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부르는 이는 항상 내 이름이 변하오.
어느 날은 본명으로 부르며, 어느 날은 직책으로 부르며 어느 날은 추한 내 모습을 물건에 빗대어 부르곤 하오.
그 모든 이름에 나를 의미 하는 모습이 담겨 있고 내 일생이 담겨 있소.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은 담겨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슬프오.

나는 글의 끄나풀일 뿐이오. 어렵게 말을 포장하나 그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기 힘든 글의 낙서일 뿐일거요. 그럼에도 나는 글의 끄나풀로서 스스로도 이해못할 단어를 찾아가며 차츰차츰 글을 어렵게 만들곤 하오.
그런 내가 양심 없게도 원하는 호칭의 뒤에는 항상 가가 붙어있소.

작가라는 거대한 호칭으로 불리면 기분은 좋겠소만 그걸 원하는게 아니오. 내가 원하는 호칭은 공상가, 사색가와 같이 소박하다 말하면 소박하고 대단하다 말하면 대단하다 할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단어요.
그 단어로 불리지 못해 지난 5년간 가슴 한켠이 메이고 고통스러웠소.

가.
이 한단어를 잊지 못해 매일 밤마다 공상에 빠져 몽롱해지고 매일 아침마다 사색에 잠겨 겨울에 빠져드오.
모던함과는 거리가 멀면서도 위트와는 척을 진듯 애매한 자의 외로움을 힘겹게 이겨내며 살고 있소.

가.
이 한단어를 받지 못해 오늘도 나는 내 속의 겨울을, 블루를 꺼내들어 들이붓고 있소.

차가운 겨울 공기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오.
가슴 속 아린 상처를 찬 공기로 덮어 씌우곤 공상에 빠진채 고무 망치를 수천번 휘두르오.
그리곤 난 그들에게 언제나와 다른 호칭으로 불릴거요.

그 중에서 내가 원하는 호칭은 오늘도, 내일도, 어제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