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는 기본적으로 수도권 vs.비수도권 구도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임. 그럼 같은 비수도권 내에서 최적의 효율을 발휘하는 곳에 놓는 게 이상적임. 혁신도시를 이상한 데 꼴아박지 말고 지방 대도시에 줬어야 한다는 의견은 이런 입장에서 나오는 것임.


물론 비수도권 내에서도 도시 vs. 촌락의 불균형이 존재함. 근데, 나는 진정으로 촌락을 살기 좋게 만들고 싶다면 뭔가 거창한 걸 떼다 준다고 살기가 급 좋아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음. 지금 혁신도시도 볼멘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촌에다가 처박아놓는다고 무슨 효과가 생길 거 같진 않다. 근린 상권이 활성화됨으로써 지역 경기 부양은 되겠지만, 그런 '거창한 것'을 유치한 결과가 고작 이거뿐이라면 그야말로 돈지랄이 따로 없음.


그럼 농어촌에 진정으로 필요한 건 뭐냐? 첫 번째는 근린 상권의 유지임. 마트, 편의점, 음식점, 빵집, 카페, 패스트푸드점, 치킨집, 의원, 약국, 문구점, 세탁소, 은행, 미용실, 노래방, PC방, 호프집, 사진관, 자동차 수리점, 헬스클럽, 보습학원 정도가 현대 한국인이 일상생활을 할 때 꼭 필요한 생활편의시설이라고 생각됨. 그리고 하는 일에 따라 법무사나 세무사도 필요할 것이고, 농업을 한다면 철물점과 농기계 수리점, 농사용품점도 필요하겠지. 물론 시골에는 텃밭에서 채소나 키워서 밥이랑 잡수시고 읍내에서 하는 소비활동으로는 식료품과 농기구 구입, 미용실 이용 정도나 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건 대체로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나신 분들이나 그렇고 한국전쟁 이후 출생이라면 1차산업 종사자라도 문화생활도 즐기고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 같은 서구적인 편의시설도 잘들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음. 특히 읍내에 사는 사람이라면 절대 풀만 먹고 살진 않음... 즉 엄연히 현대적인 생활시설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거. 그리고 귀촌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현대적인 생활시설을 이용하고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게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귀촌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귀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짐. 다시 말하지만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밭에서 풀만 키워먹고 살진 않는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생활시설들이 제대로 갖춰지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급선무다. 뭐 듣보잡 면단위에까지 편의시설 다 깔아달라는 건 아니니 지역의 경제적•문화적 구심점이 되는 읍내 정도만 제대로 잡아줘도 '절대적인 의미로' 살기 불편하지는 않겠다. 요새는 작은영화관이라고 막 영화관도 세우고 보성에도 올해 생겼던데, 이렇게 생활과 관련된 인프라를 확충하거나 관리해달라는 거임.

두 번째는 대도시행 교통 확충임. 아무래도 근린 상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가끔 생기기도 하고, 촌에서는 쇼핑을 즐기거나 병원을 다니려면 무조건 근처 대도시나, 대도시가 없으면 중견 도시로 나가야 함. 군 중에도 종합병원이 있는 군은 많지만 진료 스킬이 딸려서 큰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음. 우리 아빠가 뭐랬냐면, 상태가 엄청 안 좋은데 그렇다고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라면 보성아산병원 가지 말고 풀악셀 밟고 전대병원 가라 했음. 그리고 당장 죽을 상태면 일단 보성아산병원에서 응급처치 정도만 하고 제대로 된 치료는 전대병원 가서 받으라고. 우리 아빠가 옛날에 보성아산병원 응급실에서 보조로 일한 적이 있고 지금도 아빠 하는 일 대상자들을 병원 데리고 다닐 일이 많아서 어디 병원이 좋다 이런 건 잘 알지. 그리고 정신과 같은 경우는 보건소에서 정신과 진료를 해주는 곳도 있긴 하지만 애초에 보건소 따위에서 진료를 받는 사람이 별로 없고(...) 대체로는 개인의원을 가더라도 대도시로 가야 하는 상황임. 특히 시골에서는 노인성 질병이나, 1차산업 종사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외상의 위험이 높은데 의료 인프라는 형편없어서 취약지역인데, 그렇다고 큰 병원을 방방곡곡에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기존에 있던 큰 병원으로 가는 교통이라도 해결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임. 요새는 도로가 좋으니 차가 있으면 장땡이지만, 차를 운전하지 않는 사람도 편리하게 오갈 수는 있어야 되니, 읍내 기준으로 최소한 중심 도시까지 40분~1시간 간격으로는 시외버스를 운행할 수 있게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시골에 살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소회임.