸의 음침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아주머니가 손을 써두었나 보다.


"잘 어울려. 그치?"


"응. 이건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겠네."


8.

교실에서의 그 어색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다. 일단 난 네 친구들 이름도 몰랐으니까.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다들 관심을 보이면서 내가 앉은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다른 반에서까지 구경하러 오질 않나, 너는 정말 인기가 많았나 보다. 게다가 연구소에서 있었던 사고가 전국적으로 논란이 된 걸 생각하면 너는 예전보다도 더 유명인이 된 셈인가. 선생님이 들어와서 전부 자리로 돌려보내기 전까지 내가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주위에서 떠들고 나는 가만히 다물고 있었던 것 같은데.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너의 역할을 연기하는 게 절대로 쉽지 않을 거라고 직감했다.


점심시간 때는 배가 좀 아프다고 하고 혼자서 화장실을 갔다. 같이 밥 먹자는 애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 모르는 애와 마주쳤다. 볼일을 보던 그 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젠장. 나는 실수를 알아차리고 여자 화장실로 갔다. 그나저나 여자 쪽이면 사소한 걸 볼 때도 앉아서 쓰는 그걸 이용해야 하나. 그거 찜찜해서 쓰기 싫었는데 이젠 어쩔 수 없네. 피차 같은 입장인데 다들 깔끔하게 쓰겠지. 볼일을 보고 복도로 나와 손을 씻고 있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거 익숙해질 수 있으려나."


"뭐가 익숙해져?"


나는 혼잣말을 했는데 뒤쪽에서 대답이 들려서 당황했다. 누가 있었구나. 내가 돌아봤을 땐 이미 나를 지나쳐서 걸어가고 있었다. 검도부에서 친하게 지낸 선배였다. 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잊은 채 무심코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형."


아차 싶었다.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너 나 알아? 미친 년이네."


멀어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와 친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너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웬 여자애가 넘어지면서 잡아당기는 바람에 내가 죽었다—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 교실에 돌아오니 뭔가 달랐다. 친구들의 시선과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혐오? 아니, 기분 탓인가. 어쨌든 나는 이제 그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멍하게 있다 보니 어느새 하교 종이 울렸다. 여전히 내 옆에 모여 떠드는 여자애들 중에서 누군가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뭐라고?"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나는 되물었다. 지금 무슨 얘기가 오간 거지?


"걔가 죽은 건 네 탓이 아냐."


어...


"맞지. 안전사고였잖아. 따지고 보면 견학을 주최한 쪽에서 잘못한 거 아님?"


"근데 애초에 걔도 그냥 자기가 헛디딘 거 아니야? 얘가 팔을 잡아당겨서 물에 빠졌다는 건 어디서 나온 얘기야?"


"몰라, 소문이지 뭐."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둬.


"어, 세연아 괜찮아? 안색이 안 좋아."


"야, 이 얘기는 그만하자."


그쯤에서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에 현기증이 났다. 더는 이 녀석들의 잡담을 듣고 있기 어렵다고 생각이 들 때 쯤이었다.


"세연아, 집 가자! 너네 종례 안 했어? 우린 일찍 끝냈는데."


다른 반에서 일찍 수업을 마친 현지가 구하러 와줬다. 나는 다른 애들을 내버려두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그렇게 그날은 종례도 안 하고 도망치듯 집으로 갔다. 앞으로도 이런 생활이 계속되는 건가. 애초에 미지의 현상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막연한 기대라도 하는 수밖에. 걱정만 잔뜩 늘어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