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겨울 비가 좋다고

눈이 채 못 된 비가 좋다고

차가운 빗방울이 되어 마른 가지에 내리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다

뿌얀 하늘에서 각진 결정이 굳어 내린다

하이얀 결정이 세상을 덮는다

결정은 마른 가지에도 백색 모피코트를 씌운다


아이와 그 어미와 아비와 또 여자와 그 애인인 남자는 

각각 눈밭을 걷는다 뽀득뽀득 소리를 내며 걷는다

아이는- 눈밭에 조그만 몸을 파묻고 뒹굴며 깔깔 웃는다

여자는- 보드라운 손에 눈을 한 움큼 쥐고 깔깔 웃는다

아이의 코는 빨개지고 여자의 손도 빨개지는데

저마다 피운 웃음꽃이 지지는 않는다

(너는 이들과 웃겠지만 함께 웃지는 않겠지)


나는 걷는다

눈의 대평원을 보고싶어 걷는다

아무 상처도 입지 않은 눈밭을 보러 걷는다


이번 겨울 처럼 눈이 많이 내리면은

나는 마른 가지와 눈밭을 위로하러 걷는다

구름이 내린 결정이 씌운 모피코트에 희롱당한 가지와

어떤 아녀자가 순수한 손으로 더럽힌 눈밭을 위로하러 걷는다


가끔은 나도 겨울비가 좋다

눈이 되지 않은 겨울비가 좋다

마른 가지와 눈밭을 차가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는 겨울비가 좋다


오늘은 너랑 나랑 겨울비나 되어 내리자

힘차게 얼은 세상에 소소한 빗방울이나 뿌리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